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빛과 어둠. - 빛은 어둠을 비추고 어둠은 빛에 의해 밝혀진다. 아니, 어둠은 빛에 의해 삼켜진다. 어둠이여 모든 것을 집어삼킬듯 깊고 새카만 어둠이여 내 안의 빛 마저 당신의 양분이 되어 온 세상을 암흑으로 물들여 가라.

무더운 여름 날, 말라죽은 지렁이와 같이 태양 아래 발버둥 치는 사람들. 뜨거운 모래바닥 붉은 피로 적셔가고 광기로 물든 눈빛, 잔인한 미소를 띄운다. 함께 했던 시간이 거짓일 만큼 서로를 향한 증오는 뒤섞여 붉은 태양에 타들어 간다.

"이제 만족해?" 이제 나한테서 뭘 빼앗을래? 입 속에서 느껴지는 피맛이 텁텁하다.

피웅덩이에 비친 한 남자의 얼굴. 후회를 머금은 너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한모금의 후회를 삼킨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비릿한 맛.

"내가 대체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어? 내 모든 것을 빼앗아 뭉개버릴 정도로 큰 잘못이었어? 말해줘. 말해줘 말해줘 말해줘. 고장난 인형처럼 나는 계속 같은 말을 했고 차가운 시체처럼 너는 침묵할 뿐이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하늘에 군림한 왕의 자태에 별들은 숨을 죽이고 존경과 충성을 표한다. 달빛이여 당신의 빛으로 어둠과 함께 그들을 애도 하소서.
창문 틈 사이로 내려앉은 달빛이 피의 향기를 비추며 몰래 소년의 피부에 입을 맞추네. 어둠도 무서워 도망가고. 용서 받지 못 할 죄를 지은 자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자. 그들을 비추는 건 아침인가 밤인가 빛인가 어둠인가 태양인가 달인가.

빛은 어둠을 밝힌다. 빛은 구원이며 어둠은 절망이다. 빛이 어둠을 구원하려면 같이 절망 속에 빠지는 수 밖에.
어둠은 빛에 의해 밝혀진다. 아니, 어둠은 빛에 의해 삼켜진다.

너가 아무리 나를 사랑해도 당신은 나를 구할 수 없어. 그런 얼굴 하지마. 당신 잘못이 아니야. 너는 빛, 나는 어둠. 검은색 물감 둘이 섞이면 똑같은 검은색이 되지만 흰색과 검은색이 섞이면 반드시 한쪽은 상처입고 말아. 너가 나를 사랑한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용서 받지 못한 자.

너는 내 빛이자 희망이었어. 어둠 속에 내려진 단 한 줄기의 빛. 너는 내 세상의 전부였고 너로 인해 나는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었다. 한번 버린 목숨, 당신만을 위해 살아가리.

나의 빛, 나의 희망. 아아, 왕이시여 그 빛으로 영원히 나만을 사랑해 주세요. 고귀하고 아름다운 빛. 나도 너 처럼 빛날 수 있을까?

활활 타오르는 드거운 태양처럼. 피었다 이내 사라지고 마는 아련한 달빛처럼. 나는 그저 너의 곁에서 바라만 볼 뿐. 누군가 말했다. 나는 아침 보다 밤이 더 좋다고.

"태양은 밝고 뜨겁지만 주위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거든. 하지만 달은 그렇지 않아. 어둠과 공존하면서 달은 빛을 만들어. 어둠이 있기에 달빛이 있어."

밤하늘에 군림한 단 하나의 왕. 당신은 모르고 있었다. 어둠이 어떤 기분으로 달의 곁에 있는지를.

너는 태양일까 달일까.

너는 빛. 나는 어둠. 그 빛으로 영원히 내 어둠을 비추어 주겠니?

너의 행복을 나에게도 나누어 줘. 너가 마시는 그 물. 나에게도 나누어 줘. 그래서 너가 말라죽게 된다 해도 너의 모든 걸 내가 갖고 싶어.
물웅덩이에 비친 한 남자의 얼굴. 희망을 머금은 너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한 모금의 희망을 삼킨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달콤한 맛.

빛의 세계를 동경한 소년은 자신도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알지 못했어요. 빛과 어둠은 절대 섞일 수 없다는 것을.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불길에 손을 뻗어. 불은 손에서 부터 몸 전체까지 번져 가고. 뜨거워. 하지만, 놓고 싶지 않아.

태양에 나는 먹혔다. 탐해서는 안 될것을 탐한 자에게 내려지는 벌. 태어난 그 순간부터 정해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절대 그곳에는 갈 수 없다고.

너도, 나도 말이야.







***

나는 달빛 너는 밤. 달은 어둠이 없으면 절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어. 모두들 아름답다고 칭하는 그 빛도 너가 없으면 나는 그저 초라한 장식품에 불과해. 너의 세상 속에 나는 구원 받아 지금 이 곳에 있어.

빛이라는 이유로 착하다는 이유로 떠맡아진 많은 일들. 두 어깨가 짓뭉겨 빠져도 두 손이 부러져 끊어져도 나는 언제나 웃어야 했다. 나는 '빛'이니까. 나는 '착한사람'이니까. 사실대로 말하면 떠나버릴 이들이 무서워 터져나오는 괴로움을 막아버리는 거에 급급했다. 사랑 받는 게 좋았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는게 좋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 더욱 빛나야 했다.

너가 그토록 부러워 했던 이곳도 사실은 별반 다르지 않아. 너희들이 칭송하는 나도 똑같이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이야. 당신들이 바라는 저는 어떤 모습인가요? 그건 정말 제 모습이 맞나요?

사람을 빛과 어둠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어. 빛이 될 수도 있고 어둠이 될 수도 있는거지. 어둠 속에 있다고 나쁘다고 말하는 건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거야. 억지로 빛을 비추려고 하지마. 그럴수록 더 지칠 뿐이야. 동정할 필요도 없어. 누구에게는 빛에 있는 것 보다 어둠이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빛. 너는 어둠. 나의 빛으로 너의 어둠을 비추면 사람들은 말하지. 빛이 어둠을 구원했다고. 역시 너는 착한아이야 라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저, 모두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모두가 바라는 그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 빛을 꾸며내 어둠 속에 내 몸을 숨겨. 그렇다면 '진짜 내 모습' 은 어떤거지? 아아,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뜨거운 태양에 내 얼굴은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영원히.

거기에 있는 당신은 저를 사랑하시나요? 그렇다면 그건 누구의 모습인가요?

너가 아무리 나에게 많은 사랑을 줘도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물을 담은 흔적만 있고 물은 채워지지 않아. 너가 그토록 바라고 부러워 하던 이 세계는 사실 그렇게 아름답지 많은 않아. 너가 닮고 싶다고 했던 나는 사실은 겁쟁이에 약하디 약한 인간이야.

자기들이 멋대로 만든 기준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려버려. 그동안의 사랑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처럼. 가끔 사람들은 잊어버리는 것 같아. 나도 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인데 말이야. 똑같이 아파하고 똑같이 슬퍼하고 똑같이...... 힘든 사람이라는 걸.

밤아, 어두운 밤아. 지금 당장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줘. 어둠에 집어삼켜져도 좋으니 지금 당장 나를,

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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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19 19:58 | 조회 : 2,277 목록
작가의 말
sohyung

2편은 동경의 표면이라는 제목으로 이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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