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고친 직장상사의 상대를 찾아가서 따지는 방법 feat. 데르온

조금 어두운 방 안은 붉은 빛을 띄는 작은 램프 하나에 의지한 채 두 남녀를 비추고 있었다. 둘 모두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였는데, 공통점이라고는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빛의 눈, 그 정도 뿐이었다. 남자, 데르온은 입을 열었다.



"진심이십니까?"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앞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의 앞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살아왔던 상급 마족, 서공작 리테르비 데스페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데르온은 지금 이 상황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여겼다. 마계에서 마왕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그만큼 모든 마족들이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 리테는 마침내 카류드리안이 명한 바를 어기고 서공작의 자리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혀버린 것이다.



"... 응. 너무 오래 살았잖아요. 그런 거 같아. 후임은 이미 정해 뒀으니까 데르온 그 아이와 함께 이 일을 맡으면 될 것 같아요."


"그 후임이라는 여자를 이미 만나 봤습니다. 세르피아네스를 말하는 거라면, 절대 사양입니다. 제멋대로이고 고집스러운 데다가, 게대가 머리에 든것도 야망뿐이더군요."



야박한 그의 평가에 리테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는 한번도 지지 않으려 했었다. 이전 일을 상기시키며, 리테는 몸을 편히 뉘였다. 얇은 재질의 숄을 끌어당겨 여미며, 그녀는 데르온의 눈을 한번 바라봐주었다. 그 안에 담긴 짙은 비밀과 넘치는 기쁨이 수상하다. 데르온은 그제서야 그녀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뭡니까, 또? 뭘 감추고 있기에 그러는 거죠?"


"데르온. 너무 많은 걸 알려하지 말아요. 가끔씩은, 저도 숨기고 싶은 게 있단 말예요."


"아니요. 알아야겠습니다. 뭡니까?"



그는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재차 물어댔다. 제 침대 시트를 꽉 붙잡고 흉흉한 기색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데르온의 싸늘한 눈에, 리테는 마침내 단념했다.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니고 데르온인데 괜찮겠지. 그녀는 몸을 살며시 일으켜, 조금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푹신거리는 카펫을 걷어냈다. 그리고 그 두 손으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헐거운 마룻바닥은 살살 뜯어낸 후, 그 안 깊숙한 곳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가 하는 양을 처음부터 전부 지켜보고만 있던 데르온의 동공이 몹시 흔들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당황했다. 당혹감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리테의 손에 들린 것은, 저것은, 분명...



"알... 입니까?"


"예. 그래요. 맞아요."



확인사살. 잔인한 그녀의 처사에 데르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진즉에 미친줄은 알았지만 저정도로 미친년은 아니었는데?



"또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데자크가 알면 굉장히 화낼 텐데요! 훔친 겁니까? 그런 거에요?"



따져오는 그를 간신히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리테는 그 금빛 알을 두 팔로 꼬옥 감싸안았다. 너무나도 소중한 것을 품에 안듯, 그녀의 행동가지 하나하나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그 모습에 데르온은 재차 충격을 받았다.



"진정하세요. 이 아이는, 내가 낳은 아이야."



일순간 방 안에는 잔잔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이윽고 입을 연 데르온은 몹시 진지한 얼굴로 리테의 두 어깨를 세게 잡아대며 조곤조곤 타일렀다.



"누굽니까? 애 아빠는. 설마 또 루캅니까? 그럴 줄 알았습니다! 진작 언젠가 그분이 이럴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시기에 그러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안되겠어요. 가서 따져야겠습니다! 말리지 마세요!"



폭탄과 같은 말을 떨어뜨리고, 리테의 침소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데르온을 잡을 시간도 없었다. 리테는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한참 걸렸고, 끝내 그를 뒤쫓아보았지만 데르온은 이미 서쪽 영토에서는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리테는 신음을 냈다.

아... 그런 거 아닌데.

그녀는 조금 불안한 얼굴로, 그녀의 품에 안긴 알을 내려다보았다. 아가, 미안해... 시끄러웠지? 자자, 들어가자... 아직 의식조차 없는 알에게, 그녀는 다정히 속삭이며 체념한 상태로 다시 침소로 발을 들였다.












루카르엠은 여유로운 미소를 띄며 애정하는 정원에 감히 기어오른 버릇없는 마족들을 던져넣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쉴새없이 최근 들여온 새로운 나무, 천상목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 곁에 서 있던 데자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부화기에 태어난 알들을 수거하고 마력을 공급하고 있어야 했던 데자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었다. 마족 루카르엠이 심심하니까.

그런 어이없는 이유만으로도 좋은지, 데자크는 연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루카르엠을 졸졸 따라다녔다. 그 둘이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무렵.



"루카아!!"



갑자기 온실 정원의 문이 발칵 열리더니, 정원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오는 데르온이 보인다. 데자크는 그의 버릇없는 행동에 핀잔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으나, 무엇이 그리 화가 났는지 데자크의 손마저 뿌리친 데르온에 그는 살짝 놀란 듯해 보였다.



"이런, 데르온 아닌가요. 이 외로운 늙은이의 집까지는 어인일로 와 준 건가요?"



태연자약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데르온은 답답하다는 듯 그를 짤짤 흔들었다. 그래, 지금은 나이고 뭐고 능력이고 뭐고 데자크고 뭐고 관계 없다. 데르온은 울컥한 듯 루카르엠을 바라봤다.



"정말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모른척 하는 겁니까?"



루카르엠은 의아한 얼굴을 하고서 데르온이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데자크가 본격적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루카르엠이 손을 올려 그를 막고서, 억울한 표정을 하는 데르온에게 상황을 물었다.

왜요?

... 진짜... 입으로 말해줘야 합니까?



"언제 리테와 섹(삐이-) 했습니까?! 언제 그녀가 당신 애를 낳았냐고요!!"



서슴없는 데르온의 말에 정원이 싸늘히 내려앉았다.
리테와 마찬가지로, 데자크와 루카르엠이 데르온의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잠시 후, 세 마족의 비명이 한대 뒤섞였다.



"예에?!!!!"


"루카르엠님?!!"


"설명하세요!!!"



아. 서공작은 왠지 모를 오한에 몸을 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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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01 21:49 | 조회 : 2,275 목록
작가의 말
씨시 매그놀리아

... 카노스가 너무 이쁘다ㅏㅜ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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