01 그렇게 된 거야

왕자는 자신의 나라를, 가족을 사랑했다. 아무리 그들이 자신을 혐오하고 징그러워한다 해도 그는 그들을 사랑했다. 아무리 자신을 싫어한다 한들 그들은 자신의 가족이었고 피로 이어진 관계였다. 그는 그의 모친 또한 사랑했다.





01 그렇게 된 거야





모친마저 불분명한 왕자의 앞날은 절대 순탄치 않았다.
자신이 들어온 날 신전에는 신탁이 떨어졌고, 그 신탁을 듣고 자신을 보던 왕과 왕비의 눈을 그는 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친모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어릴 때의 기억부터 되짚어보자면 그 기억은 어둡고 캄캄한 공간에서 시작됐다. 방 안은 언제나 악취로 덮여 있었고, 굳게 닫힌 나무문은 열리지 않았다. 밖에서는 언제나 절망과 한탄이 섞인 어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내용에는 언제나 자신을 원망하는 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 어미는 지독하게 자신을 싫어했다.
자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으며 죽여 버리고 싶어 했다.
매일 제 목을 조르는 어미를 그는 슬픈 눈으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신이 숨을 넘기기 직전 그녀의 손은 힘을 풀었고 그의 어미는 울며 자신에게 미안하다 속삭였다. 하지만 다시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을 증오했다.

자신도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모를 험난한 생활 속에서도 제 목숨은 구질구질하게 붙어있었다. 가끔 딱딱해진 빵이 던져지면 지붕을 타고 흘러들어왔던 빗물과 함께 먹곤 했다. 간혹 썩은 빵이 껴있었기에 배앓이를 했지만 어쩐 일인지 죽기 전까지 가도 곧 다시 살아나고는 했다.

어미가 나가있는 일은 많았고, 자신은 언제나 썩은 오두막에 갇혀있는 가운데에도 자신은 외롭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두막은 언제나 북적거렸고 사람은 많았다. 지금껏 어미 외에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그도 오두막 안에 있는 이들이 살아있는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과 매우 다르게 생겼었고, 형태가 기괴하게 꺾여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과 대화 도중 처음으로 정신을 잃었던 날 눈을 뜨니 어미가 자신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그러고는 절대로 그 누구와도 얘기를 하면 안돼노라 타일렀다.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어미가 그리 말했기에 알겠다했다. 자신의 어미에게만큼은 잘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잃어났고 눈을 뜨면 언제나 어미가 있었다.
결국 언젠가 어미는 자신에게 오두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반지를 끼워주었고, 절대 빼지 말라 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언제나 그 반지를 어루만져 주었는데 그때의 느낌은 매우 따스했다. 그 후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삶의 연속에서 그의 어머니의 몸은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자신에게 날카롭게 소리치던 목소리는 힘을 잃어갔고, 눈을 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4살이란 어린 나이에도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미가 잃어나지 못하자 당연히 식사도 불가능했고, 그 또한 몸의 힘을 잃어갔다.
어미가 죽던 날, 잠시 눈을 뜬 어미는 딱딱해진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힘들게 쓰다듬었다. 지금도 그는 그때의 말을 잊지 못했다.

‘... 네가 싫다... 너를 낳아서... 너를 죽이지 못해서... 내 인생은... 너 때문에 엉망진창이었어...불쌍한 놈... 버러지 같은 놈... 난... 너를... 증오해... ’

눈물 섞인 슬픈 외침이었다. 마지막 남은 온기가 제 몸에 전해지자 어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어미의 죽음이 그리 충격이었는지 분명 며칠은 못 먹었을 터인데도 목이 찢어져라 울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는 본인도 모를 일이었다.



***



아일라 호르네로즈.
그녀는 날 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능력을 가졌었다.

사람마다 신력 아니면,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이는 극히 드물었고 아일라는 그 드문 케이스 중에서도 훨씬 드문 케이스였다. 신력과 마력 두 가지를 모두 타고난 것이었다. 그녀는 폭발적으로 많은 마력과 신력을 타고났지만 불행한 점은 그 마력과 신력이 다시 회복되지 않는 점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신력, 드물게는 마력을 갖는데 그건 살기 위함이었다. 그 힘이 있어야 숨을 쉬고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생명체는 사는 내내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힘을 만들어 내 사라지는 힘을 충당시키는데 아일라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폭발적인 힘의 양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신관이 되길 꿈꿨다. 하지만 신관의 길이란 험난했다. 마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는 자신의 무리에 끼워주지 않는 것이 그들의 도도한 자존심이었다. 신관들은 오래전부터 마력을 가진 이들을 악마의 힘을 받은 것이라 욕했고 그랬기에 마법사와는 앙숙 중의 앙숙이었다. 하지만 아일라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마력을 숨기고 페르소스 왕국 내 최고의 신관이 되었다.

그녀는 대신관이 되면서부터 자신의 힘을 무분별하게 사용했고, 결국 가지고 있던 그 많은 신력을 모두 사용하는 데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그녀에게는 절반의 마력이 나아있었기에 살아 움직일 수는 있었다. 그녀는 신력이 없어진 후 모든 활동을 접은 뒤 기도를 핑계로 신전 깊숙이 틀어박혔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갈구했지만 자신은 더 이상 줄 수 있는 신력이 없으니 문제였다.

그 사실을 왕세자에게 들키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성녀라는 호칭을 평생 달고 죽을 수 있었다. 왕세자는 사실을 누설하지 않는 대신 자신에게 하룻밤만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신관은 신에게 자신의 모든 목숨을 바쳐 맹세를 해 절대 누군가와 하룻밤을 보내거나 아이를 낳는 일은 하지 않았다. 결혼도 포함이었다. 왕세자가 그녀에게 요구한 것은 신관으로서의 그녀를 모욕하고 무시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녀는 더 이상 신력을 쓸 수 없다는 불안감과 마력의 존재를 숨긴 죄책감에 찌들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자신의 자리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그녀는 왕세자와의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고, 그 한 번으로 아이가 생기고 말았다. 절망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신을 속여 이리 된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안에 하나의 생명체가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하루 종일을 신전에 틀어박혀 기도만 했다. 자신이 평생을 바친 신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절망을 뒤이어 제위식을 치르고 이제는 왕이 된 세자는 그녀에게 신전을 나갈 것을 요구했다. 얼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첫눈에 반한 자신의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일라는 절대 나갈 수 없다 버텼고, 결국 왕세자는 아일라의 일을 왕국에 퍼트렸다. 그녀가 대신관의 몸으로 잠자리를 가져 사내의 아이를 배었다는 내용 이었다.

그녀는 왕에게 깊은 분노를 느끼며 이 아이가 왕의 아이라 소리쳤지만 그 말은 너무나도 쉽게 묻히고 말았다. 왕비 쪽에서 손을 쓴 듯 했다. 결국 그녀는 대신관의 자리에서 박탈을 당하고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버려졌다.

이제는 아니지만 차마 신관이었던 몸으로 아이를 죽일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출산을 해냈다. 하지만 증오하는 사람의 아이라는 사실이 자신을 괴롭혔고, 그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이를 볼 때면 꽁꽁 숨겨두려던 증오가 새어나와 정신을 차리면 자신의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 조그만 아이의 목을 짓누르면, 그 아이는 이미 알기라도 한 듯 슬픈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 눈이 마치 자신 같아 차마 죽일 수 없어 번번이 실패했다.

게다가 자신의 아이는 신력이 아닌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로 그 마력조차 매우 희미한 힘을 띄었다. 자신처럼 능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저주는 없지만 그 힘이 차오르고 줄어드는 양이 반비례 해 아이는 매우 연약했다. 마력을 쓰지 않는 이상 죽지는 않겠지만 신체적 활동은 힘들 터였다.
그녀는 아이를 살려야 한다, 죽여야 한다에서 언제나 갈등했지만 정신을 차리면 아이에게 자신의 힘을 치유로 바꾸어 고쳐주고 있었다.. 그 아이가 죽을 것 같으면 그대로 둘 것을 꼭 힘을 주어 그 아이를 죽음에서 비껴가게 했다. 자신도 이 감정을 차마 설명할 수 없어 언제나 괴로워했다.

그 아이가 3살이 되던 날 알아버린 사실은 더 들어갈 때도 없는 그녀를 더욱 더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아이는 재능, 아니 저주를 타고났다. 그는 살아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가끔 나갔다 돌아오면 그 아이의 몸은 다른 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힘으로 겨우 그것을 몰아내면 아이는 끊어질 것 같은 숨으로 자신의 옷깃을 잡았다. 증오하는 사람의 자식이었지만 그래도 반은 자신을 닮은 아이었기에 완전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한 결정은 자신의 힘을 담은 장신구를 차게 해 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힘을 그 아이의 마력에 맞게 바꾸어 몸속에 직접 넣어주면 좋으련만 신력이나 마력은 맞는 사람끼리만 서로의 몸에 전해줄 수 있었고 그 경우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자신이 그나마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아이의 몸을 다른 이가 차지하지 않게 자신의 힘으로 보호해 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매일매일 조금씩 그 아이의 반지에 자신의 힘을 담아 주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력을 쏟아 그 아이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 짓을 반복했다. 그 아이를 죽이려 했던 순간, 욕설을 날렸던 순간, 때렸던 순간 지금 돌아간다 한들 자신을 또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이건 아이를 향한 속죄였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보내기에는 아이가 자신같아 너무나도 가여웠다.

사람은 신력, 마력이 없어도 죽음을 받지만 신체가 힘으로 감쌀 수 없이 망가질 때도 죽음이 다가왔다. 그녀는 후자였고, 천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중 이었다.




자신은 더이상 이런 잔혹한 세상에 아무 미련이 없었지만 눈을 감으려는 도중 울고있는 아이의 목소리가 자신을 붙잡았다. 한 번도 운 적 없는 그 순한 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 세상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 네가 싫다... ’
-내가 싫다

‘너를 낳아서...’
-너를 사랑해 주지 못 해서

‘너를 죽이지 못해서...’
-너를 아껴주지 못 해서

‘내 인생은...너 때문에 엉망진창이었어...’
-내 인생의 잘못된 선택으로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 해 미안해

‘불쌍한 놈... ’
-언젠가 한 번이라도...

‘버러지 같은 놈... ’
-우리 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난... 너를... 증오해... ’
-사랑한다...



숨겨둔 말이 그녀의 미련이 되었지만, 이미 꺼져가는 영혼은 다시 타오르지 않았다.점점 세상이 어두워지고 아이의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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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17 13:23 | 조회 : 846 목록
작가의 말

왕자가 죽은 어머니의 영혼을 보지 못한 이유는 어머니가 죽자마자 왕실 사람들이 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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