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 그건 못 먹었으니까 무효.

츤데레 여친과 헤어진 뒤에는?

9화.아, 그건 못 먹었으니까 무효.

현재시간 1시 47분..
카페베너에서 보라매 공원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않기 때문에 다혜와 카페베너에서 나온지 약 5분정도 지났으니 약속시간과의 갭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단순한 시간문제가 아니다. 본래 약속대로라면 그 장소에는 나 혼자 가야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옆에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나만의 일일 전담 상담사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다혜야. 역시 그만두자! 응?"

나는 다혜가 무슨 작정으로 미나를 보러가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분명 상담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던가 뭔가 즐거워 보이는 듯이 말하기 까지 했는데, 혹시 내가 아니라 미나를 상담해주겠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것은 아니겠지? 나는 아니길 빌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절대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닐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 또한 아닐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그녀를 막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었다. 나와 미나의 관계를 해결해 주려는 그녀의 성의에는 정말 감사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일이 커지는걸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싫은데?"
"이거 진짜 위험하다니까? 미나하고 싸울셈이야?"
"필요하다면?"
"폭력반대!"
"..진짜 아까부터 쫑알쫑알 시끄러워. 너."

다혜는 아까부터 옆에서 미나와 약속한 장소인 보라매 공원으로 가는 것을 만류하는 나를 질린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앞서나가 듣기 싫다는듯 내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혜에게 최대한 붙으면서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너도 알잖아? 이게 막연하게 미나를 만나서 얘기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걸 말야!"
"하아.. 그럼 그거 말고 무슨 방법이 있는데?"
"그건.."
"예전처럼 그 애의 종으로 살셈이야?"
"당연히 아니지!"
"그렇다면 할 말 없지? 제발 가만이 좀 있어라. 네가 원숭이니?"
"하지만.."

분명히 미나와의 그런 관계는 이렇게 다혜를 통해서라도 지금 당장 없에버리고 싶은게 당연하다. 하지만 역시 이런 나의 복잡한 관계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면, 현재까지의 상담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이 송다혜님을 못믿겠다는거야?"
"그렇다면 가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할 생각인데?"
"그건 상담사만의 비밀. 10분 뒤에 공개됩니다."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다혜야.."
"..그러면 너는 지금 내가 농담으로 미나를 만나러 간다고 한 것 같아?"
"네가 농담으로 그런 말 하지 않는다는건 잘 알고있어.. 알고있지만!"
"그럼.. 역시 날 못믿겠다는거야?"
"그런 말은.."
"아~ 정말! 답답해서 못봐주겠네! 남자녀석이 그렇게 물렁물렁해서 어디다 쓰려는거야?"
"..물렁물렁?"
"그래! 물렁물렁! 지금의 너한테는 딱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물렁물렁의 어디가 나한테 어울린다는거야?!"
"꼴에 고체라고 모양은 있지만 바람만 맞아도 흐물거리면서 기분나쁘게 반응하는점?"

날 푸딩같은 놈이라고 말하고 싶은건 알겠는데..

"의미불명입니다만.."
"모르겠으면 그냥 걷기나해. 바보."
"..그러면 한 가지만 약속해 줄 수 있어?"
"뭔데 또.."

다혜는 귀찮다는 듯이 뒤돌아서 내 쪽을 봤다. 아무래도 내가 어떤 말을 한들 다혜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건 다혜가 미나를 만나기 전에 미리 확인해 두는 것뿐이였다..

"절대 미나 앞에서 아까 카페에서 했던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 약속할 수 있어?"

그녀는 잠깐 생각하는 듯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서 가만이 있더니 한숨을 푹쉬고는 귀찮은 듯이 말했다.

"하아.. 일단은 약속하겠는데, 근데 생각을 해봐라. 그 얘기를 꺼내놓지 않고는 주종관계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않될까? 간접적으로 말이야."
"귀찮게하네 정말.. 알았어. 내가 어떻게든 할게."

그리고 그녀는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갔다. 그녀가 지금 어떤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으로써의 나는 그것을 확인 할 수 없었다. 왠지 지금 그녀의 얼굴을 보게된다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길거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한없이 약해져서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않는 인간이 될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다혜는 이런 나를 보고도 친구로 남아주었다. 이런 나라도 싫어하거나 멀리하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귀찮게 조건을 걸어가면서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고마워. 이 은혜는 나중에 어떻게든 꼭 갚을게."
"감사는 일이 끝난다음에 해도 충분해~ 절대로 받아낼거니까! 상담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건데.. 아까 카페에서 주문한거 포함이겠지?"
"아, 그건 못 먹었으니까 무효."
"그, 그런게 어딧냐! 못먹은게 아니라 안먹은거겠지!"
"뭐가 됬든 지금 내 뱃속에는 없거든요~ 베에~"
"안되겠다! 역시 안돼!! 그냥 집으로 돌아가아앗!!!"
"안들리거든~?"

그렇게 우리 둘은 그녀와의 약속장소인 보라매 공원에 가까워져갔다..

.
.
.

보라매 공원은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세련되게 가꾸어진 공원이다. 본래 이 공원은 소규모로 나무 몇 개에 놀이터가 하나 세워질 예정이였지만, 갑자기 이 공원의 대한 국가의 구도심 활성화 사업에 갑자기 어떤 거대기업의 입찰이 들어와서 그 규모가 확대되어 유럽식 정원에 작지만 유명 미술가의 작품을 모아놓은 미술관과 아이들과 부모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작은 놀이공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은 아직도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사실 이 장소는 개장이후로 미나와 자주 왔었던 장소였다. 물론, 사이가 틀어지고 나서는 이곳에 한 번도 온적이 없었지만.. 아무튼 미나는 이 공원에 있는 놀이공원을 좋아했다. 그 때는 미나가 좋아해주니 나도 무척 좋아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아니아니, 지금 이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지! 정신차리자 오현민!

"음.. 일단은 오긴했는데. 보라매공원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딱히 어디서 만나자고 하지는 않았는데?"
"뭐야, 그거 이상하잖아. 너보고 알아서 찾아오라는 거야?"
"그 녀석 성격대로라면 그렇네.. 어떻게할까?"
"뭐, 어차피 여기는 출입구가 이 곳 밖에 없으니까. 그 애가 먼저 온게 아니라면 여기로 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근데 먼저 왔다면 분명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거야."
"내 생각에 네가 말하는 그 녀석의 성격대로라면 먼저 올 일은 없다고 보는데?"
"그럼 일단 여기서 기다려보자."
"지금 1시 53분이니까.. 정각에 맞춰서 온다고 가정하고.. 그럼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여기 있어야해?"
"응, 알았어."

그렇게 다혜는 화장실이 있는 미술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다혜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며 시간이나 때울 생각으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그 순간이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

그렇게 무서울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갑자기 전화가 오자.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휴대폰 액정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액정에 표시된 뾰로통한 표정으로 찍힌 그녀의 사진 밑에 있는 이름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고미나'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분명 아까부터 다혜와 같이 있었을 때는 미동도 않던 휴대폰이 갑자기 다혜가 화장실을 가자마자 울리다니.. 우연치고는 너무 정확하다. 게다가 고미나라니..

"설마.. 어딘가서 날 보고있는건가..?"

그렇다면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거지?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다혜와 카페베너에서 나왔을 때부터인가? 아니면 다혜와 만났을 때 부터? 내가 중앙로터리에 도착했을 때 부터? 내가 집을 나오면서 부터? 아니야.. 우연일 거야. 그래, 아무리 미나라도 이렇게까지는 하지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벌써 전화기가 울린지도 30초가 지났다. 일단 다혜와의 상담을 위해서라도 미나와 어떻게든 접촉해야한다. 물론, 그녀가 지금 내가 다혜와 같이 있다는 것을 모를 때의 얘기이지만.. 그렇게 나는 긴장되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간신히 전화를 받았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주인님."

젠장.. 말을 더듬어 버렸다. 역시 너무 긴장했어..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전화기 너머에서 오는 목소리를 기다렸다. 대답은 의외로 즉시 돌아왔다. 정말이지 여전히 듣는 사람의 귀부터 뇌까지 한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목소리였다.. 거기에 듣는 이에 대한 생각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경멸조의 말투. 이것들은 내가 통화하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게 해주었다.

[30초나 기다리게 하다니.. 제 정신이야?]
"죄송합니다. 주인님. 부디 용서를.."
[닥쳐]
"...."
[그래, 그래, 너같은건 그렇게 닥치고 있으면 되는거야.]

미나는 조소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면 너의 주인님이신 내가 너같은 천한 종에게 직접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해주지.]
"...."
[사실 내가 중요한 업무 때문에 시간에 못맞출것 같아서 말이야~ 약속시간을 2시간 정도 늦추려고 하는데, 불만없지? 아~ 물론, 있다고해도 말했다간 지금이라도 찾아가서 죽일거니까.]
"...."
[자, 대답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이 밖에 명령하실건 없으십니까?"

미나는 음.. 하면서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떠오른 듯 약간 누그러진 말투로 대답했다. 물론, 누그러졌다고 해도 차가운건 여전했지만..

[맞다, 거기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2개 사놓고 거기서 기다려. 특별히 먼저 들어가서 혼자 노는 것까지는 허락해 줄태니까.]
"..분에 넘치는 배려,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 말로서 통화가 끝이 났다. 전화를 받을 때 갑작스럽게 긴장됬다가 또 전화가 끊기자 마자 순식간에 풀어진 몸은 완전 만신창이가 되어 제대로 서있을 수 없었고. 이에 의해 비틀비틀거리던 나는 옆에 있던 공원 벤치에 겨우겨우 몸을 맡길 수 있었다.

"하아.."

몸속 깊은 곳에서 피곤함이 진하게 담긴 한숨이 나왔다. 정말이지.. 전화통화만해도 이 정도인데 도대체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어떻게 된다는 거야?!

"..역시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아무튼 약속시간은 2시간 뒤로 미뤄졌다. 아직 미나와 만난다는 것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콩알만해졌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풀어진 기분이다. 게다가 통화의 내용과 분위기로 봤을 때 분명 차갑고 매섭기는 했지만 그녀가 나와 다혜가 있는 모습을 봤다고 가정했을 때의 내가 예상한 반응에는 훨신 뒤떨어졌다. 다행히도 그녀가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추측은 과도한 상상에 불과했던 것임이 분명했다. 그건 그렇고..

"놀이공원이라.. 또 무슨 속셈이지?"

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를 알 수가 없다. 혹시 말그대로 그냥 가고싶어진건가? 아무리 미나라고는 해도 일단은 고등학생이니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잖아?

"그래, 겨우 이런 걸 가지고 깊이 생각하지는 말자. 신경써봤자 결국 내 머리만 아파지니까."

그렇게 공원 벤치에 앉아 아무생각없이 구름한점 없이 푸르기만 한 하늘을 보고있자니 미술관 쪽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그 소리의 주인공이 내 옆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고, 고개를 숙이며 숨을 헐떡거리는 그 주인공은 내가 일어난 벤치에 앉아 숨을 가다듬었다. 이 녀석은 이렇게 가끔 쓸데없는 곳에서 열심이란 말이야..

"하아.. 하아.. 아직 않왔지?"
"아, 응. 그래서 말인데 다혜야."
"다행이다.. 하아.. 응? 왜?"

아, 이런 말하는거 익숙하지 않아서 싫은데.. 아무튼 숨을 헐떡거리는 다혜를 앞에두고 나는 머쓱해하면서 말했다.

"그, 저.. 네가 목마를 것 같아서 그런데.."
"하아.. 잘아네..? 그래서?"

어차피 다혜랑 미나를 만날 때까지는 같이있어야 상담이든 뭐든 할 수 있는거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거야. 절대 흑심같은걸 품고있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식으로 마음의 준비를 한 뒤 그 다음 말을 다혜에게 전했다.

"그, 그러니까 마실거 사줄태니까! 지금 나랑 놀이공원 안갈래?"
"..에?"

그렇게 미나가 올 때까지 2시간동안 이어질 다혜와의 놀이동산 이벤트가 시작되는 것이였다.

[9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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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4-04 22:47 | 조회 : 85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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