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빛이 되어줄게.

어둠 속 방황하는 너에게 내가 빛이 되어줄게.
추운 겨울 날, 몸을 뒤덮은 눈들 모두 내가 녹여줄게.
굳게 닫혀진 문을 열고 너를 찾으러 가.
너의 손에 쥐여진 유리조각들 모두 나에게도 나누어 줘.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혼자 힘들어 하지마."

굳게 닫혀진 문이 활짝 열리며 이내 내리쬐는 환한 빛이 내 두 눈을 가렸다. 어둠 속에 익숙해진 나는 아직 빛을 바라보는 게 두렵다. 몸을 웅크려 좁디 좁은 구석으로 도망쳤다. 검은색으로 얼룩진 내 몸에 저 빛은 어울리지 않아.

세상이 미웠고 사람들이 미웠고 친구들이 미웠고 이런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어렸을 적의 나는 늘 긍정적인 아이였어. 사람들이 뭐라하든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 누가 뭐래도 나는 그냥 ''''나''''였으니까. 그러면 될 줄 알았어. 나를 보며 비웃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웃으며 대답했다. 길을 가다 이유 없이 욕을 먹을 때면 똑같이 화를 내며 싸웠다. 은근 나를 무시하며 깎아내는 친구들은 먼저 내가 관계를 끊어버렸다. 결국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받은 상처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짙어져만 가 흉터로 새겨졌다. 술에 취해 변기를 붙잡고 토 하던 날, 가족들에게 나가 죽으라는 소리를 들었던 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했던 날.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을 전부 다 토해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더 이상 나올 게 없어 위액만 토해내도 가슴 속 응어리진 내 감정들은 무엇 하나 토해낼 수 없었다. 가슴 한 구석이 돌을 얹은 것처럼 답답했다. 참지 않았다. 참을 수 없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건 아니라고 말하는게 맞는 거 잖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건데. 가족이나 친구같은 가까운 관계 일수록 상처 주기도 상처 받기도 쉬워. 이미 알고 있잖아 다.
내가 혼자가 된 이유.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잘못된 건 잘못됐다. 그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을 하더라. 싫은 건 싫다고 말했는데 가족들은 어쩌면 애가 그렇게 이기적이냐고 소리를 질렀어. 못하는 건 못한다고 말하면 어느 순간 그 애들은 나를 따돌리고 자기들끼리 웃고 있더라고. 계속 생각해 봤어. 내가 잘못한 게 뭔지. 말이 기분 나빴나? 예의 없이 보였나?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 왜냐면 나는 잘못한 게 없었거든. 그럼에도 난 그 관계가 끊어지는 게 무서워 참을 수 밖에 없었지. 참고 또 참고 억지로 웃으며 남들 비워 맞추며 사는데 이게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더라고. 내 몸인데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내 몸을 갉아먹으면서 까지 이 관계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어. 참지 않았더니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내 곁을 떠나가더라. 겨우 그 정도 관계였던 거야. 나는 혼자가 됐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어. 혼자가 더 편해라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외로워서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싶을 때 조금 슬퍼져 눈물이 나더라고. 애써 강한 척 하고 있지만 사실 다른 사람의 따듯한 품이 그리워지고는 해. 술에 취해 그 쓸쓸함을 달래며 아기때로 돌아가 그날 하루만큼은 펑펑 울었어. 가족들은 그저 내가 술에 취해 술주정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이웃들에게 민폐라며 조용히 하라고 했어. 그래,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도록 냅두는 게 더 편해. 단순히 술에 취해서 그런거라고. 나는 힘들지 않다고. 아무도 내 약한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문틈 너머 웃고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부러워. 어떻게 하면 당신들처럼 그렇게 웃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이 문을 열 수 있나요? 어떻게 해야...... 이 아픔은 사라질까요. 모르겠어요. 저는 모르겠어요.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고민하다 선생님한테 물어보거나 답지를 살펴보고는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다 내 자신이 너무 싫어져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때.
문틈 너머의 행복한 가족들. 그곳에 나는 없어. 불 꺼진 어두운 방안 속 침대에 누워 죽은듯이 잠만 잤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넘어 삼일이 됐을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갈증에 무거운 몸을 이르켜 방문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 순간 보였다. 웃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문틈 너머로 비치는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티비 소리가 한데 뒤엉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이상적인 가족. 저곳에 내 자리는 없다. 밝은 빛에 둘러싸여 함께 하는 사람들. 불 꺼진 방안 속 홀로 있는 나. 가슴 한 구석이 미친듯이 아파왔다. 병이라도 걸린껄까. 숨을 쉬는 것 조차 힘들어 바닥에 주저 앉았다. 더 이상 흐를 것 같지 않던 눈물들이 큰 웅덩이를 하나 만들었다. 방안이 내 눈물로 잠겨버릴 만큼. 모든 물이 빠져나가 말라죽게 될 만큼. 마지막 힘을 쥐어 짜 가라앚을 듯한 목소리로 부모님을 불렀다.

"엄마...... 아빠......"

더 크게 소리쳐 불렀다.

"엄마...!! 아빠...!!"

하지만 내 목소리는 티비소리에 묻혀 닿지 않고 공기 중에 사라져 갔다. 희미해져 가는 정신 속 한 줄기의 빛이 나를 감싸 안았다. 이 빛으로 누군가 어둠 속 나를 구원해 주기를.



눈을 뜨자 보이는 건 낯선 천장과 링겔, 간호사 한명이었다. 곧이어 의사가 왔고 남자는 내가 심한 스트레스와 탈수증세로 인해 정신을 잃어 쓰러졌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곁에 없었다.

링겔을 다 맞고 몇 가지의 간단한 주의사항을 더 들으며 나는 퇴원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찾아간 집은 조용했고 어딘가 차가운 냄새가 났다.
냉장고를 열어 페트병을 집어 컵에 따랐다. 유리로 된 컵은 투명해 물이 차오르는 걸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텅 빈 유리컵은 어느새 물로 가득 차 넘쳐흘렀다.
손에 쥐여진 유리컵 하나. 미끄러지듯 아래로 떨어졌다. 깨진 유리조각들이 발등에 꽂혀 붉은 피가 흘렀다. 새빨간 피가.

방문을 잠그고 방안의 불을 껐다. 커텐까지 치자 완벽한 어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진짜 내 모습은 어둠 속에 숨겨놓고 밖을 나갈때는 새로운 나를 연기했다. 행복한 척 아프지 않은 척 억지로 웃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좋아했다. 상처는 곪아 점점 썩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스스로가 문을 잠가버렸다. 내 목소리는 더 이상 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때 입을 막아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줄곧 와주기를 바랬다. 이 문을 열고 혼자 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줄 누군가를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당신은 누구야? 나는 물었다.
나는 빛이야. 너는 말했다. 그 말처럼 너는 환한 빛으로 내 어둠을 비추었다.


***

그는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고등학생인걸까 교복을 입은 그 애의 손은 차가웠지만 왜인지 안심이 되었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조각들 즈려밟으며 우리들은 걸었다. 붉은 발자국이 몇개가 더 묻히고 소매에 가려져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그의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시간이 지난듯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상처들이낯설지가 않아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그의 몸은 마치 죽은사람 처럼 차가웠다.

"아프지 않아?"
"익숙해 진걸요, 뭐."

익숙함은 곧 무뎌짐을 뜻한다. 이 아이가 아픔에 무뎌질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지 짐작 조차 할 수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난 상처는 딱지가 생기고 억지로 그 딱지를 때려고 하면 흉터가 진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픔을 억지로 지우려고 하면 더 큰 아픔으로 남는다.
어른도 아닌 너는 어른처럼 말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요?"
"왜 나를 도와주는 거야?"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 빠진 검은 눈이 일렁거렸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꼭 이유가 필요해요?"

추운 겨울날, 눈속에 뒤덮인 세상은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내리는 눈이 차가워서 늘 따듯한 온기로 몸을 녹이는데 급급했다. 따듯한 코코아, 담요, 난로 등등. 차가운 세상 속에 우리들은 도움을 주는것도 도움을 받는것에도 서툴렀다.

"그런가...그렇구나. 맞아, 그러네. 이럴때는 그냥 고마워 라고 하면 되는거였어."



얼마나 더 걸었을까. 저 멀리 출구가 하나 보였다.

"이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출구가 하나 보일거에요. 그럼 그 문을 열고 나가세요."
"너는? 너는 같이 안가는거야?"
"저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어요... 괜찮아요. 원래부터 그래왔기도 하고 저의 역할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거니까요."

너는 내 등을 떠밀며 말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뒤 돌아본 너의 마지막 모습은 어둠 속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나는 이미 죽은 몸. 내 영혼은 이곳에 남아 방안 속 갇혀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있다. 벌써 3년도 더 된 일이다.
옥상에서 떨어졌을때 든 생각이 바로 ''살고 싶다''였다. 아무리 이 지옥같은 현실이라도 그래도, 나는 살고 싶었다. 너무 늦어버렸지만. 비록 나는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다른 사람들 만큼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빛으로 사람들의 어둠을 비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비슷한 아픔을 겪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게 전부다. 단지 그것만으로 바뀔 수 있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내게는 특별한 능력도 뛰어난 말주변도 없어 묵묵히 듣기만 할 뿐이다. 적어도 혼자 아파하지 않도록.

이걸로 된거다. 이걸로. 남은 건 앞으로 그 사람의 몫,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래도, 처음이었지. 내 상처를 보고 아프지 않냐고 묻는 사람은. 나 조차도 잊고 살았던 지난 날의 기억들. 혼자 아파하고 혼자 슬퍼하고 혼자 힘들어 했다. 마지막 순간, 내가 도윤이의 손을 잡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때였다.

"기다려!!"

어째서,

"한번 도와줬으면 끝까지 해줘야지."
"왜...다시 온거에요?"

당황함에 목소리가 떨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계속 신경 쓰여서 나 혼자 갈 수는 없더라고."
"말했잖아요. 저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빨리 가요, 어서요!!"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어?"

사실은 나도 나가고 싶었다. 이곳에 혼자 있는 건 지독히도 쓸쓸한 일이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잠시, 모두 금방 문을 열고 나갔다. 당연한 일이고 원래 그래야 하는거니까.

"왜... 나를 신경쓰는 거에요? 그쪽이랑은 아무 상관 없잖아요"
"너가 말했잖아.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이유가 필요하냐고. 너가 나를 도와줬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도울 차례야."

그 사람은 내 손을 잡고 뛰었다. 저 멀리 빛을 향해.

스스로가 문을 잠가버렸다. 잠긴 문 틈 사이로 목이 갈라지도록 외쳐보아도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안에서는 절대 열지 못하는 문. 열지 못한다면 차라리 부숴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 어둠 속에 갇혀있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에만 익숙해져 막상 내가 도움을 받는 건 어려윘다.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람은 아픔을 딛고 성장한다. 그 길은 분명 가시밭길 속 끝없는 어둠이겠지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의 길을 비춰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도 누군가의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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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25 00:48 | 조회 : 1,292 목록
작가의 말
sohyung

여기에 나오는 교복을 입은 학생은 너와 함께라는 편에 나왔던 진성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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