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

[ CHAPTER 1 ] -( 1 )
Distrust and Vengeance : 불신과 복수





"도련님! 윽, 도련님!"



테이룬의 다급한 비명이 들려온다. 목이 갈리도록 쉰 목소리로 바락바락 웨인의 이름을 외친다. 다급한 눈동자는 얕게 전율하고 있었다. 테이룬의 몸을 억세게 붙들고, 그의 팔뚝을 잡아끌던 검은 로브의 남자들은 이어 웨인에게까지 손을 댄다.



"그 불, 불손한 손을 거두어라! 감히 악마따위가... 도련님께!"



테이룬은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면서도 검은 로브의 남자들을 막으려 들었다. 가소로운 저항일 뿐이다. 산만한 덩치의 남자들에 의해 테이룬의 무릎이 꿇렸다. 넘치는 분노를 버티지 못한 두 눈에서 글썽이던 눈물이 흘렀다.



"끄흑.... 도련님...."



남자들은 웨인의 가냘픈 손목을 붙잡았다. 저항할 힘은 물론 명령에 불응할 용기조차 없는 웨인이었지만, 이들은 마치 전쟁을 일으킨 반역자를 체포하는 듯한 태도로 웨인을 상대했다. 그들의 힘이 얼마나 감사나웠는지, 잡힌 웨인의 팔목에는 푸르딩딩한 멍자국이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웨인의 양팔을 등 뒤로 잡아끌어 손발을 묶었다. 굳은 핏물과도 같은 색의 끈이 웨인의 수족을 옭아매었고, 이어서 어깨를 둘러 팔뚝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 중 한 남자가 소매에서 검은 띠를 꺼내었다. 웨인의 두 눈을 가릴 생각인 듯 했다.

웨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온몸을 휘감는 두려움에 속눈썹조차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눈꺼풀 위로 느껴지는 꺼끌한 천의 감촉에 절로 몸서리를 쳤다.

아아, 왜 이렇게 되었는가.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테이룬과 마주앉아 가벼운 티타임을 가지고, 창문 밖의 푸릇푸릇한 잎사귀들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봤었다. 찻잎은 너무 오래 말렸는지 향이 옅었느나 찻물은 따뜻했고, 바람은 잔잔했던 나름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이런 폭풍우가 몰아칠 줄은 꿈에서도 몰랐다.



"흐윽.... 흡..."



웨인의 두 눈을 감싼 검은 천 아래로 가느다란 눈물 줄기가 흘렀다. 남자들의 과격한 손에 의해 입이 틀어막힌 테이룬만이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온몸을 뒤흔들고 발악을 해봐야 소용없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였다.





* * * * *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며 웨인은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입술은 말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등을 떠밀며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발은 위험을 감지했는지 도통 땅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에 웨인이 비틀거리며 주저앉으려고 하자, 뒷 쪽에서는 질낮은 욕설이 들려왔다. 짜증과 분노가 섞인, 과격한 단어에 웨인은 겁을 집어먹었다. 후들거리며 풀려가는 다리에 웨인은 애써 힘을 줄 수 밖에 없었다.



"흐읍...."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고 있는 틈 사이로 억눌린 신음소리가 흘렀다. 눈물로 축축해진 검은 천이 얼굴에 볼품없이 달라붙었다. 윗니에 잔뜩 괴롭혀져 꺼끌해진 입술은 힘없이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하며, 그가 정신줄을 아직 놓지 않았음을 알렸다.

웨인과 그를 붙잡은 무리는 계단 끝의 견고한 금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들의 손에 의해 억지로 무릎을 꿇으니 사방에서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웨인은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참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웨인이 아닌 또래의 다른 천사였다면 벌써 오줌을 지렸을 터였다.

웨인. 그는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 천사였다. 그의 머리카락은 순수함을 나타내는 새하얀 은빛이었으며, 눈동자는 그 어느 호수보다도 푸르고 맑았다. 비슷한 외양적 특징을 지닌 천사들조차 찬양하고 입바른 칭찬을 건네는 외모였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이제 악마에 의해 꺾일 것이었다. 아주 볼품없이 잔혹하게 꺾일 것이었다. 어린 웨인도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으으.... 흐...."



찰랑거리는 물의 정체는 악령수가 분명했다. 순결을 지닌 천사에게는 가히 치명적이다. 천사의 온몸을 녹아내리게 하거나 불타오르게 하여 끔찍한 죽음으로 영혼을 앗아간다는 악령수. 웨인은 언젠가 천사의 학교에 있었을 때, 배웠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었다.



"천사 웨인 휘트리는 약력 982년 네 번째 달의...."



늙은 악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것을 보아, 웨인이 잡혀온 곳은 넓은 공간의 지하임에 틀림없었다. 웨인은 전신에 돋는 소름에 뒤늦게 몸부림을 쳤다. 이제와서 벗어나지 못하리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으, 으아.... 싫어... 싫...."



겁에 질려 억눌린 비명소리가 올바른 발음을 갖추지 못한 채로 흘러나왔다. 새된 소리는 두서없이 갈라진다. 여러 손들이 웨인의 몸을 내리눌러 몸부림을 막았다. 웨인이 지쳐 두 뺨 벌겋게 헥헥대는 지경이 되고 나서야 늙은 악마가 멈췄던 말을 잇는다.



"....이에 약조를 지키지 못한 휘트리 가문에게도 마계 법률에 따른 형벌을 내리리라. 천사 웨인 휘트리는 그 값을 죽음으로 갚아라."



웨인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덜컹거리는 심장소리에 따라 몸도 움찔거렸다. 차라리 살려달라며 두 손 닳도록 빌고 싶기도 했지만, 목구멍은 콱 막힌 듯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수족이 묶여 그조차도 가망이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악령수를 맞은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몸이 바르르 떨리고 정신상태와 감정들은 극에 달했다.



'덜컹-'

'끼이-익'



그때, 묵직한 물체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들렸다. 아마 지하의 문을 여는 소리였으리라. 발소리는 계속해서 떨고 있는 웨인의 앞까지 다가왔다. 웨인 바로 앞에 선, 발소리의 주인은 웨인의 마르고 허연 다리를 발로 툭 치더니 허리를 숙였다.

누군가의 손이 웨인의 귓가에 닿았다. 따뜻한 느낌에 웨인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두려운 순간이 조금이라도 멈춘 것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따뜻한 손이 웨인의 눈을 둘러싼 천을 풀어냈다. 땅에 검은 천이 떨어지며 '툭-' 하는 소리가 났다. 오래도록 눈물을 흘려서인지, 남자의 얼굴은 흐릿하게 보였다.



"대공, 어찌하여 이곳까지 발걸음 하셨습니까."



늙은 악마가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으며 그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다.



'대공'



웨인은 이 단어 하나에 몸을 파르륵 떨었다. 마계에서 대공작의 신분을 가진 악마는 단 하나였다. 그는 어린천사나 어린악마나 모를 수가 없는 존재였다. 수도 없이 귀에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가 젊은 나이에 마계의 정권을 틀어쥔 순간부터 그를 모른다 하는 천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웨인이 그가 왔음을 알아챈 순간부터 몸을 옹송그리며 떠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대공의 분노가 웨인을 향하고 있을 확률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웨인은 장담할 수 있었다.



"이 천사인가?"



남자의 동굴처럼 낮은 목소리에 웨인의 몸이 다시 흠칫거렸다. 당장이라도 뒷걸음 치고 싶어하는 다리는 발발 떨릴 뿐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예. 곧 악령수를 부을 예정이었습니다."

"흠...."



대공이 웨인의 턱을 거세게 잡아 틀어쥐었다. 살집없는 뺨이 그의 손가락에 짓눌렸다. 그는 제품을 평가하듯 웨인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렸다. 웨인의 이빨이 딱딱거리며 부딪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의 비틀린 듯 올라간 입꼬리에 웨인은 다시금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잔뜩 겁을 먹었군."

"......."

"성인식은 치렀는가?"



대공의 말에 웨인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다. 웨인은 최대한 무해하고 불쌍해보이는 표정을 보이며 대공의 동정심을 구걸했다. 어쩌면, 어쩌면, 그가 웨인을 살려줄지도 몰랐다. 그는 가족을 잃는 슬픔이 어떤지 잘 아는 사람일 테니, 웨인을 기다릴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살려줄 지도 몰랐다.



"천사라면 지독히도 싫지만...."



대공의 말에 웨인이 몸을 움찔 떨었다. 눈 앞이 새카매졌다가 새하얘지길 반복했다. 피가 통하지 않는 것만 같은 머리에서 식은땀이 줄줄이 흘렀다.



"외양을 보니 한낱 유희거리로는 나쁘지 않겠어."



대공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웨인을 구해주는 구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웨인에게 돌아온 것은, 어린 천사의 미모에 대한 얄팍한 감상과 잔혹한 웃음소리 뿐이었다. 웨인은 그에게 흘러나오는 위험한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어두운 기류는 차마 웨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옥 바닥까지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며 웨인은 희망을 버리고 잠식되었다. 삶은 겨우 이어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으나, 바랐던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부터, 어린 천사 '웨인 휘트리 (Wayne Whitrey)'는 털끝 하나까지 대공 '아몬 위키드 (Amon Wicked)'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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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15 01:15 | 조회 : 5,74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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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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