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비밀 6화

비밀 6화





***




기사들이 삼엄하게 호위하고 있는 마차 안에서 아르테온은 창가에 기댄채 늘어져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진짜, 어쩌면 진짜,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는 거일 수도 있어. 그 애 되게 잘생겼잖아...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 애는 남자니까''

나는 이성애자다.

그 아이를 향한 모호한 감정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확실하게 나는 이성애자다.

왜 확신할수 있냐면 그야 나는 내 사촌 누이인 리시아나를 짝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아카데미의 일로 잠깐 수도에 들렸다가 어쩌다 발견한 불법업소를 단속하고, 그 소년을 구해내기 전에 분명히 나, 아르테온 카이로 네르시안은 리시아나 엘리즈 포르티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게 양방향이 아니라 한방향이라서 문제였지.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니, 마찬가지여야만 할 것이다.

"리시아나한테 고백했다가 아직까지 답을 못들어서 그럴까... 고백까지 했으니 만약 내가 그 애를 좋아하는 거면 큰 일이잖아."

하아-

소파 위에 새우처럼 몸을 말고 앉아있던 다리에 머리를 푹 파묻었다.
답답했다. 나는 첫 눈에 반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처음보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이든 간에 그런건 사랑이 아니라 아름답고 희귀한 것에 대한 소유욕 정도라고 생각했다. 아주 훌륭한 예시가 내 근처에 다수 있었으니까.

"그래, 이건 소유욕이야. 소유욕이어야만 해. 그러니 이건 소유욕이야."

무릎에 파묻었던 고개를 반쯤 들고 결심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 내가 소유욕을 가질수 있지. 불면 날아갈까 닿으면 부서질까 집요하게 보호하는 것도 아름답고 희귀한 것을 잃고 싶지 않은 소유욕에서 기인한 것인 것이다.

'...그래봤자 확실히 알 생각은 안하고 자기합리화만 할 뿐이군'

입 안에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




그 시각, 불곰이 득실거리는 숲 안. 노예 소년은 어찌저찌 길을 찾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봤자 자신이 있는 곳은 곰의 영역. 그것도 중심부였고 게다가 거기에 볼 일 까지 봐버렸다. 곰이 그 냄새를 맡으면 뭘해도 영역을 침임한 저를 찢어죽이러 올게 분명했기에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며 나무를 뒤졌다. 나무에 o모양의 상처를 내고, 드러난 나무의 하얀 속살을 붉은 안료로 칠해 남긴 표식이었다.

"...!"

자신이 왔던 길을 최대한 찾아 다시 되돌아오던 소년은 짙은 고동빛의 커다란 나무에 파여져있는 붉은 원 모양을 발견했다. 표식이었다.

"휴..."

'다행이다.. 죽지 않고 다시 그 분을 뵐수 있게 될 확률이 높아졌어. 이제 나머지 표식도 찾아 따라가면 되겠다. 표식이 여기에 있으니 단거리에 또 표식이 있겠지?'

소년이 얼굴에 슬며시 웃음기를 띄우며 주변을 수색했다. 표식이 있는 나무의 왼쪽 부근을 살펴보던 소년이 위험한 징조를 발견했다.

"..!"

'죽은 고양이? 아니 고양이 치곤 너무 큰데.. 무늬를 보니 표범인가?'

소년이 죽은 표범 근처로 다가갔다. 온기가 따끈하게 남아있었다. 최소 한시간 전에 죽은 표범이었다.

그런데 표범이 왜 여기에 이리 처참하게 죽어있을까. 다른 포식자가 죽이기만 했지 먹진 않은 사체였다.

문득 숲에 들어오기 전 주의사항을 말해주던 기사의 다른 말이 떠올랐다. 곰은 열매, 풀, 꿀, 버섯 등을 선호하고 육식은 작은 동물이나 물고기를 선호한다고 했었다.

'설마..?'

죽은 표범 사체에는 확실히 곰한테 당한 흔적이 있었다. 애초에 여긴 곰의 영역이고 이곳에서 맹수인 표범을 사냥할 정도의 포식자는 기껏해야 호랑이일텐데 호랑이였으면 표범 사체를 먹었을 것이었다.

역시나였다. 근처를 뒤져보니 곰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있었다. 곰은 소년이 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었다. 곰은 의외로 무척 빠르다고 했으니, 자신의 영역에 묻어있는 소년의 냄새를 맡고 다시 이곳으로 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당장 여길 벗어나야 해'

소년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곰이 있으면 큰 소리를 내어 쫒아낼수 있다고 하였으나 자신은 말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소리를 낸다 해도 만약 곰이 근처에 있으면 도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숲을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야 했다. 달리고 있는 소년의 시야에 푸르른 식물 잎사귀들이 하염없이 스쳐갔다. 달리면서 군데군데 표식도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부족해 도저히 버틸수 없게된 소년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년은 겨우겨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멀리, 아니 점점 근처로 다가오는 느린듯 빠른듯 애매한 발 소리가 들렸다. 네 발 짐승 몇몇의 소리 였고, 분노한 어미곰의 소리였다.

"쿠으-쿠어어어-! 우어- 크워어-!"

아주 낮고, 거친 포효 소리가 드넓은 숲에 울려 퍼졌다. 덩치가 아주 크고 흉포한 곰이었다. 근처에는 새끼가 있었다.

'내가 새끼가 있는 어미곰의 영역을 건드렸구나..'

아아, 더는 가망이 없었다. 새끼를 가진 어미곰은 상당히 위협적이고 사납다던데. 이젠 흉포한 어미곰이 그저 자신을 고통없이 보내주기 만을 바라게 되었다.

'듣기론 곰은 내장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정말 고통스럽게 죽겠구나..'

소년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죽음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죽기 전에 그 분에게 연모한다고 한 번 쯤은 말해보고 싶었는데..'

소년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와 갑옷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위협적이었는지 어미곰이 천천히 위압적인 발걸음으로 다가오던 것은 멈췄다.

소년이 감았던 눈을 크게 떴다. 누군가 오고 있었다. 살 수 있었다. 살아서 다시 그 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분께 갚아야할 또 다른 빚이 생겨벌고 말았다. 그도 그럴게 이 근처를 다니는 기사들이라면, 그 분의 기사단 밖에 없지 않는가.

"..아아-"

소년이 앓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구원이었다, 연모하는 그 분의.

또 다시, 그 분이 나를 구원해 주신다. 이래서야 어찌 연모하지 않을 수가 있는지...

소년은 희망과 절망의 감정이 뒤섞여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자조적이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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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1-09 21:19 | 조회 : 1,37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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