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혼자 아픈 게 싫은거야.

우리들은, 혼자 아픈 게 싫은 거야.

여러 개의 파편들이 흩뿌려진 칠흑 속 비릿한 웃음을 짓는 한 남자. 그는 기계 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살은 이기적이다.”

혼자만의 불행에 심취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큼 바보 같은 건 없다고.

“너만 힘든 건 아니잖아?”

겨우 그런 일로 죽는다는 게 말이 되?

그가 누구인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살기 싫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 죽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바보 같은 일이라 치부한 그는 한번 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었을까. 무심코 뱉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심장에 꽃힌 칼 일수도 있다는 걸 정말 몰랐던 걸까.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초 애 그 남자는 옛날의 ‘나’였으니까.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말했다. 혼자 있을 때는 문을 잠가라,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 신호등을 건널 때는 꼭 주위를 살펴보고 건너라, 불조심 차 조심 사람조심.
어른들은 늘 아이들한테 안전을 강요했다. 모두 외부의 위험 뿐 이였지만 말이다. 아무도 내적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말 해주지 않았다.

사고사로 죽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 자살로 죽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

불을 사용할 때는 조심히.
커터 칼로 손목을 그었어요. 흐르는 피가 마치 작은 불길 같아 타는 듯이 뜨거웠어요.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 된다.
가족들에게 죽으라는 말을 들었어요.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외면당했어요.

빨간불일 때는 건너면 안 된다.
한 걸음만 내딛으면 저도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혼자 있을 때는 문을 잠가.
스스로가 문을 잠가 버렸다. 혼자 있으면 더 이상 상처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줄곧 기다리고 있었어. 닫힌 문을 열고 나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줄 누군가를. 용기를 내 손을 뻗으면 잡아줄 누군가를 나는 계속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오지 않았어.

왜 사람들이 자살한다고 생각해? 자살을 생각한 사람들 중 죽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은 한명도 없어. 너무 힘드니까. 지금 이 상황이 못 견딜 정도로 너무 힘들어서, 죽으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거짓된 희망으로 옥상에 몸을 던졌어.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불협화음처럼 귓속을 어지럽혀.

그 순간 들리는 기계같이 차가운 목소리.

“왜 스스로 포기하려고 해? 너만 힘든 것도 아니잖아!! 너가 죽으면 남겨진 사람들은. 너희 부모님이나 나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너는 말해, 소리쳐. 이기적인 새끼.
나는 말해, 떨어지는 목소리로.

나도. 나도 죽고 싶지 않았어. 콰직, 붉은 꽃잎이 바람결에 흩날려 내 목소리는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자살은 죄인가요? 자살은 이기적인가요? 자살은 불효인가요? 자살은 부도덕적인가요?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저는 잘 못 된 건가요.

나는 생각했다. 자살은 정말 이기적인 걸까. 남자는 말했다. 자살은 이기적이라고. 그렇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을 먼저 생각할 만큼의 여유라도 있었으면 자살은 하지 않았을 거다. 그만큼 지치고 힘들다는 걸. 왜 몰라주는 걸까.
자살, 죽음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있다. 길을 가다 갑자기 덜컥 죽을 수 있는 게 사람이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자살시도를 했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거다.

커터 칼에 베인 상처 보다 혼자라는 사실이 더욱 아팠다. 아픔은 두렵지 않다. 닫힌 문을 열어, 지난날의 유리파편들 즈려밟고 가시넝쿨 속 서로를 만나. 우리들은 아픔이 싫은 게 아니야. 혼자라는 사실이 외로운 거지.

종이에 베인 상처는 얇아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날따라 조용한 집이 슬퍼 따끔거렸다.
상처투성이의 손에 덕지덕지 붙인 반창고. 서툰 손길이었지만 당신의 따스한 온기가 내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었어.

옥상에 몸을 던져 새파란 하늘에 잠겨갔다. 떨어진다, 추락해 간다. 내가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그날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풍덩, 내 주변으로 붉은 꽃잎들이 흩어졌다. 몸을 감싸 안은 가시넝쿨도 빠져 나왔다.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탓에 움직일 수 없었다.

어린왕자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순수함이 성숙함으로 바뀌는 것은 종이를 뒤집는 것보다 더 간단한 일이에요. 어렸을 적 좋아했던 장난감, 인형, 공, 그림들은 마음 속 깊숙한 행성 어딘가에 감춰버리고 나중에는 그런 게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죠. 그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에요. 그 물건들을 보며 추억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어른이 된답니다.
세상에는 정말 아름다운 게 많아요. 꽃, 아침햇살, 맛있는 밥, 행복한 사람들. 아름다운 걸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는 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보다 편하고 화려한 걸 더 좋아해요. 어른들은 말해요. 돈이 있어야 행복 하다고. 제가 어렸을 때는 친구랑 같이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컵 떡볶이를 하나 씩 사먹고는 했어요. 그 떡볶이는 단 돈 500원이었죠. 500원으로 저희는 행복을 산거에요. 행복은 돈 같은 물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나눌 수 있는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순수함과 성숙함의 사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명은 울고 있고 또 한명은 웃고 있죠. 누군가 물었습니다. 이 둘 중 더 슬픈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른들은 당연히 울고 있는 사람을 선택했고 어린왕자만이 웃고 있는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또 다시 누군가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웃고 있는데 왜 슬퍼 보인다고 생각하죠?” 이에 어린왕자는 말했습니다. “감정을 숨기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어요. 이 사람은 웃고 있지만 사실은 정말 슬퍼 보이는 걸요.”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건 쉽지만 웃고 있는 어른의 속마음을 들춰 보기란 어렵다. 사람의 감정은 단순하지 않아서 표정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희미한 연필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 지우개가 닳도록 지워 봐도 사라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 선명한 색으로 덧칠해도 보이지 않을 뿐, 자국은 그대로 남아있다.
지우개로 지우는 건 귀찮고 힘들어서 또 다른 색으로 덮어 버렸다. 슬픔보다 더 진한 아픔 보다 더 짙은 ‘거짓 웃음’으로.

다 제각각이다. 연필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연해서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덧칠하면 덧칠할수록 덮을 려고 하면 할수록 색은 얼룩져 검은색이 된다. 진짜 내 감정이 무엇인지 나조차도 모르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환하게 웃고 있어도 슬프게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밀려오는 슬픔 막으려 애써 밝은 척 하는 사람이 있다. 색은 번져가 검은색이 되었다. 슬픔 보다 더 진한 아픔 보다 더 짙은, 밑바닥의 감정. ‘절망’으로.

아이의 순수함은 영원하지 않아서 언젠가는 사라진다. 감추고 숨기기를 반복해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되면 나도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어. 나도, 강해질 수 있을 줄 알았어. 웃는 법을 잊어버린 대신에 감정을 잘 숨길 수 있게 되었어.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초코우유 대신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었지. 7살 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적이 있는데 작게 쓸린 상처에도 나는 크게 울었어. 부모님은 나를 안아주시며 내 등을 토닥여 주셨고. 나는 소리 내 울었어. 지금은 혼자 눈물 흘리는 것조차 허락이 안 돼. 나는 어른이니까.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니까. 너무 힘들어서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데 나만 힘든 것도 아니잖아.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지 하면서 나는 내가 받은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
아이일 때의 나는 울보에 떼를 많이 써서 부모님을 많이 힘들게 했어. 작은 상처에도 쉽게 울고 절대 참는 법이 없었지. 그런 나를 보며 어른들은 ‘철이 덜 들었다.’라고 말했어. 어렸을 적의 나는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꼈어. 추운 겨울에 따듯한 붕어빵을 한 입 먹으면 행복을 느꼈고 잠에 들기 전 텔레비전 에서 좋아하는 만화프로그램이 나오면 행복을 느꼈고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실 때, 아빠가 퇴근하시면서 아이스크림을 사올 때 나는 행복하다고 느꼈어. 잘 웃고 잘 울었지. 숨기는 법이 없었어. 아니, 애초 애 감정을 숨긴 다는 게 어떤 건지도 몰랐지. 지금은 뭘 해도 행복하지가 않아. 슬픈 일에도 울지 않다 보니 웃는 법도 까먹어 버렸어. 로봇이 된 것 같아. 일만 하는 기계. 차라리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너의 그 행복한 마음을 나에게도 나눠주지 않을래?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 순수함을 잃은 대신 나는 성숙함을 얻었어. 하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아. 감정을 감추고 숨기는 걸 왜 성숙하다고 말 하는 걸까. 그건 어른스러운 게 아니야. 서투른 거지. 어른들은 참 이상해. 솔직하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 울고 싶을 때 우는 게 어때서? 그러면 어른스럽지 않은 거야?

어린왕자는 말했습니다.
“머나먼 행성 마음 깊숙한 곳에 감춰둔 추억들을 하나 씩 꺼내보아요. 먼지 쌓인 물건들 털어내며 마음 속 슬픔도 털어내길 바래요. 남들에게는 말 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과거들 하나씩 안아보아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세요. 그동안 너를 혼자 둬서 미안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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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16 19:06 | 조회 : 1,091 목록
작가의 말
sohy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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