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사랑

창문 틈 사이로 내려앉은 달빛이 몰래 입을 맞추고는 피의 향기를 비추네. 어둠도 무서워 도망가고. 새하얀 피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흉터 처럼 새겨진 작은 상처. 홀로 외로이 붉은 눈물을 흘린다. 다시 너를 붙잡기엔 너의 손에 들린 피 묻은 커터칼이 조롱하듯 웃어댔다,
어린아이가 도화지에 아무렇게나 낙서 해 놓은 것처럼. 죽은 눈으로 너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선을 그었다. 의미 없는 손짓, 엉망인 낙서. 물감을 너무 많이 묻힌 탓일까. 방금 그린 낙서는 붉은 피가 흘러 아프게 아프게 스며들었다.

소년은 지금 감옥에 갇혔다.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살인은 죄가 크기에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몸을 묶은 쇠사슬도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소년은 나갈 수 없다. 아니, 나가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갈 곳 따윈 없기 때문이다. 그저 스스로를 상처 입히며 썩어갈 뿐.
"너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물음에 소년은, 너는 슬픔도 기쁨도 아닌 흰 도화지 같은 얼굴로 "무리야. 난 내가 죽길 바라거든." 아프게 아프게 말했다.
내 시선 끝엔 언제나 너가 있었다. 겨우 빛 한 줄기 들어오는 어두운 방안에 홀로 앉아 너는 말했다.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백지 만이 남겨진 새카만 눈동자로 너가 말했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될 것이니."
그때가 마지막이 될 줄은 그 당시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너는 이곳이 답답하지 않은거냐?"
몇 백년의 시간 동안 수 많은 죄수들을 감시하고 지켜보았다. 탈옥을 시도하는 인간들도 있었고 지루함에 못 이겨 끝끝내 미쳐버리는 인간들도 많았다. 우리 교도관들은 감시 라는 목적 하에 그들을 방관할 뿐이다. 우리에게 그들을 관여하거나 막을 권리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질리도록 봐왔다. 인간이 죽는 건. 무덤덤해져 갔다. 죽음이란 것에.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외로움도 공허함도 공포도 절망도 두려움도, 사랑도. 나는 모른다.

"어차피 내가 나가도 반겨줄 사람도 집도 없어. 당신, 그거 알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야. 그게 뭐가 됐든 간에 안심하고 잘 수 있으니까."

소년이 지었던 그 얼굴은 뭐였을까. 그날 나는 처음으로 눈물 없이 슬픔을 흘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각 담당 교도관들은 자기가 맡은 죄수의 감정을 공유할 수가 있다. 간접적으로나마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공유는 가능하지만 이해는 불가능하다. 그들이 지금 슬퍼한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왜 눈물을 흘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우리는.

김은서, 내가 맡은 죄수의 이름이다. 녀석은 무엇도 비치지 않는 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한테는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외로움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한, 흰 도화지 같았던 너. 그렇기에 붉은 얼룩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던 너.

머릿 속을 어지럽히는 소음, 목소리. 지저분한 연필자국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남성의 욕설 섞인 고함소리와 여자의 비명 아이의 울음소리. 아아, 어째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나는 지금 김은서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목소리로만 이어지던 기억이 이제는 영상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부분적으로 끊기는, 기억들. 그 영상 속에 나는 김은서가 되어 맞고 맞고 맞고 또 맞았다. 실제였으면 느끼지 못할 통증이 지속적으로 되풀이 됐다. 이것이 아픔이란 거구나. 어떤 영상에서 나는 빛 한 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방에 갇혀 있었다. 공포, 외로움. 또 어떤 영상에서 나는 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있다. 기쁨, 행복. 그렇게 나는 점점 ''''''''김은서'''''''' 라는 인간에게 동화되어 호기심은 동정으로 변했다. 이로 인해 나는 첫번째 규칙을 깨고 말았다.

교도관의 절대 규칙 첫번째, 절대 자신의 죄수를 동정하지 말라.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저 영원한 삶 속 언제일지 모를 죄수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 탈옥을 해도 기다리는 건 지옥, 도망칠 곳 따윈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그가 받을 죄. 내가 짊어질 운명.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가 너를 구할 힘도 지금의 너를 구하는 것도.

자꾸만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다 사라진다. 조금씩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목소리에 아무리 외쳐봐도 닿지 않는 내 목소리에 왜인지 아주 조금 아파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빠. 때리지 말아주세요. 아빠. 아빠. 아파요. 너무 아파."

"엄마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엄마. 제발 저를 혼자 두지 말아줘요. 꺼내줘요."

"살려주세요. 누군가 저를 좀 살려주세요."




꿈 속의 그 아이는 늘 혼자 울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맞은 상처들과 몇 일이 지나도 똑같은 옷차림이 가정폭력임을 알게 했다. 매일 밤마다 울려퍼지는 성인 남성의 욕설 섞인 고함과 여자의 비명, 작게 흐느끼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까지. 눈치 채는 건 쉽지만 도와주는 건 어렵다. 경찰에 신고해도 주의만 줄 뿐 폭력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풀이로 더 때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꿈 속에서도 나는 방관자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무덤덤한 눈길로 그 아이를 지켜보았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나와있는 시간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나와 혼자 그네를 타거나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다. 말을 거는 아이는 없었다. 아마도 부모들이 미리 아이들에게 뭐라 말을 해놓았을지 모른다. 애 엄마가 다른 남자랑 바람이 났다던지 애가 자페아 라든지 18살에 아이를 낳았다던지 하는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소문들을 말이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도 아이가 잘못한 건 없다. 그래서 였을까. 움츠러드는 그 애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나는 귀찮은 일은 죽어도 싫어하는 성격이다. 나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라면 더더욱. 이 점은 저들과 다를 바 없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거. 어린아이는 질색이다. 툭 하면 울고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꿈 속이라 그런걸까. 아니면 저 아이가 누군가와 많이 닮아서 일까. 그때 나는 그 애에게 말을 걸었고 너는 수백의 도화지 같은 맑은 웃음을 떠트렸다. 그 도화지에 그려진 웃음은 ''''''''행복'''''''' 이었다.

깨고 나면 사라질 기억. 하지만 그 기억 덕분에 나는 지금 웃고있다. 얼마만일까. 이렇게 웃어보는 것도. 그 애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집에서도 때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행이다. 평화롭고 잔잔한 시간. 깨고 싶지 않아.






"형...있잖아 사실은 아빠랑 엄마 그렇게 나쁜사람은 아닐지 몰라."

이 아이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지. 자기가 내뱉는 말의 뜻을 조금이라도 알기는 아는걸까?

"엄마 아빠 전에는 이러시지 않았어... 같이 놀이동산도 가고 밤마다 잘 자라고 자장가도 불러주셨는 걸. 맞아 분명 힘들어서 그래서."

"그만!! 지금 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있어?! 너를 때리고 방에 가두는 사람들이 나쁜사람이 아니라고? 힘들어서 그랬다는 건 이유가 안돼. 그 일로 지금 너가 힘들어 하는 건 생각 안해? 잘 들어. 너의 부모님이라도 지금 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건 엄연히 범죄야. 어떤 순간이라도 폭력은 정당화 되지 않는다고!!."

머리가 어지럽다. 어지러이 흩어진 검은 실들이 뒤엉켜 있다. 왜 갑자기? 그렇게나 아파했잖아. 계속 울고 있었잖아. 그런데 왜.

지직, 치지직. 영상이 끊기는 듯한 불쾌한 소리.

"그...때,로...돌아, 가고 싶...어. 아빠...랑 엄마...랑 같이. 아빠랑, 같이...축구, 도 하고... 엄마, 가 만들어...주신 도시락...을 먹으, 면서. 아아...... 왜, 왜 이렇게 되버린...거지...?"

"어떻게 하면 좋아? 엄마랑 아빠가 너무 미운데 정말 싫은데도 자꾸만 행복했던 그 기억이 떠올라. 모든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어. 지독한 악몽일 뿐이라고. 깨고나면 상냥한 엄마와 아빠로 돌아올 거라고. 계속 기도했어. 맞는 그 순간은 괴롭지만 나... 밤마다 아빠가 내 상처에 약을 바라주는 거 다 알고있다? 처음 봤어...아빠가 우는 모습은. 미안하다. 미안하다. 우리 아들. 못난 애비라 미안해. 하하...웃기지? 어디 맞은 것도 아닌데 가슴 한 구석이 너무너무 아팠어. 가끔씩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줘. 유뷰초밥, 오므라이스, 볶음밥. 그리고 똑같이 말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품에 꼭 안아줘. 사랑한다고. 엄마 품은 되게 따듯해서 막 눈물이 나왔어."

부탁이야. 정말 날 사랑한다면 정말 나한테 미안하면 그런 말들 하지마. 온전히 내가 당신들을 미워만 할 수 있게 해줘. 당신들이 그럴수록 나는 더 기대하게 되버려.

"형... 형은 어떤 순간이든 폭력은 정당화 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왜 그러는 거야? 남을 해하는 건 안되고 나를 다치게 하는 건 괜찮아?"

도화지에 붉은 물감이 쏟아졌다. 홀로 외로이 붉은 눈물을 흘리자 너 또한 눈물을 흘렸다. 조금은 서글프게.

형. 형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나를 맞이했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벽지 위로 뒤덮인 핏자국들. 내 손에 쥐여진 피 묻은 커터칼과 싸늘하게 식어 영원한 잠을 자는 아빠. 그래 여기는, 나는....

"기억 났어?"

처음 본 순간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어린시절의 ''''나''''였을 줄이야.

"형, 형은 아빠를 사랑했어?"

"아니. 죽이고 싶었어."

그래서 죽였다.

"엄마는?"

"죽여버릴거야."

어디에 있는거지? 머리가 미친듯이 아파온다. 벌레들이 내 뇌를 파먹는 기분이야. 아아... 맞아 내 기억이 맞다면 엄마는 분명 옷장에 숨어 있었지.

찾았다.

"싫어!!! 살려줘 부탁이야!!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하라는 건 뭐든지 할게. 설마 진짜 엄마를 죽일 셈이야? 응?"

''''''''엄마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엄마. 제발 저를 혼자두지 말아줘요. 꺼내줘요.''''''''

도화지에 검은 물감이 쏟아졌다. 살인자의 미소다. 검게 검게 타들어가라.

도화지에 붉은 물감이 쏟아졌다. 홀로 외로이 붉은 눈물을 흘리자 너는 눈을 감았다.

"형은 나를 사랑해?"

나는, 지금까지 나는 부모에게 개처럼 맞다시피 한 나를 단 한번도 사랑해 본적이 없었다.

"아니."

"살고 싶지 않아? 누군가 형을 구해줄 수도 있잖아."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무리야. 난 내가 죽길 바라거든."

툭, 커터칼이 내 손에서 빠져나왔다. 온몸에 모든 감각이 없어진다. 감옥에서 맞는 죽음도 나쁘지는 않을거야. 지옥에서 만나요 엄마 아빠.

당신도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죄수의 죽음이 결정되는 시간은 자신의 기억을 되찾았을 때. 그때야 말로 죄수는 죽고 감정을 공유하던 연결끈도 사라진다. 다음날 소년이 있던 감옥에는 말라버린 피가 묻어있는 커터칼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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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09 22:08 | 조회 : 996 목록
작가의 말
sohyung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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