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비밀 7화

비밀 7화





달리는 말발굽 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어미곰이 슬슬 새끼를 데리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어디있어! 그..! 친구야! 어디있느냐!"

친구? 나를 말씀하시는 건가?

"저기 있습니다!"

"이랴! 위험하게 왜 거기있어! 기다려! 구해줄게!"

네르시안 공작가의 기사들과 아르테온이었다.

노예 소년을 위협하던 어미곰은 강해보이는 다수의 인간들을 보고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저 놈의 불곰! 아예 씨를 말려야지 말입니다!"

붉은 머리의 평기사가 동조했다.

물론 다른 몇몇 기사들은 고작 노예를 구하기 위해 자신들이 움직이고 있단 사실에 불만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네르시안 공작가의 기사단은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이들 위주로 기사들을 뽑았기에, 노예라도 어린이를 구하는 일이라 생각하곤 별 불만이랄게 없었다.

다만 그들의 주군이 노예 소년에게 갖는 감정이 좀 남다른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괜찮느냐!"

어느새 노예 소년의 앞으로 도착한 아르테온이 황급히 말에서 내려와 노예 소년에게 달려갔다. 노예 소년은 그와중에 안절부절 못하는 아르테온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나를, 걱정해 주셨구나..'

기분이 묘했다. 남 몰래 연모하는 이의 걱정을 받으니 기쁘긴 기뻤으나, 아르테온이 자신을 좋아하지도, 할 수도 없었기에 입 안이 씁쓸했다. 허나 그것도 배 부른 소리. 이 정도의 관심이라도 노예 소년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날 지경이었다.

노예 소년이 달콤한 기분과 안도감에 정신이 팔려있던 그때, 달려오던 아르테온이 다른 이들은 눈은 신경도 안쓰고 노예 소년을 꽉 안았다.. 추진력과 아르테온의 무게 때문에 노예 소년이 휘청였다.

"..?!"

노예 소년의 짙은 쌍커풀이 있는 선명한 눈에 경악의 감정이 차올랐다.

"..어, 어어..!"

당황한 소년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다가 아르테온의 무게에 그만 뒤로 넘어져 버렸다.

"..아.!"

"읏!"

두 소년의 단말마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아르테온이 넘어지며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그의 입술이 노예 소년의 입술과 아슬아슬하게 맞다아있었다. 까만 머리카락에 파묻혀있는 노예 소년의 귀끝이 터질듯이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아르테온도 마찬가지로 귀족적인 두 뺨이 붉게 물들어갔다. 당황한 아르테온이 황급히 얼굴을 떼어내곤 어버버거리며 겨우 말문을 틔었다.

"..아..! 그, 그게! 미, 미안하다!"

노예 소년은 입술에서 느껴졌다 말캉한 무언가에, 아까 전보다 더욱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소년의 크게 띄어진 선명한 눈이, 이젠 아예 삼백안으로 보일정도로 크게 떠져있었다.

아르테온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우곤, 얼음처럼 굳어있는 노예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얼떨결에 땅바닥에서 일어나게된 노예 소년은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는지 멍한 빛이 눈에 감돌고 있었다.

"그.., 가자!"

아르테온이 애써 괜찮은 척, 설레이지 않았던 척하며 삐걱거리는 걸음 걸이로 노예 소년을 이끌었다.




***




"다시는! 혼자 숲 속 깊숙이 들어가지 말아라! 혼자서 위험한 짓 하지도 말고, 알겠느냐?"

아르테온이 노예 소년의 시선을 절묘하게 회피하며 소년을 혼냈다.

"..."

끄-덕

노예 소년이 길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뜻이었다.

"하아-"

아르테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족감인지 뭔지 모를 감정이 섞여있었다.

마차 안에서 아르테온이 설교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에릭은 착잡한 눈빛으로 노예 소년을 바라보았다. 에릭의 그 묘한 눈빛을 눈지챈 아르테온은 이상하게 심사가 뒤틀리는 느낌이났다.

"에릭 경, 저 아일 왜 그런 눈으로 보는가?"

갑자기 치고 들어온 아르테온의 말에 에릭이 반문했다.

"그런 눈이 뭡니까? 주군."

"왜 그런 음흉한 눈으로 저 아일 보느냔 말이야.."

에릭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아르테온을 빤히 쳐다보다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요. 음흉한 눈이 뭔진 모르겠지만, 별 거 아니었습니다. 그냥 도련님 설교를 달리는 마차 안에서 장장 3시간을 듣고 있는 저 아이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져서요."

뭔가 묘하게 아르테온을 한심하게 여기는 말투였다.

"안 믿기는데"

"믿지 마시든가요."

아르테온이 에릭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결국 패배를 인정한 아르테온의 시선이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던 노예 소년으로 향했다.

"그러고보니, 너 네 이름은 기억하느냐? 새로 정해줘야 할지, 아니면 네 이름을 알아봐야 할지 고민이 되는 구나."

"..."

노예 소년이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엇다.

"기억 나지 않는단 말이냐?"

끄덕-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직접 이름을 지어주마! 음.. 어떤 이름을 갖고 싶으냐? 꽃 이름? 아, 아니지 이건 너무 여성스러울려나?"

아르테온이 신이 나서 열심히 떠들었다.

"..아! 그래, 에릭 경. 자네는 어떤 이름을 지어주는게 좋을거 같나?"

".....그냥, 평범한 이름이면 되지 않을까요? 너무 귀족적이게 지어주는 것 보단 그게 나을 텐데요."

"평범한거라니! 자네는 저 아이한테 레오, 레이, 레아같은 돌림자 이름이나 지어주고 싶은가? 그런 이름은 수도 안에만 해도 수만명일세!"

"그러면 저 아이는 킬데아레스 제국 인같은데 그 나라 식으로 지어 주시던가요."

에릭이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까 어이없이 인지하지도 못한채 절 질투하던 주군이 또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애 이름 지어줄 생각에 신이 나서 아까의 일은 신경쓰지도 않는게 에릭은 좀 언짢았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흐음...킬데아레스? 킬데아레스라.."

아르테온이 다시 생각에 빠졌다.

"킬데아레스는 남녀 가리지 않고 꽃이름을 많이 쓰지.. 그러니까 로터스, 어떠느냐?"

'로터스라면... 더러운 물에서 자라는 연꽃?'

노예 소년이 잠시 말이 없자 불안해진 아르테온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 너는 안좋은 일을 겪을뻔 했으나 결국 이리 온전히 구출됬지 않느냐, 그래서 그냥 더러운 물에서 자라나도 결국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에 빗댄것 뿐이다. 혹시라도 뜻 때문에 맘에 들지 않으면.!"

아르테온이 말을 잇고 있던 그 때, 노예 소년, 아니 로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석이 그러면, 뜻이 뭐가 되었든 너무 좋아!'

흑옥의 눈이 긍정의 감정을 한가득 담으며 반짝였다. 입꼬리가 주욱 올라갔다. 로터스가 아르테온에게 구출된 이후 처음 짓는 환한 미소였다. 연꽃 따위에 비견할게 아니라 태양에도조차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눈이 부셨다.

신이 한땀한땀 섬세하게 빗은 것만 같은 그 아름답고 잘생긴 얼굴에 아르테온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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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1-09 23:58 | 조회 : 1,566 목록
작가의 말
에스테로(aws40662)

다음화 오늘 새벽이나 내일 올라갈거 같아요. 그조차도 어기면 삽화도 들고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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