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내가 정혜수고 리유비아 맞는데..시발 이게 뭔데.

* 이 글은 BL 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집착, 추격전(?)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으시는 것을 삼가주세요.

롤라를 처치(?) 한 일이 컸던 것인지 소설에서 읽었던 것만큼 아리아가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냥 간간히 말 걸면 무시당하는 정도.
한 달이 지나버린 지금 아직도 돌아가지 못 했다는 것은 리유비아를 절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제게는 집으로 돌아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동시에 큰 문제는..

“ 리유비아! ”

“ 하아... ”

아리아가 리유비아를 향해 점점 더 가까워지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얼굴에 고맙다는 말을 동동 띄우며 다가오더니, 이제는 친해지고 싶다고 티를 팍팍 내며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리유비아는 하루하루가 피곤했다.

“ 리유비아 오늘 밖에 나가서 나들이 하는 날이잖아! 기대되지? ”

“ 그래. ”

처음 의기소침했던 아리아는 이제 제 나이로 보일 만큼 활기차졌다.
리유비아를 향해 던지는 미소는 주변 사람들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나들이 나가는 날이라며 저리도 좋아 방방 뛰어 다니는 모습이 부산스러워도 리유비아를 안심하게 만들었다.

‘ 지나간 어린시절은 안 돌아오니까. ’

원래 리유비아는 폭력을 가담하는 인물은 아닌지라
자신이 무언가 직접적으로 아리아를 괴롭히는 건 아니었으나
간접적으로라도 그것은 께름칙하고 별로였다.
이렇게라도 그것을 막으니 적어도 속 울렁거림은 지워낼 수 있었다.
간접적이라도 몸을 기어오르는 해충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 리유비아!! 얼른 와! 이제 곧 나갈 거라고 했어! ”

“ 간다. 가 ”

***

“ 얘들아! 뛰면 안 돼! 에딘! 그거 만지지마! 마리아! 그렇게 뛰면 다쳐! ”

2일 동안에 이루어지는 나들이는 1부팀과 2부팀으로 분리되지만 개구리가 강에서 흙 밭으로 나온다고 안 뛰던가?
아이들은 이리저리 분산되며 난리를 피웠다.
아리아는 선생님을 도와 아이들을 말리지만 아이들은 쌩하니 무시하고
자기들 하고 싶은 것들 마음대로 해갔다.

시장가에는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끊기는 순간이 없었다.
선생님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를 반복하는 모습을 리유비아는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 그나저나 나도 상가는 처음인데.. 전통시장이랑 모습이 비슷하네 ’

리유비아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 한 채 개구리같이 이리저리 뛰는 아이들 무리 속에 섞여들어
시장을 걸어 다녔다.
간혹 맛있어 보이는 구름같은 과자가 -솜사탕과 비슷한 과자- 침샘을 자극하기도 하고 이상한 벌레를 튀겨 논 음식은 토가 나올 정도로 입맛을 떨어트렸다.

“ 재미는 있는데.... ”

리유비아가 고개를 들자 쨍쨍 내려쬐는 해가 눈을 아프게 했다.
목 뒤로 땀이 맺혀 흘러내리니 그렇게 찝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브를 두르고 있어 더운 것도 있었지만 로브는 ‘고아원’의 반티와도 같은 존재였기에 차마 벗을 수는 없었다.

“ ....하아.. 햇빛이라도 좀 가려보자.. ”

리유비아가 로브를 깊숙이 덮어 쓰며 얼굴을 가렸다.
여전히 더웠지만 그래도 눈부심은 줄어들어 그대로 쓰고 돌아다녔다.
리유비아가 느릿한 걸음으로 시장을 활보하던 때 골목 쪽에서 앓는 소리가 얕게 들려왔다.

“ ? ”

걸음을 멈춰 골목 쪽을 바라보니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웅클여 앉아있었다.
리유비아는 조용한 걸음으로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귀는 또 어찌나 밝은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고 날카로운 눈으로 리유비아를 째려보았다.
녹색 머리카락과 차갑게 일렁이는 금색 눈동자가 묘하게 어울려진 아이였다.

“ 누구야 ”

“ 고아원 학생. ”

“ 고아원...?”

리유비아는 남자아이를 자세히 보더니 그제야 남자아이가 다쳤음을 알아차렸다.
눈을 굴려 몸을 살펴보자 안 다친 곳이 없을 정도로 남자아이는 만신창이였다.
목에는 무언가에 눌려 멍이 들어 있었고, 눈가도 시퍼렇게 부어 있었으며,
입술도 거칠게 찢어져 피가 굳고 딱지가 생겨 있었다.
그 밖에도 몸을 감싸듯 가득한 상처들이 눈에 밟혔다.
손목에 수없이 그어진 칼자국 사이로 비스듬히 피가 떨어져 깊은 생각에 잠기도록 했다.

“ .... ”

“ 동정어린 눈이라면 필요 없어. 익숙하니까. ”

리유비아는 그 남자아이의 말을 조용히 듣더니 몸을 돌려 사라졌다.
남자아이는 리유비아가 사라지자 다시 다리 사이로 고개를 숙여 감쌌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리유비아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다시 남자아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물 마셔 ”

“ 뭐? ”

“ 물. 마시라고 ”

“ 갑자기 무슨... ”

남자아이는 황당하다는 듯이 리유비아를 바라보았다.
리유비아는 손이 아프다며 물통을 쥐고 있는 손을 계속해서 내밀었다.
끝내 남자아이가 물을 받자 리유비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아원에서 가져온 붕대를 길게 늘어뜨려 남자아이의 손목에 휘감았다.

“ ...지금 뭐하는 거야. 장난해? ”

“ 네 눈에는 장난으로 보이나 보지? 재미없는 장난을 잘 치는 재주는 없는데 말야 ”

“ 이런 건 됐다니까 익숙하다고! ”

“ 익숙하다고 안 아파? 이거 더 멍청한 놈이네.. ”

리유비아가 붕대를 묶다 남자아이를 보며 한심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딱히 네 자존심을 깨드릴 생각은 없는데.. 그렇게 눈을 살벌하게 뜨며 복수라도 할 생각인 거면 이딴 짓은 부질없는 거야. ”

“ ...”

“ 내 말 이해는 가? ”

남자아이는 혼란스럽다는 눈동자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유비아는 품에서 연고를 꺼내, 다친 부위에 발라주며 치료해주었다.

“ 속목을 칼로 그어버리는 정도로는 안 죽겠지만, 세균이나.. 혹시라도 동맥을 건드리는 순간에는 죽을 걸. 적어도 살아봐야 복수를 하든 뭘 이루든 할 거 아니야. ”

그 말을 마무리로 치료를 어느 정도는 끝낸 리유비아가 상체를 일으켜 흙으로 더러워진 무릎을 털었다.
리유비아는 자신의 모습을 따라오는 금색 눈동자를 마주보다 짐을 챙겨 몸을 돌렸다.
그가 몸을 돌려도 금색 눈동자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 ...어차피 내가 죽는다고 한들 슬퍼할 이도 없을뿐더러 복수는.. 실패할거야. 모두 그랬으니까.. ”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길게 말을 하자 리유비아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 ...너, 아직 모르는구나? ”

“ ? ”

“ 남들이 못했던 일을, 못 할 거라고 하는 일을 해낼 때. ”

로브를 깊숙이 쓰고 있어서 리유비아의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아이는 직감적으로 그가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자신과 비슷한 나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신같이 어린 아이가 품기에는 버거울 만큼 크나큰 야망이 넘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는 걸. ”

“ ...! ”

‘ 적어도 내가 읽었던 소설에선 돌아가는 이가 없었지.. 그러니까! 내가 돌아가서 더 없이 큰 행복을 만끽해주겠어. ’

그렇게 생각한 리유비아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 행복..하다고? ”

“ 그래, 정말로 행복해. ”

남자아이는 그 말을 깊게 곱씹어보며 중얼거렸다.
리유비아는 저 멀리서 선생님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얼른 가봐야겠다
생각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골목을 벗어나려 할 때 리유비아는 다시 멈춰 남자아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 아, 그리고!”

“ ? ”

“ 죽음을 슬퍼해 줄 이를 찾기보다 내가 살아있어 기뻐해줄 이를 찾는 게 더 좋지 않아? 죽어도 상관없을 이유를 찾기보다 내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 게 더 좋잖아. ”

“ .... ”

“ 누군가 너를 해하려 한다면... ”

리유비아가 웃음이 섞인 말로 뜸을 들였다.
남자아이는 미간을 좁히며 다음 말을 기다리 듯 가만히 있었다.
리유비아가 그 모습에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손가락을 세워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 먼저 그 경우를 차단해 버려. ”

리유비아가 말을 마치고 사라지자 남자아이는 리유비아가 떠난 자리를 계속해서 주시했다.
그의 금색 눈동자는 이채를 띄우며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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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02 19:48 | 조회 : 2,58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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