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마차는 인연을 싣고-5-

목욕을 끝마친 아드노아와 상영은 입구에서 받은 평범한 갈색 옷과, 하얀 가운을 입고 방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간혹 목욕하는 장소로 올 때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과 마주치는데, 그들은 둘에게 배다른 형제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상영은 그 말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몇차례나 더 듣고나서야 한 가지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편안한 발걸음으로 걸어 가다가 아드노아에게 물었다.
"동생아, 서로를 형 동생으로 부르니 사람들이 진짜 혈육으로 보는 것 같구나. 회색 머리랑 노랑 머리가 닮은 점이 어디 있는가 싶지만, 성격이 닮은 거겠지."
"무슨 그런 험담을 하십니까, 형님. 성격이 닮다니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우리 부르는 호칭에 변화를 주어야 겠다는 거야. 나는 그냥 너를 드노라 부르겠어. 동생이라고만 불러서 이름이 약간 흐릿하게 기억나는데, 아드노아 맞지?"
"아, 그런 말이였어요? 네, 아드노아 맞아요. 드노라 불러도 된다고 했었고. 그런데 형 이름은 상영 맞죠? 근데 저는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네요? 어차피 형은 형이잖아요. 함부로 이름을 부르는 거라면 반말을 하는 거 같아서 좀 그런데."
상영은 고민했다. 형이라는 호칭을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건 간단한 문제지만, 소년과의 만남이 있는 동안에 그에게 불릴 호칭을 정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영은 깊게 생각하면서도 쉽게 넘기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진지한 표정을 지은지 얼마 안 되서 곧바로 말했다.
"그냥 상 형이라 부르던지, 영 형이라 부르던지 상영 형이라 부르던지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나만 너를 드노라 불러도 혈육이라는 인식을 좀 벗어날 수 있을 거 같거든."
아드노아는 간단 명료한 답이라며 박수를 한 번 쳤다. 그러고서 아직 꽤 축축하게 늘어진 머리가 앞을 가려 두 손으로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 모습을 본 상영은 할 말이 생각나서 이때다 싶어 말했다.
"그런데 드노야, 머리 모양 말이야 씻기 전이 개성 있어서 좋긴 한데,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하면 안 될까?"
아드노아는 목이 간지러운 사람처럼 목을 긁다가 결국 기침을 했다. 그리고 조금은 화난 사람들을 흉내낸다 싶을 정도로 목소리를 격양시켜서 말했다.
"머리 이야기는 제가 화 낸다는 거 알잖아요. 저는 지금 이 머리보단 그 개성있는 이상한 머리가 좋네요! 알지도 못하면서 이상하다고 하진 말아주세요, 상이 형, 영이 형, 상영이 형!"
한 사람의 이름을 세 사람분의 이름으로 말하는 그 진기명기를 감상한 상영은 길거리 이름 예술가에게 감상평을 들려줬다.
"드노야 네 형님이 그 호칭이 참 마음에 들겠다. 아, 그렇게 째려볼 필요는 없잖아? 미안한 건 알고 있어. 어떻게 사과할까 생각하는 중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사과해야 우리 드노가 마음에 들어 할까?
상영은 두 눈을 감고 재미를 즐기는 인생의 표본처럼 후안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이들에겐 명치를 때리는 거야말로 정당방위라 알고 있던 아드노아는 서투른 주먹질을 했다.
"그럼 상영이 형아야? 형아야님이 나를 때릴 일은 없을테니 나는 이렇게 자신감 있게 휘두를 수 있어요. 이걸로 사과는 받은 걸로 할테니까, 알겠지?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보단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 땐 소리 질렀었잖아요. 나 잘했지, 응?"
아드노아의 섬뜩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상영은 맞은 곳을 매만지며 고통을 덜었다. 얼굴을 찡그린 그 모습을 본다면 아무리 힘이 약해도 명치를 맞는다면 꽤 아프다는 걸 알 수 있다.
"드노야, 나는 지금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어. 개 중에서 사냥개가 많잖아? 그것들은 짜증이 생기면 꽤나 주인에게도 사나워지지. 그걸 생각해 봤을 때, 너는 그냥 미친 개야! 도망쳐! 방이 코앞이다!"
"게 섯거라!"
상영은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고 아드노아도 그에 맞춰 따라가기 시작했다.
둘의 추격전은 다행히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둘은 좀 늦게 씻은 편이기 때문에 주변에 있을 사람들은 이미 방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 사실에서 방 안에서 편히 쉬고 있을 이들은 달음박질이 벽을 타고 들릴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이들 중 몇몇은 책을 내려 놓거나, 문 앞까지 왔다가 다시 침대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상영과 아드노아는 끝 없는 민폐를 끼치면서도 그들에게 봉사했다. 그들은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해 나갈 테니까. 둘의 양심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만은 둘은 이런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에 가까웠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상영은 당연하게도 아드노아보다 큰 체구이므로 한참 빠르게 방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영이 형님, 먼저 열쇠를 받은 게 누군지 모르셨습니까? 그리고 저는 문단속이 버릇이 되어 있는 착실한 사람이랍니다."
아드노아는 씩씩거리면서도 거만하게 걸어왔다. 상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할 생각도 않은 채 무릎을 꿇었다. 심판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거, 동생님 사랑합니다. 남자라도 사랑할테니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아직 심장이 뛴다는 말을 알지 못하는 소년이랍니다."
"그렇다고 제 심장이 멈추는 일이 일어나길 바라진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훔쳐가는 심장이 아니라 오늘의 고통입니다."
아드노아는 상영의 코앞에 다가와 섰다. 상영이 무릎을 꿇어서 아드노아가 조금 내려다보는 쪽이 되었다. 아드노아는 유쾌한 표정을 지었고 상영은 질린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드노아가 한 말의 오류를 짚었다.
"그거 훔쳐가는 게 아니라 주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저는 착한 아이랍니다."
아드노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손을 거하게 휘두르며 천장을 향해서 수직으로, 열쇠를 던졌다.
상영은 얼떨결에 눈 앞으로 떨어지고 있는 열쇠를 받아들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아드노아를 바라보았다.
"왜요, 진짜 때릴 거 같았어요? 제가 화내는 건 머리카락에 대해서랍니다. 그냥, 술래잡기하고 싶어하는 형을 위해서 억지로 같이 놀아준 동생일 뿐이지요."
팔짱을 끼고 당당하다는 듯 서 있는 아드노아를 보면서 상영은 어이가 없었다. 아이의 장단에 맞춰주고 있던 건 자신이 아니었단 사실이라는 충격에 말도 안되는 추측을 내뱉었다.
"사람을 갖고 노는데 재주가 있는데, 혹시 어딘가의 왕초라도 되느냐?"
"왕초도, 어느 무리의 수장질도 해본 적 없는데 말이죠. 빨리 방에나 들어가요. 추우니까."
상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받은 열쇠로 방을 열었다. 아까는 아드노아가 끌고 가버리는 바람에 입구에서 바로 돌아 나왔지만 이번엔 방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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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30 14:15 | 조회 : 81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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