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무례한 구애에 대처하는 방법 feat. 남공작 루카르엠

리테르비 데스페는 서쪽 영토의 공작이었다. 생명의 숲 카르텐의 주인, 북공작 데자크 룬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전 서쪽의 주인의 숨을 거두게 하고 공작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몇백년째 서쪽을 다스리는, 황혼이자 검은 달이라 일컬어지는 마계 4공작 중 하나였다.

물론 여성 마족 중에서도 제법 단단한 입지를 내세우는 그녀를 노리는 마족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평소 인자하고 자비 많은 그녀는 마족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 거리낌을 느끼고 있었고, 그에 대해 마족들은 그녀가 겁을 집어 먹었다고 생각하며 한없이 기어올라 그녀의 권위에 도전하곤 했다. 더러운 욕정을 품고 그녀를 강간하길 바라는 마족부터, 그녀의 직위를 손에 넣으려는 마족, 혹은 아주 드문 일이지만 간혹 자신의 고유 능력 '매료' 를 이용하여 그녀를 멋대로 휘두르고 싶어하는 인큐버스들까지. 공작이 된 후로 그녀는 몇십년간이나 도무지 편히 생활해본적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녀가 비로소 편해질 수 있었던 시기는 따로 있었다. 그날, 공작이 된 후로 가지게 된 남쪽의 마공작 루카르엠 다크빌 과의 첫만남 이후. 정확히는 동 공작 데르오느빌 킬 폰이 공작이 된 후로 가지게 된 4공작 담화의 장소.

그날, 그녀는 서쪽의 영지를 개방하여 그들을 맞이하였다. 하나 둘 그녀의 영지 안에 발을 들이는데,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유독 어두운 적안의 루카르엠이었을 터다. 루카르엠은 붙임성 있게 그녀에게 다가가, 애칭을 허락하며 유쾌한 장난을 쳐댔다.

그에 익숙하게 받아내며 리테르비는 루카르엠과의 밀린 대화를 하기 여념 없었다. 그둘은 본디 아는 사이로, 현 마왕 카류드리안에게 검술을 가르친 것이 리테르비였던 것이다. 그래서 둘에게 있어서 카류안은 몹시 특별했으나, 요 근래 점점 변해가는 그에 의아하던 중이었다.

마침내 모든 공작들이 다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며 각 영토에 대한 보고를 거의 마쳐갈 무렵이었다.

그들이 있던 방의 문이 누군가의 격한 마력에 의해 떨어져나가며 굉음을 냈다. 문을 부수고 이런 무례한 침입을 한 것은 서쪽 영토에서 잔인하고 포악한 성정으로 유명한 이바크 라는 이름의 마족이었고, 그는 더러운 수컷의 본능과 작위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대던 중 그녀와 자신의 힘 차이를 깨닫고, 현재는 열렬히 구애하는 중이었는데, 그것은 구애라고 보기에는 애매할 정도로 예의없는 행동이었다. 분명 공작이라는 작위 때문일 터.

리테르비가 그것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바크는 무례하게 들어와놓고, 화려하게 장식된 방을 보고서 흠칫 놀랐다. 그가 4공작들의 위화감을 느낀 후 경험한 감각은 무척이나 위협적일 텐데, 그는 겨우 침을 넘기고서 당당하게 소리쳤다.

고작 암컷 주제에 그 자신을 무시하냐고.
암컷이라면 암컷답게 깔려서 앙앙대면 되는 일이라고.

그의 저속하고 품위없는 어조에 리테르비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음담패설들이 쉴새없이 그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공작들이 있기에 자제하려고 했으나, 이 사태는 어찌 해결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끝내는 그녀가 주먹을 세게 쥐고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루카르엠의 입에서, 마침내 싸늘한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싸늘한 것은 아니었지.

평소와 다름없이 경쾌하고 장난스러웠으나, 그 말과 어조 안에 담긴 짜증스러움과 역겨움, 그리고 약간의 분노를 공작들은 알아챘을 것이다.

루카르엠은 차분하게 그 마족, 이바크에게 가벼운 경고를 주었다. 그러나 이바크는 멍청하게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선을 넘었고, 여자로써 듣기 수치스러울 만한 발언을 해버리며 리테르비를 희롱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개인적 친분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까?

루카르엠은 싱긋 웃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군요.


그리고 이바크의 온몸은 갈기갈기 찢겨져나갔다.

소름끼치는 적막. 소란스러움에 놀라 달려온 하급 마족들은 하얗게 질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가보더라도 이 상황의 중심에는 자리에서 일어선 리테르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자비로운 주인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그들앞에서 일어난 불상사에도, 루카르엠은 태연자약하게 미소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더러운 체액들과 뇌척수액들이 바닥과 카펫을 더럽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에 충격을 받아, 데르오느빌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당황스러운 것은 리테르비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데자크는, 짐작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르엠은 물었다. 평소에도 그같은 마족들이, 그녀를 귀찮게 하느냐고.

차마 거짓을 말할 수 없었던 리테르비는 답했다. 그렇다, 고.

루카르엠은 싱긋 웃으며 다정하게 리테르비를 안아주었다. 안쓰러움이 담긴 그 손길이 어색했다. 리테르비는 의아한 눈으로 루카르엠을 바라보았다.


이 문제는 제가 해결하면 됩니다. 그걸로 충분하겠지요?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는 게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길로 루카르엠은 이바크의 시체를 서쪽 성의 성벽 중앙에 위치한, 형벌대에 걸어놓았다. 처참하게 터져죽은 그의 얼굴을 간신히 확인한 서쪽의 마족들은, 더이상 리테르비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거나 희롱하지 않았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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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이름: 리테르비 데스페
마계의 서공작. 특유의 검은 머리카락과 적안이 잘 어울리는 미인이다. 자비로운 성정으로 유명하나, 루카르엠 방문 후로 그녀가 잔인하다는 소문이 돈다. 스스로 맡은 일에 강한 책임감을 지니고, 제 것에 대한 욕망과 소유욕이 꽤나 짙은 마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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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0-01 21:48 | 조회 : 2,268 목록
작가의 말
씨시 매그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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