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내가 정혜수고 리유비아 맞는데..시발 이게 뭔데.

* 이 글은 BL 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집착, 추격전(?)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으시는 것을 삼가주세요.

“ 들렀다가 가세요. 네? 후회 안 하실 거에요. 혹시 남자가 취향이신가요? 여기 멋진 남자들 많아요. ”

“ 맞아요. 저희가 나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오는 분들은
없는 곳이거든요. 특별히 서비스도 해드릴게요. ”

“ 아니.. 괜찮다니까요. ”

리유비아는 지금 굉장히 곤란했다.
길을 걸으며 구경을 하던 그는 어느새 모르는 여성들의 사이에 붙잡혔다.
어깨선과 허리부분이 패인 옷은 상당히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옷이었다.

‘ 자유... 설마하니 이런 것도 자유로울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런 대낮부터 작업을 하러 다니지는 않는데
이 또한 딱히 법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닌 것인지 너무나 개방적이었다.
행여 아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 좋지 못 한 것을 배우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건전한 교제가 아니라 약과 불법적 물건들이 적잖게 오가는 곳이었으니까.

“ 정말 괜찮습니다. 바빠서 이만 가볼게요. ”

드디어 여자들을 떼어놓은 리유비아는 이마에 맺힌 땀을 누르듯 닦아냈다.
이 더위를 그늘진 곳으로 가 벽에 기대 휴식을 취해 지워버리고 싶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주변에는 그 어디를 봐도 그늘진 곳은커녕 쨍쨍했다.

“ 하... 너무 덥잖아. 더위로 충분히 사람은 죽어. 죽는다고.. 흐어 ”

앓는 소리를 내며 낑낑 걸어가던 리유비아는 그늘진 골목이 눈에 뛰었다.
순식간에 달려가 그늘진 골목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바람도 솔솔 불어오는 것이 드디어 살 것만 같았다.

“ 흠.. 일단 여관을 알아봐야겠지. 일할 곳도 알아봐야 할테고.. ”

리유비아는 대충 아무 여관이나 들어가 자리를 잡을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
발 앞 바로 비춰지는 쨍쨍한 햇빛에 뒷 걸음질 쳤다.

“ ..........”

‘ 나중에... 조금 해가 뉘어지면.. ’

그렇게 생각을 마친 리유비아는 조금 더 골목에서 몸을 숨겼다.

***

리유비아가 있는 이니베리타의 정반대. 세기르에는 차갑고 무거운 어둠이 자욱하게 내리깔렸다. 서늘한 바람이 방 창문을 통하여 날카롭게 들어왔다.
잿빛 하늘이 음산한 기운을 퍼트렸다.

딱. 딱. 딱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이질적으로 지속적인 마찰음이 들렸다.
손톱이 부러질 것처럼 휘어대며 손톱과 손톱끼리가 불안하게 부딪혀 꺾여 들어갔다.

“ ....리유비아 ”

푸른색의 눈동자가 강하게 일렁였다.
순수하고 맑게 빛나던 눈동자는 사라지고 슬픔과 분노, 그리고 욕망만이 들끓었다.
아름답고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오싹한 기운이 맴돌았다.
아리아. 그 눈동자의 주인이었다.

“ 리유비아는...겁이 많으니까 ...내가 못 미덥기 때문에 결국 도망간거야. ”

아리아가 눈을 감고 리유비아의 모습을 서서히 그려나가며 입 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 리유비아가 내게 기댈 수 있을 만큼 .. 내가 강해지면 돼... 그리고. ”

천천히 눈을 뜬 아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으며 소름 돋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아주 느리게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 다시 내 곁으로 데려오면 돼. ”

***

“ 끄응.... 좋다.. ”

리유비아가 침대 위에 몸을 축 늘어뜨렸다.
배 위에서 며칠을 걸려 이곳에 왔는지라 침대는커녕 이불 깔고 자기도 버거웠다.
덕분에 온 몸이 쑤셨고, 지금 이 침대는 구름보다도 푹신하게 느껴졌다.

몸이 늘어짐과 동시에 표정도 함께 늘어졌다.
평소라면 단단하다고 느꼈을 베개도 지금은 최고급 베개와 다름이 없었다.
리유비아는 일에 관한 것은 내일의 자신에게 맡기기로 하고 잠을 청하였다.

낮잠만큼이나 행복한 잠은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몰려오는 잠을 억지로 밀어낼 이유 따위는 없었다.

한 숨을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어두운 밤이 되어있었다.
정확히는 어두운 밤에 곧 해가 떠오를 새벽이랄까..
리유비아가 눈을 부비거리며 찬 바람으로 잠기운을 몰아냈다.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

“ 폐하 ”

아침부터 해서 어두운 밤. 심지어는 새벽까지 황실의 집무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를 보조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바뀌었으나 정작 모든 일들을 담당하는 이는 쉬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일만 주야장천 해댔다.

그의 측근 탈론드가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 벌써 4일째입니다. 밥도 간단한 요기 거리 정도만 드셨지 않습니까? 이러다 정말 성체에 문제가 생깁니다. ”

“ 별 잡소리를 할 것이라면 일 하나라도 더 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

“ 이리 급하게 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그간 폐하께서 힘을 쓰신 덕분에 나라는 안정을 되찾았고 국민들도 더 이상 폭동을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조금은 쉬셔도.. ”

“ 급하게 할 이유라.... 이유야 있긴 있지 ”

폐하라고 불리는 그는 부드럽게 찰랑이는 녹색의 머리카락과 화려한 금안이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곧으며 매서운 눈매와 짙은 눈썹이 멋스러우면서도 기품이 있어 보였다.
높게 솟은 콧대는 물론 다물어져 있는 입술마저도 매력적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일순간 착 가라앉으며 자신의 손목을 들어 확인했다.
수십 번 그어져 흉터가 생긴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탈론드도 그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가 금방 내리며 탐탁지 않은 듯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으며 당연히 실력 좋은 힐러들을 데려오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왕의 몸, 성체로서 흉터는커녕 작은 생채기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상처들은 모두 치료했지만 저 손목의 상처만은 치료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 증표라도 되는 듯이.

탈론드의 간청에도 무시하고 저 흉터만은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그 흉터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입 꼬리를 매끄럽게 쳐올렸다.
비틀어진 조소에도 가까웠지만 그 모습마저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의 금안에서 이채가 떠오르며 무언가를 상기하듯 중얼거렸다.
탈론드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 ... 슬슬 내 곁에 둘 때가 되었어.. ”

“ 예? ”

“ 아무것도 아니다. ”

다시 일을 재개하는 그를 보며 탈론드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속으로 무언가를 계획하는 듯 아까와는 달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끈적하고 매서운 미소를.

‘ 세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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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9-15 23:10 | 조회 : 2,62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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