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 류인

05 - 류인



"하하. 저기...지금은 이하랬나?"


"어."


"상당히 아끼고 있나봐, 저 여자애? 예전이라면 죽여버리거나 무시했을텐데. 리크샤한테도 막 대했잖아."


"입 닥쳐, 류인."


"류인....?"


내 기억의 류인이라면.... 늑환을 가두고 있던...


"네가 류인이야?!"


"하하하하. 이하, 나 들켰잖아."


"애초에 네가 교사의 신분으로 여기에 와 있단게 이상한거야. 이 학교에만 구미호가 셋 이라니, 참 이상하네. 내가 아는 구미호는 다섯 밖에 없는데."


이젠 알려진 구미호는 적란, 초아, 류인, 이하, 아샤카 다섯 명.


하지만 더 궁금한 것이 있다.


"여우인 네가 왜... 그때 백귀야행 본가에 있었던거야?"


내 말에 류인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하에게 물었다.

왜 이하에게 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하, 나 말해도 되니?"


"안 돼. 그럼 너와 나의 그나마 있는 두 줄기 줌 하나가 끊어지는 거야."


남아있는 두 줄기.


"우정이냐, 복수심이냐."


".....하.. "


다들 내가 모르는 대화만 하고 있다. 소외감이 너무나도 든다.


차라리 안 들리는 곳에 가서 대화하든지.


"아..."


"....?"


"....야, 야. 이현... 잠깐...!"


[다 꺼져.]


휘이이잉-


반 친구들이 눈을 떴을 때는, 교생선생님도, 혜인이도, 이하도 없었다.



* * *



"젠장!"


"뭐... 뭐야?"


"걘 왜 하필 이럴 때 능력을 쓴대?"


지금 그 구미호 셋이 있는 곳은 저 멀리 백청산.


예전에 이하가 머물던 곳이자, 사신 중 한 명이 살고 있는 산.


"야, 너. 이제 오냐?"


그 셋 뒤로 한 굵은 목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자 보인 것은 하얀 호랑이.


"범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나저나 풀려나긴 풀려났네. 그런데 가둔 상대랑 친근하게 담소하며 같이 있냐?"


범이라 불린 호랑이가 류인을 보며 말했다.


"하하. 안녕하세요, 아케슈나 신선님."


"2000년 전 이름으로 부르지 마. 그건 '왕'이 있었을 때의 이름이니까."


"그럼 뭐라 부를까요? 전 4대 장군님."


"방금 그렇게 불러놓고선....말이 안 통하네. 그래서... 이...하가 노려보기만 하고 말도 못하는 거냐?"


"하하하하. 글쎄요."


"맞거든!"


잠시 소외되었던 아샤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저기... 이분은 누구신지..."


"갑자기 이제와서 왜 존댓말이냐? 이쪽 파란 구미호는 백귀야행의 주인 중 하나인 류인, 범이는 2000년 전 왕의 장군 중 하나인 아케슈나야."


"2000년 전?"


전혀 모른다는 눈치의 아샤카.


그런 아샤카를 보며 류인이 편을 들어주었다.


"하하하하. 이하, 2000년 전이잖아. 얘도 반려로 구미호가 됬을텐데 어리지. 너랑 나는 그때 일을 겪었으니까 알지."


청화의 반려는 나이에 상관없이 구미호가 된다.


게다가 2000년 전 일 이후로, 생존자가 별로 없어 그 일을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사실상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다르냐? 백귀야행이 요괴들 다스리다시피 하잖아. 왕이랑, 네 명의 사신. 그리고 지금은 백귀야행이랑, 다른 상위 8종족. 다른 게 뭐야?"


"하하하하. 요즘엔 백귀야행도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고. 내가 백화를 안 좋아해서 애들이 날 꽤 적대해."


"백화를 왜?"


아까까지만 해도 싸웠던 둘이 친근하게 대화하고, 대화가 전혀 이해가지 않자 아샤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무슨 소린지 설명 좀 해주면 안됩니까?"


"뭐에 대한 설명. 2000년 전에 대한 거? 나랑 류인과의 관계? 주어를 말해야지."


"2000년 전 일은 이미 지난 일이니 관심없습니다. 당신과 류인과의 관계나 알려주시지요."


"흠. 모처럼 존댓말도 들었으니 알려줄께. 단."


"...?"


"이현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



* *




약 42년 전.


그날이 바로 늑환과 리크샤가 만난 날이었다.


그때도 변함없이 백청산에서 범이와 함께 쉬고 있던 늑환.


부스럭-


"....? 인간?"


"청화야."


갑자기 찾아온 손등에 징표가 있는 소녀.


평범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옆에 있던 범이가 알려주었다.


"청화?"


"파란 꽃."


"이름 그대로네."


"어."


그리고 바로 그 둘 앞에 나타난 소녀.


"여자 뒷담을 대놓고 까시나요?"


"뒷담 아니니 걱정마."


"....여우네요. 그것도 역천의 아이. 구슬 안에 천 년이나 있다가 태어났다니."


"뭐야, 너. 그런 건 어떻게 알아?"


"제가 여우랑 관련된 청화인데 그런걸 모르면 안 되죠~"


"어. 알았으니까 좀 꺼져줄래?"


"여자를 참 험하게 대하시네요."


"아. 내가 오래 살다보니 꽤 특이한 능력도 생겨서 그런데―."


"....?"


"가면 쓰고 다니지 마라."


겉과 속이 다르다.


겉은 웃고 있어도 속은 지금 욕하고 있다.


"사신급이시네요."


"지금 내 옆에 있는 호랑이보다 강하니 걱정마."


"흠, 역시 그렇죠? 언뜻 보이긴 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당신은 여우인데, 내 능력을 피해갈 수 있을까요?"


"내 예상이 맞다면 통하긴 하지만 약하게 통하겠지 . 난 역천의 상징이니까."


".....그런 것 같긴 하네요."


"알아들었으면 부디 꺼져주라."


"흠...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다시 오죠!"


지겹게도, 리크샤는 매일 왔다.


그리고 매번 늑환에게서 꺼지라는 말을 듣고 꺼졌다. 매우 친절하게도.


"리크샤."


"왜요?"


"너, 무슨 생각하고 있어? 너 검어보여."


"아. 그냥... 안 좋은 일이 조금 있어서요."


밉더라도 그래도 오래같이 있다보니 친해지고
정이가긴 마찬가지.


현실에서 도태되었던 내가 빛을 따라가고 있었다.


마치 꿈처럼.



* * *



"늑환님!"


"꺼져."


늑환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면서 간단하고 명확하게 말했다.


"너무하네요."


"넌 내가 안 무섭냐? 성격도 거지같고, 힘도 세고, 너 싫어하는데."


"안 죽이실 것 같아서요."


"....."


"맞네요."


"오늘은 빨리 꺼져주라."


"흠....늑환님, 저 부탁할 게 있는데요."


"뭔데?"


들어주지 않을껄 빤히 알면서도 묻다니.


"저 좀 지켜주시면 안 될까요?"


"누구ㅎ...."


늑환이 더 말하기 전에, 리크샤가 그의 입을 자신의 손으로 막고 말했다.


"마저 들으셔야죠."


"....."


"영.원.히.요."


늑환은 자신의 입에 붙은 입을 떼고 말했다.


"싫어. 네 반려가 불쌍하다. 게다가 나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냐?"


"설마요."


".......그래, 그럼 넌 어차피 네 반려를 보면 마음이 변해. 그러니 아예 다신 나타나지 말고 꺼져."


"흠...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저도 이정도면 꽤 예쁘지 않나요?"


늑환의 표정이 그 말을 듣고 하염없이 일그러졌다.


"글쎄. 난 눈이 예쁜게 나아서. 게다가 전체적으로 네가 못 생겼어."


"뭐라고요?!"


"그 징표도 예쁘긴 해. 그런데 손등에 있어서 싫어. 차라리 눈에 있는게..."


"그렇다고 징표가 눈에 나타나라고 계속 나타나는 곳마다 자를 수도 없잖아요!"


"자르던가. 그정도로 내가 관심가져주길 바라냐?"


"맞아요."


"...빨랑 꺼져. 이번에는 특별히 지금 안 꺼지면 내가 꺼져줄테니."


".....알았어요. 내일 또 오죠."


늑환이 리크샤가 가면서 다신 오지말라고 소리쳤지만 리크샤는 무시할 뿐이었다.



* * *



"늑환님."


"왜."


"왜 저를 싫어하세요?"


"넌 어차피 백 년도 안 되서 죽잖아."


"흠...그렇긴 하죠."


꽃이라도 수명은 인간과 같다. 인간과 다르면서도 같다.


"그래서 화들의 반려가 불쌍해. 얼마 살지도 않는 애랑 사랑을 한다고? 웃기고 앉아있네."


"그러게요. 그럼 저는 왜 그럴까요?


"뭐가."


"저도 그걸 알고있는데, 왜 늑환님을 좋아할까요?"


"뭐야, 장난 아니었어?"


"너무 하시네요. 보통 고백은 남자가 하는데."


"난 하늘의 법칙을 위반해서 그딴거 안통해."


몇몇 커플도 역천의 아이인지 여자가 먼저 고백하긴 하지만.


"흠....그래. 진짜라면 딱 1달만 연인인 척 하고 내 마음 가는대로 하자."


"진짜요?"


"어. 깨질 확율이 난무하지만."


"제가 한번 해보죠! 오늘 기분 좋아서 일찍 꺼질께요!"


그리고 새인 마냥 산 꼭대기에서 떨어진다.


맨날 저러면서 꺼졌으니 이젠 익숙하다.


"하...내가 뭔 말을 한거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늑환. 그 손 사이로 빨갛게 익은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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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7 20:31 | 조회 : 1,224 목록
작가의 말
히나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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