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뒤집히는 빛과 어둠(8)

유현은 언제나 죽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만하고 싶었다.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 입히고 그 희생 위에 살아가는 삶을 끝내고 싶었다.

만약, 만약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지 조차 않았다면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고 항상 설아 누나와 현이 형에게 속죄하고 싶었다.

태어나서 발목을 잡아서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었다. 내가 죽었어야 하는 것이 옳았다. 그들이 죽인 것은, 죽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자신 이었으니까.

…유현은 항상 자신이라는 존재를,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유현은 텅빈 공허한 눈으로 눈 내리는 고아원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어린 자신과 설아 누나와 현이 형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조심스럽게 잠든 원장이 깨지 않도록 놀고 있었다.

유현은 풀린 눈으로 천천히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어린 자신의 목을 쥐고 졸랐다. 어린 자신이 숨을 쉬지 못해 켁켁 거렸고 어린 유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고, 싶어.’

작은 손이 상처 투성이의 지금의 유현의 손에 손톱을 세우며 발악했다. 하지만 유현은 손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안돼. 넌 죽어야해.

그래야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이들을 모두 지킬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유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쳐 나왔다. 붉디 붉은 피눈물이었다.

포화상태를 넘어선 감성들은 터지지도 못했고 토해낼 수도 없었다. 그저 속에 썩게 내버려두고 새로운 감정으로 덧씌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유현은 너무 힘들었다. 이제 마모될 감정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현은 언제나 괴로움에 몸부림쳐야만 했다.

언제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 ‘나’를 죽여야해?

살고 싶다는 자신을 죽이고, 죽이고. 그 끝에 남는 것은 언제나 아무것도 없는 텅비어버린 것이었다.

어린 유현의 발버둥이 점점 약해져가고 소리없는 비명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살고 싶다고 외치는 어린 목소리들을, 절규하는 목소리를 유현은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듣지 않은 척을 해왔다.

…그게 옳으니까.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죽이고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이 옳으니까.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때 빛나는 하얀 손이 목을 조르는 유현의 팔목을 잡았다.

듣고 싶지 않아, 듣지 않을래.

고개를 저으며 눈을 꼭 감은 유현의 다른 쪽 팔목에 또 다른 하얀 손이 잡았다.

‘하지만 너는 모르잖아. 죽은 우리의 마음을.’

새하얗게 빛나는 그들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여리고 가엾고도 약한 자신들의 동생을 바라봤다.

‘이제 모든 것을 알때가 되었어.’

‘그 분도 이제는 허락해 주셨으니까.’

소녀가 웃었고 소년도 웃었다. 무척이나 다정한 미소로.

‘그러니 외면하지 말아줘.’

잔은 손들이 유현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 온기가 얼마나 따뜻한지유현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유현이 사랑하는 이들이 모습이고 보였다. 상냥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은채로.

‘자, 긴 여행이 될것이란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뒤에서 포근하게 안는 느낌과 함께 유현은 검은 구덩이로 떨어졌다.

유현은 머하니 눈을 깜밖이며 심연의 끝, 나락의 가장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어두운 공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거친 눈보라를 거치고 달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유현은 어느새 제3자가 되어서 또 그 풍경을 보고 있었다.

여자는 거친 숨을 몰아 쉬며 힘겹게 움직였다. 누군가에게 쫒기는 듯한 급박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유현은 왠지 여자의 얼굴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칠흑처럼 검은 검은 머리카락은 곱슬거리며 허리까지 내려오고 있었고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초리에 눈동자는 동공의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걱정마, 엄마가 반드시 지킬게.’

품속의 천으로 둘둘 말아놓은 것을 본 유현의 눈이 커졌다.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린 자신보다 더 어린 아기 유현이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내 엄마?’

‘맞아, 이 세상에 유일하게 널 가장 지키고 싶어했던 여자였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청아하고도 맑은 남성의 목소리. ‘그 남자’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뒤를 돌아 남자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유현의 시선은 계속 여자에게 고정되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의 손이 붉었다. 그럼에도 아기를 놓지 않을 려고 품속에 꼭 안은 채로 계속해서 걸었다.

‘너의 어머니 혜서은의 혜씨 가문은 나를 모시던 가문이었어. 그리고 혜서연은 나의 신도였지.’

신도? 이곳에도 신도가 있었다고? 그것도 내 어머니가 신도였다고?

장면이 바뀌며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눈 내리는 고아원, 그때 보다는 더 깨끗한 건물의 상태였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여자는, 내 어머니 혜서은은 울면서 어린 아기에게 머리를 기대고는 작은 체온을 함께했다.

버려지는 걸까. 유현은 자신이 버려지는 조금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버려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더 가슴 한켠이 욱씬거리며 당겨지는 고통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널 지켜야 했고, 추격자들을 유인해야 했으니까.’

그때였다. 5살쯤 되었을까 어린 소녀가 혜서은을 발견하고는 조금씩 다가오더니 이내 물었다.

‘얘는 버려지는 거에여?’

그 어린 소녀는, 유설아였다.

‘아니야, 반드시 데리러 올거야. 그러니 아가, 네가 좀 잘 돌봐주겠니?’

눈물 흘리는 혜서은을 빤히 보던 유설아는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기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예쁘다. 이름이 머에여?’

‘이름은 혜성운이야. 하지만 이제는 네가 새로 지어주도록 하렴. 그 이름을 쓸 수 없을 테니까.’

‘왜요?’

유설아는 슬픈 얼굴로 물었다. 애기가 불쌍해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내가, 지어준 이름은 이 아기에게 독밖에 되지 못하니까.’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여.’

어린 유설아를 귀엽다는 듯이 보던 혜서은은 소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이제부터 누나니까 이름을 지어주렴.’

‘…음, 그럼. 유혜성이라고 지을래여. 아기가 자기 이름을 잊지 않도록.’

혜서은은 유설아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속삭였다.흐느끼며 고맙다고 말하며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를 유설아는 혜서은이 완전히 사리질때까지 계속 서있다가 이내 고아원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장면이 바뀌며 현이 형이 고아원으로 들어오고 어린 두사람은 필사적으로 어린 유현을 도봐주고었다.

하 장면 한 장면이 분명 천천히 넘어가고 있는데 유현은 그 장면이 빠르게 넘어간다고 생각했다. 넘어가지 못하게 막고 싶을 정도로, 지난 추억들은 어두운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남자’는 종종 그 추억들 속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것만은 알았다. ‘그 남자’는 아주 어릴때부터 날 지켜봐왔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내 곁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를 살게 만들었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누군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놓지고 싶지 않은, 멈추고 싶은 장면이 지나가고 고아원 원장이 점점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한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현이 형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보고싶지 않구나, 그렇지?’

유현은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보고 싶지 않으면 보지 않아도 상관없어. 하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지?’

알고 있다. 날 막아주었던 그들의 마음을 무시하고 귀를 막고 눈을 감는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속죄의 기회를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다는 것을.

결국 볼 수 밖에 없었다.

원장에게 맞고 있는 어린 나.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들다 맞아 죽는 현이 형의 모습에 유현을 결국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손을 떨었다.

‘후회하지 않아. 혜성아, 너와 보낸 모든 시간들은 나의 일부였고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살게해주었어.’

하얀 색으로 깨끗한 빛으로 빛나는 현이 형은 유현의 손을 잡고 말했다.

‘형이 동생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야. 네 잘못이 아니야.’

‘…윽. 흐으.’

결국 유현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니 자책하지마. 내 애정을 비극으로 만들지 말아줘.’

그렇게말하며 현이 형의 사념은 사라졌다. 유현은 손을 뻗어 잡고 싶었지만 마치 모래처럼 손에서 벗어나 사라질 뿐이었다.

유현은 계속해서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23살의 어른이 된 유설아가 나왔다. 그녀는 원장에게 붙잡혀 고아원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었다. 열악한 아이들이 버티지 못하면 땅에 묻기도 했었다.

원장실이라고 적힌 낡은 문의 너머로 잔뜩 움추린 채로 굳은 표정이된 어른 유설아와 비틀린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늙은 원장이 있었다.

‘똑바로 안 하면 그 늙지 않는 괴물, 다른 곳으로 넘길거야. 알아 들었어?’

‘네, 다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혜성이만은 건들이지 말아주세요.’

비참하게도 무릎까지 꿇고 빌고 있는 모습은 내가 모르는 모습이었다.

원장은 늙지 않는 나를 질투했었다. 괴물이라고 부르면서 시기와 질투어린 눈으로 날 종종 볼때가 있었다.

장면이 바뀌며 화장실의 구석에서 울고 있는 설아 누나가 보였다.

‘안돼, 이대로는 혜성이를 지킬 수 없어.’

기도라도 하듯이 양손을 가진런히 모으고 벽에 머리를 댄채로 그녀는 홀로 숨죽이고 있었다.

‘…내가, 내가 지켜야만해.’

그렇게 설아 누나는 나의 얼굴이 흉측하다고 가리라고 했었고 나를 밀어냈다.

…다름아닌 나를 지키기 위해서.

원장실로 풍경이 바뀌며 숨죽이며 원장이 통화하는 소리를 문에 기댄채로 엳듣고 있는 설아 누나가 보였다.

‘…아, 물론이죠. 지금 팔면 확실하게 이천 맞죠?’

…원장은 나를 팔려고 했었다. 그걸 눈치챈 설아 누나는 나를 쫒아내었다. 그제서야 모르고 있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유현은 서서히 바뀌는 풍경속, 유설아의 시신을 발견했다.

어딘지 모를 창고에서 써늘하게 식어있는 유설아의 시신을 보자 유현은 다리힘이 풀렸다.

‘주저앉지마. 멈추지마.’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설아 누나는 상냥하면서도 굳건하게 속삭이듯이 등을 떠밀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그 선택의 대개가 죽음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소중한 동생이 살아 있어서 앞으로 보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그걸로 충분해.’

활짝 웃는 소녀의 미소에는 어두운 그림자 없이 맑기만 했다.

‘자, 그러니까 어서 가.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가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 계속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등을 떠미는 손길에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가면 설아 누나와 현이 형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사라진다면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면? 그런 불안감에 유현의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떠나야지. 이제 남은 미련은 없으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두개의 목소리. 유현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유현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흐린 시야를 뒤로 하고 유현은 뒤를 돌았다. 그러자 환한 빛을 등지고 손을 맞잡고 있는 어린 두사람이 있었다.

‘이제야, 우리의 마음을 전부 전했어.’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혜성아, 우리는 너를 사랑해. 우리의 소중한 동생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우리를 놓아줘.’

‘…하지만 나는, 나는 나 때문에.’

‘네 잘못이 아니야. 모든 건 우리의 선택이었고 자의였어. 이제 그만해, 더 이상은 너도 우리도 힘들어진다는 걸 알잖아. 우리는 과거에 불과하고 너는 이제 앞으로 살아갈 희망이있잖아.’

‘…응, 응.’

솟구쳐 흐르는 눈물에 눈앞이 흐려졌다. 이번의 이별이 진정한 의미의 이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둘에 대한 죄책감도 자책감도 모두 놓을 것이고 아름다웠던 추억만을 기억하고 품을 것이다.

그리고 저 둘은….

환한 빛을 향해서 유현에게 등을 돌려 걸아가는 어린 아이들은 빛에 가까워질수록 몸도 마음도 커졌다.

그런 그들을 따라서 ‘그 남자’ 또한 빛을 향해서 걸어갔다.

‘이제 돌아가야지.’

남자의 말과 함께 주위의 모든 것에 금이가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금제는 풀렸어. 나머지는 너의 몫이야.’

남자에게서 금이가고 서서히 흩어져가지 시작했을 때 유현의 몸또한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은 나에게 뭐였어?’

유현은 마지막으로 간절하게 물었다.

‘글쎄.’

하지만 남자는 매정하게도 등을 돌려 사라졌고 유현 또한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감각과 함께 눈을 떳다.




※※※




멱살을 잡힌채로 유현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슬프게도 눈물은 마치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

유성헌의 눈이 놀라서 조금 커졌다. 동공도 조금이지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유현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마치 막힌것처럼 나왔기 때문이었다.

‘…살고, 싶어.’

아주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유성헌이 확실하게 들었다. 어쩌면 죽고 싶어하던 유현의 진짜 진심일지도 모르는 소리를.

그때였다. 마나가 일렁이며 푸른빛을 머금었고 순식간에 접근한 누군가가 날카로운 살기를 내뿝으며 유성헌의 목 바로 옆에 칼을 들이민것은.

“…유현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푸른 빛을 머금고 주위의 물방울들이 사납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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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05 18:25 | 조회 : 1,019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유성헌 vs 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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