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만남도 이런 만남이 없다.

* 이 글은 BL 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집착, 추격전(?)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으시는 것을 삼가주세요.

리유비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짜게 식는 감각이 느껴졌다.
차마 고개를 돌리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움칫 떨 뿐이었다.
애타는 리유비아의 마음은 모르고 뒤에 서 있는 남자는 리유비아의 대답을 재촉했다.

“ 내 말이 안 들리나? ”

‘ 좆나 잘 들려. ’

“ 정체를 숨기려고 하는 건가? ”

‘ 네가 누군지 모르니까 이러지. ’

“ ...이봐 ”

‘ ... ’

리유비아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손님용 과일에 손을 댄 아이가 엄마에게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빳빳해졌다.
그러나 막상 생각해보니 저 사람이 아리아만 아니라면 그리 큰 문제가 없다고 느껴졌다.
다행스럽게도 귀를 간질이는 낮고 부드러운 저 중저음은 결코 아리아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뭐, 뭘 하겠어요.. 축제 구경하죠. ”

자신 쪽으로 걸음을 떼던 남자를 느끼며 리유비아는 다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다행히 남자는 걸음을 멈추었고 또다시 고운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머릿속에 박혀들었다.

“ 구경? 이 숲에서 말인가. 그것도 ‘이’ 장소에서? ”

구태여 ‘이’를 강조하는 남자의 말을 들으며 리유비아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 여기가 뭐 저주라도 받은 곳인가.. 불안하게 왜 저래.. ’

리유비아가 의문에 입을 다물자 남자가 이어 말했다.

“ 축제를 구경하려는 거라면 저 아래에서 보면 될 일인데 굳이 여기까지 올라왔나? ”

“ 아, 아래보다 여기가 더 가깝고 자세히 보여서요.. ”

“ 계속 등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불편하군. 이쪽 좀 봐보지 그래? ”

“ ... ”

“ 아니면, 그만큼 보여줄 수 없을 얼굴이라는 건가? ”

순식간에 분위기를 차갑게 가라앉힌 남자의 말에 리유비아는 사색이 되어 상체를 돌렸다.
로브도 벗으라는 말에 리유비아는 찍소리도 하지 못 하고 조심히 벗었다.
눈동자를 굴려 남자를 보자 남자의 얼굴은 나무의 그림자에 묻혀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그저 사람의 형태가 서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반대로 저쪽 남자는 밝게 빛나는 밤하늘 공연으로 인해 리유비아의 머리카락이나 신체는 잘 보이는 입장이었다.
물론 역광으로 남자도 리유비아의 얼굴이 잘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적색.. ”

“ ... ”

“ 이 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머리카락이 아닌데. ”

보이지도 않는 남자의 눈동자가 리유비아의 발끝부터 서서히 미끄러지듯 올라와 리유비아의 머리 끝자락에 닿았다.
그 시선이 마치 그의 손이 리유비아의 피부를 쓸어내리는 감각 같아 리유비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니나 다를까 리유비아의 50년 동안의 촉이 지금 굉장히 위험하다고 울려대고 있었다.
이 사람 위험하다고, 지금 뿐이라고, 당장 도망치라고

“ 타국의 사람인가? ”

“ ... ”

“ 어디 출신이지? ”

“ ... ”

“ ... ”

리유비아의 말이 또다시 끊기자 남자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발걸음을 떼며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 ‘팡!’하는 소리와 함께 밤하늘 공연이 끝났는지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여전히 저 아래는 빛과 사람들의 미소로 반짝였지만 지금 서 있는 이 위만큼은 그 밤보다도 어두웠다.
이제 정말 서로 잘 보이지 않게 되자 리유비아는 지금이다 싶었다.
앞에 남자가 서서히 거리를 좁혀 올수록 리유비아도 손을 말아 쥐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자신의 50년 촉은 믿을 만 했다.
과거 정혜수 일 적 그의 촉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야만 살 수 있었기에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촉을 믿었다.

그렇게 리유비아가 한 순간에 달려 나가 그를 밀치려 할 때였다.

“ 여긴 우리 어머니의 묘가 있는 곳이에요. ”

“ 뭐? ”

갑작스런 가족사와 존대에 리유비아는 달려나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멈춰버렸다.
다짜고짜 저 말이 무슨 말인지 리유비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급작스럽게 차가운 공기가 누그러지며 남자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 ...오늘이 어머니 기일이거든요.. ”

‘ ..어..어쩌라고.. ’

“ 일부러 깊숙한 곳에 푹 쉬실 수 있도록 묘를 만들었는데 누가 있어서 놀랐어요. ”

“ ..아.. ”

어느새 남자가 리유비아의 코앞에 서 있었다.
발끝이 서로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남자가 다가오자 남자의 갈색인지 검정색인지 모를 남자의 눈동자가 보였다.

“ .... ”

리유비아는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남자가 리유비아의 손을 잡아왔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키 차이가 꽤나 나서 무서운데 손을 덥석 잡아오니 숨이 턱 막혀왔다.
리유비아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잡힌 손이 잘게 떨릴 만큼이나 숨이 막혀왔다.

“ ... ”

그런 리유비아를 남자는 느릿하게 바라보았고 리유비아의 시선은 땅을 향했다.
남자가 손은 미끄러지듯 놓자 리유비아가 막혔던 숨을 몰아서 쉬며 폐 안으로 깊게 숨을 넣었다. 리유비아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자신의 손목을 자신의 손으로 세게 긁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손톱이 살을 파고들자 피가 길게 실처럼 맺혔고 그에 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리유비아를 깨웠다. 리유비아가 고개를 드니 그가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 같이 내려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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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3-16 13:12 | 조회 : 1,62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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