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포기한 한 남자의 이야기.

존재불명 - 꿈을 포기한 한 남자의 이야기.

주제: 현실과 포기와 타협.

어둠 속 수많은 아파트 불빛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말 해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내가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무렵의 일이다. 그날 하늘은 무척이나 어두웠고 내리는 비는 갓난아기의 울음처럼 그칠 줄 몰랐다. 이러다 지금 이 교실까지 빗물에 잠겨버리지는 않을까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5교시 미술시간,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흰 도화지를 나눠주며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리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던 흰 도화지는 여러 가지 색들로 금방 채워져 갔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끝나가고 앞자리 사람부터 일어나 자기가 그린 그림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경찰, 선생님, 의사, 축구선수, 요리사 등등. 생각보다 다양한 직업들이 나왔다. 어느새 차례는 내 자리까지 찾아왔고 나는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했다.

“저의 꿈은 작가입니다. 아직 많이 서투르지만 언젠가 꼭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짝. 짝. 짝. 박수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멋진 꿈이구나. 선생님은 너 가 계속 그 마음을 갖고 있기를 바랄게.”

나는 웃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밝은 미소였다.

수업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밖은 어두웠고 비는 그칠 줄 모르는 눈물처럼 계속해서 쏟아졌다. 차를 타고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님. 우산을 들고 아이를 찾으러 온 엄마. 작은 우산 나눠 쓰며 걷고 있는 친구들. 검은색 우산 쓰고 혼자 물웅덩이 밟으며 걸어가는 나. 물웅덩이에 비친 어린아이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외로워 보였다. 물에 젖은 양말이 찝찝해 손에 쥔 도화지를 꽉 쥐었다. 첨벙첨벙. 물웅덩이 밟는다. 울상 짓는 내 얼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집에 가도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어 괜히 애꿎은 물웅덩이 하나 더 밟아본다.
저 멀리 즐겁게 뛰어가는 아이들. 뭐가 그리 신나는 걸까. “다녀왔어!” 라고 말하면 “어서와”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저 아이들이 부럽다. 불 꺼진 거실. 저 건너편 아파트 불빛들이 반딧불이 같아 내 마음도 밝게 비춰줄 수 있을까?

나에게도 꿈은 있었다. 처음 나간 백일장 대회에서 나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빨리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학교가 끝나고 같이 축구 하자는 친구들의 약속도 거절하고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숨이 차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집 까지 달려와서 인지 아니면 기대로 인한 설렘인지 잘 모르겠다.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다녀왔어!” 그러면 엄마는 말한다. “어서와.” 라고. 나는 엄마에게 오늘 받은 상장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했네. 우리 아들. 근데 다음에는 공부로 한번 상 받아볼까?”
그 말을 끝으로 엄마는 더 이상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엄마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 말했을 때 티는 나지 않았지만 한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던 걸 기억한다. 그래. 마치 오늘 같은 날씨의 얼굴이었다. 먹구름 같았던 엄마의 얼굴과 눅눅한 습기의 목소리. 옛날부터 엄마는 내가 글을 쓰는 걸 언제나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마는 내가 작가가 되는 걸 원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나에게 작가가 되지 못 할 거라고 말했다. 천둥번개 같았던 엄마의 목소리. 나는 번개에 맞아 온몸이 저렸다. 손 하나 까딱하지 못 할 만큼 너무나도 아팠다.
나의 꿈은 빗물에 적셔 번져가 흙 속에 잠겨 사라졌다.

앞을 보지 않고 달려오던 남자애 둘. 그 애와 부딪쳐 나는 물웅덩이 속에 빠졌다. 그 애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는 하지 않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나. 손에 들린 흰 도화지가 빗물에 적셔 번져갔다. 웃고 있던 그림 속 나는 물에 젖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색 하늘, 검은색 우산, 물에 젖어 망가진 그림. 그래서였을까, 내 마음도 까맣게 물들어 갔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의 불을 켜고 냉장고의 냉동식품을 꺼내 먹었다. 그림은 내 방 침대 밑 깊숙이 숨겨 두었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꽁꽁 숨겨두었다. 어른이 되면 깨끗하게 잊을 수 있도록. 물감이 번져가듯 그 그림도 내 기억 속에 번져가 희미해 졌다.

알바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들어간 그곳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한 데 모여 있었다. 그 중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 건 고등학교 시절 늘 옆자리였던 박 은 오다.
“이 도윤? 너 이 도윤 맞지? 이 자식 오랜만이다 야!”
학생 때와 변함없는 얼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나야 뭐 별거 있나. 갑자기 너 졸업하고 연락 끊겨서 애들 다 얼마나 걱정 했는데. 이렇게라도 얼굴 봐서 다행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은 오는 은 오였다.
“이왕 만난 김에 애들이랑 얘기 좀 하고 가. 다들 너 뭐하고 살았는지 엄청 궁금해 할 거다.”

“야 뭐냐 김 도윤? 너 이 새끼 졸업식 끝나자마자 잠수 타고 빚쟁이한테 쫒기기 라도 하는 줄 알았잖아.”
그렇게 말한 사람은 강 이찬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3표 차이로 나한테 져 부반장을 했다. 그때부터 알게 모르게 시비를 걸고 다녔지.
“그냥 뭐, 이런 저런 일로 많이 바빴어.”
주위를 둘러보던 중 익숙한 얼굴 한명과 눈이 마주쳤다. 이름 김 은예, 내 고등학교 첫 여자 친구였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 우리 둘은 사귀었다. 누가 먼저 고백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였는지 그 애였는지. 마지막 순간, 김 은혜는 남은 시간동안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하며 우리 둘은 헤어졌다. 딱히 아쉬움도 없이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라는 고민을 했다.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야 헤어지기 전 그 애의 얼굴이 어땠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울고 있었던가.
“근데 도윤 이 너는 요새 뭐하고 지내? 아마, 글 쓴다고 하지 않았어나?” 강 이찬의 질문에 화제는 내 쪽으로 넘어왔다.
“맞아. 국어 쌤도 너 글 잘 쓴다고 맨 날 칭찬 하셨잖아.” 맞아, 맞아 라며 맞장구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악의는 없다.
“나 글 쓰는 거 포기했어. 출판사마다 지원은 하고 있는데 영 뽑히지를 않네. 역시 나는 재능이 없나봐. 이정도로 했는데도 안 되면. 지금은 그냥 알바나 하면서 일자리 구하고 있어.”
덤덤히 뱉는 내 말에 분위기는 한 순간에 다운됐다. 서로 눈치를 보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다른 애들이 회사 상사 욕을 하거나 어디에 취직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내 시선은 저절로 핸드폰을 향한다. 괜히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내 나이 27세.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글만 쓰며 보낸 나에게 이력서는 텅텅 비어있다. 학창시절 같은 교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듣고 있지만 아마 그때부터 차이는 이미 벌어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누군가 또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결혼 하는 건 은혜뿐인가?”
결혼이라는 단어에 나는 반사적으로 왼쪽 테이블에 앉은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어져 있다. 나는 왜 그걸 보지 못했을까.
“은혜 부럽다. 남편이 대기업 팀장이라며?”
대기업. 그리고 팀장. 가슴이 욱 씬 거렸다. 번개에 맞은 듯이.
은혜 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없다. 이건 확실하다. 하지만 뭘까 이건. 그때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흩어졌다. 같이 야자를 하며 어두운 밤길 집에 데려다 주며 가로등 밑에 키스를 했다. 웃는 은혜의 얼굴이 무척이나 예쁘다고 생각했다.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있어 최선이라 생각했다. 나로서는 더 이상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으니. 구차한 변명으로 나는 나의 포기를 정당화 시켰다. 만약 그때 내가 너를 붙잡았다면 우리 둘의 미래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모든 것이 바뀌어 간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학교에서 사회로. 꿈에서 현실로. 꿈과 현실 사이에 우리들은 포기와 타협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현실은 이러한 내 포기를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좋은 방패였다. 누가 나에게 꿈을 포기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엄마도 내가 글 쓰는 걸 싫어 하셨을 뿐 별 다른 터치는 안하셨다. 더 이상 출판사에 낼 글을 쓰지 않게 된 것도 누군가의 말이 아닌 스스로가 내 한계를 깨닫고 포기해 버린 거였다. 현실 이라는 벽 앞에 그 존재만으로도 벅차 벽을 오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 ‘나’ 아니었는가.

“나, 먼저 가볼게 미안.” 도망치듯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뒤에서 은 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뛰어갔다. 숨이 찼다. 심장이 터질 듯이 빨리 뛰었다. 난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던 거지? 물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이 한심해 밟아버렸다. 축축해진 신발과 양말. 뭐가 작가라는 거냐. 뭐가 글이라는 거냐.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지금 네 모습을 봐. 지금 너에게 뭐가 남았어? 꿈 하나만을 보고 가족도 친구도 ‘나 자신’도 다 버렸어. 다시 쓰고 지우기를 수백번. 내게 있어 글은 꿈 이상의 가치였다. 나에게 글은 또 하나의 대화이자 언어였다. 즐거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글을 쓰는 게 스트레스가 됐던 건.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 스토리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내 마음 속 비는 그날부터 계속 그치지 않고 오고 있어.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지금까지 흘려보낸 수많은 눈물들처럼. 빗물에 적셔 망가진 내 그림은 다시 고칠 수 없었던 걸까. 포기하는 건 쉬워서 다시 처음부터 그릴 용기가 나는 없어.

도로 위의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아직까지 제자리인데 세상은 너무나도 빨리 바뀌어 버린다. 그 속도에 지쳐 낙오되는 자들은 자동차의 경적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저기 차에 치여 죽은 새의 유체가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꿈틀꿈틀, 간신히 붙어있는 숨으로 날개 짓 해보지만 꺾여버린 날개로는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다. 애처로운 몸짓에 동정심마저 들 정도였다. 포기해. 넌 어차피 결국 죽고 말거야.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물에 젖은 종이는 더 이상 원래대로 되지 못해. 알고 있어. 그런데 너는 왜. 너는 왜 그렇게 마지막까지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야. 그럴수록 너만 더 괴로워져. 그런데도 그 도화지를 버리지 않고 침대 밑에 숨겨둔 건.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만큼 살고 싶으니까. 그만큼 소중했으니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잖아.

어린 새의 움직임이 점점 옅어져 간다. 나는 본능적으로 빗속을 헤치고 나와 작은 새를 두 손에 안아 들었다. 괜찮아 아직 살아있어. 조금만 참아. 절대.

“포기하면 안 돼.”

나는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계속 그날 일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비에 젖은 신발과 양말이 찝찝하다. 숨은 턱 끝까지 오고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뛰었다. 그럼에도 두 다리는 계속해서 뛰어갔다. 멈추지 않고.

정신없이 달리고 다다른 그곳. 나의 다리가 멈춤과 동시에 새의 움직임도 멈췄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새는 흙 속에 묻어두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 속 아파트 불빛들. 불 꺼진 거실. 그날 보던 불빛들처럼 반딧불이가 되어 내 마음 속을 환하게 비추어 주렴.
새의 영혼은 땅 속에서 나와 저 멀리까지 훠이훠이 날아갔다. 떨어지는 비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침대 밑 깊숙이 숨겨두었던 그림을 꺼내 찢어버리고 새 도화지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그림 속 나는 비 온 날의 무지개처럼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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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17 19:43 | 조회 : 1,147 목록
작가의 말
sohyung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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