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달달하고 몸에 나쁜 사탕은 그래도 먹게 된다.

* 이 글은 BL 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집착, 추격전(?)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으시는 것을 삼가주세요.

결국 이안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 리유비아는 자신의 짐을 이안이 내어 준 방에 내려놓았다. 솔직히 말한다면 전 집보다도 좋다고 느껴지는 훌륭한 방이었다.
리유비아는 어쩌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것인지 후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만족스러운 면이 있었다.

“ ...하.. 한 달. 한 달이면 끝인데 뭐.. ”

리유비아가 스스로와 타협하며 침대에 깊숙이 몸을 맡겼다.
휴베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부탁하여 다시 한 달 동안은 일 할 수 있게 됐고, 따뜻하고 훌륭한 집, 맛있는 밥을 먹으며 지낼 수 있으니 사실상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었다.

‘ 그래.. 어쩌면 조금 더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라는 신의 뜻일지도 몰라. ’

리유비아가 그리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자 소파에 앉아 종이를 보던 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 뭐 필요한 것이라도 있어요? ”

“ ..아뇨. 그냥 좀.. ”

이안이 눈꼬리를 접으며 종이가 쌓인 반대편 쪽을 제 손으로 가볍게 톡톡 쳤다.

“ 이리와요. ”

무슨 개를 부르는 것처럼 하는 행동에 리유비아가 우뚝 멈춰 서 있자
이안은 그저 미소만 지은 채로 다시 한 번 소파를 두드렸다.
무언의 압박. 딱 들어맞는 행동이었다.

“ ..뭔데요. ”

리유비아가 발을 질질 끌며 탐탁치 못 하게 옆에 앉자 이안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 그냥.. 앞으로 한 달은 함께 지낼 터인데.. 이야기나 좀 자주 할까 해서요. ”

“ 이야기요?.. 뭔 이야기를 해요.. ”

“ 예를 들어.. 리비의 한 달 뒤 출국계획? ”

“ ... ”

리유비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안을 바라보자 정말로 자신은 궁금한 듯 지그시 리유비아를 바라보았다.
결국 그 부담스러운 눈에 진 것은 리유비아였다.

“ 그냥.. 일단 이 나라에서 좀 먼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

“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거예요?”

“ 그게.... 하하 ”

리유비아가 볼을 머쓱하게 긁으며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이안이 그런 리유비아를 보며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더니 입을 열었다.

“ 그럼.. 세기르는 어떠세요? ”

“ 세기르요? ”

“ 네, 이니베리타에서 배로 15일 가면 나오는 나라에요. ”

“ 아... 저기 거긴..조금 그래서요. ”

리유비아가 세기르 그곳을 벗어난 이유는 엄연히 아리아 때문이었다.
아리아를 피해 이니베리타로 왔더니 오히려 이곳이 아리아가 올 곳이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당연히 여주에게서 가장 먼 나라로 가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세기르는 어쩌면 그녀의 고향이었다. 원작과는 다르게 왕따도 당하지 않았으니 몇 번이든 놀러올 가능성이 있었다.
혹시라도 세기르에서 지내다가 놀러 온 아리아를 마주한다고 생각하면 리유비아의 등골이 절로 서늘해졌다.

“ 음? 먼 곳을 원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세기르와 이니베리타는 비슷한 언어를 쓰니까 훨씬 지내기도 수월하실 거예요. ”

“ 예..그렇기는 한데.. ..하아 사실은 제가 거기서 왔거든요. 그래서 다시 돌아가기는... 하하 아무래도 좀 타국을 돌아다니고 싶어서.. ”

리유비아가 우물쭈물 말하며 고개를 들자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삼켰다.
눈을 들어 이안을 본 순간 그가 평소보다도 훨씬 짙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짙게 웃는 그의 입매와 자신을 바라보는 차가운 갈색의 눈동자가 온 몸을 묶어 잡은 것처럼 섬뜩했다. 오싹한 기분에 리유비아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해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렇게 짧은 정적이 흐르고 원래의 미소로 돌아온 이안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 그러면 배로 5일이면 가는 바시타는 어때요? ”

“ ..바, 바시타요?.. ”

“ 바시타는 이니베리타랑 2년 전부터 돈독한 협력관계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니베리타의 말도 많이 전파된 상황이고.. 다른 곳에 비하면 훨씬 지내기 수월하실 겁니다.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니.. 괜찮지 않아요? ”

리유비아는 꺼림칙한 눈으로 이안을 보다 관심을 바시타로 돌렸다.
소설 속에서도 남주가 바시타라는 나라와 교류를 펼친다는 이야기는 읽은 기억이 흐릿하게는 있으나 여주와 함께 놀러갔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애초에 남주도 바시타의 왕과 친분이 있어 가끔 만나는 것이지 바시타를 자주 가는 것도 아니었다. 소설에서 둘은 그냥 자신들의 성에서 깨를 볶기 바빴으니..

“ 괜찮을..것 같네요. ”

무엇보다도 배를 타는 것이 10일이나 줄어든 것은 리유비아에게 더없이 행복한 일이었다.
이안은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리유비아를 바라보다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저는요? 제게 궁금한 건 없어요?”

“ 아..그럼.. ”

“ 황실 기사나.. 황제폐하 이야기만 묻고.. 약간 서운해요. ”

남주와 여주에 대하여 조금 더 조사하려던 리유비아는 바로 찔리듯 입을 다물었다.
눈을 이리 저리 돌리며 눈치를 보다 얼버무리듯 급히 말을 바꾸었다.

“ 이, 이안.. 이야기면 뭐.. 다 좋아요. 하하..”

“ ..정말요? 기뻐요. ”

이안이 부끄러운 듯 제 목을 문지르다가 다른 손을 리유비아의 볼에 가져다댔다.
이안의 손가락이 리유비아의 귓바퀴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어딘가 민망한 기분에 리유비아가 고개를 피하며 어색하게 손을 피했다.
이안은 별 상관없다는 듯 순순히 손을 내렸다.

“ 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저는 이니베리타 출신이에요. ”

“ 네.. ”

“ 슬프게도 아버지가 폭력을 일삼는 분이신지라 어릴 때부터 맞으며 자랐어요,
결국 저를 버리셨고... 전 고아가 되었죠. ”

“ .. ”

리유비아는 슬픈 듯 눈꼬리가 축 쳐진 이안을 보자 덩달아 축 쳐졌다.
이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처럼 슬픈 눈으로 리유비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 ...리비도..제가 고아라.. 싫은가요? ”

“ 아! 아뇨!! 고아라 싫다니요... ”

“ 하지만... 다들 제가 고아라 듣고 무척 더러워하던 걸요.. 리비도 그럴까봐.. ”

이안이 손으로 눈을 가리며 몸을 잘게 떨자 리유비아는 당황하며 그를 토닥였다.

“ 진짜 아니에요! ... 저도!.. 저도 고아에요. 아까 말한 세기르에서 고아였어요. ”

“ 흑... 리비도요?.. ”

“ 네..! 저도 고아였는데 몇 년 전에 먼저 자립해서 여기로 왔어요.. 보..보세요! 같은 고아였는데 이안은 이렇게 멋지게 성공했잖아요!.. 황실에서도 일하고.. 정말 멋져요..! ”

“ 리비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돼요. ”

한 층 나아진 이안의 낯빛에 리유비아는 고비를 넘긴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안은 그런 리유비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눈에 담아내듯 느릿하게 훑었다.
이안의 시선에 리유비아가 이안을 바라보자 눈이 마주친 이안이 곧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 리비는 정말 착하네요.. ”

“ 아..아니에요. 착하긴요.. ”

“ 아뇨. 정말로요. 너무 착해서.. ”

이안이 이번에는 리유비아가 고개를 돌릴 수 없게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 이안..? ”

코앞에서 멈춘 이안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낮게 읊조렸다.

“ 걱정이 되네요.. ”

“ ...왜요?? ”

“ 조심해요. 리비. ”

“ ..? ”

“ 리비처럼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 이용하기 마련이니까.. ”

리유비아가 가까운 이안의 눈을 피하지도 못하고 눈을 감자 이안이 리유비아의 눈가에 짧게 입 맞추며 귀에 속삭였다.

“ ...제 걸음이 점점 더 길을 없앤다는 것도 모를 만큼.. 리비는 착하니까요. ”

14
이번 화 신고 2020-03-16 13:19 | 조회 : 1,398 목록
작가의 말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