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배신

06 - 배신



늑환이 리크샤를 좋아하니, 연인이 되기는 시간문제였다.


아주 힘들게, 매우 힘들게 늑환이 고백까지 하고 연인이 되었다.


문제는, 리크샤가 산을 나설 때부터 시작되었다지.


리크샤는 산에서 내려와서 요괴 세계로 가려고 힘을 모으는데.


"청화?"


"....?"


자신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리크샤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두근두근-


"드디어 찾았네요."


"......네가 내 반려야?"


"네, 류인이라고 합니다."


리크샤도 그때 알았다.


난 그냥, 늑환만 이용해 먹었구나.


그리고 자신도 꽤 나쁜 여자라는 것을.


이렇게 된거 그냥 더 이용당해주라, 늑환.



* * *



나뭇가지 위에서 쉬고 있던 늑환.


백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젠장, 오늘은 만나기 싫은데."


꼬리 아홉 개를 살랑거리며 도망가려는데.


"늑환! 도망갈 필요없다."


".......어제도 그 말 했었지?"


"아니, 이번엔 진짜 귀중한 정보야!"


"돌팔이 신선 얘기는 듣기 싫다. 소멸시켜주리?"


"여우가 신선보다 강하다니! 이건 역시 이상해~! 적란도 나보단 약하다고!"


"적란?"


"어. 구미혼데 가끔 인간세계에 들르거든."


"류인 친구구나. 나 만나봐도 돼?"


"안돼. 너 무슨 해코지 당한다. 잡히면 바로 백귀야행한테 끌려갈 껄?"


"백귀야행은 별로 안 무서워."


"그래, 그래. 대답하신 여우님!"


"이제야 주제를 알네."


늑환은 나무에서 내려왔다.


"늑환!"


"왜."


"너 요괴 세계로 가고싶지 않아?"


"어."


"......가볼래?"


"방금 전에도 반대했던 녀석이 왜 이래."


".....그냥. 넌 언제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놈이니까. 죽기 전에 데려다주게."


"진짜지? 어떻게 가?"


자신이나 류인말고 다른 여우들을 볼 수 있다.


그것에 대한 기대감은 늑환을 한껏 들뜨게 했다.


"간단해. 그냥 한 공간에다가 힘을 주면 돼."


"뭐야, 간단하잖아? 왜 지금까지 몰랐지? 그럼 나 갔다온다~"


가더라도 가서 살 생각은 없나보다.


하긴, 꽤 정도 많이 들었겠지.


허공에 문이 나타났다.


늑환은 들어가기 전, 백호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그러고는 들어가버렸다.


혼자 남은 백호.


"미안해, 늑환. 그대신, 너도 거짓말 했잖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나랑 같이 갔으면서. 항상 내가 문을 열긴 했지만. 게다가 2000년 전에도 갔었다면서."


백호의 모습은, 점차 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손등에 청(靑)자 주위로 물방울이 솟아난 느낌의 증표를 가진 여자가.


"자, 이제 시작이야. 내 반려를 망친 여우야. 난 곧 죽겠지만, 그는 널 끝까지 괴롭힐거야."


그뒤로 진짜 백호가 나타났다.


"...늑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협조해주실 수 있나요?"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럼 무력으로."


그녀의 뒤에 한 파란 누군가가 나타났다.


"...백귀야행의...주인?"


"그도 여우니까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너흰 늑환 친구 아니었어?"


"...그건 아실 필요 없으니, 협조해주시죠. 그가 정말로 죽게 냅둘 거라면."


그리고 18년 동안, 늑환은 나타나지 않았다.



* *




"하. 진짜 오랜만이다~. 2000년 만인가? 범이가 말해줘서 겨우 왔네."


그일이 있고 난 뒤로, 결심했었다.


누가 보내지 않는 한 절대로 오지 않겠다고.


난 여기에 온 적이 없는 거라고.


"....류인이...청화 반려였지? 하....역시... 아까 범이는 리크샤고..."


이럴 때는 정말 생각을 읽는 것이 싫다. 그리고 류인의 손등에 있던 청화의 증표.


차라리... 차라리...


"왕...."


그립다. 너무 그리워서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한때는 그 셋이서 친하게 지냈는데. 류인마저... 이제 변하지 않은 것은 나뿐이다.


아니, 류인도 성격 자체는 변하지 않았겠지. 단지, 누군가의 인형이 된 거겠지.


알면서도 여전히 리크샤를 좋아하는 내가 밉다.


내가 너를 좋아하기에, 너를 기쁘게 해줘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왕.... 이제야 네 생각이 이해가 가네."


에전엔 자신을 희생해서 사랑했던 한 인간을 구한 나의 친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 했었다.


그런데.


"....기뻤겠구나, 너."


늑환은 백귀야행의 본가로 발을 옮겼다.


좋아하는 여자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서.


예상대로, 가자마자 붙잡혔고 리크샤와 류인이 저주를 걸었다.


류인은 늑환의 여우구슬에 리크샤의 저주로 오염된 자신의 요기를 넣었다.


같은 여우이면 오히려 힘을 더해주지만, 리크샤의 능력인 '저주'로 이미 오염된 요기. 오히려 늑환에게 독이 되었다.


그래서 일 년에 한번씩, 여우구슬에서 류인의 요기가 나와 괴로워하고, 평소에는 여우구슬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서 생활한지 8년.


"...청화(靑花)의 기운...."


떨어진다.


'누군진 몰라도 이번 청화도 골 때리네.'


쾅-


천장이 부서지고 여자애 두 명이 나타났다.


8살 체형의 청남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애와 16살 체형의 흑발을 가진 여자애.


아직 둘 다 눈을 뜨지 않아서 눈색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청화쪽은....


"더 어린쪽."


그때.


번쩍-


어린 여자애가 눈을 떴다.


"언...니?"


그때 그 아이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꽤나 예쁜 목소리.


하지만 최대한 무덤덤하게. 티내면 안 된다.


".....네 언니냐?"


완벽했어. 아직은 어린애인데 왜 온거지?


"네... 제 언니에요..."


속으로는 전혀 안 그런데 꽤나 조용했다. 저런 타입은 싫은데.


"네 이름은?"


그래도 오랜만에 나타난 대화할 만한 상대. 죽이거나 보내더라도 말은 더 해봐야지.


"이현이요....당신은요?"


"....늑환."


그리고 그 아이의 속에, 밝으면서도 어두운 부분이 있다. 뭐지?


"늑환...이요?"


"....그래."


"...어디 아파요?"


"....?"


"아, 아니에요."


아프다니. 여우구슬을 말하는건가? 그렇다면 꽤나 강한 모양이네.


"여긴 어디죠?"


"빨리도 물어본다."


"....."


"여긴 백귀야행 본가. 그 지하감옥."


"백귀...야행?"


"....? 너 몰라? 청화(靑花)인 것 같은데."


"청화...요?"


자신이 청화인 것조차 모른다고? 아무리 무작위로 정해진다지만 반려나 호위무사도 있는데?


"증표. 여깄네. 호위무사랑 반려는?"


"호위무사랑 반려? 그게 뭐예요?"


"......그러고보니.....청화? 너 리크샤 알아?"


"리크샤요?"


"모르나보네..."


덜컹-


그때, 그 철창의 문이 열렸다.


".....무슨일이야."


류인. 계속 갇혀있다보니 약간은 싫어졌다. 솔직히 8년을 갇혀있으니 당연히 싫어지지.


내가 그때 왜 자진해서 온건지.


"그대로 있어. 아이 둘은 보내고."


"애들은 왜?"


"그 사이에 정이라도 들었어?"


"....글쎄."


".....얘기할 시간이라도 줄까? 네가 해칠 것 같진 않고, 얘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서. 너한테도 가끔은 기분 좋은 시간이 있어야지."


생각외로 배려심이 많네. 그동안 변했을 줄 알았는데 변하진 않았나 보네.


그리고....손등의 증표... 빛이 사라졌네. 죽은건가?


"꺼져!"


갑자기 현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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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7 20:31 | 조회 : 1,222 목록
작가의 말
히나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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