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 지인의 이야기

10 - 지인의 이야기



"아무튼요. 류인 님."


"왜."


"그 인간, 데려가도 돼요?"


"왜."


"그냥요."


"이유 말하라고. 아무리 현이 언니라 해도 요괴 소굴인데, 뭔 짓을 할줄알고?"


"류인 님도 요괴잖아요."


잠시동안 이어진 침묵. 그는 인간이라도 된 듯이 요괴가 무슨 짓을 할지 먼저 걱정했다.


".....난 니네랑은 다르지!"


"뭐가요?"


"난 현이 아빠잖아!"


이걸로 확실하다. 이 요괴는 현이의 아빠고, 난 지금 요괴들의 유치한 말싸움에 껴있고.


"그래. 이유는 모르겠는데 데려가도 좋아. 그대신, 잘 대해줘야한다."


"네."


"아! 참고로 니네가 나쁜 짓 했다간 난 또 가출하는 거고, 아작날 줄 알아. 아, 그리고 인간."


"....?"


갑자기 날 왜 부르는거지? 혹시...


게다가 어린애도 아니고 가출을? 그것도 '또'?


"현이 잘 대해줘."


"....네."


솔직히 저 요괴에게 가긴 싫었지만, 그다지 날 해칠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까지 엄포를 놓았는데, 뭐.


류인은 나를 내려놓고 그 요괴 옆에 두고선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현이한테 말해. 그럼 나도 아니까."


"...네."


나는 류인과 현을 냅두고 그 요괴를 따라갔다.


따라가자 나온 곳은 꽤나 익숙한 곳. 아까 그 감옥이다.


털썩-


그 요괴가 나를 그중 한 곳에 밀었다.


철컹-


그리고 바로 문을 잠갔다.


"....! 왜.. 여기에..."


"....나도 원한은 없다. 미안. 이봐."


그리고 바로, 내 옆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초록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이. 누군진 몰라도, 요괴다. 그것도... 뒤에 꼬리가 몇 개나 있는.


"너희의 왕에게, 잘 말해줘."


"큭큭. 내가 미쳤다고 그걸 말해? 너도 죽기 싫어서 나에게 이 년을 데리고 온거잖아. 우리의 왕? 이미 우리는 숨어사는 종족. 왕은 껍데기일 뿐이야."


촤악-


내 눈앞에 붉은 피의 향연이 일어났다.


처음 보는 살생.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도 죽는건가, 나도?


"큭큭. 넌 걱정하지 마. 특별히 저 미친 놈보다 더 완벽하게 괴롭히다 죽여줄테니까."


싫다. 싫어. 그의 손길이 나를 더듬는게 느껴진다. 수치스럽고, 치욕스럽고, 무엇보다...


밉다. 왜 다들 이현은 냅두고 나만 챙겨? 류인, 너도 이현 언니란 이유만으로 잘 대해주고, 왜. 다들 '이현'만 보고 나는 봐주지 않아?


너무 밉다. 이젠 눈물까지 날 지경이다. 날 도와줄 사람은 없는건가...?


철컹-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 목소리... 그 상또라이 새끼 아니야?"


"...뭐!?"


그는 움직이다 말고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아까 현이와 대화한 그 요괴.


"너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철푸덕-


변태 요괴가 그 즉시 바닥에 달라붙었다.


"니네 왕 친구 중 한 명이다. 이젠 돌아가신 왕까지 모욕하냐, 어린놈이."


"뭐....! 너 누구야! 그 둘 중의 하나.... 류인은 아닐테니... 늑환?"


"....그렇게 부르지 마라.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있긴 싫다. 앞으로는..."


한동안 이어진 침묵. 이윽고 그가 입은 열었다.


"과거는 버릴래. 사키나, 너 와봐."


꽤나 크게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자 바로 누가 왔다. 류인은 아니었다,확실히.


"야, 야! 너 무슨 소리야, 늑환!"


"내 이름 부르지 마. 늑환이란 소리 들으면 진짜... 여기 다 없애고도 남을 것 같아."


사실이다. 아무리 여우구슬을 봉인당했어도 몇 천년이나 살아온 여우. 오죽하면 생각까지 읽을까.


".....갑자기 왜 그래?"


"....새로 시작하게. 그나저나 사키나."


"....?"


"저 건너편의 여자애, 구해줘. 그 여우놈은 풀어줘. 두고두고 괴롭히게."


"갑자기 왜 구해달라그래? 평소라면 냅뒀을거면서."


"....."


그래, 너도 현이 때문이겠지. 그 망할 년. 다 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에!


"아아. 나와 다른 것 같아서."


뭐....?


"나도 저렇게 해야 했었을까. 끝까지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남의 탓으로 미는게 차라리 나았을까."


....내 생각을 봤으면서도, 뭐라 하지 않고, 동조해준다고...?


"아예, 그냥 리크샤를 좋아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나도. 아예 현이를 구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공통점이 있네.


"....쟤, 구해줘. 그리고, 류인에게 데려다 줘."


"....ㄴ...아니, 여우."


"....?"


"넌 과거를 버린다해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그럴리가."


"그럼 왜....!"


".....내가... 아주 도둑놈 다됬단 심정이거든."



* *



"흠.... 미안. 내가 그때 일을 기억 못한건 사실이야. 솔직히 그땐 네 일보다 내 일이 더 중요했지."


"...뭐?"


"너는 날 아주 잘 기억하나 본데, 난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드문드문 깨져있어. 아마도..."


저주받은 요기를 품은 구슬의 영향이겠지.


태어날 때부터 여우구슬을 가졌던 내게는 구슬이 내 삶이나 다름없으니, 구슬이 힘이 사라지니 내 삶의 일부도...


"아무튼, 나도 기억 안 나는 부분이 많아. 정상적인 상태라면 몰라라도..."


그 말에 현이 반응하며 이하에게 물었다.


"정상적인 상태라니?"


"아.. 아니야."


"뭔데."


".....미안."


"그래. 네가 나한테 다 말할 의무는 없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이하."


갑자기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현을 보며 이하는 잠시 움찔했다. 알아챘나?


"왜, 네 손이 그래?"


현의 시선이 닿은 곳은 이하의 왼쪽 손. 환각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역시 청화한테는 안 통하나.


"왜 그리... 투명한거야? 내가 오르는 요괴들의 비밀이라도 있나?"


"......."


난처해하는 이하에게 다행히도, 지인이 말했다.


"나 무시하는거야?"


"아니... 솔직히 ㅇ...아니 네가 봐도 이상하지 않아? 손이 반투명한데."


현은 이하에게 다가가서 왼쪽 손을 들고는 보여주었다.


"흠.. 잡히기는 하네. 네가 봐도 이거 이상하지 않아?"


"뭔 말이야? 평범한 손인데 뭘."


그 말을 들은 현의 표정이 바로 싸늘해졌다. 그리고 이하를 보며 말했다.


"말해. 이건 안 넘어가. 환각이지? 나는 청화라 보이는거고."


"....생각보다 예리하다, 너."


"말해. 빨리. 이지인, 넌 상대할 시간 없으니까 가."


"뭐?!"


현은 매우 차가운 표정으로 지인을 노려봤다.


움찔-


너무나도 어둡고 차갑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잠식해버릴 것 같았다.


지인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빨리 가. 무서워서 떨고 있으면서."


"뭐...뭐?!"


"귀 먹었어? 그딴 것도 못 쳐들을 정도로 귀가 나빠? 가라고. 안 들려?"


하지만 여전히 뒤로 조금 물러나긴 하지만 지인은 가진 않았다.


"왜... 다 내 편은 안 들어주는거야? 왜 다 이현 편만 들어줘?"


"........"


"그래, 나도 이참에 할 말 하자. 아깐 빼고 말했어, 일부로."


"....?"


지인은 아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류인과 현과의 관계는 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하지만......


"류인이 말하는 말 다 들었어. 네가 류인 딸이라며?"


쿵-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뭐, 뭐라고?


"그게 무슨....."


지인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데도 이상하게 믿음이 간다. 그게 도대체 무슨....


휙-


내가 더 말하기도 전에, 내 옆으로 누가 지나갔다.


"악!"


그리고 바로 들려온 비명. 갑자기 지나간 바람으로 눈을 감았던 내 눈압에 보인 건, 이하가 지인을 한 손으로 목을 잡아 들어올린 것.


"저승길로 가는 지름길을 아주 잘 선택했다, 너."


"뭐, 뭐야?!"


"자, 정리해보자. 넌 거기가서 성폭행을 당했고, 늑환이란 요괴가 도와줬고, 이현이 류인 딸이다?"


"그래!"


그 말에 이하가 아주 작게 지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했으면 나았을텐데."


"...뭐?"


"하나 더 물어보지. 늑환이란 자를 좋아하나?"


"....그렇다면?"


".......하하."


설마 사각관계가 아니라 오각관계였을 줄은.


도대체 이건 어디까지 뻗어나갈 생각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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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7 20:34 | 조회 : 1,198 목록
작가의 말
히나렌

로맨틱 구미호는 화요 연재입니다. 하지만 한 화 쓸때마다 올라오기 때문에 반응이 좋으면 힘내서 더 쓸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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