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저주의 날

12 - 저주의 날



털썩-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서있는 사람은 이하와 아케슈나뿐.


".....왕, 이라고?"


"잘됐다. 나 한동안 못 갈 건 같으니까 네가 가줄래?"


"설명부터 하고 말해. 그날... 살아남은 애들이 있는거야?"


험악한 표정의 아케슈나와 씁쓸한 표정의 이하.


"응. 대부분 다."


"어쩌다가...찾은거야?"


아케슈나의 말에 이하는싱긋 웃고는 한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가져다대고는 말했다.


"현이만 아는 비밀 하나 정도는 남겨놔야지."


"이 새끼가.."


"넌 친구고, 현이는 짝사랑 상대잖아?"


친구와 자신의 사랑.


이미 몇 천년 친구보다 1년도 못 본 자신의 사랑이 더 낫다고 판단한 이하였다.



* * *



"현아..?"


"...."


멍한 초점의 현을 보고 류인이 걱정하듯 현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그리고 마침 그때.


벌컥-


"야, 류인. 오늘따라 이나(백화)가 더 성화라 그냥 데리고 왔.....다?"


"......넌 꼭 나 짜증나려고 하게 만들 수 있을 때만 들어오더라."


"세상에...! 백화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그것도 시퍼렇게 어린 여자애...가 아니라. 청화구나."


"청화...?"


청화란 말에 따라들어오던 한 여자애의 몸이 분노로 떨렸다.


"또..또....! 그 청화 때문에!"


"......사키나. 저 애 입 좀 닫아줄래?"


"안 돼. 시아한테 혼나."


"하...그렇다고 반려인데..."


<그럼 난 때려도 되는건가?>


"....?"


"....?"


갑자기 들리는 진지한 목소리에 류인과 사키나가 굳었다.


이나는 여전히 이를 갈고 다가가고 있었고.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칼로 현을 찌르려는 순간.


챙-


"류인, 반려교육은 잘 시켜."


"...넌 돌아가, 빨리."


"하하...! 이미 늦었어."


[멈춰, 거기서.]


곧바로 들리는 목소리. 덕분에 이하는 그대로 멈춰야만 했다.


"......하하...현아..."


[류인, 백화, 백귀야행의 주인 데리고 나가.]


".....젠장..."


"하하. 이하, 사키나 미안."


"청화는 왜 나까지 들멱여가지고는...!"


사키나는 반항을 했지만 류인은 언령으로 인한 '강제력'이 있어서 그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다.


쾅-!


그 셋이 나간 뒤, 남은 침묵.


".....현ㅇ..."


"....나한테 왜 접근한거야? 류인 딸이라서? 보자마자 주먹을 내칠 정도면... 상당히 싫어하는 것 같던데.. 나 가지고 복수하려고?"


"아니 그게 아니고...."


"차라리 아까 칼 휘두룰 때 냅두지."


"아니 내가 한 가지 말 안 했다고 왜 죽으려고 해!?"


".....그래,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


"....현아..."


"아니다....됐어..."


[나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이하는 밖으로 나갔다.


밖에 보인 것은 씩씩대는 사키나와 백화, 그리고 쩔쩔매는 류인.


사키나와 백화는 이하를 보고 화내려고 했지만 이하가 문에 기댄채 바로 주저앉아버렸다.


"야, 류인..."


"...왜?"


"네 딸 울려서... 미안."


아직 그다지 강하지 않은 백화, 이나는 모르겠지만 아주 희미하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야? 전혀안 들리는데. 사키나, 넌 들려?"


"아니."


"정말... 청화들이 대대로 나 속을 썩이네."


기본 능력 중 하나인, 결계를 나한테는 안 통하게 걸다니.


"류인..."


"왜."


"나 내일 좀 말이야. 잘 부탁한다."


"...? 뭐?"


털썩-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하가 쓰러진다.


"야, 류인.."


급하게 이하를 받아 왜 이러는지 모르는 류인에게 사키나가 말했다.


"오늘....저주의 날 아니었냐?"



* *



저주의 날.


이하가 리크샤와 류인에게 저주를 받은 날로, 일 년에 한 번 여우구슬 안의 저주받은 요기가 나와 몸속을 헤집고 다닌다.



* * *



"얘 어떻게 참은거야? 몸이 조각조각 찢어져 나간단 기분이라던데."


"......"


아마 일념으로 버틴 거겠지. 현이 때문에...


"아무튼. 류인."


"......"


"야! 대답 좀 해!!"


"아, 응?"


류인은 그제서야 들었다는 듯 사키나를 봤다.


"얘넨 도대체 왜 이러냐? 늑환도 말썽이고, 청화도 말썽이고."


"응....? 현이가 왜?"


"백화랑 대판 싸우고 있다."


".....뭐?"


"보나마나 백화가 먼저 시비 걸었겠지. 늑환 말대로라면, 진짜로 울고있었다면..."


잠시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


"상당히 강한 호랑이를 깨웠네."



* * *



"야! 너 뭐라고!"


"하. 반려한테 사랑받지도 못하는 년이 소리치긴 진짜 잘하네."


"너는 어떻고!"


"나는 사랑 아~주 잘 받거든? 내가 안 좋아해서 그렇지."


"이게 진짜!"


"어라? 나 때리게? 류인이 뭐라 할려나... 내가 봐도 류인이 너보다 날 더 아끼는 것 같은데..."


"이익..! 그러는 너도 그 여우는!"


타닥-!


마침 그때, 류인과 사키나가 왔다.


그들에 눈에 보이는 광경은 평소랑 다르게 웃고있는 현과 화내는 이나(백화), 그리고 시아(흑화).


"저 년이 금기어를 내뱉었네."


사키나는 오면서 들은 그 소리를 듣고 류인을 바라봤다.


차갑기도 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같이 있다.


하지만 류인의 걱정과는 다르게 현의 반응은 차가웠다.


"여우가 몇인데 그딴 말을 해?"


"그때 그 갑자기 나타난 여우!"


"아... 이하?"


드디어 일이 시작되려나 싶어 막으려는 류인과 사키나.


"걔가 뭐. 내가 뭔 상관인데."


"....뭐?"


"나랑 걔가 뭔 상관인데?"


아아. 이하, 그 사이에 무슨 대화를 했기에 현이 저렇게 변한거니.


속으로 이하 욕을 흠씬 하고 있는 류인의 귀에 무슨 폭발음이 들렸다.


쾅-!


"...?"


그리고 무슨 일인지 보러가기도 전에 그 일을 벌인 장본인이 나타났다.


"....아까 그 팔미호 아니야."


류인은 두 손에 한 흑빛의 작은 여우를 둔 아까 현이를 데려갈 때 잠시 본 팔미호인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하크는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을 무시하고 현의 앞에 서서는 말했다.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내가 먼제 네 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거야. 네 말대로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그게 이하야?"


현은 작은 여우를 가리키며 물었다.


"얘 왜 이래?"


"....? 모르십니까? 웬일로 멀쩡하셔서 저주가 사라졌나 싶었더니 바로 쓰러지시던데요."


탁-


"이 새끼가... 꼭 아파죽겠다는데 깨우네.."


하크의 입을 막은 것은 갑자기 나타난 백발에 흑빛이 도는 한 남자.


"그냥 주무시지, 쳇."


"이게 진짜. 계속 주무실 생각이었는데 네 덕분에 깨어났다."


"누가 말 안 하시랩니까?"


"내 맘이야, 이 새끼야. 그럼 너도 한 46년 전에 일어난..."


"하하. 그만 하시고 가셔야죠."


무슨 얘기인지는 몰라도 바로 말을 바꾸는 하크. 쟤도 약점이 있구나.


"나 스스로 못 가거든? 내가 왜 너를 불러, 그럼. 이쁜 면이 하나도 없는데."


"죄송하지만 전 여자를 좋아해서.."


"그건 나도거든?"


털썩-


"미친 상또라이 덕분에 힘만 썼잖아.."


"어서가시죠."


"죽어도 네 놈 손에 들려서 가긴 싫다. 내가 그럴바엔 아이나 손에 들려간다."


"그럼 아이나를 부르죠."


"됐어...! 나 혼자 가고만다."


팟-


이하의 옆으로 한 구멍이 생겨났다.


"만드실 수 있네요?"


"1분이 한계야."


"충분하네요."


"아니, 전혀. 크윽...! 3분이면 좋을텐데."


"10초 지났어요."


"젠장. 안 되겠다. 몇 년간 잠들어있으면 되겠지."


탓-!


주위가 순식간에 멈춘다.


움직이는 건 나와 이하뿐.


"....? 뭐야?"


"마지막 인사."


이하는 점점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가오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눈을 질끈 감았을 무렵.


스륵-


부드러운 내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길.


"....?"


"왜. 무슨 짓 할까 봐?"


"......"


"큭큭."


이하는 웃으면서도 내 머리카락은 계속 만지작거렸다.


"잠시만...잠시만... 무슨 사이라고 하자.."


부드럽게 그의 입이 내 입에 안착했다.


더 깊지도, 얕지도 않은 짧은 입맞춤.


"잘 지내."


그리고 이하는 사라졌다. 그전에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하면서.


다시 주위 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때.


"....? 현아?"


"바보 새끼..."


눈에서 계속 뜨거운 액체만 흐른다.


그 순간만은, 날 싫어하던 백화도, 백화의 편을 들 흑화도.


그 자리에 그 누구도 나를 보고 뭐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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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7 20:35 | 조회 : 1,182 목록
작가의 말
히나렌

궁금하신 점, 오타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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