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한 숨 돌릴 수 있는 건

시계 초침이 11에서 12로 가기까지 3초, 2초 그리고


"!초."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 방학식이 끝난지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강당 문은 굳게 닫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체 안에서 뭘하고 있는지 짜증 날 것 같은 마음에 최현우는 벽에 기대고있던 몸을 바로 세루고 문고리를 잡았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고요한! 여기서 살거냐? 왜 안나오고...?"


벌컥 문을 열고 강당안으로 들어가자 시뻘게진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고 있는 고요한과 그를 붙잡고 있는지 당기고있는지 알 수 없는 유지원이 있었다.
싸하게 내려앉은 분위기보다 먼저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앞선 최현우는 둘을 번갈이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너네 뭐하냐?"


그 물음에 먼저 반응하는 사람은 고요한이었다. 당장에 유지원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최현우 앞으로 달려온 고요한은 숨을 고르지도 않고 그의 팔을 잡고 강당을 벗어나려 서둘렀다.

급해보이는 고요한의 손에 이끌려 가던 최현우는 문득 강렬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살벌하게 구겨져있는 눈빛이 그를 쏘아보고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렇게 보냐.


"파티는 7시야. 편하게 입고오면 돼."


파티?


"고요한, 유지원이 파티에 오라는데? 무슨 파티임? 너 파티 가?"


"저 미친놈이 계속... 안 가! 학생회도 탈퇴니까 다시는 내 앞에 얼쩡거리지마!"


답지않게 흥분해서 소리는치는 고요한의 얼굴을 빨개질대로 빨개져 있었다.
...얘네 뭐하냐?

-


타이밍 좋게 나타난 최현우덕에 개소리를 지껄이던 미친놈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지만 뭐? 내가 누굴 좋아한다고? 인정할 시간을 준다고? 미친새끼아냐 진짜.

"야, 고요한..."

씩씩거리며 학교밖까지 끌고나온 최현우흫 놓고 안도의 숨을 몰아 쉬었다.
이제 진짜 끝이야. 나는 아주 똑바르게 내 의사를 전달했고 학생회도 안녕이고 유지원도
빠이야 X발, 속이다 후련하네.


"저기요 고요한씨?"


"뭐야 징그럽... 너 뭐하냐?"


어디 걸려서 넘어졌는지 길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최현우를 발견하고 녀석의 팔을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설마 칠칠맞게 넘어진거냐?


"죽고싶냐?"


"뭐?"


"내가 누구때문에 넘어졌는데 한심하다는 얼굴이냐고. 죽을래?"


친절하게 옷까지 털어주고있는 나의 멱살을 틀어쥔 최현우는 살벌한 미소를 지으면 협박을 했다.
아, 나때문이었구나. 몰랐지, 넘어졌을줄은.


"그 몰랐다는 얼굴때문이라도 한대만 맞아라 어?"


"아아, 미안하다고. 진짜 몰랐어."


"내가 누구때문에 이런 개고생인지."


보란듯이 옷을 털어대는 최현우덕에 모래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가뜩이나 미세먼지도 많은데 모래먼지까지 마셔야 한다니.

멍하니 꽃잎처럼 흩날리는 모래먼지를 보고 서있느데 불쑥 얼굴앞으로 익숙한 가방이 나타났다.


"이제 네가 좀 들지?"


"아, 고마워. 까먹고있었어."


착하게도 가방까지 챙겨와준 최현우에게 약간의 감동을 받았다. 아무리 상황이 X같이 굴러가도 최현우는 내편이구나.
씨이X X나 눈물 날것 같네.


"...그런 소름끼치는 얼굴로 쳐다보지말고 말로 하라고. 아무리 네가 표정으로 말하는 재주가 있다고해도 다 못알아 먹는다고 몇번을 말하냐."


아. 익숙해져서 그만.


"그냥, 네가 있는게 X나 고마워서."


"훗, 그걸 말이라고. 앞으로 자주 감사함을 느끼면서 바나나 우유를 바치거라."


엣헴거리며 우쭐해하는 최현우의 옆통수를 보며 잠깐 주먹을 말아 쥐었다 풀었다.
휴, 하마터면 사람 칠뻔했네.

아... 벌써 쳤던가?

어느정도 침착함을 되찾자 전명준을 때렸던 감각이 살아났다. 전명준이 백번 잘못했다.
위계질서라는게 있고 예의라는게 있는데 오늘 전명준은 도를 넘었었다.
그래도 나도 욱해서 뺨을 때린건 너무 한 것 같기도 하고..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나 사람쳤다."


"헐? 드디어?"


"뭐 임마? 하...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나 싫다고 주구장창 태클거는 일학년이 있는데, 오늘은 진짜 빡돌아서 때려버렸어..."


그것도 싸따구를...


"...진짜로? 네가 먼저? 맞아서 때린건 아니고?"


"야... 나 진지하다고 했다."

연신 농담으로 넘기려는 최현우를 노려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반응 이해는 한다. 애초에 나는 폭력과는 아주 동떨어져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다 사람을 먼저 치는 지경까지 와버렸지?

"...그러게 왜 나한테 말 안 하고 참냐? 넌 꼭 한계까지 자기를 몰아넣다가 폭발하는 경향이 있더라."

"내가?"

"어, 너님이요."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어 고개를 저었다.

"아니긴.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넘기고 무슨 일있는것도 아무것도 아닌냥 넘기려 들고 그러니까 피곤하고 스트레스받아서 쳐 자는거겠지."

"...듣자 듣자하니까 그냥 나 까는것 같은데?"

"하여간 이해력은 좋아서. 아무튼 무슨 일이냐고. 유지원이랑 뭐했는데 그렇게 흥분 상태였는데?"

흥분? 하고 많은 단어중에서 왜하필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있는 단어를 선택해서 울컥하게 만드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있는 최현우를 노려봤다.

"흥분이 아니라 빡쳐있던거거든?"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뭐냐고."

뭐냐고 물어도 이거 때문이다!라고 할만한 말이 없었다. 나도 어려운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고.
처음은 분명 유지원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거부감을 느꼈고 거절까지했는데 무섭게 진심이라서 부담스럽게 진지해서 거절하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버렸다.

그 다음은 신수현이었다. 좋아서 울고불고 한 사람을 포기하는데 그 이유가 나때문인것 같아서 거기서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따지고보면 나를 탓할건 아무것도 없는데 모든게 내 탓인 것 같았다.

전명준은... 혼자 오해하고 있는거라 고민거리도 안 되고.

"모르겠어 나도. 내가 아니라고해도 맞다고 하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냐?"

"사람들? 유지원 하나가 아니야?"

"신수현도 있고 전명준도 있고... 생각해보니까 좀 웃기지않냐? 지금까지 내가 있는지도 몰맀던 시림들이 나때문에 별 쇼를 다하는거. 내가 뭐라고 다들 난리냐..."

속시끄럽게.

"네가 뭐라도 되서 난리가 아니라 그냥 난리인거 아니냐?"

"어?"

"네가 말한게 한정적이라 잘모르겠지만 유지원이든 신수현이든 전명준이라는 애든 그냥 각자 널 보고 느낀만큼 행동하는거 아니냐고. 네가 어떤 사람이라 그런게 아니라 걔네가 그냥 지랄인거지."

...그게 그렇게 돼?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다는 얼굴하지말고, 덤으로 모든게 네 탓이라는 생각도 하지말고. 걔들이 난리인게 네 탓은 아니야. 그러니까 앞으로 쌓아두지 말고 나한테 말하라고. 이 형님두고 왜 혼자 끙끙이냐고 답답아."

아주 좋은 위로이자 충고임이 분명한데 결국 빙빙 돌려 까는 말같아 감동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말 본새 하고는 진짜.

"그래도 너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까 나는?"

"...갑자기? 징그럽게?"

질색하는 얼굴로 부정하는 최현우덕에 웃을 수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웃는게 최현우덕이라니 어이없어.

"하여튼 무드가 없어요. 어쨌든 고맙다. 진짜로"

여러가지로.


6
이번 화 신고 2019-04-16 16:42 | 조회 : 2,022 목록
작가의 말
gena

나도 현우같은 친구있었다면... 요한이 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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