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 2 만남편.

내 가장 친한 친구였던 진성이는 어느 날 학교 옥상에서 새빨간 꽃 한송이 피워내고는 모두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깜깜한 방의 혼자인 나.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는 것도 불가능 했던 거대한 어둠.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적막 뿐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문을 열 방법도 전등 스위치를 찾을 용기 또한 없었다. 굳게 닫혀진 문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고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어둠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가 17살이 되던 해에 처음 그 녀석을 만났다. 이름은 이진성. 밝고 활기 찬 성격으로 반 모두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반에 꼭 한명 씩은 있는 착하고 좋은 애. 조용하고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애가 나에게 다가올 때마다 피했었는지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 그건 '동정'에 불과했을 테니까. 내 기억 속 진성이의 첫인상은 오지랖 넓은 아이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한 발자국 내딛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겁쟁이의 나. 사실은 전부 알고있어. 방문을 잠근것도 불을 끈것도 모두 나라는 걸. 아픈게 싫어서 일부러 내가 나를 상처 입혔어. 언젠가 익숙해지며 괜찮아 질거라는 자기최면을 걸면서. 그런데 말이야 익숙해 진다는 건 괜찮아 지는게 아니라 점점 그 아픔에 무뎌지는 거더라고. 그렇게 점점 고통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리는게 아닐까. 이미 망신창이가 되버린 것도 모르고 계속 걷다 보면 지쳐 쓰러질지도 몰라. 맨발에 밟힌 유리조각들이 조롱하며 마지막 남은 큰 조각이 심장에 꽃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너도, 나도.

여전히 방문은 굳게 닫혀있고 지금도 주위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아직까지 스위치를 찾을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그리고 곳곳에 흩뿌려진 유리 파편들은 갈증을 느끼며 신선한 피를 탐내고 있다.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뿐만 아니라 실수라도 저 파편들을 밟지않게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 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무더운 여름날의 체육시간이었다. 평소 운동에 취미가 없던 난 선생님한테 양해를 구하고 교실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집중력이 좋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떠들석한 소리에 글씨가 읽히지 않았다. 짜증이 솟구쳐 책읽기를 잠시 멈추고 옆을 돌아 창문 밖 반애들을 구경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 서 있으면서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다 같이 어울려 축구하고 물장난 치는 모습들이 왜인지 이질감이 느껴졌다. 교실이 원래 이렇게 넓었나 라는 생각이 들며 알수없는 적막감이 손끝에 닿았다. 언제나 혼자가 편했다. 괜히 부짖칠 일 없이 일부러 사람들과 더 벽을 두고 지냈다. 그렇기에 친구들과 함께 놀아본 경험도 별로 없다. 아니, 예전에 몇번 있기야 했지만 금방 내 소문을 듣고 떠나가는데 보통 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으며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누군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손에 빵과 음료수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바보같이 웃는 이진성을 보기 전까지.

그는 노크 조차 하지 않은채 닫힌 문을 벌컥 열고 내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어둠 속 유리조각들의 비명소리가 그가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딸칵 소리가 나며 불이 켜지고 갑자기 들어온 빛애 눈이 잘 띄어지지 않았지만 잡아준 그 손의 온기가 무척이나 따듯해서 더 이상의 불안은 들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쪽으로 다가오는 이진성을 나는 의아하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김도윤 너 빵 좋아하냐?"

이진성은 일단 기본적으로 말이 많았다. 대뜸 빵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답도 듣지 않고 옆자리에 앉더니 메론빵과 주스 한캔을 건네면서 쉴틈없이 말을 이어갔다. 어디에 사냐 부터 시작해 학교 급식이 맛없다 등등으로. 너는 말이 많았고 나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아까까지 운동장에서 애들이랑 축구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기 근데 내가 여기있는거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야?"
"응? 우리반 짝수잖아. 편 나누는데 한명이 모자라서 보니까 너가 교실로 들어갔다고 하잖아. 나도 마침 밖에 덥기도 했고 또 혼자는 심심하지 않아?"

또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 미소로 모든 어둠을 잠재울 것만 같은. 보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한 웃음. 아무런 불안도 아픔도 없이.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넘쳐나서 언제 어디서 버림받을 걱정 따윈 없겠지.

저기 있지, 어떻게 하면 너처럼 웃을 수 있어?

이진성은 모두에게 친절하다. 남을 도와주고 배려할 줄 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게 혼자인 나를 불쌍히 여기는 값싼 동정심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김도윤? 야 너 괜찮아?"

처음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애가 뭐가 부족해서 나 같은 애랑 같이 다닐려고 하는지. 어차피 너도 나중에는 그 애들처럼......

"내가 불쌍해서 그러는 거면 그만둬." 무심코 터져나온 말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멈출 줄 몰랐다.

"너 내가 혼자 있는게 불쌍해서 계속 친한 척 하는 거잖아. 모를줄 알았어? 처음엔 다 친구인척 잘 대해주다가 필요없어지면 버려버리고!"

그만. 그만해. 그 입 닥쳐 제발.

"이제 지긋지긋해...지쳤다고."

침묵. 시간을 딱 몇초 전으로 되돌리고 싶다. 미친놈 취급할거야. 아니, 그래도 더 이상 전처럼 친한 척은 안할테니 다행인건가.

"미안."

이진성이 사과를 한다. 왜?

"난 진짜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 너가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는데 정말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계속 이러는 거 불편하면 그만둘게."

내 안의 무언가가 작게 깨지는 소리가 났다. 호의와 친절 끝에는 언제나 상처로 깨진 유리파편만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트라우마는 깊은 흉터로 남아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이진성 또한 마찬가지 일거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일 뿐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서 불편했던 적 따윈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재밌었다면 재밌었지.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고서 흩뿌려진 유리파편들을 즈려밟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바보같이 착해빠진 이진성은 미안하다고 도리어 사과를 한다. 정작 진짜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난데 말이다.




"넌 왜 나랑 친해지고 싶은거야? 이미 다른 친구들도 많잖아."
"음...그러게 왜였을까. 다들 내가 말이 너무 많다고 싫어했거든. 근데 너만은 화내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주는거야. 처음에는 그냥 애가 착해서 싫은데도 참아주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냥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던거지. 고맙다. 맨날 시끄러운 거 잘 들어줘서."

이진성은 밝게 웃었다. 너는 말이 많았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게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서야 그가 맨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에는 온통 유리조각들로 너덜너덜 해졌으며 박혀있는 조각들은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흥건했다.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 남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근데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야? 문도 잠겨있었는데."
"나도 한번 방안에 갇힌적이 있었어. 아마 중3때였지?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에 주위에는 온통 가시덩쿨들로 언제 나를 덮칠지 몰라. 단 한명이라도 좋으니 누군가 제발 나를 구해주기를... 누군가 제발 나를 도와주기를. 그래서 절대 못 본척 할 수가 없었어. 혼자 있는게 얼마나 괴롭고 외로운지 잘 알고있으니까. 누구나 혼자는 싫잖아. 안그런척 하는 것 뿐이지."

홀로 어두운 방에 갇혀있던 내 손을 잡아준 너. 그때 나는 너로 인해 구해졌다. 혼자밖에 없던 내 세상을 노크 하나 없이 비집고 들어운 이진성. 그날 내 세성은 너로 인해 변했다. 너는 내 우상이자 빛이었다.


단 한자락의 어둠도 조각난 유리파편들도 우리들의 미랴에 없기를 진심으로 기도 했는데.



"김도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래? 나는 언제까지 행복한 척 연기를 해야되는 거야?"

바람소리에 묻혀 사라진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말을 내뱉고 너는,

너는.

너는.

가시덩쿨에 휘감겨 아직 그 불꺼진 방안에 홀로 남겨져 울고 있었다.

3
이번 화 신고 2019-05-19 10:51 | 조회 : 1,126 목록
작가의 말
sohyung

음...제가 쓰는 소설들은 대부분이 사람의 죽음이나 자살 아픔에 관련된 내용을 쓸 예정입니다. 일상글도 쓰고요. 몇몇개 bl 글도 쓸거여서 장르를 bl로 했지만 비중으로 따지면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