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 CHAPTER 2 ] -( 1 )
The Worst Hostage Crisis : 최악의 인질극





대공은 향로 가까이에 놓인 담뱃대를 들었다. 금대 위에 악령의 모습이 세공되어 있는 팔뚝만한 담뱃대가 곧 독한 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담뱃대를 입에 가져다 대어 깊게 들이마시고는 '후우-' 하며 털어냈다. 담뱃대 끝에 꽂혀있는 말린 연초조각, 그 위에 내맺힌 불씨는 석류처럼 발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사탄의 궐련 특유의 어두운 향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콜록- 콜록-"



갑작스런 기침소리에 대공이 뒤를 돌아보았다. 잠에서 깬 것은 아니었지만, 웨인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미간을 잔뜩 찌부러트리고 있었다. 대공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더욱 잔기침을 해댔다. 잠결에 괴로운지 끙끙 앓으면서 몸을 뒤척거리기도 한다.



"콜록... 킁...."

"괴로운가."



그는 중얼거리며 담뱃대를 다시 향로에 놓았다. 꺼진 불씨는 연기와 함께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제서야 웨인의 표정이 조금 나아진다. 색색거리는 나지막한 숨소리와 함께, 차분해진 웨인의 왜소한 어깨가 천천히 들썩였다. 대공은 분노가 말끔히 지워진 차가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응시했다. 옛 기억을 끄집어 내는 듯한 느낌. 언제 이러한 기분을 느꼈더라. 대공은 미간을 굳혔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과거의 한 조각이 생각의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데이먼드....'



웨인이 하는 모양새는 오래전, 제 동생의 모습과 겹쳐보일 정도로 흡사했다. 담배를 피는 자신 앞에서 질색하며 기침을 해대는 모습이 아직까지 기억의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찌뿌린 미간, 고통스런 기침소리, 그리고 연기가 꺼질 때 쯤 돌아오는 규칙적인 숨소리까지.



'이건, 연민인 것인가.'

'아니. 천사따위가 불쌍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



대공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커다란 손가락이 망설이며 이불 끝자락 위를 맴돌았다. 대공은 웨인의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주려던 제 손을 겨우 제지했다. 어림도 없지. 그는 다시 담뱃대를 들어 입술 끝에 물었다. 차마 연초에 불을 다시 붙이지는 못하고 가장자리의 목재부분만 잘근잘근 씹을 뿐이었다. 침실 안, 자욱한 연기가 있던 자리를 소년의 차분한 숨소리가 차지했다.





* * * * *





천계의 왕과 마계의 왕이 영면에 든 후로, 핏빛 전쟁이 계속되었다.

창 끝과 칼날이 상대를 향하고, 살기 넘치는 푸른 눈과 붉은 눈이 맞부딪히는 살벌한 전쟁이었다. 천계와 마계를 사이에 둔 땅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황폐한 땅으로 매말랐다. 두 왕이 살아있을 적만 해도 교역의 중심지였던 그 곳의 시냇가에는 맑은 물 대신 붉은 피가 흘렀고, 시체가 여기저기 굴러다녀 발 디딜 곳조차 없었다. 가족 일원을 모두 잃은 생존자는 부상당한 채로 핏물이 가득 고인 냇가에 자진하여 죽음을 선택했다. 민가가 칼과 창으로 파괴되고, 폭약에 얻어터진 목재 위로 잿더미가 쌓였다. 전쟁이 일어난 국경선 가까이엔 사람은 물론, 그들이 살았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간간히 철제 갑옷을 뒤집어 쓴 병사만 상대의 동향을 살피는 파수꾼 역할을 맡아, 황폐한 땅을 홀로 건널 뿐이었다.

제 5차 침략까지 포함한, 약 200년간의 전쟁이 계속되자, 천사와 악마는 모두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더 이상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들에겐 해결책이 필요했다. 수 천만 병사의 군단을 이끌고 전쟁의 초반부를 압도했지만, 악마의 강력한 공격마법에 된통 당한 천사들에겐 이 상황이 기회와도 같았다. 당장 그들에겐 신의 가호에 대한 믿음 따윈 없었다. 마계 군단에게 확실하게 밀리고 있는 것은 천계 군단이었다.



'천계에 더 이상의 피해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천사의 이름을 지니고 악마 따위에게 허리를 굽힌단 말씀입니까?'

'민가의 농작물이며 모든 쇠붙이들을 죄다 전쟁물자로 가져가는 바람에 천계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자존심보다 백성의 구제가 먼저입니다. 경께서는 부디 사태를 파악해 주시지요.'

'자, 자. 언성을 높이지 맙시다. 함께 이겨내야 할 문제가 수두룩한데 우리끼리 다투는 것은 아니됩니다.'

'그럼 이건 어떻겠습니까?'



약력 974년, 천계에선 큰 회담이 열린다. 천계의 수장, 제 12장로가 모두 회의에 참가하며 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했다.



'인질극을 벌이는 겁니다.'

'인질극? 볼모를 보내잔 말씀입니까?'

'악마 소굴로요?'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볼모를 양측에서 교환하자는 말입니다. 이번 전장에서 큰 공을 세운 스무 살짜리 대공작이 마계의 위키드 가문 수장의 자리에 올랐답니다. 그에겐 동생이 하나 있다고 하지요. 마침 제 9장로의 아들 또래더군요.'

'지금 그 말은.....'



제 9장로, 휘트리 가문 수장의 얼굴이 분노로 달아올랐다가 곧이어 사색이 되었다. 장난은 그만하라고 말하려 했던 입술은 얼어붙은 듯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진심이다. 알아차린 순간 머릿속까지 혈관이 차가워지는 듯 했다. 누가 이제 막 열 살이 된 제 자식을 전장 한가운데로 내보내려 하겠는가. 하지만, 제 9장로를 바라보는 나머지 열 한 명의 장로들의 표정은 싸늘했다. 천계의 목숨줄이 간당간당한데, 그 정도의 희생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눈빛. 제 9장로는 탁상 밑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땀이 넘치도록 쥐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쥔 귀족의 자제를 인질로 갖는 것. 천사가 내민 해결책에 마계의 인장이 새겨진 도장이 찍히고 나자, 드디어 전쟁은 끝이 났다. 천계만큼이나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계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화친 조약에 적힌 천계의 인질은 휘트리 공작가문의 웨인 휘트리 (Wayne Whitry) 였고, 악마 쪽에는 위키드 공작가문의 데이먼드 위키드 (Daimond Wicked) 의 이름이 적혔다. 화친조약의 조항에는 위험한 사태의 싹을 뽑기 위해, 인질로 보낼 자제들의 날개를 자른다는 항목이 있었다. 날개는 천사와 악마의 힘의 원천. 모든 힘이 날개에 깃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날개가 훼손될수록 마력이 약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웨인은 날개가 잘린 이때를 기점으로 무력함에 익숙해지는 법을 익혔다. 힘의 원천을 잃은 천사의 몸은 작은 마법술식의 사용에도 쉽게 무리한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부상자를 위한 치료술을 배울 동안, 웨인은 고작 종이에 긁힌 상처 하나를 치료하는 데에도 남들의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작은 마력 운용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을 뻘뻘 흘리는 웨인을 향해 아이들은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어느 날은 천사 학교의 교장이 교장실로 웨인을 불렀다.



'웨인, 아무래도 학교는 그만두는게 어떻겠니?'

'하지만.....'

'네 마음은 누구보다도 잘 알아. 남은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겠지. 하지만, 웨인, 이제 화친조약에서 명시된 날까지 얼마 안 남았잖니. 넌 큰 일을 해야하는 몸이야. 제 1장로께서 직접 우리 학교로 오셔서 말씀하셨단다. 마계로 가기 전까지는 네가 무리하지 말고 자택에서 쉬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

'싫으니?'

'.... 알겠습니다.'

'그래. 기숙사에 네 짐은 미리 싸두었으니, 마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좀 쉬려무나.'



가끔, 날개가 잘린 부분이 아파오거나 욱신거렸지만 나름 참을 만 했었다. 땅바닥으로 내려앉는 듯한 무력감을 느껴도 불평하지도, 울분을 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천사 학교를 떠나는 마차 속에서 웨인은 그제서야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제 가슴을 부여잡고 웨인은 소리내어 울었다. 함께 마계로 동행하기로 했던 시종, 테이룬이 뜨거워진 눈시울로 위로의 말을 건네 보았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웨인은 그렇게 마계로 보내졌다.

마계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웨인과 테이룬은 평화관이라는 건물에서 생활했다. 평화관은 볼모를 위해 준비된 생활 공간으로, 식사도 알맞게 제공되었고, 시설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악마들이 웨인의 존재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이 그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던 평화로운 일상은 한순간에 터져버린 불발탄처럼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사건이 터진 것은 웨인이 마계에 온지 6년 뒤였다. 웨인이 열 여덟 살이 되던 해였다.



'첩보! 첩보입니다!'



천계 내의 작은 마을에 숨어들어, 기밀정보를 몰래 수집하던 스파이에게서 보고가 들어온 것이다.



'데, 데이먼드 도련님께서.... 죽임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뭐라?'

'그게.... 대체....'



마계는 분노로 길길이 날뛰다 못해 뒤집어졌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관심 밖의 대상이었던 웨인이 이제는 악마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붉은 복수의 눈을 번뜩이는 그들은 웨인 또한 끌어내어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쉬이 죽일 수는 없다. 눈을 뽑아버리고 평생 고통스러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더러운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려야 한다. 등등 이와 같은 욕설이 회의실 내에 난무했다. 상위 계층의 악마 귀족들이 내린 결정은 결국 악령수였다. 천사의 몸을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이는 악령수의 처형. 이 결정에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평화가 산산조각이 난 대망의 날, 대공 아몬이 지하를 찾아갔다. 그는 웨인을 살렸고, 침실로 들였다. 악마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 천사들에게 동생을 잃은 남자. 누가 감히 그의 결정을 비난할까.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그 절대적인 존재의 결정을.





* * * * *





웨인은 온몸이 욱신거리는 찌뿌둥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눈을 떴다. 깨자마자 보이는 것은 낡은 방의 풍경. 암흑 자체인 대공의 침실과는 다르게 빛 바랜 다갈색 벽지가 눈에 띠었다. 웨인은 비틀거리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낡은 침대는 웨인의 소심한 움직임에도 심하게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으윽......"



신경이 지끈거리며 머리를 죄어왔다. 두통에 머리를 감싼 채, 웨인은 몸을 웅크렸다. 아까의 공포가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는다. 작은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은 웨인의 눈이 다시금 감겼다.

또 다시 암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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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06 00:38 | 조회 : 5,04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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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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