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첫손님




방안으로 걸어 들어온 요원은 담화각의 기생 중 누구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절을 올리고 있는 그 아름다운 남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는 이번에 새로 부임한 마을의 현령, 즉 사또인 김 도휘였다.





“요원이라 하옵니다.”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던 도휘는 요원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크흠, 헛기침을 했다.





“새로 부임한 현령, 김도휘라고 합니다. 부임한 지 닷새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이곳에 안 와봤냐며 이방이 떠밀어 왔지요. 그런데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과찬이십니다.”





“내가 그대의 첫손님이라 들었습니다. 무례한 일이나 추태는 결코 보이지 아니할 터이니 옆에 와서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 사또 옆의 자리에 앉은 요원은 가체에서 몇 가닥 빠져 나온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고 도휘는 그 모습에 또 한번 반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













2017. 06. 19
Written by. 예성










도휘는 아까 전부터 요원이 따라주는 차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금주 중이라서 술도 마실 수 없는 데다가 열인이라는 말도 못 들었는데 옆에서 나는 달큰한 향이 너무나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문제가 될만한 것이 있다면 숨이 막힐 정도로 어색한 분위기에 아무런 말도 애교도 없는 상대. 요원의 외관이 아름답지 않았다면 도휘는 당장이라도 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갔을 것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상대방의 얼굴만 바라보는 것도 실례일 터.





“내 잠시 뒷간에 다녀오리다.”




도휘가 방을 열고 나가자 요원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너무 긴장돼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차를 따르면서 뭐라 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아아…..”



이런 걸 담호는 적어도 사흘에 한번은 하러 나가던데….





분명 시간이 지난 지는 얼마 안되었을 터인데 너무 긴장한 것인지 온몸이 피곤하고 눈도 뻑뻑했다. 화장이 지워질 까봐 눈을 문지르려 한 것도 포기하고 감고만 있었다. 뻐근해진 목을 좌우로 돌리고 긴장해 차가워진 손끝을 문질렀다.





“미안하오. 내 기방은 처음인지라 긴장이 돼서,”




뒷간은 무슨. 언뜻 봐도 긴장해서 굳은 몸을 풀러 돌아다니다가 온 것 같아 보이는 도휘와 손을 비비던 요원의 눈이 마주쳤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이 자신만큼 긴장한 사람을 보면 묘한 유대감이 생기면서 조금 나아진다고. 이 방에 있는 두 남자가 딱 그 꼴이었다.





풋!




도휘가 들어오고 눈이 마주치자 둘은 왠지 모르는 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웃음에 놀랐다.





“크흠, 그나저나 실례가 아니라면 이름이, 아니 기명인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요원입니다.”




“흠…. 요원이라…. 요원, 아까부터 너무 딱딱하게 행동하시는 것 같소이다 만. 왜 그렇게 행동이나 표정이 굳어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 그, 그게… 선배들이 너무 수다스러우면… 안 된다고 하셔서…..”




“지금은 너무 조용한 것 같습니다. 나이는 몇 살입니까?”




“올해로… 16살입니다..”




“아, 내가 형이니 말 놓아도 되겠습니까?”




“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애초에 저 같은 기생에게는 존대하시면 아니되 시옵니다.”




“그럼 말 놓도록 할게. 난 24살. 조금 경박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말투가 편하니 이대로 말할게.”




“그러시지요.”





도휘는 아까 전보다 표정이 한결 풀린 요원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보다는 여자 같은 외모였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와 연지를 발라 붉은 뺨과 입술. 오밀조밀한 코와 쌍꺼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쳐져 있는 커다란 눈까지. 얼굴뿐만 아니라 몸의 선도, 팔다리도, 손가락마저 여자만큼 얇았다.





“곱다.”




“ㄴ, 네?”




갑작스러운 도휘의 말에 요원이 놀란 듯 삑사리를 내었다.





“참 곱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을 보는 것 같아.”




“…. 과찬이십니다…”




도휘가 반복해서 말하자 요원이 사과가 익듯 얼굴을 붉혔다. 이런 순진한 반응 하나하나까지 너무 고왔다. 아니, 곱다기 보다는 사랑스러웠다.





“저보다는 오늘 제가 대신 나와 못 나온 옥희 누님께서 훨씬 아름다우십니다. 저는 그분 발끝에도 못 미쳐요.”




“설마. 여기서 더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어.”




“!!!”





쏟아지는 도휘의 찬사에 요원의 얼굴이 더 붉게 물들었다. 정말 사과의 색에 가까워지도록 붉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더 긴장을 놓고 더 부끄러워할수록 그의 매향은 향기로워졌다. 진해지기 보다는 향의 질이 더 높아지는 듯 했다.






‘흠…. 벌꿀은 아닌데 달콤하고.... 그렇다고 꽃이나 과일은 아닌데……… 아!’





도휘가 깨달은 듯 무릎을 쳤다.




사향이구나!





깊은 향은 색스럽고 야하기 보다는 오히려 요원을 우아하게 보이도록 해주었다. 그러면서 가끔 피어오르는 복숭아 같은 향이 수줍어하는 그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었다.





“저, 저기…. 차 안 드시는지요?”




도휘가 한참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주위의 향을 맡자 요원이 어렵사리 꺼낸 말이었다.




“아, 미안. 향이 너무 좋아서. 열인 맞지?”




그러자 요원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마치 새벽에 피려다가 해가 너무 빨리, 강하게 떠올라 말라버린 꽃처럼.





“……….…..네….”





그 뒤로 요원은 말이 없었다. 도휘가 뭔가 물어보면 그때그때 대답만 할 뿐 그 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말이 부쩍 줄어든 요원의 행동을 눈치 챈 도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도휘는 문을 나서기 직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요원을 붙잡더니 작은 노리개를 건냈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까 전에 성별을 물어본 건 너무 무례한 행동이었어. 불편했으면 사과할게. 미안하고 그거 오늘 만나는 아이가 마음에 들면 주려고 주문한 거니까 내가 올 때만 해줘.”





손에 쥐어지는 노리개에 요원이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가 문장을 곱씹고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



‘오늘 만나는 아이가 마음에 들면.’





“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요원이 발그레한 얼굴로 말했다. 살짝 진 미소에 들어난 흰 이가 반짝였다.





“꼭 다시 올게.”





도휘는 요원에게 약속을 하고 담화각의 대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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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29 23:13 | 조회 : 2,423 목록
작가의 말
안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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