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마차는 인연을 싣고

아드노아는 원추리라고 쓰여 있는 방에 도착했다. 호기심에 제 방과 다른 방의 이름들을 살피던 아드노아는 신전 주위에서 이상하리만큼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기후로 식물들이 살지 못할 것 같은 이곳에, 웬 토양이 비옥한 산기슭에 살 것만 같은 식물들로 이름을 붙여 놓는지 궁금했다. 꼭 그 조건에서 사는 식물들로 이름이 지어진 것만은 아니지만, 이곳으로 오는 곳은 황무지고 더 지나서 보이는 초록색이란 모두 생명력 강한 잡초뿐이다. 더군다나 신전 주위로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으니 어쩌면 이곳에서 살던 이들은 원추리라는 식물조차 몰라 책 한 권을 놓고 그곳에서 이름을 하나씩 찾으면서 '이거 식물 맞겠지? 뭐? 아니라고? 광물 이름이야?'라면서 방의 이름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아드노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열쇠로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입구에서부터 낡은 양피지 냄새가 난다.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분명하고, 이곳에 있던 이는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드노아는 들어서자마자 몇 권의 책이 꽂아진 책장을 발견했다. 그는 책에 지대한 관심이 없었던지라 책이 있다는 것만 확인한 채 짐을 침대 위로 던졌다. 그리고 겉옷, 그러니까 망토를 벗어 침대 위에 짐과 같이 내버려 뒀다. 그러다 문득 침대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에 이곳에서 두 명이나 잘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년이 살던 곳이 보육원이었다고 해도 사람이 없었으니, 큰 방에서 혼자 자는 셈이라 이 좁은 방에서 둘이나 잔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갈아입을 옷은 가서 받는 건가?"
자신의 옷을 바라보던 아드노아는 그것을 손으로 잡아 늘이면서 어떤 옷을 입게 될지 기대했다. 물론, 특정한 때에만 입는 옷일 테니, 그리 길게 입을 것 같진 않았지만 아드노아는 싱글벙글하게 웃었다. 그리고 몸을 씻으러 나가기 위해 문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계세요? 여기 같이 배정받게 된 사람인데 계시나요."
"네, 네?"
누군가가 같은 방을 쓰는 사람으로 찾아온 것이다. 방문은 잠겨있지 않았지만, 그 누군가는 혹시 모를 일에 안에 먼저 온 사람을 배려해 먼저 문을 두드렸다. 그 덕분에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겉옷과 짐을 가지런히 놓음으로써, 철없는 아이라는 말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문으로 다가가, 금방 연다는 식의 말을 하며 문을 열었다.
"정말 금방 열었네요. 어."
"아!"
아드노아는 만약 누군가와 같은 방에서 자게 된다면 악취가 나는 사람 빼고는 아무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만이라도 많은 바람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심했다. 문이 열리며 보인 사람은 아드노아가 이곳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서 만난 이였다. 그러니까 먼저 방을 찾아간 르세를 제외한, 무시하기로 결심했던 그 사람. 그 남성이 바로 아드노아와 같은 방을 쓰게 된 사람이다.
"아, 안녕?"
남성은 짧은 머리칼을 긁적이며 머쓱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드노아는 놀라 자빠질 뻔했지만, 그런 모습마저 보이면 남성에게 크나큰 실례라는 걸 알고 몸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심하게 경직된 모습이 되어, 남성의 눈에 띄어버려 무안하게 만드는 것은 별다를 바 없었다.
"아, 나, 나가서 사제님에게 다른 방을 달라고 할까?"
"아, 아니에요! 죄, 죄송해요! 제가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정말 죄송해요."
"그,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조금은 섭섭했지만 초면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그럴 만도 하지."
아드노아는 허둥지둥 손을 흔들며 아니라고 부정했고, 남성은 이 상황을 만든 게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방을 알아본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 둘의 상황은 서로를 더 무안하게 할 뿐 상태를 호전시키지 않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가, 같이 씻으러 가요!"
"어, 어?"
굳이 같이 씻으러 가자는 그 말은 남성을 당황케 했다. 분명 많은 인원이 있는 곳이니 남녀 구분은 할 테고, 같은 시간대에 씻으러 간다면 어차피 같은 장소에서 씻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었나 하며 남성은 아드노아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신이 나간 듯한 그 얼빠진 모습은 아드노아가 기다린 것이었고, 재빨리 남성의 짐을 빼앗아 자신의 침대 옆에 있는 비어 있는 침대에 던졌다. 그리고 남성의 손을 잡아끌면서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는 거야! 아무리 나라고 남자는!"
"무슨 소리예요! 그냥 친해지자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제 이름은 이미 말한 거 같은데, 그, 그쪽 이름은 뭐예요?"
남성이 질겁을 하자 말을 조금 잘못한 것 같아서 화제를 돌리기 위해 아드노아는 그의 말을 잘랐다.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할 시간도 없었지만, 마침 남성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남성은 언제까지 뛰어야 하느냐는 표정으로 아드노아를 바라보다가 그 말을 듣고 급히 멈춰 섰다.
"아직까지 내 이름을……. 하긴 내가 말을 안 했구나. 그런데 모르면서 그런 말까지 한 거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이름이나 말해요. 이름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씻긴 싫으니까!"
"어, 그럼. 내 이름은 상영이다. 이걸로 너랑 씻을 수 있게 된 거냐? 이거 내가 같이 씻고 싶어서 이름을 말한 거 같잖아?"
"어, 그, 그렇게 되는 건가? 어쨌든 그렇게 됐네요. 제가 알던 아저씨도 남자를 좋아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좀 자제해 주실래요? 저는 아직 어리니까."
"그 아저씨는 누군데! 너 같이 머리 이상한 녀석은 성인 여자라도 안 건드려!"
머리가 이상하단 말에 아드노아는 격분했다. 그에 남성도 적반하장이라며 같이 분개했다.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근처의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갔다. 천천히 다가오는 시끄러운 투사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둘에게 조용히 하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허허 웃으며 애써 무시했다. 몇몇 사람들은 수양이 부족하다며, 이곳에 온 이유를 알겠다면서 둘을 옹호했다. 벌써 두 번째로 이목을 끌어버린 둘은 졸지에 분노 조절 장애로 낙인 찍혀버렸다.
그 사실을 먼저 깨달은 상영은 아드노아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야, 야. 좀 조용히 가자. 너랑 만나면 되는 일이 없다. 걱정해줬더니 화나 내는 애는 내 생에 처음이다."
"기가 막히잖아요. 제가 걱정해달라고 했어요? 저랑 만나면 되는 일이 없다고요? 그럼 여기서 헤어져요! 방 다시 구하던가!"
"야, 같이 씻자고 한 건 너잖아. 하아. 그래 내가 미안하다! 읍."
"조용히 하자고 했잖아요? 조용히 가요."
몇몇 사람들은 그 둘이 분노 조절 장애인에서 남녀 간의 연애 싸움이라고 볼 뻔했지만 둘 다 남자인 걸 확인한 후, 사이가 아주 좋아 싸우는 동네 형과 동생이라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형은 장난 잘 치는 형이었고, 동생은 장난 잘 치는 동생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둘의 기나긴 싸움에 장단을 조금씩 맞춰주며 걸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신전의 사제가 말해 줬던 목욕 장소에 다다랐다. 그곳은 두 개의 입구와 사제 하나가 서 있는 곳이었다. 입구가 두 개인 것은 아마 남녀를 구분하는 것일 테고, 사제는 당연히 안내 하는 이일 것이다. 그리고 안은 꽤 넓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어쩌면 외부의 온천 같은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걸지도 몰랐다.
"동생, 도착이다! 네 그 꼴사나운 머리칼도 물에 젖으면 녹겠지? 대체 뭘 바른 거야?"
"만지지 마요! 형 손보단 깨끗한 걸 바른 거니까."
"진짜 뭔가를 바르긴 했나 보네. 도대체 그런 모양을 왜?"
아드노아는 이제 상영이 머리카락에 대해 뭐라 해도 전과 같은 화는 내지 않았다. 또한, 말다툼을 많이 하긴 해도 어느새 형 동생 호칭을 부를 정도로 친근해졌다. 그만큼 친근해진 이유도 있지만, 그 호칭을 정하는 데 이유가 된 건 결정적으로 주위 사람들이 장난 많은 동네 형과 동생이라고 장난치며 불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장난처럼 누군가 말했다.
"형님 동생도 이제 도착했으니 안에선 조용히 하겠지?"
"당신네 동네 형과 동생은 목욕할 때 장난을 더 치지 않던가? 안에 물이 가득 담긴 욕조 같은 게 있다면, 분명 동생의 머리를 물 아래에 잠가 버릴 게 분명하네. 아쉽게도 물이 가득한 곳에선 작은 동생이 당하는 입장이지. 껄껄."
질문한 사람은, 도착지라 인파가 몰려서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상영은 대놓고 무시당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동네 어르신들의 훈훈한 농담과도 같다는 생각에 어르신께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배에 힘을 주고 창피하다는 식의 목소리로 말했다.
"네, 조용히 하겠습니다!"
"그러올 시다."
어느 어르신의 진지한 말에, 상영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껄껄 웃었다. 하지만 아주 먼저 도착했거나, 지금 막 도착하는 이들은 이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한 그들의 사투로 웅성거림을 조장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에 입구를 지키던 사제는 사건이라도 일어날 조짐이라 생각했는지 사람들을 빨리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들어서면서 흥분된 듯, 모르는 사이임에도 서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따 넓구만요?"
"그나저나 다들 통용어는 잘 하는구먼!"
"아무렴 통용어도 모르고 이렇게 먼 곳까지 다들 왔을까?"
"그렇다고 자기네 말로 욕하지 맙시다. 잘못 하다간 같은 곳에서 온 사람일지도 몰라!"
"하하하!"
누군가 통용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는데, 통용어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언어다. 이 세계는 각 나라가 거의 균등한 크기로 존재하며 나라마다 양옆의 나라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나라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는 주제에 이들은 서로 왕래를 자주 하며 무역을 하고, 여행한다. 그런 이유로 모든 나라는 하나의 답을 내놓았는데, 그게 바로 통용어다.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는 말로, 자칫 각 나라의 원래의 말이 사라질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쓰이지만, 이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전쟁 후, 이민자들을 쉽게 받아들이려는 조치일지도 모른다는 주점의 주정뱅이들의 대화에 자주 논해진다. 하지만 그 말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주요 정치인들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노란 술에 빗겨서 그날의 어둠 속으로 쓸려 내려간다.


아드노아는 사제에게 두 명분의 옷을 받아서 상영에게 말했다.
"형, 여기 옷 받으시고, 자기 옷은 알아서 하라는데요?"
아드노아가 말을 걸었음에도 상영은 시선을 위로한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아드노아가 기다리다가 지친다고 느낄 때쯤 입을 열었다.
"그 전에 이 넓은 곳에 대해 나는 의문이 자자하단다, 동생아. 밖에서 신전을 봤을 땐, 절벽으로 이루어진 섬 같았는데. 이렇게 넓은 장소였다니. 그 전에 주위가 이렇게 얼음으로 가득한데 물은 뜨겁잖아? 온천인가? 온천이 있음에도 얼음이 유지되는 이유는 뭐지? 공기가 그렇게 추운 건 아니야. 마법인가? 하지만 이렇게 마법을 낭비할 이유는 없어. 그렇다면 저주인가? 그럴까?"
"아, 잘 모르겠네요."
남성은 감성에 젖어서 열변했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는 그의 말은 그 뒤로도 한 가지 질문이 붙고, 스스로 답하길 반복해 길어졌다. 하지만 아드노아는 그것에 관심이 없다는 듯 옷을 던지며 건넸다.
상영은 멍한 얼굴로 아드노아에게 물었다.
"너는 궁금하지 않아?"
"네. 씻는 장소가 이렇다는 걸 궁금해하기 전에, 신전 주위의 기후가 이상하단 걸 먼저 궁금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보단 그곳이 이곳 전체고, 먼저 봤을 텐데요?"
"그거야 도저히 알 수 없으니 기후가 그래서 그렇다 칠 수 있잖아? 하지만 여긴 이렇게 뜨거운 물이 나와서 공기도 후덥지근한데도 얼음이 저렇게 번지르르하게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 전에 너 조금 까칠해졌다? 저 얼음처럼 차갑게 말이야."
"시끄럽고, 옷이나 벗어요."
"그렇게 말하면 부끄럽사와요, 동생님."
아드노아는, 감상에 젖어 있던 상영이 장난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가 뭐라 말했는지 곱씹어 생각하다 질겁했다. 찡그린 눈으로 째려보는 아드노아의 눈빛에 상영은 혀를 내밀며 웃었다. 본래, 나이로 보아서 그 표정을 짓는 사람이 뒤바뀌어야 어울릴 모습이었지만, 아드노아는 저 모습이 상영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문득, 아드노아는 상영과 만난 지 얼마 안 됐다는 걸 떠올렸다.
"그렇게 짧은 시간인데도 이렇게 친해졌네요?"
상영은 동감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팔짱 끼면서 아드노아를 내려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얼굴 한 번 보고 무시하던 녀석이 언젠데. 이렇게 친하게 굴까?"
"그러게 말이에요. 사실, 아무리 막나가도 무시하진 않는데……. 형은 그냥 미웠어요."
갑작스레 미운 오리 새끼처럼 미운 존재가 된 상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팔짱을 풀고 한 손을 허리에 올린 다음 허리를 숙여 아드노아와 눈높이를 맞힌 다음 입을 열었다.
"뭐? 웃기는 녀석일세. 내가 네 주위에 있던 어떤 막 나가는 사람보다 심하다 이 말이냐?"
"아뇨, 제 주위에 막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혼내야죠? 형은 그게 아니라, 어. 그냥 미웠어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두 눈을 감고 팔을 휘저으며 말하는 아드노아를 대신해, 그 말의 문제점을 상영은 짚어주기로 했다.
"말꼬리가 똑같잖아! 야, 야! 옷은 내가 벗을 수 있어! 내가 무슨 앤 줄 알아?"
그러나 아드노아는 상영의 입을 막기 위해 상영의 상의를 벗겼다. 지는 대화와 창피한 대화는 그다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드노아의 생각으로는 상영의 생긴 외모로 볼 때, 군살 없이 적당량의 근육이 붙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는 그냥 진짜 평범한 동네 형의 몸이었다. 그 모습에 조금 실망한 아드노아는 거침없이 있는 그대로 말했다.
"형, 보기보다 몸에 살이 많네요? 조금 실망이에요."
"너야말로 시끄럽다. 그런 건 네 몸도 마찬가지 아니냐?"
상영은 아드노아의 배를 가리켰다. 그에 아드노아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다가 한 손으로 치면서 말했다.
"저야 근육이 있으면 원래 안 되는 몸이죠. 아직 커야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근육을 안 붙였다? 그런데 클 생각을 안 하네? 네 또래의 키보단 작은데?"
아드노아는 상영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피식 쉬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다른 손에 주먹질을 하는 일종의 협박용 동작을 취했다.
"형님, 아우의 주먹은 아픈 곳만 노려서 생각보다 맵습니다. 다만 그 정도의 험담에 제가 화를 낼 정도로 내공이 없지 않으니 그러진 않지만, 다른 일에 대해선 조심하십시오. 그러니 옷이나 마저 벗고 씻으러 가시죠."
"네 천성이 마치 사나운 개 같구나. 조심해야겠어, 으."
상영은 질겁한 것처럼 굴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아무나 막 무는 똥개를 조심하십시오'라는 푯말을 보고 겁먹은 어른 같았다.
상영은 문득 아드노아의 바지를 보고 한 가지 궁금점이 생겼다.
"그런데 네 그 옷 웬 잿빛이냐? 그런 옷감은 찾기도 힘들뿐더러 일부러 그렇게 만들 일도 없는데. 게다가 좀 이상한 옷이잖아. 어, 상의랑 한 벌이네?"
"아, 이 옷이요?"
상영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노아는 잠시 고민한 후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다.
"그, 막 나가는 아저씨가 이런 옷이 너한테 잘 어울린다고 특별히 장만해준 옷이에요. 그래도 그 아저씨는 형님처럼 밉진 않았어요."
"뭐? 너, 이 자식! 또 그 말은 왜 꺼내는 거야. 내가 그렇게 밉상이더냐!"
상영은 주위가 쩌렁 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자신의 말을 끝으로 하의를 벗으려던 아드노아는 상영의 갑작스러운 호통에 동작을 멈추고 어깨 밑으로 들어갈 뻔한 목을 추스르며 미안하다 사과했다.
그때, 몸을 다 씻고 청결한 상태로 옷을 입고까지 온 어르신이 둘을 발견하곤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러다 언제 씻으려고, 아그들아. 설마 창피하기라도 하는 거니? 쯧쯧 다 커서 그러는 거야? 애도 아니고. 아니면 목욕하는 입구 근처에서 수다 떠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든? 너희 소리가 안쪽으로 얼마나 울려대던지, 조금 지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더구나. 이러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머릿속을 비우며 경건하게 목욕하고 있는 이들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겠구나. 어서 들어가려무나."
어르신은 두 청년에게 좋은 교훈이라도 준 것 마냥 의기양양하게 뒷짐을 쥔 채 걸어나갔다. 아드노아와 상영은 어르신이 나가는 방향을 향해서 고개를 숙여 얼굴을 붉히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했다. 이에 어르신은 자신한테 할 필요가 없다며 빨리 준비나 끝마치고 씻으러 가기나 하라고 했다.
둘은 들은 직후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로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친 것일까'라는 주제로 질문은 꺼내지 않았다. 답은 끝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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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28 22:28 | 조회 : 80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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