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톡. 톡톡. 아침부터 어둑어둑하게 점차 몰려오는 듯 했던 먹구름들이 하나둘 천천히 굵은 빗방울들을 떨구기 시작했다.


이내 하늘에 구멍이 뚫리듯 쉴새없이 쏴아아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하나가 천천히 헤쳐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산을 챙기길 잘했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우산의 주인이 칠흑같은 검은 눈동자를 부드럽게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오늘 저녁은 뭘하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레시피들 중에서 단 하나만을 고르기는 힘들었던것인지 휴대전화의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종종 밟아버리는 물웅덩이의 찰박 소리와 함께 길을 걸어가던 그가 한 주택가를 지날즈음이였다.


털썩.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의 예민한 귀가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며 소리의 근본지를 찾아내려 하였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그가 의문을 표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길 옆에 나있는 작은 길목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추측되자 가던 길을 돌리고 성큼성큼 길목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소리의 원인은 보이지도 않았고 고요한 길목안에는 그저 요란한 빗소리만이 울려퍼질 뿐이였다.


"잘못 들은걸까나."


요새 일을 너무 많이 하여 피로가 쌓인것이라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인 그가 다시 집으로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려고 뒤를 돌았을 때였다.


"……아."


빗속이라 탁해진 시야속에서 밝게 빛나는 작은 벚꽃이 보였다.


"너무 작아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건가. ……살아있나?"


우두커니 서있던 전봇대 아래에 힘없이 추욱 몸을 기대어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도 될까 잠시 머뭇거리다 그 소년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소년을 바라본 그가 살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인지 아니면 원래 몸이 안좋은 것인지 창백하게 질려있는 소년의 조그맣게 벌어진 입술에서 곧 끊어질듯이 불규칙적인 숨결이 새어나왔다. 생김새나 체구로 봐서 많이 봐줘봐야 11~12살 정도, 적게 봐주면 10살정도로 밖에 보이지않는 아직 한참이나 어린 소년이 지금 이순간 자칫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걸 어쩐다.……."


안타깝게도 그는 어린이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였다.정의로움에 휩싸여 내키지도 않는 선의를 할 만큼 선량한 사람도 아니였다. 아니, 오히려 자신 이외의 일은 만사가 귀찮다는듯이 묵묵히 앞만을 바라보는 고집불통인 한마리의 검은 토끼였다.


자비도 없고 배려도 없는 그의 선택은 결국 '못본척 지나가기'였다. 어쩌다 곧 앞을 지나갈 순찰경이 데려가겠지 라는 단순한 생각을 품은채로 막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아, 으…."


순간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움찔 떨며 신음을 내뱉은 소년이 몸의 균형을 잃은채로 옆으로 스르륵 기울어졌다.


아차 싶은 얼굴의 그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소년의 몸을 지탱해주어 다행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가 순간 무언가를 알아차리고는 소년의 머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소년의 머리에 추욱 늘어져있는 삼각형의 '귀'를 본것이지만.


"고양이족……이였나."


고양이와 토끼의 상성은 그닥 좋은 편은 아니였다. 나쁘다면 나빴지, 전혀 좋은 관계가 아니였다.


'그냥 버리고 갈까'하고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손 안에서 피어오르는 따스한 온기가 사라지게 하였다. 살아있는 어린 아이의 온기. 그 온기가 순간 누군가의 형상을 떠올리게 하여 그는 알수없는 애매모호한 눈빛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벚꽃빛이 은은히 감도는 백발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예쁘장한 소년이였다.


"뭐, 일단은."


소년을 지탱하던 손을 바로 고쳐잡은 그가 한 손에 소년을 품에 안은채로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가볍게 소년을 안아들었다. 보라색의 한 토끼인형만을 꼬옥 움켜잡고있는 작고 왜소한 소년의 몸이 그의 품에 힘없이 안겨들어왔다. 옅게나마 남아있는 온기가 오슬오슬 떨리는 몸에 의해 점점 차가워져 간다.


"우선 집에 데려가 돌봐야겠지. 정신차리면 병원이나 데려가자."


퇴근길에 이게 왠 날벼락이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그가 길을 걸어나갔다. 잠시 잔잔히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어깨를 스치는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아주 평범하지만, '인간'이 아닌 '수인'이 살아가는 차원의 세계. 이곳에서 점차 지겨워져가던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문자가 그의 일상 속에 찾아와 살며시 문을 두드렸다.


이것이, 운명일지도 모르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의 시작이였다.

0
이번 화 신고 2015-09-06 21:43 | 조회 : 1,581 목록
작가의 말
AR(에알)

헉헉 지금 숙제랑 마감에 치였지만 급히 써서 업로드 합니다! 물론 필력이 아직 복구된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삽화도 없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편은 과연...(먼산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