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마차는 인연을 싣고-2-

아도노아는 목표로 정했던 사내와 친해지는 일에 실패했다. 소년은 사내와 친해지려 질리도록 말을 걸었고 사내는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사내의 경고에도 자신의 질문이 계속됬지만, 그렇다고 사내가 자신을 때리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사내도 지치고 소년 자신도 지쳤을 뿐이다. 아드노아는 사내를 보면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 말했다.

"저, 이름이라도 말해 주세요. 제발."

"끈질기다. 독하다. 이름 하나만 알려주면 입을 닥치고 조용히 있을 거라 맹세해라."

"저, 아드노아는 제 앞의 사내에게 이름을 듣는다면 마차 안에서 입을 닥치고 있을 것을 맹세합니다!"

사내는 아드노아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마차 천장을 잠시 바라보고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적막한 마차 안, 햇빛만 들어오는 평온한 장소였다.

"르세다. 이제 가만히……."

"도착했습니다!"

사내의 이름은 르세였고, 그가 이름을 말한 이유는 아드노아라는 소년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소년의 말을 무시하며 참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목적지에 도착해 버렸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의 손해가 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시끄러운 꼬맹이와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후련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넓디 넓은 신전 안에서 키도 작고 어린 소년이 자신을 찾지도, 우연히 만나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연초 한 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소년의 같이 가자는 말을 무시하고 혼자 홀연히 떠났다.

"아."

떠나가는 사내를 보며 아드노아는 안타까워했다. 홀연히 사라지는 늑대같은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다시피한 소년은 마음속으로 울었다. 그렇게 떠나선 안 된다고, 혼자선 안 된다고.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차꾼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마부석으로 향했다.

"마차 안에서 우는 소리만 들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만히 있더니, 손님 합석하니 조금 소란스럽더구나. 즐거운 일이라도 있었니?"

"네, 즐거운 일이 있었어요. 하하."

지친듯 식은땀을 흘리는 소년을 보며 마부는 물었다. 돈은 출발하기 전에 받았고, 할 일도 없이 이곳에 얼마동안 체류해야 하는 마부는 소소한 일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사람과의 대화인 것이다. 이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일인가. 마부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앞의 소년의 이름을 묻지도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꼬마야 이름 좀 알고 싶구나."

"아드노아라고 해요. 노아라 불러도 되고, 드노라 불러도 되고, 어떻게 불러도 상관 없지만 꼬마라는 말만 아니면 좋겠네요!"

헤맑게 웃으며 불만을 표출하는 꼬마아닌, 소년을 보며 마부는 웃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키며 소년의 주의를 끌었다.

"아드노아야, 다 좋은데, 이미 늦은 걸로 알다만? 끝나기 전에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닌지 심히 걱정 되는구나. 이곳에 여러 번 와봤지만 내가 의식에 참여할 일이 있어야지 자세히 알겠지. 잘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가보지 그러냐."

마부는 착실하고 순한 얼굴의 소년이 작별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걸 보며 제 생각대로 많이 늦은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마부는 이곳의 유일한 숙객시설로 향했다.


소년은 달리고 있었다. 거리가 멀진 않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땅을 밟으며 마지막 도약을 했다. 평화로운 동네의 애들 장난처럼 보이는 그 모습은 다 이유 있는 것이었다. 바닥에 다리가 저리도록 착지를 하며 소년은 앞을 보았다. 한치 앞은 살이 떨릴 정도의 절벽이 있었다. 그리고 다리가 하나 있었다. 절벽을 다시 보니, 얼마나 깊은지 안개 때문에 알 수 없었다. 새하얀 냉기로 가득찬 그곳엔 음산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뾰족한 바위 대신 소름끼치는 얼음 바위가 즐비했다. 조금 추운 곳이긴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에 소년은 떨떠름했다. 기대하고 기대해서 온 곳이었지만 상식 밖의 곳이었다. 알 수 없는 기분에 휘말린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되뇌였다. 아드노아. 자신을 받아준 남성이 지어준 이름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 세상에 태어날 때 하사받은 최고의 선물. 아무리 캄캄한 곳이 되어도 빛을 내어 길을 비춰준 길잡이. 마음을 다잡고 다리를 올라갔다.

오래되고 낡은 부분들이 갈라져 있었지만 그 사이로 투명하고 푸르스름한 얼음이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오래된, 거대한 생명체처럼 무겁고 중후한 느낌에 안정감이 들었다. 아드노아는 숨을 몰아쉬며 계단의 정상에 올랐다.

그러자 절벽 아래에선 볼 수 없었던 거대하고 장엄한 푸른 지붕의 저택같은 신전이 보였다. 아까 보았던 다리 보다 더 으스스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건물의 복잡한 구조 사이로 얼음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밖은 손이 시리도록 추웠지만 내부는 따뜻할 거란 믿음을 가지며 늦게 왔다는 자각을 잊고 아드노아는 입구로 들어섰다.

들어선 내부에선 한참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대한 내부를 울리듯 진동하는 음성. 분명 많은 사람이 있을텐데도 조용했다. 내부를 자세히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사람들이 한쪽을 바라본 채로 서 있었다. 멀리서 봐도 부드러워 보이는 고급 소재의 망토를 두르고 있는 남성이 서 있었다. 아드노아는 꽤 젊어 보이는 그가 교주일 것이라 생각했다.

교주는 망토에 달려 있는, 자신의 머리보다 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손엔 알 수 없는 책 한 권을 쥐고 폼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 중요해 보이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책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연설인 것 같은 말만 하고 있었다. 아드노아는 그 모습에 이상함을 갖고 굳이 읽지도, 소개하지도 않을 책을 왜 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는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오기 전에 이미 그 책에 대해 설명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저기 있는 사람들의 진형에 빨리 자신도 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움직였다.

"늦었는데 무슨 문제는 없는 걸까?"

소년의 말을 들은 누군가가 조용하라고 주의를 준다. 분명 소리만 들었지 무슨 내용인지는 듣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눈치채지 않았다는 것에 아드노아는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내쉬곤 앞을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키는 대게 자신보다 컸었고, 그들은 빼곡하게 서 있었다. 힘들게 왔건만 교주님의 모습을 보며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에 실망했다. 그때, 누군가가 아드노아를 들어 올렸다.

"무, 무슨!"

"쉿, 조용. 앞이 안 보이지? 어린 나이에 여기까지 온 건 대견한데 보호자는 누구니?"

"아, 아무도 없는데요?"

짙은 회색같은 삐죽한 짧은 머리의 남성은 두 손으로 어깨 높이까지 아드노아를 올려 놓고서 부둥켜 안아 반항을 막았다. 그리고 선행을 베푸는 이들의 특징처럼 몇가지를 물어 참견했다. 아드노아는 그 점이 싫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선행을 베푼 이들이고, 어쩔 수 없이 답해야 했다. 대답을 들었던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혼자 여기까지 온 거니? 복장을 보니 그렇게 헤진 건 아닌 것 같고. 보통의 가정집에서 보냈다면 누군가 같이 보냈을 법도 한데. 그런데 머리 모양은 좀 이상하구나?"

"저, 드, 들어 올려주신 건 정말 고마운데, 저는 정말로 혼자 왔고. 이 머리 모양이 뭐가 이상해요!"

아드노아가 갑작스레 소리칠 때, 주변이 조용했다. 교주가 연설을 끊은 것이다. 모두가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드노아를 들어 올린 남성은 머리를 긁적였고, 아드노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금방 터질 듯한 그 모습에 교주는 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에게 눈도장을 찍힌 어린 소년은 정신이 날아간 것처럼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그 와중에 들리는 교주의 목소리.

"…… 그래서 여러분은 이곳에 오신 겁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복장을 단정히 하고, 몸을 간결히 씻은 뒤, 제 앞으로 한 분씩 오셔서 새로운 이름을 받으실 겁니다. 그리고 이 패를 같이 받게 되겠지요. 그 후의 일정은 그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드노아는 다행히 중요한 부분만은 머리속에 인식 되도록 들을 수 있었다. 서서히 정신을 차리며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는 교주 바라보고 있을 때, 교주의 주위가 어둑해지는 느낌과 함께 그의 목걸이에 걸려 있는 은색 패에서 눈꽃이 피기 시작했다. 눈이 시리도록 차갑게 빛나는 그것은 주위로 퍼져나가 허공을 황홀히 수 놓았다. 마법과 같은 그 모습은 이질적이고 신비해, 아드노아를 놀라게 했다. 교주는 은패를 정성껏 잡고 있었고 마침내 그것에서 손을 땠다. 그러자 아드노아가 보았던 신비한 광경은 모두 끝이 났다. 아드노아의 멍한 표정과 함께 사람들은 전율했다.

"자, 여러분. 이것이 우리 설원의 신전을 믿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힘입니다. 아름다우며 차가운 힘이지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가꾸게 될 힘이기도 합니다. 이 힘을 우리는 신성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신성력이 존재하는지 몰랐다고요? 신성력이라는 힘은 사실 오래전 사라진 힘입니다. 다른 어떠한 것들의 신들을 믿는 신전에선 이와 같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힘을 발현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분명 아주 까마득히 오래전에는 존재했던 힘이지만 어떠한 계기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은 우리에게 힘을 내려주었습니다. 믿는 자만이 가지는 힘. 믿는 자만이 세상에 나타낼 수 있는 힘. 이것은 우리만의 고독입니다.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앞으로 알아가겠지요. 물론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게 먼저입니다. 다들 제 말은 듣고 있겠죠?"

아드노아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끼며 고아원의 남성이 왜 처음에 이곳의 사제가 되는 걸 반대했는지 궁금해 했다. 그 당시엔 제 의지를 펴느라 반대의 이유를 묻지 못했다. 이제 와서 물을수도 없는 상황, 아드노아는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저 신성력이라는 힘으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은 교주님이 말한대로 알아가게 될 것이라 아드노아는 생각했다.

"의식의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경배하십시오."

이곳에 온 이들은 모두 대강의 소양은 받고 온 이들임으로 교주의 말이 떨어지자, 다같이 같은 자세로 경배했다. 한 손을 가슴으로 향하고 고개를 숙여서 묵념함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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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20 23:29 | 조회 : 782 목록
작가의 말
nic2596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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