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나를 기억해주었으면(4)

"......!
정신이 좀 드니, 루-"

루드의 이름을 부르려던 찰나,
아주 작은 푸른빛이 아이의 눈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아이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마자 그 빛은 사라졌다.
아이의 눈에 있던, 마물들의 눈동자도 함께.


탑의 실험실에 있던 마법사들은 모조리 죽이고 돌아왔다.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만일 중간에 마음이 약해져, 누구 한명을 살려보냈다면 루드는 다시 나와 함께 하지 못할 테니까.



".....?
누구..."

눈을 뜬 루드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나 바라왔던 순간은 허무하게 내 곁을 떠나버렸다.
루드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나 기억 안나?"
겨우겨우 입을 떼서 다시 한번 물어보았지만 루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루드의 머리를 한번 쓸어넘겨주었다.
"괜찮아. 네가 오래 잠들어있다가 깨어나서 그래. 이제 내가 옆에 있으니까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바로 네....."

망설여졌다.
그 다음에 무엇으로 나를 소개해야할까.
형이라고 말을 해야 하려나, 거짓말을 해야할까.

"너의..."

형.
형이라고 말해.
어서.


형-


"「후견인」이니까."
"후견인...?"


"아, 후견인이라는 건 너를 보호하고 너를 지켜주는 사람인데,"


역시 나는
자격이 없다.
이 아이의 형으로써 있을 자격이.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손의 온기를 다시는 놓고 싶지 않아서.

"마스터.
나는 마법사가 될 거에요!"
"...마법사?"
"제국 최고의 마법사!"

"........"
네가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내가 형이라는 것을 떠올려주었으면 한다.
내가 후견인이라고 말한 것이 거짓말임을 깨달아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네가 15살이 되는 그 날까지도 너는 기억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만일 내가 그 때, 형이라고 사실대로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는 예전처럼 날 형이라고 불러주었겠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형으로 대해주었겠지.
너는 그런 아이니까.
그렇게 따스한 아이였으니.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지도.



''.....욕심이겠지.''


내 꿈은 이걸로 끝이다.
이젠 깨어나는 일만 남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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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까, 오페라 님-?!"

"늦었어, 너희..."
오페라는 엔디미온의 부축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그 말은 창조의 기사 세 사람과「빙설」, 이 4명을 향한 말이었다.

엔디미온은 오페라를 번쩍 들어서 옆에 서 있던 란델에게로 그녀를 넘겼다.
"마녀님의 치료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오페라 님의 기계가 치료를 하는 거여서, 저희도 속도를 어떻게 빨리할 수가 없어서..."
"됐어. 어쨋거나 도착했으니 된 거지 뭐.
나 지금... 기력 하나도 없으니까..."

오페라는 란델의 품에 마치 어린아이처럼 안겨서는 작게 말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두 눈을 감고 기절해버렸다.


''많은 마력을 가진 마녀님이 이렇게 곯아떨어질 정도면, 얼마나 고생하신 건지..''

란델은 엔디미온의 옆에서 공격할 준비를 취하는 실비아와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았다.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란델도 고개를 한번 끄덕였고, 오페라를 꼭 안은채로 그는 달렸다.


실비아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이내 다시 이드리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알 것 같군요.
당신은 마녀들 모두의 증오심과 분노를 일으키는 장본인이 바로 당신 아닌가요?
이드리스."
리즈는 붉은 부채를 탁 소리 나게 접어들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두 눈을 뜨고 이드리스를 바라보았다.


".........."
이아나는 아무 말 없이 두 파벌의 대립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 사이에 자신이 끼어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의 대치가 너무도 팽팽했던 것이 이유이기도 했지만 이아나 자신의 능력은 빛. 섣불리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가는 오히려 리즈의 표적이 이드리스가 아닌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젠장.
빙설의 마녀가 오면 전력이 늘 줄 알았는데, 그만큼 또 패널티가 생기잖아.
...하는 수 없지. 능력 대신 마법으로 도움을 주는 수 밖에-'

이아나가 작은 한숨을 내쉰 뒤 마력을 손에 담아들었을 때였다.


"키에에엑-!!!!"
어디선가 드래곤의 괴성이 울렸다.

이아나는 그 소리를 듣고는 디오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디오는 블로우를 도와 리스펜을 상대하고 있으니, 싸움과정에서 디오가 낸 소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세상에, 저건.."
실비아는 활을 들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엔디미온 또한 실비아와 이아나가 보았던 똑같은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리즈에게 물었다.
"........마녀님.
저것들은 대체.. 무엇입니까...?"


"........!"

리즈도 놀랐던 그 광경은,


"어떤가. 옛 동료들을 마주한 심경은?"

수많은, 그래.
천 마리는 족히 되어보이는
드래곤들의 행렬이었다.



드래곤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특성들을 뽐내며 날아왔다.
불을 내뿜는 용도, 전기를 번쩍이며 날아오는 용도, 땅을 두더지마냥 파며 다가오는 용도 있었다.

어쨋거나 중요한 사실은 그것들 한 마리를 죽이는 것도 굉장히 힘들것이라는 것이다.

"아-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이드리스는 리즈의 표정을 보고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던 무감각한 리즈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한 획 그어졌다.

이드리스는 자신만만한 목소리와 함께 리즈에게 소리쳤다.
"어서 말해보시지, 빙설-!!
저것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 그 잘난 소감을 말해보란 말이다!"


"오페라 님이 막아야한다고 했던게 이걸 말하는 거였군요.."
이아나는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페라가 문화가 발달한 도시가 아닌 드래곤의 섬이라는 외딴 섬에 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봉인의 저주」때문이다.
시초신들이 봉인시켜두었다는 수많은 드래곤들의 영혼이 바로 드래곤의 섬에 묶여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드래곤들의 왕의 명령에 의해 봉인이 모조리 풀리게 된다. 그래서 4마녀 중 하나인 공간의 마녀 오페라가 그것을 관리하게 된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4명의 마녀 중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오페라 뿐이었다.
빙설은 켈른 제국의 통치를 위해 거절했고, 창조는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을 원했으며, 힘은 한 곳에 속박되어 있는 것을 싫어했기에.


어쨋거나 오페라는 꽤나 열심히 봉인을 관리하였는다. 하지만 어느 날 드래곤의 왕 「이드리스」의 봉인이 제물들의 의식에 의해 풀려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이드리스가 원래의 힘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모든 드래곤들이 되살아나기까지는 말 그대로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을 일찍이 알아챈 오페라는 서둘러 봉인을 강화시키려 했지만 여러가지 일이 겹치게 되었다.

학생들을, 미림이를 구해주는 임무가 생겨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강화하지 못한 드래곤들의 ''''봉인'''' 은 결국,



"이거이거..
오랜만에 보는 인간들이잖아?"
"몇 천년동안 죽어있었더니 별 게 다 생겨났군 그래."
"여기 인간들은 내가 전부 다 먹어도 되는 건가, 이드리스?"


"아직은 이른 시기이니, 조금만 기다려라. 잠시 후면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질 테니..."

힘을 거의 다 되찾은 이드리스에 의해 풀려나게 되었다는 절망적인 배드엔딩-.


'세상에, 저건... 고대의 드래곤들 아니야-?!'
디오는 떼로 우루루 몰려오는 용들을 바라보며 식겁을 했다.

'나야 내 조상이 마물들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에 살아남은 거라지만, 이드리스 쪽 드래곤들은 분명...
모두 죽었다고 했는데....!'


"........."
리즈는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오페라를 돕기 위해 그곳에 왔건만 오히려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하지만,


'방법은 남아있어. 분명해.
왜냐하면, 아직 결말을 짓기에는 너무 이르다-.'

"마법사 님."
"....네."

리즈는 이아나를 불렀다.
그리고 이아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결의에 찬 그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를 방어할 수 있는 방어막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충격을 최소한으로 컨트롤하겠지만 오차가 생길 수도 있을테니.

...부디 모두를 지켜주십시오."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건가요.."
"네."

리즈는 이아나의 물음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에서는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있었다.
아주 작고 미묘한 차이였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대체 무슨 말을-"
"교장 선생님. 물러서세요."
이아나는 앞으로 나서려는 엔디미온의 가슴팍을 뒤로 약간 밀쳤다.
그리고는 그들을 모두 막는 거대한 방어막을 펼쳐냈다.

그 방어막은 싸우고 있는 블로우 쪽까지도 넓게 생성되었다.



'이건... 저 용들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가. 도대체 누가 이만큼이나 광범위한 방어막을...?'


"디오루그으-!!!!!"
"이크!"
디오는 이아나의 방어막에 한눈을 팔다가 리스펜의 공격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하지만 어쩌면 굳이 피하지 않아도 될 뻔 했다.


"리스펜. 이쯤하면 됐으니 이제 그만 해라."

날카로운 리스펜의 검을, 디오의 등 위에 올라탄 블로우가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블로우의 눈동자는 디오와 같은 세로로 찢어진 마물의 눈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각성한 루드' 가 아닌 '마물들의 왕'ㅜ이었다.


"「명령」이다.
이 인간의 몸을 죽이지 마라."
"......어째서...
어째서 그런 말을...?"
리스펜은 단호하디 단호한 블로우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떨었다. 믿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찬 리스펜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이잖습니까, 당신께서 나를 구원해주신 것 아닙니까..!!!!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애초에 나를 구하지 말았어야했습니다. 나를 구원해주지 않은 채 마계에서 모든 마물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그대로 방치했어야 했습니다-!!!!"
"리스펜."
"왜 나를 구해주어서 당신을 따르게 한 겁니까. 어째서 당신만을 위하도록 나를, 나를...."

리스펜은 말을 그치고는 약간 흐느꼈다.
그의 머릿속에 마계에 있을 때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였지만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약한 자신을 괴롭히는 다른 마물들과

'..이제 날 수 있겠구나.'
그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마계의 「왕」.


"리스펜. 이제 그만하거라. 이 몸을 죽일 필요는 이제 없다, 나는 이미 「왕」이니."
"...지금 죽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까?"
리스펜의 눈이 반짝였다.


"실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왕의 육체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저는 당신의 힘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혹시라도 인간의 몸으로 이동하는 것이 실패할 경우, 그 힘을 다른 인간에게 이식해 왕을 부활시키려 할 생각이었죠."
".........!
설마, 그 힘이란 게.."
블로우의 마물의 눈동자가 서서히 옅어지며 인간의 눈동자로 변해갔다.


"그 힘은 리더시스 디엔 아르티안. 그의 몸에 주입시켰습니다. 아주 힘들었죠, 겨우 찾아낸 129번째 적임자..
하지만 이제 왕이 부활했으므로 보험은 없애도 됩니다. 두 명의 왕은 필요없으니.."

리스펜의 눈동자가 옆으로 휙 돌아가며 리더시스를 바라보았다.


"저 자는 죽이는 것이 좋겠군요."

"-안 돼....!!!"








'제발 더 버텨라, 아티팩트...!'
이아나는 목걸이에 걸린 아티팩트를 꼭 쥐었다. 세실리아의 창조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였다.

그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수 백명의 사람들을 두르는 거대한 방어막을 만들었지만 이젠 한계였다.


"이쯤이면 됐습니다, 마법사 님."
"...황태자 님과 황녀님이 슬퍼하실 겁니다."
"괜찮습니다. 단순한 감정보다는 목숨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이아나는 리즈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당신은 너무 차가워요."


"그동안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마법사 님. 다른 마법사 님께도 제 말 전해주십시오."
"블로우에게 잘 전할게요."

이아나는 슬슬 아티팩트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는 아티팩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그 순간 그 거대한 방어막에서 벗어나있는 것은 리즈와 이드리스를 포함해 부활한 드래곤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쯤 되자 그 옆에 서 있던 시크무온을 제외한 엔디미온과 실비아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리즈가 무엇을 하려하는지.


"....제 아이들에게도 잘 전해주세요."
"네."


"리즈, 리즈-!!!!"
"리즈 님! 왜 방어막의 밖에,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리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렌과 레노아는 리즈가 서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대들을 사랑했다고."

리즈의 차가운 눈동자에 한 줄기 봄의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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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6 11:28 | 조회 : 2,089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여러분 제 일기장을 실수로 삭제해버렸답니다..하..... 어차피 일기 자주자주 안쓰긴 하지만 그래도ㅠㅜㅠㅜㅠㅜㅜㅜㅜ /////// 여러분 다음 챕터의 이름은 여우비에요 왜 여우비인지는 댓글로 추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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