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미묘함

"우리 외식없어."


내가 잘 못들은게 아니라면 지금 외식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것 같은데 당최 이해가 되지않는 소리에 문을 닫고 고여울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그런거 아니야."


"그럼 외식없다는게 무슨 소리야? 애초에 그런 약속조차 없었다는거야?"


침묵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의자를 돌려 책상을보는 고여울의 뒤통수를 보다 이마를 짚었다. 왜 거짓말까지 한거야.


"그래, 나 속이려고 거짓말한거면 성공했는데 나 속이자고 아버지까지 끌어들이진 않았을거고 왜그래? 무슨 일있어?"


토라진 아이처럼 아무말도 하지않고 얼굴도 보여주지않는 고여울에게 다가갔다. 책상위에는 녀석이 공부하는 책이 펼쳐져있었다. 공부하고있는 건 기특한데 왜 거짓말을 했냐는거지. 관심이 필요한거면 주고.


"여울아? 대답 안 해줄거야?"


"...형은 최현우보는거 괜찮아?"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나 최현우때문이었다. 밥먹고 가라는 소릴듣고 거짓말 한건가?


"아무리 그래도 일단 형 친구인데 최현우 이름부르는건 아니지 않을까?"


"......"


"그래, 그건 천천히 하기로하고. 어쨌든 난 괜찮아. 최현우같은 친구없고 잘지내고있어."


"난 싫어."


고집부리는 아이처럼 시선을 책에 고정시키고 말하는 여울의 행동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울이가 이렇게 애처럼 나올때는 답없었다.
요즘 정신없는 일이 많아서 얘네 만날때마다 이러는거 잊고있었다.
진짜, 둘다 어지간해야지. 하...


"알았어. 알겠으니까 다음부터는 거짓말하지마. 점심은 먹었어?"


"아니... 오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나도 이럼 안된다는거 아는데 이런식으로 나오면 귀여워서 뭐라 할 수 가 없잖아.
기죽어있는 고여울 머리를 쓰다듬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럼 치킨시켜먹자. 형 오후에 약속있어서 나가야되니까."


"몇시에 약속있는데?"


"일곱시. 학원까지 갔다올거니까 너 또 내가 올때까지 밖에 있으면 진짜 혼난다."


"알겠어."


미심쩍은 대답이었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싶어 방을 나왔다.
아, 고기먹을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많이 아쉽...


"왔냐? 여울이가 뭐래?"


...뭐라고 많이 하긴했는데 너한테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날 팔아서라도 꼭 족보 구해다 줄게."


"...뭐래."


뜬금없는 말에 어이없어하는 최현우를 외면하고 다시 게임기를 잡았다.
다시한번 깨닫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없고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신경써 줄 수 없다.
주변이 안정적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있겠어.

-

최현우가 돌아가고 치킨으로 여울이를 달래니 시간은 벌써 여섯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파티시간은 알았지만 장소를 몰라 난감해지려는 때에 확인한 단톡으로 여러가지 정보들을 알 수 있었다.
학생회딘톡을 확인하고도 빨간색 알림은 그대로였다.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유지원의 톡과 신수현에게서 톡이었다.
유지원은 무시한다치고 신수현에게서 온 톡은 안부를 묻는 말이 있었다.
괜찮지 않을게 없는데 괜찮냐라고 묻는거면 뭘 알고 묻는건가라는 생각에 답장을 하려다 폰을 엎었다.
수현이 좋은데... 뭔가 불편해.
뭔가 설명하기도 하지않기에도 신경쓰이는게 너무 많아서 할말이 제대로 장리되지않있다.


"...아니야. 신경쓰지마 고요한. 내 문제로도 벅차잖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누가 준비했는지 파티장소가 뷔페였다.
남다른 스케일에 잠시 움츠러 들었지만 족보만 얻으면 뒤도 돌아보지말고 나오자 다짐하며 마음을 추스렸다.
유지원이 교복입고 오라고 했던것 같은데 밤늦게까지 학원에 있는 것을 고려해 평소차림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래도 파티니까 평소보다는 정갈한 프린트의 반팔 박스티에 청바지를 입었다.
더 신경써 바지에 윗옷을 넣어보았다.

다리가 기니까 괜찮네. 훗.


"가?"


캔버스백을 둘러매고 검은색 스니커즈를 신고있는데 고여울이 다가왔다.


"응. 아까도 말했지만 늦게까지 돌아다니면 진짜 죽는다."


"알았다니까. 근데 어디가는데 그렇게 신경썼어?"


"...신경쓴거 아닌데?"


"아닌게 아닌데? 형 붙는거 싫다고 청바지 핏있는거 잘 안 입잖아. 바지에 윗옷넣는것도 불편하다고 칠렐레팔렐레다니던 사람이."


그...렇지 않아!


"내가 언제 칠렐레팔렐레 다녔다고!"


"됐고, 데이트야? 예뻐?"


"무슨, 그런거 아니야! 그냥, 그냥... 학교 행사에 잠깐 참석하는 거야."


"흐음? 그으래?"


전혀 믿지 않는 눈초리로 팔짱을 끼고 서있는 고여울의 시선을 피하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 뭐, 내가 죄지은거 있어? 난 당당해! 하나도 안 쫄았어!


"어, 어쨌든! 갔다올게."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봐."


"왜에-"


방에 들어깄다 나온 여울이 손에는 긴 흰상자가 들려있었다. 그게 뭔지 파악하기전에 여울이 손에 안경이 벗겨져 눈앞이 흐려졌다.


"뭐야? 안경을 왜 벗겨? 안 보이니까 빨리 내놔."


"스타일은 그만하면 됐고 머리도 조금 만지면 좋을 것 같은데 뭐... 형은 고데기해봤자 안 통하는 곱슬이니까 지금이 더 낫겠다."


"?? 뭐라는거야 안경 안 내놓냐?"


"잘 차려 놓은 밥상에 수저가 너무 촌스럽잖아. 이거 껴. 렌즈야."


흐릿한 시야로 흰상자를 내밀고있는 손이 보였다.


"아 됐어. 안경이 있는데 불편한게 왜 렌즈를 껴. 성의는 고마운데 안경이 편하니까 어서 줘."


"성의가 고마우면 렌즈끼고 나가. 안경보디 훨 닛단 말이야. 신경쓸거면 완벽하게 하고 나가란 말이야!"


여울이의 힘찬 말에 약간 주눅이 들었다. 안경쓴 내 모습이 그렇게 별로인가라는 생각도 들어 복잡해졌다.
안경이... 어때서.


"일곱시라고 하지 않았어? 벌써 여섯시 십오분인데."


"아? 아! 아 진짜... 렌즈끼면 눈물나던데."


"인공눈물있으니까 건조하면 넣어. 전처럼 미련하게 참다가 눈빨게지지 말고."


계속 여울이의 잔소리를 듣고있으니 어쩐지 최현우가 눈앞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둘이 그렇게 앙숙이면서 하는 짓은 아주 쌍둥이에요.


"알겠어! 아씨..."


렌즈를 사용하는게 처음이 아니라 쉽게 낄 수 있지만 각막을 덮는 답답한 느낌과 이물감이 싫어 잘사용하지 않았었다.
애초에 나주려고 산건지 도수까지 맞는 렌즈를 끼고 몇번 눈을 깜빡였다.
으... 불편한데 편한것 같으면서 불편해.


"어쨌든 고맙다. 갔다올게!"


"일찍 와. 올때 과자 좀 사다줘."


...과자때문에 렌즈를 준것인가.
웃으며 손을 흔드는 여울이를 한번 돌아보고 집을 나왔다.
문을 열다 훅하고 덮쳐오는 더운 열기에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싶어졌다.
다시 들어갈까? 아니지 이런 마음먹으면 안되지. 최현우 부탁이 있는데.
웬만해서 부탁같은거 안 하는 놈이 쭈뼛거리면서 한건데 들어줘야지.
도움이 되는거리도 해야 나도 마음이 편하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더워도 너무 더워서 버스에 내리자말자 쭈쭈바를 하나사서 물고 약소장소 입구앞에 도착했다.
2층에 위치한 뷔페를 확인하고 잠시 벽에 기대 숨을 둘렀다.
유지원한테는 탈퇴한다고 큰소리쳐놓고 파티온 꼴이 조금 모양빠지기도하고 전명준을 어떻게 봐야할지가 더 껄끄러 뻔뻔하게 들어가기 뭐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내편하나라도 만들어 놓는건데.
아마 전명준을 때린일로 내 이미지는 바닥을 칠텐데 들어가서 하하호호거릴 자신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번만 철면피깔고 행동하면 될것 같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않았다.


"하아... 아까는 진짜 왜그렇게 흥분했었지?"


조금만 참아볼걸. 인생 한치앞을 못본다.
그래도 시원한거라도 입에 물고있으니 다운되는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가진 않았다.
아직 일곱시 전이니까 조금만 더 버티다가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으로 멍하니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저기서 뭐한다냐?"


맞은편 건물과 건물사이에서 보이는 실루엣은 혼자가 아닌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먼곳을 집중하고 보니 눈이 뻑뻑해졌다.
렌즈낀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뻑뻑해지냐.
몇번 눈을 깜빡이다 기댄몸을 떼고 움직였다.
아무래도 모르는 척 하기에는 분위기가 이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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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20 11:38 | 조회 : 1,79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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