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비밀 5화

비밀 5화





소년과 도련님은 간밤의 일에 서로 쪽팔려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침낭에서 벗어나 근처 호수에서 길어온 물로 세수를 하는 두 사람의 얼굴은 쾡했다.

"..난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딴 소릴한거지?"

노예 소년이 볼 일을 보러 야영지 근처 숲 안쪽으로 들어간 사이 에릭과 마차 안에 둘만 남게된 아르테온이 자괴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응, 무슨 일 있었지. 없었으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까?

아르테온은 에릭에게 대답도 안하고 멍하니 창 밖만 보다가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16년 인생 최고의 쪽팔림이었다. 도대체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름을 묻고, 사과를 한 뒤 얼빠지게 쳐다보며 한말이 네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멍 때렸다는 말이라니. 애초에 사내한테 아름답다 한 것도 이상한 말이지 않은가. 게다가 그 아이는 조금 예쁘장한 면이 있긴 하지만 아직 어려서 그렇지 대체로 남성미 넘치는 눈과 눈썹뼈와 입술, 콧날을 가졌는 걸.

"아악! 괜히 말했어! 멍청하게 그 때 걔한테 아름답단 말을 왜 해!"

아르테온이 소파위를 굴러다니며 괴로워 했다. 평소에 공작가의 후계자로서 잡던 무게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에릭이 어이 없단 듯이 물었다.

"설마 그 꼬마한테 아름답다고 말하고 지금 이리 쪽팔, 아니 창피해하시는 겁니까?"

아르테온은 아차 하며 소파 위를 굴러다니던 것을 멈추었다.

"..그래, 그렇다. 됬냐?"

에릭은 별 걸 다 창피해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뭐 어때서요. 그 애를 좋아하시기라도 하십니까?"

아르테온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다 뚝 멈추곤 어정쩡한 자세로 말했다.

"...아, 니?"

"그런데 왜 짝사랑하는 여자애한테 고백하다 실수한 소년 같이 구시냐고요.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신데."

"그으, 렇지 그래. 전혀 아니지..그래.."

"그러니까 이제 뻘짓은 그만하세요. 제가 다 보기 창피합니다. 아침부터 그 아이를 보기만해도 얼굴 붉히면서 내빼시지 않았습니까. 다른 이들이 허튼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알, 알겠다고.."

아르테온이 뭔가 얼 빠진듯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에릭은 요즘따라 이상하게 한심해보이는 제 동갑내기 주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대(大) 네르시안 공작가의 후계자가 그 노예 소년을 불쌍히 여겨 동정하는 것을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노예 소년에게 연심을 품는 것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연심을 품은 아르테온도, 새끼가 어미 보듯 맹목적인 눈으로 아르테온을 바라보는 그 노예 소년도 모두 상처입고 위험해질 일이었다.

"제발 내 착각이길 바라야 겠군."

에릭이 속으로 쯧쯧 혀를 차며 다시 마차 밖으로 나갔다.




***





한 편, 숲으로 소변을 보러간 노예 소년은 볼 일을 다 보고 바지춤을 정리하고 있었다. 볼 일을 다 본 자리는 발로 흙을 밀어 덮었고, 이제 평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다.

"....."

'여기가 어디지..?'

분명 나무마다 표식을 보고 따라서 들어왔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표식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소년이 표식을 따라오다 길을 잘못 든 것이었지만 소년이 그 사실을 알리는 만무했다.

소년은 평원으로 돌아가려고 뻗은 발을 멈추고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이 숲에는 곰도 나온다는데.. 지금 나 되게 위험한 상황 아닌가?'

어떻게 해야하지.

소년은 잠깐 고민하다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 곳이 곰이 이 넓은 숲 전체를 영역으로 삼을 순 없었을 것이다. 듣기론 제국에서 가장 큰 숲이라던데. 아무튼 숲에 들어오기 전 사람들한테 들은 것이있었다. 곰이 영역 표시를 어떻게 하는지, 곰이 무엇을 먹으며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등등을 말이다.

"...아.."

소년이 짧게 탄식했다.

곰이 영역표시를 한 흔적이 있었다. 나무에 달라 붙어있는 털과 발톱 자국 이라던가, 곰이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땅을 판 흔적 등이 곳곳에 있었다.

최대한 빨리 숲을 빠져나가야 됬다. 허나 그러다가 곰의 영역 깊숙이 들어가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나무 위에 올라가거나 물 속에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 이 숲에 사는 곰은 나무 타는 것도, 수영도 모두 잘한다고 했다.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소년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



붉은 머리 평기사 안단테 페르시온이 안절부절하며 야영지 입구를 서성거렸다. 갈색 머리의 평기사 한 명이 안단테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꼬마 왜 이렇게 안 오지?"

"누구? 아, 그 노예?"

"깜짝이야! 후.. 그래, 도련님이 데려오신 그 노예. 숲으로 볼 일 보러 간지 꽤 됬는데 아직도 안오잖아"

"좀 느긋하게 오는 거 아니야?"

"아니야. 느긋하게 오더라도 진즉에 왔어야 했어. 혹시 길을 잃었으면 어떻게 하지? 거기 불곰 나오는 숲이잖아"

"그 아이가 온전히 돌아오지 못하면 도련님께서 경을 치실 텐데... 어쩌지?"

"그니까.. 내 말이 그 말이다."

네르시안 기사단의 평기사 둘이 속닥거리고 있었다.

"거기,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르테온을 진정시킨뒤 호위를 인계하고 경계조를 둘러보던 에릭이 평기사 둘이 속닥거리는 모습을 보곤 물었다.

"아, 그.. 도련님이 데려온 그 꼬마가 숲으로 들어간지 한참됬는데 아직도 안와서 걱정이되서."

"언제 갔는데 아직 안왔답니까? 숲에 갔다오는 데엔 30분 정도 걸리지 않나?"

"그게 3시간 정도.."

"3시간이나요? 그거 위험한거 아닙니까!"

"그게.! 아오.. 그렇긴 한데 노예를 데리러 기사단이 움직일순 없는 노릇이라.."

"도련님께서 그 소년을 최대한 보호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련님의 명이 있으셨는데 어찌 지금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시지 않았습니까!"

에릭이 언성을 높였다. 도련님께서 아끼시는 아이였다. 그 신분이 아무리 천하다 해도 도련님이 친히 명까지 내리신 아이였다. 그 소년을 구해야만 했다.

"전 도련님께 보고드리러 갈 테니 경들께선 구출조를 모아주십시오!"

에릭이 황급히 마차로 뛰어갔다. 남은 두 기사들도 서둘러 기사들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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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1-09 17:21 | 조회 : 1,360 목록
작가의 말
에스테로(aws40662)

6,7화 9시 즈음. 8화 11시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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