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바람의 강도

다른 시간은 다 졸아도 타이머가 들어오는 수학시간만큼은 조는 순간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 한껏 긴장하고 있었더니 목이 찌뿌듯했다.

숨통이 트이는 쉬는 시간종이 울리고서야 뭉친 몸을 풀며 책상에 얼굴을 붙였다.



"학교 온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피곤하지."



"밤에 안처자니까 피곤하지."



한심하다는 말을 굳이 표정으로 하고있는 최현우를 눈만 올려 보았다.



"학원끝나면 12시고 씻고 좀 쉬면 새벽 한시인걸 어쩌라는거야."



"X나 날 나쁜놈처럼 말하는데, 너 사실 폰게임한다고 새벽 세시까지 안자는거 알고있거든? 어디서 성실히 살고있는 척이야?"



...뭐야, 어떻게 알았지? 나 게임한다고 말한적 없는데? 톡보낸적도 없고.

게임톡같은거 보내면 최현우가 이 소리할까봐 절대 안보내는데.

아무말 못하고 눈만 꿈뻑거리고 있자 최현우가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뻔하지."



뭔가 상당히 분한데 뭐가 분한지 모르겠어서 이를 악물었다 다시 책상에 얼굴을 기댔다.

휴우- 느낌으로는 뭔가 정리된것 같은데 여전히 정신없는 기분은 뭐지?



"야, 고요한. 근데 넌 안물어보냐?



"뭘?"



"...넌, X바. X나 사람을... 하. 이딴걸 친구라고."



갑자기 쌍욕을 내뱉으며 정떨어졌다는 얼굴을 한 최현우는 원래도 더러운 성질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묵직한 무언가를 내 머리위에 올려놓았다.



"뭐, 뭐야?"



뭔지 모르겠지만 떨어질까 조심스레 머리위에 있는 것을 잡았다.



"종이가방?"



최현우가 머리위에 놓은 것은 종이가방이었고 그 속에 든것은 여행 기념품으로 보이는 여러가지 것들이었다.



"헐...? 설마 기념품 사다주는거?"



"그러니까 누구는 누구를 이만큼이나 챙겨주는데 누구는 잘 다녀왔냐라는 말도 없더라?"



싱긋 웃는 최현우의 미소는 보기에 호쾌해보였지만 꾹 눌러 씹듯이 하는 말을 비아냥이었다.



"와, 하하..하... 여행은 잘 다녀왔지? 현우야."



"꺼져라 쓰레기야."



에, 삐졌다.



"우와, 내 친구 현우가 날 위해 뭘 사왔는지 한번 볼까? 이야... 캥거루 열쇠고리... 캥거루 인형..."



이 녀석, 선물고르는 센스가 정말 형편없구나.



"그리고 시계. ...엥?? 시계??"



캥거루 모양의 열쇠고리와 인형을 치우니 꽤나 비싸보이는 시계박스가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는지 알고싶어 최현우를 쳐다보자 녀석은 미동없는 얼굴로 시계박스를 꺼냈다.



"해봐."



"...왜, 아니, 아니! 이걸 왜 주는데? 나 생일 아닌데?"



"알아. 누가 네 생일 모른대?"



"근데 왜?"



"...그냥."



"...그렇게 말하면 받을 수 없는데."



"아, 그냥 받아! 뭐 이유가 있어야 받을거야? 너 그렇게 속물이었어?"



"여기서 속물이라는 단어는 안 어울린다고 멍청아! 국어 좀! 공부 못 하는 놈도 아니면서 왜 가끔 멍청하게 말하는건데?"



"아 몰라! 그냥 닥치고 받아!"



왜 갑자기 뜬금없이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받으라 한다고 덥석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걸 이유없이 주고받는건 좀 뭔가 이상하잖아? 어색하잖아!



"최현우. 마음만 받을게. 넌 나의 최고의 친구야. 네가 짱짱맨이야. 고마워."



"...말로 받을거면 진심을 섞어서 말하던가 무슨 대사 읽듯이 말하고 있어. 걍 닥치고 받아. 안 받으면 진짜로 삐질거니까."



그럼 아까는 삐진척이었니?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더 안받는다는 소리를 했다간 진짜로 기분상할까봐 이 이상으로 거절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비싸보이는데... 이런걸 이유없이 받으면 내가 최현우한테 뭘 해줘야 수지가 맞아지는거지?



"고요한,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걸로 이유해. 족보 준 보답."



개학식날 유지원에게 받은 족보를 최현우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내가 최현우에게 보답하려고 받은거라 이유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족보가 이유인것 같지도 않고.

이유가 꼭 있어야 되는건 아니지만 최현우가 무언가를 해줄때면 고맙고 미안해서 빚이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녀석은 사심없이 해주는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이쪽에서 해줄 수 있는건 한정되어있다보니...

하아-



"야, 너 이렇게 신경쓰라고 선물하는거 아니거든? 좀,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그냥 친구가 친구한테 선물하는건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해?"



뉘집 개를 쓰다듬듯 머리를 쓰다듬는 최현우를 가만히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알 수 없는 얼굴에 결국 짧은 한숨을 내쉬며 최현우 손에 머리를 맡겼다.



"난 너한테 뭘 해준게 없잖아..."



"오- 그런걸 신경쓰고 있었어? 다 컸네 우리 요한이."



저게 진짜, 사람을 뭘로 보고.

그래도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최현우를 따라 웃었다.



"언젠가 크게 보답하마. 어마어마하게 보답하마."



"그래. 기대할게."



최현우 덕에 한번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세워둔 목표를 꼭 이뤄내야 한다는.



"고맙다 최현우."



-



최현우 손길이 익숙한듯 가만히 있는 고요한의 얼굴은 꽤나 편해보였다.

어김없이 고요한을 찾아온 유지원은 문에 몸을 기대 분위기 좋아보이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딱히 누군가를 기다려야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삶을 살지 않았던 유지원은 눈앞의 광경이 크게 불쾌하고 기분이 더러웠다.

고요한이 말했었다. 최현우와의 관게는 그저 친구일뿐이라고.

그 확신하는 말에 그런거라 믿음에도, 고요한이 저렇게 풀어진 얼굴로 최현우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채 얌전히 받아들이고 있는건 상당히 거슬렸다.

친구라는 존재가 저렇게 가깝다고?

우효준이 본인에게 저렇게 행동한다고 가정하는것 조차 싫지만 조금이라도 고요한을 이해하기위해 가정해 본다면, 결론은 싫다.

우효준이 저런 눈을 하고, 저렇게 만진다니 끔찍했다.



"대체 고요한에게 최현우는 뭐길래."



고요한에게 최현우가 얼마나 큰 존재길래 저렇게 풀어진 얼굴을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친구부터 시작하자며 상기된 얼굴로 손을 내밀던 고요한이 좋았다.

그렇게 소중하다는 시간을 내준다는 말이 너무나도 좋았다.



"...고요한 속도에 못 맞추겠어."



고요한과 맞잡았던 손에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둘만 있는때는 좋았는데.

여전히 최현우와 웃고있는 고요한을 눈에 담은 유지원은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움켜쥐고 돌아섰다.

천천히 느리게 가는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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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06 02:16 | 조회 : 1,258 목록
작가의 말
gena

바람이 약하게 불면 순풍, 강하게 불면 강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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