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열네 살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가지고 있는 옷은 전부 껴입었건만 손이 오들오들 떨렸다. 평생 귀한 도련님으로 자란 이스에는 겨울이 그리 추운 줄 처음 알았다. 그의 방에는 언제나 하인들의 손에 지펴지는 벽난로가 있었고, 막내 도련님의 몫으로 주어지던 최고급품 옷은 아주 따뜻했다. 심지어 그는 침대조차 하인의 체온으로 데워지고 난 후에서야 누웠다. 이제는 전부 지나간 이야기였지만.

이가 저절로 딱딱, 맞붙는 소리를 냈다. 너무 추워. 이스에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열두 살 즈음까지만 해도 잘 이어지는 것 같던 숙부의 지원은 그가 열세 살이 되던 해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해, 올해는 형제에게 남은 것이 거의 없었다. 이스에도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 눈치를 챘다. 올해는 형이 어른이 되는 해였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몸의 문제인지 마음의 문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스에는 그리 둔한 편은 아니었다. 부모님의 사고 이후, ‘좋은 사람’이었던 숙부가 돌변한 것도. 묘하게 바뀐 형의 태도도. 다 알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금방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헛된 생각이었다는 깨달음만 얻었다. 그러나 귀여움만 받았던 그는 모두가 자신을 적대하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ㅡ이스에.

ㅡ형!



올해 성년이 된 형은 그보다 훨씬 키가 컸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스에는 맨 발로 형에게로 달려갔다. 방 안이었음에도 발이 얼음장 같이 시렸다.



ㅡ잘 있었어?

ㅡ나 너무 추워.



다정하게 웃은 엘리어트가 이스에를 안아들었다. 허공에 발이 대롱대롱 흔들렸다. 이스에는 필사적으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보다 더 차가웠다. 의아해진 이스에가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빛에 가려, 형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가 동생의 귀에 속삭였다.



ㅡ너는 언제나 나를 시험에 들게 하더라. 그래서 나는 네가 싫단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형이, 이런 말을 했던가? 했었지. 그랬던 것 같은데. 하지만, 열여덟 살의 형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아니, 있었나?



ㅡ사랑하는 이스에.



그럼 이 말도 했었던가?



“......일어나.”



이스에가 의심을 시작한 순간,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가 땅에 떨어진 잔처럼 산산조각이 나는 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리가 아파왔다.



“이스에!”



이스에의 손을 붙잡은 것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마치 그때의 겨울처럼. 이스에는 눈을 떴다. 엘리어트의 손이 그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깍지를 꼈다.



“형?”

“너는, 집무실에 내가 없으면 방에 가서 쉬었어야지.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엘리어트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멍해진 이스에는 입만 뻐끔거렸다. 그를 부른 것은 열여덟이 아니라 스물 네 살의 형이었다. 단정하게 맨 크라바트와 깔끔하게 다려 입은 기사단 정복, 찬 기운이 배어있는 코트, 그리고 잘 정돈해서 넘긴 머리칼을 한. 얼핏 봐도 집 안에만 있었던 옷차림은 아니었다.



“밖에.......나갔다 왔어? 오늘 일정 없다고 했잖아.”

“그랬었지.”

“혹시 친구라도 만났나, 음, 아니,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나 이상한 짓 하려고 온 거 아냐. 형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단 말이야.”

“........신경 쓰지 말라고 한 기억은 없어.”

“응?”

“그리고 외출은 폐하께서 갑자기 부르셔서 그랬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고.”



이스에는 눈을 깜빡이면서 초점을 찾으려고 애썼다. 형의 집무실에서 잠든 것까지는 분명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그의 침실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엘리어트가 지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방까지 옮겨 준 거야?”

“그래.”

“........그런데 왜 그렇게 놀랐어.”



맞잡은 손이 약간 움찔했다. 조금 더 세진 악력과 함께,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악몽을 꾸는 것 같았거든.”

“그랬나?”



이스에가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꿈을 꾼 것은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되었으니 더 자.”

“나 안 피곤해.”

“정말인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어트의 손이 그의 셔츠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스에는 재빠르게 가슴팍까지 올라온 손을 붙잡았다.



“잘, 잘게.”

“저런.”

“형도 잘 자.”

“........그리고 귀걸이 잘 어울리는구나. 그럴 것 같아서 산거지만.”



엘리어트의 손이 귓불을 지그시 눌렀다. 조금만 고개를 비틀면 입술이 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까웠다. 이스에는 강하게 귀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신음을 내었다.



“아.”

“불편해도 빼지 마.”

“으응, 알았어.”

“그래, 잘 자렴.”

“형도.”



이스에의 이마에 입술이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는 형의 발길이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기분이 이상하게 꺼림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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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25 12:20 | 조회 : 2,669 목록
작가의 말
초콜릿과케이크

저는 올리고 난 다음에도 상시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올리기 전에는 안 보이는 오류가 올리고 나면 보이네요ㅠ;) 지름작이라 비축분도 없고 앞날도 불투명한 소설이지만......최대한 힘내서 쓰고 있습니다. 저번 화에 댓글 달아주신 휘료소 님, 만나서 반가워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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