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방안.

불 꺼진 어두운 방안. 스스로가 만든 암흑 속에 몸을 숨겨 마지막일지 모를 희망을 외쳐본다.

소년은 방안의 모든 불을 꺼버렸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위해. 소년은 모든 문을 잠가버렸다. 그 문은 오직 밖에 있는 사람만이 열 수 있는 문이었다. 소년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있다. 그래서 잠갔다. 혹시라도 내가 저 문을 열지 않기위해. 그럼에도 만약 누군가 이 문을 열고 자신을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날은 정말이지 지독히도 화창한 날이었다. 3월 따스한 봄날의 향기와 새학기의 긴장과 설렘이 뒤섞여 울렁거리는, 토할것만 같았던 교실 분위기. 창밖의 세계와는 달리 너무나 차가웠던 반아이들의 시선에 구역질이 났다. 방금 전 같이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가면을 벗고 같은반 아이에게 폭력을 가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잔인한 웃음을 띄우며. 순식간에 일어난 장면에 머리가 따라갈 새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 당시의 나는 내 친구들이니까 잘 대화하다보면 금방 해결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일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짐작도 하지 못한채

중1 새학기 봄, 지옥은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내 결정에 후회는 없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모른척 무시했다면 아마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을 테니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반의 공식 왕따가 되었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 애의 이름은 최은오. 같은반 맞고있던 남자애의 이름이다. 그날을 이후로 우린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즐겨하는 게임은 무엇인지 지금 좋아하고 있는 여자애가 있다는 것부터 먼 미래에 이루고싶은 꿈들까지. 은오는 나중에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글들을 쓰고 싶다고. 나와 같은 나이에도 벌써 꿈이 있는 은오가 부러웠다. 내성적이고 늘 주눅들어있던 모습과는 달리 꿈을 향해 달려가는 넌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러고보니 은오는 쉬는시간마다 공책에 무언가 계속 쓰고있었단 사실이 떠올랐다. 둘만 있을때도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그 공책. 그때부터 이미 글을 쓰고있었구나. 차곡차곡 쌓여진 공책의 무게가 언젠가 한 권의 책이 될 때까지. 그러자 은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책이 발매가 되면 가장 먼저 나에게 선물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반애들의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교과서를 전부 찢어버려 학교 소각장에 버린다던가 실수인 척 급식판을 엎은적도 여러번. 몰래 죽은 쥐를 국 속에 넣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번이나 학교 옥상으로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 반항을 하면 더 심하게 맞았다. 그때마다 하늘은 거지같은 내 기분과는 대비 될 정도로 푸르러 몸을 둘러싼 푸른 멍들이 더욱 욱씬거렸다. 한때 친구였던 아이들의 배신 보다 멀리서 영화보듯 지켜보는 방관자들 보다 울것만 같은 표정으로 매일 사과를 하는 은오 보다 이 고통에 익숙해져만 가는 내 자신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러니까 다들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마. 이해해. 무섭겠지. 도와주고 싶어도 괜히 나까지 피해 입을까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거잖아. 괜찮아. 그게 보통이니까. 너희들을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아. 그러니 더 이상 그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지 말아줘. 어쩌지 못하는 동정어린 눈빛으로 날 죽이지 말아줘. 고통은 익숙해진다. 아픔 또한 언젠가 사라진다. 이런 날에도 하늘은 더럽게 화창해서 눈물이 흘렀다.
어느 날의 일 이었다. 일진 무리들 중 한명이 교실바닥에 떨어진 은오의 공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돌려달라는 은오의 말을 무시한채 그 자리에서 바로 찢어버렸다. 이에 은오는 이성을 잃어 달려들었고 새하얀 공책이 붉은 피로 물들어 갈때즘 구타는 끝이 났다. 3일을 무단결석하고 학교에 나온 은오의 모습은 전과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그의 눈은 어둠에 집어삼켜져 텅 비어있었다. 트라우마가 된듯 은오는 더 이상 쉬는시간은 물론이고 점심시간에도 글을 쓰지 않았다. 그날을 시작으로 은오는 옥상에 끌려가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막아봤지만 역시나 역부족 이었다. 언제까지고 반은 평화로웠다. 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한. 그렇게 깊은 심연 속에 빠져 익사해 버리지는 않을까. 터진 입가의 피맛이 비릿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통은 무뎌져 간다. 아픔 또한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은오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진성아...나, 나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 진성아. 하루에도 몇번이나 내가 죽는 상상을 해. 죽는건 정말 무서운데 죽고 싶지 않은데 아직 이루지 못한 꿈도 있는데 난 더 이상 버티지 못 할것 같아. 미안해...미안해 진성아. 나 그 약속 지키지 못 할것 같아 미안, 미안해."

내 마지막 기억 속 너는 몇번이고 몇번이고 희미해져가는 목소리로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다. 정작 진짜 사과해야 할 놈들은 그 새끼들인데 왜 애꿏은 너가 힘들어 하는걸까.

이틀 뒤 은오는 이른 아침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유서와 먼지가 가득 쌓인 공책만을 남긴채 너는,

죽었다.

유서에는 지금껏 자신을 괴롭혔던 놈들의 이름을 전부 적어놓았다. 담임은 패닉에 빠져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반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중 몇몇 여자애들은 하염없이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 다 은오와 내가 괴롭힘 당할때 방관하던 아이들이었다. 은오는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나에게 공책을 남겨주었다. 집으로 돌아가 공책을 열자 그곳에는 편지가 하나 꽃혀있었다. 내용은 자신이 먼저 죽어서 미안 하다는것과 그날 내가 너를 도왔을때 기뻤다는 것 그리고 나하고 친구가 되어준 고마움. 편지의 검은 글씨들이 모두 흐려져 보이지 않게될 때즘 눈물은 멈췄다. 은오에게 있어 이 공책은 목숨 과도 같은 소중한 것이었다. 그것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찢어버리고 시간이 흘러 기억 속에 잊혀져 가겠지. 먼지가 가득 쌓인 책이지만 언제라도 다시 꺼내 찾아볼 수 있게 소중하게 간직할게. 그러니 너도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말았으면 해. 너의 친구 진성이가.







한번 새겨진 트라우마, 상처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흉터로 남아 살을 갉아먹을 뿐. 중3이 되어 졸업할 때까지 왕따 꼬리표는 줄곧 쫒아왔다. 일부러 고등학교는 먼 곳으로 갔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게. 모두가 좋아하는 밝고 활기 찬 성격의 나를 꾸며내 적당한 선을 지키며 거리를 둔다. 그렇게 억지로 행복한 척 웃다보면 이 가슴의 아픔도 사라질 수 있을까.

불 꺼진 어두운 방의 혼자인 나. 단단한 가시덩쿨로 내 몸을 휘감아 보호하고 멍 하니 창문 밖을 바라 봐.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은 빛을 바라보기 두렵다. 절대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굳게 닫힌 방문이 무색하게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무시해버려, 상관하지마, 저 밖으로 나가면 넌 또 상처 입게 될거야. 안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문. 누군가 이 방문을 열어주길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국 오지 않았어. 밖에 있는 사람만이 열 수 있는 문. 열 수 없다면 차라리 부셔버리자.
조각조각 깨진 유리파편들을 즈려밟으며 그 애한테 다가가. 옥상에서 맞은 고통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걸. 무서웠지? 자, 내 손을 잡아. 같이 나가자.

"저기, 너 괜찮아? 내 손 잡아. 같이 양호실 가자. 데려다 줄게."

뻗은 손끝에 닿는 차가움이 너무나 슬퍼 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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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19 22:24 | 조회 : 1,256 목록
작가의 말
sohyung

진성이의 성격상 원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도 있지만 일부러 방문을 부수면서 까지 나온 건 자신의 모습과 겹쳐보였기 때문이에요. 과거의 자신 또한 누군가 날 도와주길 원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손을 뻗어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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