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달달하고 몸에 나쁜 사탕은 그래도 먹게 된다.

* 이 글은 BL 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집착, 추격전(?)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으시는 것을 삼가주세요.

이안과 한 집에서 산 지 대략 12일을 넘길 때쯤 리유비아는 확실하게 인정했다.
자신의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처음 리유비아의 불안과는 다르게 이안은 생각 의외로 그를 편하게 해주었다.
그에게 맛있는 밥을 꼬박꼬박 주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일 때문에 바쁜 것인지 저에게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딘가 쎄하면서도 진득했던 시선이 사라지자 리유비아는 내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뭣 보다 지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 다녀왔어요. ”

“ 아, 어서 와요. 리비. 배고프죠? ”

이안은 리유비아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시간에 맞춰 밥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왔을 때 누군가 맞이해주는 것은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유비아는 찝찝한 이안이 몹시 불편하면서도 이렇게 맞이해주는 것은 내심 마음에 들어 했다.

“ 잘 먹겠습니다. ”

오늘도 이안이 차려 준 따뜻한 밥을 먹자 리유비아는 일하면서 겪은 노고가 풀리는 듯 했다.
몇 주 내내 불편하게 눈치를 주지도 않고 밥도 차려주고 오면 반갑게 맞이까지 해주는 이안의 정성과 배려에 리유비아도 서서히 마음에 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오늘도 너무 맛있어요. 고마워요. 이안. ”

“ 뭘요. ”

리유비아가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를 했고 설거지는 자신이 하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섰다.
이를 본 이안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자 리유비아가 옅게 웃으며 제지했다.

“ 집에서 지내게도 해주고 밥도 차려주고.. 이 정도는 제가 할게요.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

“ ..그래도.. ”

“ 이거라도 안 하면 불편해서 그래요. ”

이안이 안절부절하는 모습에 리유비아는 픽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설거지를 했다. 이안이 계속 기웃거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이자 리유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 진짜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아, 아니면 제가 혹시 접시라도 깰까 그래요? ”

“ 아니에요!..”

다급히 말을 내뱉는 이안의 목소리에 리유비아는 괜히 웃음이 더 새어나왔다.
분명 처음에는 경계하게 되고 신경이 곤두섰었지만 막상 지내보니 이안은 그냥 착한 멍청이였다. 물론 그가 학대를 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에 동정심과 동질감을 느껴 조금 마음을 연 것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어디 가서 뒤통수라도 안 맞으면 다행일 듯싶은 이안을 리유비아는 걱정도 하게 되었다.

“ 그냥..전 별로 해드린 게 없는데..일 시키면 미안하잖아요. ”
이봐라. 남을 아주 떠받들어 주는 판에 미안하다며 보이지도 않는 꼬리를 축 늘어뜨린 듯 했다. 리유비아는 이안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고는 쐐기를 박았다.

“ 제가 이렇게 설거지하는 건 적당하기는커녕 부족할 판이에요. 만일 제가 떠날 때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이안의 요리일 만큼이나 이안의 요리는 맛있고 고마우니까요 ”

“ 정말요? ”

“ 네 ”

리유비아가 물을 틀어 그릇에 묻은 비누를 씻어내는데 이안의 향이 바로 등 뒤 가까이 다가왔다. 의문을 느끼기도 전에 이안이 리유비아의 어깨에 제 얼굴을 기대더니 푸슬 웃음을 흘리며 부끄러운 듯 눈가를 붉게 물들였다.

“ 기쁘네요. 그럼 계속 내 곁에 있을래요? ”

귓가에 부드러이 속삭이는 이안을 당황스럽게 보던 리유비아가 그만 접시를 놓쳐 깨트렸다.
접시가 깨지면서 파편이 리유비아의 손가락을 긁었고 리유비아의 손가락에서 붉은 선을 타고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 헉..! 리비! 괜찮아요? ”

“ 아, 아.. 아 네 괜찮아요. ”

리유비아가 방금 들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되짚으려는데 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이안이 상처 난 리유비아의 손가락을 보곤 울상을 지으며 안절부절 못 했다.

“ 세상에..미안해요. 리비.. 나 때문에.. ”

이안이 리유비아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더니 구급상자에서 밴드를 꺼내 붙였다.
제 손을 잡는 이안이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애처롭게 손을 바라보았다.

“ 괘..괜찮아요. 그렇게 울상 짓지 마세요.. ”

“ 제가 괜히 리비를 건드려서.. ”

서글픈 음성으로 리유비아의 손을 양 손으로 조심히 감싼 이안은 연신 사과했다.
리유비아가 그를 어르고 달래서야 그는 사과를 멈췄다.
그러나 결국 눈물이 이안의 눈에서 떨어지자 리유비아는 놀라 그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줬다.

“ 울지 마요.. 괜찮아요. 네? ”

리유비아가 갑작스럽게 우는 이안에 당황하며 그의 볼을 손으로 감싸 마저 눈물을 닦았다.
이안이 제 눈물을 닦아주는 손을 향해 손을 뻗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내렸다.
리유비아는 그런 이안이 마치 아주 작은 아이처럼 보여 조심히 물었다.

“ 왜요..? ”

“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손목을 잡을 뻔했어요.. 리비는 싫어하는데.. ”

“ 아.. ”

리유비아는 제가 언제 손목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첫 만남 때 자신이 떠는 걸 보고 이안이 추측했다고 생각했다.

리유비아는 가늘게 떨리는 이안의 눈동자를 따듯이 마주 보며 살짝 웃었다.
저가 무서워하는 것은 저보다 크고 매서운 남자지 지금 앞에 있는 약하고 애처로운 아이 같은 남자가 아니었다.

“ 괜찮아요. 안 싫어해요. ”

“ ..하지만.. ”

“ 이안은 괜찮아요. ”

리유비아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이안이 기다렸다는 듯 리유비아의 손목을 살짝 그러쥐었다.
리유비아는 제 손에 얼굴을 기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이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안은 매사 남의 눈치를 살피기 바쁘고 남에게 주는 법만 알지 받는 법은 모르는 듯 했다.
제 아비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살았을지.. 리유비아는 그런 이안이 안쓰러웠다.
이안에게 제 틈을 저도 모르게 보여줄 만큼.

“ 이안.. 저도 이안에게 늘 받고 있으니.. 저도 이안에게 줄 수 있는 걸 줄게요.. ”

“ 리비가요?..”

“ 이안이 원하는 건.. 들어 줄 수 있는 한 최대한요.. 그러니 그렇게 눈치 보고 과도하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

리유비아의 말을 들은 이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눈을 휘며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 리유비아는 마음이 편해졌다.
리유비아의 손목을 잡은 이안의 손이 점점 강하게 옥죄어 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결코 그럴 수 없었을 터임에도 말이다.

“ 고마워요. 리비. ”

이안의 입 꼬리는 부드럽게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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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3-19 18:35 | 조회 : 1,39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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