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마차는 인연을 싣고-3-

아드노아를 어깨높이까지 올려줬던 남성은 그 상태를 유지하는 대신 앞자리까지 데려다주는 것으로 작별을 고했다. 아드노아는 애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곤 앞의 교주와 눈을 마주치길 꺼려했다. 그리고 아까의 일이 마음속에서 지워지길 바라며 무의식에 집중했다.

"우선, 새로운 이름을 받기 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의식은 보통 교단의 높으신 분, 그러니까 교주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아드노아가 교주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교주님’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 뜻을 해석하자면 본인은 교주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아드노아는 혼란에 빠지며 '그렇다면 누가 교주란 말인가?'라는 의문에 휩싸였다. 사실 이 혼란은 어린 소년의 것만이 아니라 이곳에 처음 온 모든 이들의 것이었다. 모두가 수군대는 와중에 사실은 교주가 아닌, 연설을 하던 사제가 말을 이었다.

“예, 여러분들이 지금 생각하신대로 저는 교주라는 직책에 있지 않습니다. 그분을 대변해서 이곳에 서 있는 깨달음이 부족한 사제에 불과하지요. 그분은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의식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내려줄 이름 정도는 저같은 이들도 알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니 장난 같이 들리시겠지만 의식은 제대로 치러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짐을 챙기고 각자 방을 배정 받으신 후, 몸을 간결히 씻으러 가시면 되겠습니다. 자세한 안내는 이곳의 다른 사제분들이 친절히 해드릴 겁니다. ”

그 말을 끝으로 연설을 끝마친 사제는 들고 있던 책을 한차례 바라보고 난 후, 연설 대에서 내려와 모두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교주가 아니었다고 한들 문제는 없다고 들었으니 사람들은 들은대로 주변에 은패를 지니고 있는 사제들에게 물어 방을 배정받기 시작했다.

아드노아는 그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고는 어지럼증을 일으키곤 자리에 주저 앉았다. '도착도 늦게 한 주제에 바닥에 주저 앉다니'와 같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사람들이 서서히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아드노아와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와 똑같이 사람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린 일부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은 익숙한 얼굴이었는데, 아까 자신을 베려해 준답시고 제 몸을 번쩍 들어 올렸던 남성과 마차에서 일찍이 떠났던 르세라는 사내도 있었다. 앞의 남성은 무시하기로 하고, 르세에게 친한척을 하기로 한 아드노아는 제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르세씨, 또 만났네요!"

르세는 그 모습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헤어지기 전, 설마 하던 일이 사실로 이루어지자 신에게 저주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곳의 신의 이름을 모르는 그는 스스로를 의아했다. 분명 이곳에 대한 대강의 사전 조사를 했지만,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이름 없는 신은 당연히 아니니, 이름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어야 했다. 그는 의문점을 품다가, 거의 다 다가온 아드노아를 보고 제빨리 옆의 안내를 하는 사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아니. 사제님. 나는 지금 한시가 급하게 된 듯 하다. 그러니 방을 빨리 주시오."

"형제님, 안색이 좋지 않으시군요. 저희 교단의 건물 뒤쪽으로 얼음꽃이 만개하였는데, 그 중 이파리가 세 장 짜리인 꽃을 뜯어서 달이신 후, 그 물을 먹으면 그나마 기운이 날 것입니다."

르세의 말은 존대와 하대, 그리고 듣는 주체에 혼란이 오는 듯한 이상한 말이었지만 여러 시련을 겪어온 사제답게 이번 시련도 간단히 물리쳤다. 몇가지 참견을 하려고 했던 사제는 째려보는 르세의 눈을 보고는 한 가지 유용한 지식만 알려준 후, 자신의 투박한 가운 안 자락에서 나무 패가 같이 딸려 있는 방 열쇠를 르세에게 주었다.

열쇠를 건네받자 마자 뛰어가기 시작하는 르세를 보며, 친절한 사제는 이미 멀리 떨어진 그에게 들릴 정도로 외쳤다.

"방은 앞의 그 통로에서 갈림길이 두 번 나올 때까지 가다가 꺾으신 후, 왼편으로 가서 이 층으로 올라가신 다음, 쭉 있는 방에서 어리연이라는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사제는 외침으로 하기엔 너무 긴 설명이 통로 안쪽으로 사라지는 사내에게 잘 전달됬을지 걱정을 했다. 그리고 목을 주무르며 아직도 남아 있는 이들에게 '어서 오셔서 방을 배정 받으시죠?'라는 눈빛을 보냈다.

한편, 코앞에서 대상을 놓친 아드노아는 허탈함과 함께 순진한 마음이 삐뚤어짐을 느꼈다. 다 모두 잘 되자고 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아드노아는 속으로 느끼는 불만을 입으로 조용히 궁시렁 거리기 시작하며 사제에게 갔다.

그 모습을 보던, 자신은 몰랐지만 아드노아에게 무시당하던 남성은 방금 전의 상황을 대강 파악하고 아까 보았던 소년이라는 당다한 명목을 갖고 아는척을 하며 위로해 주러 다가기로 했다. 하지만 아드노아가 그것을 눈치챘는지 재빨리 방을 배정 받아서 사라졌다.

누구를 위로해 주려고 했던 건지 모르게 된 남성은 허공에 있는 이에게 말을 걸려다 마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울 것 같은 심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많은 이들의 안내를 도맡느라 지쳐 있는 사제에게 말했다.

“세상 참 살기 힘들죠?”

“사람들 관계를 훔쳐 보는 건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댁보단 힘들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 패에 써진 방으로 가십시오. 열쇠는 이미 모두 먼저 간 이들이 받아 갔으니, 그들이 있는 방 중 하나에 껴 들어가야 겠지요. ”

사제는 어린이에게 무시 당하는 어른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툭 뱉는 말을 했고, 그 말에 상처받은 남성은 어깨가 결리다며 팔운동을 하면서 패에 써진 방을 찾아갔다. 그는 가는 와중에 한 가지 생각을 한 후 이런 말을 내뱉었다.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는 걸까?"

혼자 돌아다니는 어른에게 친한척 하려는 애나, 혼자 다녀서 걱정되는 애에게 친한척 하는 어른이나 같다는 생각이 꽤나 위로가 되어 남성은 피식 웃고는, 어느새 방 앞에 도착해서 방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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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23 23:14 | 조회 : 92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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