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 아이나
"시아는 안 오지?"
나는 가는길에 조심스레 이나에게 물었다.
"말도 마. 우리가 월야 가지고 놀아서 시아 소리 질러서 사키나가 그렇게 한 사람 누구냐고 찾다가 나 찾고 너 찾은거야."
"그런데 화 안 냈는데?"
"당연히 류인이 뜯어말렸지."
"큭큭. 아, 미안..."
이나는 잠시 씁쓸하단 표정을 지었다. 여저히 류인은 이나를 봐라봐주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나타나곤 류인이 날 아껴주니 처음에는 적대시 하더니 이젠 친한 친구사이다.
"....회의... 들어가도 되겠어? 너한텐 보이잖아."
".....괜찮아... 아무사이 아니어도 얼굴 보는건.."
끼이익-
아. 문에 기름칠 한다는거 까먹었네. 내가 말해도 소용없으려나.
".....그런데 회의에선 뭘하는거야, 대체?"
"회의라기보단 친목 다지기지."
막상 회의한다면서 실제로는 현재의 자신들의 상황과 서로 약간의 간단한 놀이(?)를 한다.
"....화들은?"
"아무래도 도깨비나 귀신은 상위 열 종족이까 오는거지."
"그럼 나는?"
여우는 상위 열 종족이 아니다. 그런데 '화'라는 존재가 하급인 여우족에 있다는 것도 의문이지.
"....여우들이 모두 구미호였다면... 1위는 여우족이었을 테니까."
"....그렇구나."
"현아. 아까부터 얘랑은 왜 계속 떠들어?"
류인이 내가 이나와 얘기한게 못마땅한지 물었다. 동시에 이나의 표정은 구겨졌고.
"그냥. 같은 여자로서 궁금한 거?"
나는 대충 말로 때우곤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직사각형의 긴 탁자 주위에 11명의 남자, 그리고 네 명의 여자가 앉아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환각으로 자신의 웃는 얼굴을 덮고있는 이하.
그리고.
벌컥-
"이~하 님!!"
갑자기 들어온 한 여자 구미호. 그리고 바로 이하에게 안긴다. 아니, 매달렸다.
"미친 년. 저리 꺼져. 회의 중이잖아."
"저도 대표로 나오죠, 그렁 !"
"백귀야행 아닌이상 한 명밖에 불가능하다. 네가 왕후도 아니고."
"그럼 왕후 하면 되죠?"
".......휴...한 마디만 더 하자."
이하는 환각으로 표정을 지우고 있었지만, 난 그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안다.
저 구미호도, 그 표정을 모르니 저걸 말하는 거겠지.
완전히 살기가 띄어진 표정을.
"꺼지라고."
환각으로 표면상으로는 그냥 무표정. 하지만 나에게는 오싹할 정도로 무서운 표정.
어느새 회의장 내도 조용해졌다.
그.리.고. 저 년은 눈치가 없구나.
"이하 님 자꾸 왜 그러세요~"
"......휴... 류인, 사키나. 나 잠깐만."
"어, 그래..."
"니네, 이 미친 년 본 적 없는 거다. 아예 잊어버려."
이하는 주위 다른 요괴들에게 말하고선 날 잠시 보더니 그 구미호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더이상 회의실 안에는 침묵이 들렸고, 내 귀엔...
"이나."
"응?"
"밖에... 쟤네 저렇게 크게 말해도 돼?"
"뭐가? 이하랑 그 구미호? 넌 그 소리가 들리냐?"
나에게만, 그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 * *
"꺼지라고."
"이하 님! 평소보다 더 짜증내시는 것 같아요!"
"아이나."
"네!"
"너라면... 내가 있는 앞에서 다른 남자가 작업 걸면 좋겠냐?"
"죽여버리고 싶을만큼 안 좋죠!"
"그래. 그러니까.... 너 당장 죽기전에 꺼져."
"...네?"
"너 당장 죽기전에 꺼지라고."
"그게 무슨.... 설마 거기에..."
".....빨랑 꺼져."
벌컥-!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회의실로 들어가는 아이나.
그리고 바로 현한테 다가가서 목을 졸랐다.
"너지? 아까 이하 님이 너 보시는 거 봤어."
"아이나!!"
"큭....컥..."
엄청난 힘이다. 저 가녀린 팔뚝에서 이런 힘이 나온다고?
"현아!"
류인도, 이나도 놀라서 다가오려 하지만 아이나가 이젠 요기로 응축된 칼을 들고 내 목에 들이댔다.
".....이제, 말 할 수 있지? 이현."
이하는 당황한 듯 하더니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의 질투가 이정도까지 퍼지다니. 으... 진짜 싫다."
"빨랑 하기나 해."
"지금 뭐라는거야? 이 여자 죽는꼴 보고 싶어!"
".......도를 넘어섰구나, 네가."
이하는 서서히 환각을 풀기 시작하더니 본래의 살기를 띄우는 표정이 드러났다.
"넌 이미, 현이를 건드린 것 만으로도 가볍게 죽을 수 없었는데."
"......현아."
"어, 어?"
".....넌 그냥 가만히 있어."
"아, 알았어..."
난 험악한 이하의 말에 주위 요괴들의 시선은 생각지도 못한채 대답했다.
"아. 그전에 잠깐만..."
이하는 매우 잠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손가락에 피 한 방울을 묻힌채로.
따끔-
"어?"
그 사이에 내 팔쪽에 상처가 나 있었다. 피는 조금만 나고.
"나름대로 힘 조절 한거다."
이하는 손가락에 있는 피를 살짝 핥았다.
그리고 바로 아이나의 아래에 나타난 한 원.
"청화니까 통하진 않겠지. 그럼... 넌 몇 년을 가둬줄까?"
어디선가 쇠사슬이 나타나더니 아이나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쇠사슬에는 복잡한 무늬의 글자가 있었고, 쇠사슬이 닿는 부분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변했다.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쇠사슬이 튕겨져나갔고, 아이나는 어느새 나를 놓아버렸다.
"꺄아아악!!"
"음... 이거 본거 몇 천년 만이지?"
류인이 아이나를 보며 말했다. 이걸 본 적 있는건가?
"힘이 떨어져서 못 쓸줄 알았는데."
".....이현 피 쓴거야. 상처난 거 안보여?"
"...현아? 괜찮아?"
"아... 난 괜찮은데 이 아이나란 애가 더 위험해 보이는데."
"흠... 그러고보니 안전은 보장 못 하겠다. 일단 내가 데려갈께. 마침 애들한테 본보기도 되겠다."
이하는 아이나를 저렇게 만들어 놓고선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상관없지만.
"애들?"
"아. 미친 요괴들이 워낙 많아서. 본보기로 보여주게. 내가 오죽하면 거기에 없는 때가 훨씬 더 많겠냐."
"흠... 그냥 다 쓸어버리지 그래?"
"그러고는 싶은데.... 애들이 떼거지로 덤비면 힘들거든. 거기 구미호도 엄청나고... 아무래도 몇 천년 지났으니까. 게다가 다른 요괴들도 많으니까. 내가 강하다해도 여우구슬 못 쓰는 상태에선 힘들어."
"그것 참 미안하게 됬네."
"그럼 난 이만."
이하는 아이나와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난 조심스레 류인에게 물었다.
"류인."
그동안 애써 무시하려 했는데.
"저주가...뭐야?"
* * *
"......"
방에 있는 현. 그리고 옆의 이나.
"이나.. 넌 알고 있었어?"
"아무래도... 나도 그때 백귀야행에 있었으니까."
".....저주.... 여우구슬이 없으니... 타격이 크겠지?"
"당연하지. 그거 때문에 다른 어떤 부작용이 있을수도."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이하가 곧 죽는단 게 납득이 간다.
"......저주는... 못 풀어?"
"아마 전대 청화인 리크샤가 한거니... 너밖에 못 풀껄. 풀꺼면 류인 저주도 좀 풀어주라."
날 조금이라도 웃게 하려는 생각인지 이나는 그렇게 말했다. 평소라면 그에 맞게 웃어줬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나... 인간세계에 있다가 올께..."
여기엔 있다간 류인이나, 이하를 만날 것 같아 두렵다. 인간세계에 가도 얼마 버티진 못하겠지만....
"....류인한테는 비밀로 해둘께."
"고마워."
* * *
"혜린아!"
"어? 현아?"
나는 잠시 기분전환이라도 할겸 시내에 나왔다가 혜린이를 봤다. (현욱이랑 사귄다는 그애)
"웬일로 현욱 오빤 두고 혼자 있냐?"
"아... 근처에 콘서트 공연한대서. 표는 두 갠데 현욱 오빤 바쁘대."
"마침 잘 됬네! 나도 가자."
"너 이런거에 관심없잖아."
"잠시 동안의 기분 전환이라 하자~"
나는 애써 밝은 척 하며 거의 반강제로 혜린이를 끌고 갔다.
예상대로 함성소리가 엄청난 그곳.
"노래 소리보다 팬들 소리가 더 크다."
"휴... 오늘은 특별 이벤트도 있다고 하서 왔는데..."
"이벤트?"
"응. 이 팬들 중 한 명만 뽑아 같이 노래부르게 해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