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반려

04 - 반려



내가 학교에 오자마자 들은 건, 나와 이하의 이름이 오가는 여자애들의 대화소리였다.


"피 흘리면서 걔한테 도와달라했다면서?"


"걔도 착한가 봐. 피 흘리는데 처음보는 사이에 무시할 수도 있지. 안아서 나갔다면서?"


"설마 현이가 짠 건 아니겠지? 그럴 애가 아닌데."


"당연하지. 현이가 그럴 애냐? 게다가 스스로 다치게 하다니, 말이 안 되잖아?"


그래, 너희는 내 편이구나.


때리고 버리는 가족들보다 너희가 더 나를 잘 대해 주는구나.


그리고 은근 감격하고 있는 그때.


툭-


"야."


"....? 혜인아?"



특이한 파란색 머리카락을 가진 나의 또다른 친구 혜인이.


"너 또 맞았냐?"


세현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집에서 맞고 다니는 걸 안다.


조금 차갑긴 해도 좋은 친구다.


"아, 뭐... 그런거지..."


"그 이하란 애한텐 왜 갔어? 그냥 우리 반 애들한테 말해도 될 텐데."


그러고보니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때 생각나는 게 이하의 말이었다.


"4반까지 갈 힘이 없어서.. 그나마 1반이 가장 가까운데 거기서 아는 애가 걔뿐이라."


"그래? 이젠 좀 괜찮아? 상처는?"


"괜찮아. 이번엔 상처보단...뭐."


"상처보단 뭐?"


"그게... 말하기가 좀 곤란한데..."


주위에 시선이 많다.


다들 대체적으로 나와 친한 편이긴 하지만 가족사를 알리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래, 옥상가자."


혜인이는 내 팔을 잡고 옥상으로 향했다.


심각한 얘기인 것을 짐작했는지, 손에 힘이 꽉 쥐어져 있어서 아팠지만 그만큼 날 걱정한단 거란 생각이 들어서 기분은 좋았다.


옥상에 다 도착하고 난 뒤.


"그래, 무슨 일이야? 뭔 일이기에 처음보는 남자애한테까지 도와달라하고."


'남'자애'는 아니지만 뭐... 말은 해야겠지.'


"쫒겨났어. 집에서."


"....진짜로? 집에서?"


"...응."



혜인이는 어두워진 내 표정을 보고 자신이 말실수했단 것을 느꼈는지 말했다.


"...미안."


"아니야."


"그래서 어떡할거야?"


"일단은 이하 집에서 한동안 지내려고."


"뭐?!"


혜인이는 엄청 놀란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대며 말했다.


"모르는 남자 집에서? 단둘이?!"


"아, 뭐.... 걔도 조심하겠지. 방도 다르고."


내 말에 혜인이는 손목을 잡고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진짜...!"


"혜, 혜인아?"


점점 손목에 주입되는 힘이 강해진다. 아프다.


'이하!'


탁-!


다행히도 누군가가 혜인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왠지 안 나타나나 싶었는데, 여장 취미가 있나 보지?"


"이하...!"

"에휴. 이래서 기본 능력이 필요하다니깐. 집에 가자마자 연습하자."

"지금 바로 날 눈앞에 두고 같이 집에 가잔 소릴 하는거야?!"


혜인이 이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하가 더 강한지, 잡힌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끄러. 네가 아무리 반려라 해도, 강제로 현에게 무언가 하라고 하는건 잘못된거야."


"당연한거야! 옆에 반려가 있는데 딴 남자랑 같이 생활한다니!"


"반려? 그래, 너도 눈에 증표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내가 보기엔 현이는 널 좋아하지 않아. 그런데도 반려라 말할 수 있을까?"


확실히, 반려끼리는 서로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가고 끌린다.


거부할 수조차 없는 하늘이 정해놓은 법칙.


하늘의 뜻에 따라 태어난 이상, 그것을 거스를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가 반려란 확신이 들지 않고 마음이 가지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거짓말이라기엔 이하도, 그도 당연하단 표정이다.


"......너."


"네?"


"본모습, 보여줘."


".....알겠습니다. 반려님인데, 해도 되겠지요."


곧바로 그의 모습이 변했다.


파랬다. 그의 모습은.


몸 대부분이 파란색이었고, 눈동자엔 나처럼 증표가 있었다.


"청화(靑花)의 반려 아샤카. 반려님께 인사드립니다."


인간세상에 나간 요괴가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겠단 의미.


그는 본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나에게 예를 갖추고 있었다.


"아샤카?"


"네. 반려님의 성함은...?"


"나는 이현이라 해."


"그렇군요."


"그나저나.... 이하, 넌 알고 있었어?"


내 입에서 이하란 말이 나오자 아샤카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무래도 내 입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이 나오는 게 싫은가보다.


"흠....동족의 기운이 나긴했지. 그것도 구미호의."


"시끄럽다. 돌연변이."


"흐음~. 내가 돌연변이인건 맞지만 듣기 상당히 거북하네. 선배한텐 예나 갖추지? 너보다 시퍼렇게 어린 이현한테는 아주 잘하더니 너보다 훨씬 나이많은 나한테는 반말에 돌연변이라니."


"반려님은 반려님이고, 돌연변이는 존재가 허락되지 않는 자니까. 너도 그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아닌가?"


웃으면서도 살기를 내뿜는 이하와 대놓고 불쾌하단 표정을 짓는 아샤카.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지만, 내겐 그들의 유치한 말싸움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돌연변이?"


"아...그게..."


"말하지 않은건가? 그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당당히 옆에 있다니. 염치가 없군."


"여장하면서 친구 흉내낸 너보단 나. 너 그동안 상당히 참았겠네? 욕구불만 아니야? 반려끼리는 상당히 심하다는데."


다시 시작된 의미없는 언쟁. 그것은 나에겐 지금 괜히 시끄러운 잔소리 같은 것에 불과했다.


"둘 다 그만하라고!"


"......"


"......욕 안 한게 다행이네."


"이하, 넌 나 따라오고. 아샤카 넌 반으로 돌아가."


"알겠습니다."


"칫."


아샤카는 내 말에 혜인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반으로 갔고, 나와 이하는 깡패들이 있을법한 학교 뒷골목으로 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그때 상당히 화나 있었다.


겨우 마음을 조금이나마 연 상대인데 비밀을 가지고 있단게 싫었다.


그리고 다른 요괴들은 다 아는 사실이란 것을 나에게만 말하지 않았단 것에 화가났다.


나도 그에게 말하지 않은게 있는데도.


"......말 그대로야. 돌연변이. 하늘의 뜻에서 벗어나서 태어난 아이."


"그게 가능해?"


".....예전에 말했지? 여우는 구슬에서 100년, 태어나서 900년을 합쳐서 1000년을 살아 구미호가 된다고. 나는 구슬에서 1000년을 있다가 태어났어.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구미호였어."


하늘의 법칙을 거스른 아이. 역천의 아이.


그래서 몇몇 이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요괴들은, 그를 돌연변이라 부른다.


".....그렇구나."


"....너도 말하지 않은게 있잖아."


"너도 그래보여."


이하와의 사이가 더 멀어졌단 기분이다.


"너랑 나도... 언젠간 서로 다 말할 수 있겠지?"


"아마도."


확실한 건, 이 거리감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불가능할거야, 이하.



* * *



나와 이하는 집에 온 뒤로 내 기본능력을 키울 기미도 보이지 않고 서로 어색하게 지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아샤카가 이젠 이미 들켰다는 듯 계속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죽하면 둔감인 내가 알아채고, 선생님이 "레즈야?"라고 해서 반 애들이 대폭 웃었을까.


"으....선생님~."


"큭큭. 아, 그러고보니 교생 선생님이 새로 오셨어. 박승철 선생님. 오래기다리셨죠? 저희 반에 레즈들이 있어서. 들어오세요."


뜬금없는 선생님이 새 교생 선생님 소식.


그러면서도 들어오신 교생 선생님은 들어와서 유쾌하게 말하셨다.


"너희가 3학년 4반이구나? 한 달만 있을테니, 잘 부탁할께! 참, 잘생겼다고 러브레터 보내는 애들아, 나 임자 있으니까 보내지 마."


파란 머리의 선생님.


왠지 모르게 아샤카가 생각나는 선생님이셨다. 성격도 좋은게 맘에 들고.


그리고 애들이랑 교생 선생님이 점점 친해지는 그때.


쾅-!


벽이 부서지면서 누군가가 먼지 사이로 나왔다.


푸른 눈에 중간중간 파란색이 섞여있는 백발을 가진 남자.


"네가 왜 여깄어?! 게다가 선생? 미친거야!"


"하하하하. 네가 왜 여기 있는지는 내가 할 말 같은데? 일단..."


그 교생 선생님은 학생들을 향해 스윽 바라보더니 손짓 한 번을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다같이 풀썩-하고 쓰러졌다.


나와 혜인이...아니 아샤카는 빼고.


저 교생도 요괴인가?


"역시 청화(靑花)한테는 안 통하나 보네."


"당연하지! 너도 여우인데 주인한테 덤벼봤자 어쩌겠어?"


"주인이라기 보다는..."


퍽-


이하가 교생 쌤에게 다가가서 주먹을 날렸다.


"그거 말하지 마....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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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7 20:30 | 조회 : 1,354 목록
작가의 말
히나렌

저 폭력배 여우 좀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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