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중 - 전명준, 이재민, 신수현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태양은 마치 불길과 같은 아지랑이를 피어오르게 만들어 자신의 열혈함을 표현하고있었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강한 열기를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에서 바라보고있는 명준은 평소 앙칼진 모습과 다르게 넋이 풀린 얼굴을 하고있었다.
그 모습은 근 삼십분가량 지켜보던 재민은 책상을 두들기며 그를 불렀다.


"명준아? 전명준? 저기요?"


"아 뭐, 왜!"


짜증스럽게 대답은하는데 그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있었다.


"공부하자고 나와놓고 벌써 삼십분째 아무것도 안하고 멍때리고 있잖아. 왜그래? 무슨 일 있어?"


"...신경쓰지마."


정없이 말하는 명준을 빤히 보던 재민은 언제부터 그의 변화가 시작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방학식날 고요한 선배와 크게 부딪힌 뒤부터 지금까지 저런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있었는지 파티당일날 불참하더니 이유를 물어도 답해주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니가 이렇게 된게 방학식 파티날부터인데 그때대체 무슨일이 있었는데이래?"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아무일도 없었는데 천하의 전명준이 공부도 안하고 멍만때린다고? 진짜 뭔데, 무슨 일인데 어? 어??"


"아 진짜! 별거 아니야! 그냥... 좀 신경쓰이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거지."


아닌척 버티던 명준은 결국 재민의 성화에 못이기는척 입을 열었다.
그런 명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재민은 옅게 웃으며 얼른 얘기해보라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 처음에는 엄청 재수없고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거든? 뭐만하면 잘난듯 떠벌거리고 지는 역사가 없고 눈은 날카롭게 떠가지고는 막 싸우자는 얼굴로 쳐다보고."


거기까지만 들어도 명준이 누굴 지칭해서 말하는지 알아차린 재민은 작게 헛웃었다.
뭐가 문제인가 했더니 고요한, 그 사람 때문이었다.


"근데 뭐때문에 날 도와준건지 모르겠다는거지. 나랑 사이도 안 좋았던 주제에 왜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는지... 야, 너라면 칼을 들이밀고 있는 사람앞에 나설 수 있겠냐?"


"...뭐? 칼?? 갑자기?"


"대답만 해. 되묻지 말고."


"성격하고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칼까지 나온상황이면 엄청 위험하다는거고 거기서 나선다는선 찔리겠다는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못그러지. 절대 안 그러지."


"근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거지? 왜 나 대신..."


드디어 창밖 어딘가에서 눈을 땐 명준은 묘한 눈빛을 하곤 차가운 음료를 휘적였다.


"뭐, 몇 기지 가설을 내세울 수 있지. 첫번째, 니가 말하는 그 사람은 평소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두번째, 칼쯤은 무섭지 않은 강철 신체를 가지고 있다. 세번째, 너보다 위험대처 능력이 높다고 판단했기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마지막이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두번째여도 재밌을것 같고."


히죽이며 웃는 재민을 보는 명준의 얼굴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장난처럼 말하지만 그럴듯한 가설임은 인정했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항상 꼬박꼬박 되받아서 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어딘가 거슬렸다.
깔끔하게 답을 적지 못하고 애둘러 쓴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아니면 니가 그 사람한테 반했을 수도 있고."


"뭐?! 그게 무슨 개거지같은 소리야?!"


쾅하며 테이블을 내려치며 부정하는 명준덕에 카페 안에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야야... 성질 좀."


씩씩거리는 그를 대신해 재민이 어색하게 웃으며 주변에 사과했다.


"아니면 아닌거지."


"니가 말도 안 되는 개소릴 지껄이는데 듣고만 있어?!"


눈에 불을켜고 까딱하면 달려들것 같은 자세릉 취하고 있는 명준을 보며 재민은 머리를 긁적였다. 거기까진 아닌가?

뻘쭘해하는 재민을 노려보며 명준은 앞에 놓은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지 여름의 더위가 카페 안으로 들어온듯 그는 붉어진 귀를 감추기 위해 손부채질까지 했다.


"근데 신수현은 왜 안 와?"


퉁명스러운 명준의 물음에 재민은 음료를 마신 뒤 대답했다.


"아, 신수 베이커리 학원다닌대. 그쪽으로 진로 정한 것 같던데?"


"뭐? 빵을 만든다고? 걔가? 언제부터?"


"한 두 달 전부터인가? 갑자기 자기가 만든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제빵사가 되겠다나 그랬어. 신수에게 관심 좀."


"알게 뭐야."


심드렁한 말투로 말하지만 명준의 표정까진 그렇지 않았다.


"잘됐잖아. 진로고 뭐고 다 포기하던 애였는데 난 신수가 빵만든다고 했을때 기쁘기까지하더라."


"유난떨기는."


"그렇잖아. 신수현 중학교때 많이 힘들어했잖아. 또 회장님일도 있고."


"...회장님 일이야 별 수 없는거지. 싫다는 사람한테 계속 매달려서 찌질해지는 것보다 깔끔하게 포기하는게 낫지."


"진짜... 전명준, 넌 말만 안 하면 참 괜찮은 녀석인것 같아."


"죽고싶냐?"


"꼭 언젠가 니가 한 말을 후회하게 될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럼 참 고소할 것 같아."


화사하게 웃으며 악담을 퍼붓는 재민을 노려보며 명준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일은 죽어도 없지. 나 좋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널 좋아할지 궁금하네."


재민의 화사한 웃음이 묘한 미소로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명준은 다시한번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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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07 18:59 | 조회 : 1,728 목록
작가의 말
g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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