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미안해(2)

퍼엉-!!!!

이드리스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가루가 흘러나왔다. 그 가루는 땅에 닿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밤바람을 타기도 전에 공중에서 사라져버렸다. 공기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리나..루드...."
리더시스가 말 없이 이드리스를 공격하던 리나와 루드의 이름을 불렀다. 이아나와 블로우는 그의 중얼거림을 분명히 들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들은 고민 중이었다. 모든 것의 원흉이던 이드리스는 드디어 죽었지만 그들은 그녀를 죽이기 위해서 과거의 힘을 가지고 오느라 많은 라스크를 짊어진 상태였다.
루드는 키엘노드와 자신이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기억해내지 못했고, 리나는 자신을 괴롭히던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다. 얻은 것은 없었지만 잃은 것은 많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까. 이아나."
그들은 그저 옛날의 빛과 어둠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없었다.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마석덩어리 뿐이었다.

그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모두가 바라보았다. 마력과 마력이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하던 전쟁터와 같은 그곳에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숨죽여 광경을 지켜보았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이안은 블로에기 다시 물음을 내던졌다. 그 물음에 블로우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왜 그랬어요?"

".......!"
"뮬..."
블로우가 그들에게로 다가오는 뮬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렀다. 어느 새 정신을 차렸는지 뮬은 이안과 블로에게로 힘겨운 발걸음을 한 발짝씩 내딛고 있었다. 분명 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들어가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왜 우리를 버린 것입니까?"
그건 뮬의 의지가 아닌 '힘의 마석' 의 의지 그 자체였다. 마석의 힘으로 뮬의 몸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대답해주세요, 제발......."
뮬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끝비가 내렸을 때만큼이나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리자 이안과 블로는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를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못할 것처럼 강하게 끌어안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미안."
"미안해..."


힘은 빛과 어둠의 사이에서 그들의 사과를 들으며 말했다.
"...그래. 미안...우린 그것 뿐이었습니다.
단지 그 작은 사과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 뿐이었어요.."
그 한 마디면 모두 끝나는 일이었어.
우린 그 작은 한 마디가 필요했던 것 뿐이었는데.


그들이 어떤 힘겨움을 겪고서, 어떤 심정으로 그들 스스로를 죽였는지. 빛과 어둠은 이제 기억할 수 있었다. 마석으로서 그들은 존재했지만, 이드리스와 모든 다른 마석들을 없애던 그 날 빛과 어둠의 존재는 사라졌다는 것 또한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다른 누가 뭐라고 그래도 그들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도 할거야?"
"소멸을 말하는 거지?
..모르겠네."
이안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밤하늘을 읊었다. 사막 속의 모래알처럼 수없이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이아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멸하면 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으려나."
"이드리스는 우리가 봉인시킨 게 아닌 소멸시킨 거니까. 앞으로 더 일어나지는 않겠지."
"마석은 소멸되지 않아. 알고 있잖아."
"응..."
블로우는 이미 모두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힘들어할까 무서운 거잖아."
"........"
이아나는 고개를 돌린 채 말이 없었다.

"그냥 신으로 살아버릴까."
블로의 당황한 표정을 눈치채진 못했지만 이아나는 지레 짐작했다. 자신의 말에 블로우는 분명히 눈이 동그랗게 커져있을 것이라고.
"옛날처럼 태초신으로 지내면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았던 삶은, 그 인연은?"
"......."
이안은 또다시 말을 잇지 않았다. 사실 이아나 또한 모든 것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인간으로서의 기억은 작은 찰나마다 희미해져, 그들이 헬리오스에서 함께 한 친구들의 이름조차 떠올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 인연을 잃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이안이 이를 악 물며 무겁게 소리쳤다.
"그럼 어떻게 해...! 난 다치고 싶지도, 잃고 싶지도 않단 말이야....!!"
"....그럼 이렇게 하자."
블로가 이안에게로 바짝 다가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머리를 한 번 휩쓸고 지나가자 이안의 눈동자는 커졌다.

".........."
블로의 말을 듣고 난 이안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또다시 고개를 숙여 빨갛게 물든 땅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고개를 들어올려 아무것도 없는 침식이었던 땅의 황무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대답과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에서 마지막 눈물이 흘러나왔다.



".......!!"
아이들이 일제히 눈을 가렸다. 반짝이는 빛과 그 뒤를 받쳐주는 어둠이 한데 어우러지며 이안과 블로를 가렸다. 누구도 둘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뭐야. 너 왜 울어?"
렌은 무심코 뒤를 쳐다보다가 울고 있는 레노아를 발견했다. 이드리스와 싸우다가 낙하하며, 그 충격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레노아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밥통아. 아직도 모르겠어?"
그제서야 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알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 존재는 사람같은 게 아니야. 마법사는 더더욱 아니고.
「신」이라고, 우리를 만들었던."
"........
..어. 뭐야. 왜...?"
렌은 레노아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당황하며 눈물을 훔쳤다. 렌의 눈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치고 싶어도 그쳐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마력의 구 안에서 빛과 어둠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깍지를 낀 손에 이따금씩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빛은 그대를 비추고,"
"어둠은 그대를 보듬어주리니."
"드넓은 공간은 그대에게 휴식을 주며"
"거센 힘은 그대의 소중한 이를 지켜주며"
"차가운 얼음은 그대의 강인함을 유지시켜주며"
"생명은 그대의 어깨에 내려앉아,"
"모든 것을 지켜보는 아름다운 꽃이 될 터이니..."


두 눈을 선명히 뜨고서 외우는 주문.



""「코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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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리더시스 디엔 아르티안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께서 제가 걱정된다며 마법사를 고용한 것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헬리오스에 다니는 것을 굉장히 괴로워한다고 어머니는 생각하신 것 같았고, 사실이었으니까요. 문제는 그 마법사가 리나 크리시와 루드 크리시...같은 학생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두 사람은 저를 잘 지켜주었습니다. 덕분에 제 학교생활은 평온해진 것으로 모자라, 행복해졌으니까요.
렌, 미림, 디오부터 이엘, 린, 카밀리까지. 모두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건 두 사람의 덕분이었습니다.



"리더시스-!!!"

아. 저기 렌이 손을 흔들며 제게 뛰어옵니다.

"호, 혹시....봤어?"
"어...?"
제게 질문을 던지는 렌의 얼굴이 다급해보입니다. '무엇' 을 보았는지는 묻지 않았지만, 저는 듣지 않아도 알 서 있었습니다. 우린 모두 그 날 이후로 같은 것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까요.
사라져버린 '리나' 와 '루드' .

"아니......"
"윽..!"
렌이 절망한 듯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주저앉을 듯이 무너져내렸습니다. 나는 그런 렌의 모습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고는 그를 부축했습니다.

렌은 아직도 온 몸에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뼈가 부러진 곳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도 많았지만, 리나와 루드를 찾으러 온 학교를 뒤집고 다녔습니다. 그들을 찾으려 했던 것은 렌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절 포함한 모두가 두 사람을 찾기 위해 학교부터 그 날 싸웠던 탑, 켈른 제국, 드래곤의 섬, 그리고 마법사로서 몸을 담앗던 곳인 '오피온' 까지 그들이 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 다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더 비참했습니다.


싸움이 끝났을 때 리나와 루드는 없었습니다.


'없어, 없다고.'
켈른 제국의 황녀님에게 렌은 연락해보았지만, 그곳에도 없었습니다.
'여기에 왜 있겠어. 있었으면 진작에 너희를 불렀겠지.'

'응? 그 아이들은 여기 없는데, 아야야...!
난 지금 내 치료하느라 바빠서 말야.'
미림이 오페라에게 물었어도 답은 같았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저희는 오피온으로 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주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물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곳에도 리나와 루드는 없었습니다.




그 날 밤, 하룻밤 밖에 걸리지 않았던 싸움은 체감상 꽤나 길었습니다.
결국 그 싸움에서 저희는 수많은 용들을 죽이는 것으로 빙설의 마녀 리즈님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대 빙설로서 빙설의 힘은 레노아 황녀님이 가지게 되었지만, 막 마녀가 된 황녀님은 아직 힘이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남은 용들을 통해 이드리스는 더 강해진 힘으로 우리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러려던 찰나.

'......리나와 루드가 우리 모두를 구했지.'
너무나 먼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지는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를 구해낸 리나와 루드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사람들이 아니었고, 우리 모두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이드리스가 죽고 난 후 그들은 잠시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제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대꾸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사방으로는 빛과 어둠의 마력장이 생성되었습니다. 그 거대한 마력장은 리나와 루드를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 이후 그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렴풋이, 해서는 안 될 절망적 상황을 생각하면서.


어쩌면 그들은,



이미.......

4
이번 화 신고 2019-08-03 11:56 | 조회 : 2,518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다음 화는 진짜로 마지막화입니다. 분량이 엄청 길어질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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