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표면.

나는 그동안, 내가 만들어 놓은 틀에 억지로 너를 끼워 맞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향한 감정은 아직 미숙하고 서툴러서 방황하다 이내 어린아이 손에 꺾이듯 꺾여 나갔다.

밤하늘의 별처럼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던 너. 질투라는 가면에 몸을 숨겨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 것은 동경이라는 작은 마음. 스스로 빛을 내며 주위의 어둠을 밝히는 것은 너 가 만들어낸 따스한 달빛이었다. 별과 어둠은 밤하늘에 묻혀 그 존재를 잃어가지만 고귀한 왕의 자태에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름답고도 아련한 그의 향기에 취해 가슴이 아려오며 눈물이 흘렀다. 홀로 앉아 쓸쓸히 빛나는 너는 외롭지 않을까.

너는 달빛, 나는 어둠. 반짝반짝 빛나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너와 창가 맨 끝자리에 앉아 멍 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나. 우리는 정반대이자 서로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었다.
모두가 좋아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너는 모르겠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삶이란 어둠과도 같다는 것을. 내가 사라진다고 한들 누군가 걱정이라도 할까. 나 한명 죽어도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 나를 대신 할 대체품들은 많으니까. 어둠 한 조각 떨어져 나가도 눈치 채는 사람은 없어. 사람들이 원하는 건, 밤이 아닌 어둠을 비추는 달빛이니까.

저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붉은 태양. 내리쬐는 햇빛이 눈이 부셔 손으로 가렸다. 밤이 있으면 아침도 있듯이 달이 있으면 태양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침이 싫다. 아니, 정확히는 저 태양이 싫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아침햇살은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낮의 시끄러운 소음들에 귀는 멀어버리고 저 불길 속에 나는 재가 되어 바람결에 흩어져 사라진다.
벌어진 손 틈 사이로 달빛이 하나 보였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너라는 달빛이. 커튼을 친 너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내 귀에 꽂았다. 쉬는 시간의 소음들은 노랫소리에 묻혀 꺼져갔다. 빛은 물러가고 새카만 밤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어둡지 않았다. 나의 옆자리에 앉은 너는 밤하늘에 앉은 고고한 달빛. 나는 그저 너의 곁에서 어둠처럼 바라만 볼 뿐이다.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데도 나는 너를 만질 수 없다.

나도 너처럼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좋아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너 같은 달빛이 되고 싶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어둠이 아닌 단 하나의 달빛으로 남고 싶어. 마지막 순간에는 찬란한 빛으로 죽고 싶어. 더 이상 이런 흔해빠진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초라한 나를 너라는 빛으로 비추어 줘. 나를 이곳에서 이끌어 줘.

나의 왕, 나의 신. 부디 저를 이곳에서 구원해 주세요.

내가 알고 있는 너는 언제나 행복해 보였다.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는 너 가 나는, 부러웠고 질투가 났다. 하지만 이 감정은 동경 그 이상의 것이었다. 너는 나를 이 어둠 속에 이끌어준 단 하나의 빛이었으니까.
그곳에 가면 나도 행복해 질 수 있을 줄 알았어. 나도, 웃을 수 있을 줄 알았어. 내 기억 속의 너는 언제나 행복해 보였으니까. 전혀 아파보지 않은 사람처럼. 절망 따윈 모르는 사람처럼. 그것이 내 착각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어. 너는 내 빛이잖아. 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잖아. 나를 구원해 준 ‘신’이라고. 너는 늘 밝아야 하고 착해야 해. 내가 알고 있는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내가 동경하는 ‘너’는 늘 그래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너는 더 이상 ‘달빛’이 아닌 거잖아.

너의 그 환한 빛으로 내 마음 속 어둠도 비추어 줘.



***

너는 나만의 빛이야. 영원히 나만을 바라봐주고 사랑해줘. 너 가 없다면 나는.

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는 거야? 너는 달빛이잖아. 어둠을 비추는 단 하나의 달빛. 너 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평범한 인간처럼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너는 늘 행복해야 해. 너는 늘 웃고 있어야 해. 그런 게 바로 모두가 좋아하고, 모두에게 사랑 받는 진짜 너의 모습이야.

어라, 왜 이러지? 언제 부터인가 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나는 너를,


너는 달빛, 나는 어둠. 너를 향한 내 집착과 동경은 날이 갈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나는 너 가 될 수 없다는 걸. 밤하늘을 비추는 건 단 하나의 달. 두 개의 달빛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줄곧 너처럼 되고 싶었어. 너는 내 구원자이자 신 이었으니까. 하지만 달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나는 너 가 될 거야. 너를 짓밟고 올라가 내가 너의 자리에 앉을 거야.

너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이 밤을 비추겠어.



“이제 만족해?”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그토록 바라던 달이 되었고 너는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이런 거였나?
모두가 좋아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너 가 나는 부러웠고 질투 났다. 이런 흔해빠진 시시한 인생 속에 너를 만나 즐거웠었다. 나는 줄곧 너에게 잊혀 질까 무서웠어. 너의 주변에는 늘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으니까. 나도 그 중의 한명에 지나지 않아서 그게 너무 싫었어. 너의 주위를 감싸는 한 조각의 어둠이 아니라 단 하나의 달빛으로 영원히 너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싶었어. 그만큼 내가 너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서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슬퍼할 수 있게 아파할 수 있게 그렇게. 아아, 아니야. 아니야.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는 달빛이잖아. 나를 어둠 속에서 구원해준 단 하나의 빛이잖아. 무너지지 마, 다시 일어서. 차라리 나한테 욕을 해. 내가 아는 너는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었어. 어떤 일에도 굴복하지 않고 일어나 맞서는 사람이었다고.

“내가 대체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어? 내 모든 것을 빼앗아 뭉개버릴 정도로 큰 잘못 이었어?”

내가 아는 너는,

너는, 늘 나한테 만큼은 솔직하게 대해줬지. 남들한테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도 나한테는 보여줬어. 힘들 때, 지칠 때, 슬플 때. 모두가 우러러 보는 달빛이 아닌 한명의 인간으로서. 그런데도 나는 너를 내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억지로 맞춰놓았어. 평범한 인간인 너를 내 멋대로 신격화 하고 동경했지.

밀려오는 이 감정을 지금까지 애써 부정해 왔다. 어둠은 달을 동경한 게 아니야. 동경이라는 표면 아래 사랑이라는 감정을 숨겨 두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너의 웃는 모습이 좋았고 그런 너 가 언제까지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슬프거나 아프지 않게. 하지만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사랑한 건 너였던 걸까. 아니면 나를 비춰준 너라는 달빛이었던 걸까.

밤이 물러가고 아침이 찾아와 새로운 시작을 비추었다.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에 나는 녹아 없어지면 재가 되어 영원히 사라질 거야. 너의 기억 속에 나는 완전히 사라져 없어질거야.

안녕, 잘 있어 은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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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25 22:48 | 조회 : 1,020 목록
작가의 말
sohyung

빛과 어둠이랑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안보셨다면 먼저 그걸 보고 보시는게 이해하기 더 편할거에요 계속 달이나 달빛, 혹은 너라고 불렀지만 마지막에는 이름으로 부름으로서 더 이상 은우를 빛이나 구원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마주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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