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나를 기억해주었으면(3)

"미안하네...! 제발 살려만 주게, 살려만...."
레토는 두 손을 싹싹 빌면서까지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남자의 공동 이동마법진의 기록을 확인한 나는 당장 도시 크렘벨로 향했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서 그를 찾아냈다.
하지만 집 안과 그 근처를 수색해보아도 루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처, 처음엔 눈치빠른 그 꼬맹이에게 겁만 줄 생각이었어..! 그... 상단에 넘겼는데, 무, 물론 다시 찾으려고 했어!! 근데 다시 가보니까 아이들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알아보니 상단이 마물의 습격을 받아서.....

다 죽었..다고......."


벌벌 떠는 그의 목소리.
그 목소리로 들려오는 이야기.
그것을 모두 다 듣고나서야 난 알 수 있었다.


그건 「벌」이었다.
죄 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던 나에게 내려진 벌.

절대로 깨끗해질 수 없다고, 그 실험이 성공하더라도 넌 루드와 함께 떳떳하게 살 수 있을것 같냐고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었다.
그런 꿈을 꿀 때가 많았다.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란 단어가 나를 짓눌렀다.



"자네에게 그런 어린 동생이 있을줄은 몰랐군. 어쨋거나 보고도 받았을 테고, 직접 확인도 했겠지. 그 노예상단이 중급마물의 습격을 받아 모두 죽었다는 말.
워낙에 난폭한 류의 마물이라 시신도 조각조각나버려 수습하지도 못했다더군."


나는 미켈카르고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루드의 시신 또한 조각나버렸다는 말에 뭐라 답해야할 지 알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때까지도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었다.
루드가 죽었다는 걸 믿고 싶지도 않았고.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 멍한 눈빛인 나를 눈치챘는지, 미켈카르고는 내 얼굴을 힐끔 보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쌓여있던 서류뭉치를 들고 내게 말했다.
"동생일은 유감이지만 이번 일로 자네에게 실망감이 매우 크네. 자네는 분명 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맹세하지 않았는가.."


타악.

미켈카르고의 책상 앞으로 종잇조각이 떨어졌다.


".....실험에 관한 새로운 방법입니다. 아직 완벽하지도 않고, 구멍들이 꽤나 많지만 이론대로라면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폭발같은 위험요소가 존재하기에 지금보다 더욱 폐쇠된 공간이 필요합니다. 참여인원도 최소한으로 두겠습니다.
그러니-

'문' 과 관련된 실험의 모든 권한.
제게 넘겨주십시오."

"......하..하하..
아하하하하-!!!!"

미켈카르고는 무엇이 재미있는지 내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며, 자신의 뛰어난 안목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탑으로 온 이유는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탑으로 들어올 때는 혼자였다.
하지만 함께있는 기분이 무엇인지, 루드와 함께인 게 어떤 건지 알고 난 뒤로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혼자가 싫었다.
실험이 끝나면 함께있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같이 할 아이가 없었다.



"흐음....소환의식이라.
마력이 많이 깃든 마물의 생명력을 죽은 인간에게 부여한다면 살아날 수 있다는 의미인가? 게다가 지론칼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서 만든 마법식이라니, 독특해. 생각치 못한 발상의 전환이군.

확실히 여기의 이론대로라면 마계의 통로와 연결이 되어, 마력도 탐색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겠다만.. 만약 거기까지 성공한다고 해도 그 후엔 어쩔 생각인가?
발견했다 해도 그걸 끌어오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힘이나 다른 제물이 필요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그 상응하는 힘을 가진 자가 없고.''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약속해주십시오.''
''..일단 들어는 보도록 하지.''
''이번 실험이 끝나면 건물 안에 방치되어 있는 시신들을 좋은 곳에 묻어주십시오. 혹여 관련된 가족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과 조금이라도 사과를 드리기를 부탁드립니다.''



"단테오르스 님!! 이대로는 마력이 부족합니다, 실험을 중단시키고 마법석으로 충분히 마력을 보충한 다음에 하는 게...!"


마력을 보충하지 않은 채로 실험을 하는 것은 위험했다. 내가 만든 실험의 이론은 막대한 양의 마력량을 기본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멈출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제 그 정도까지 다가갔다.

남은 것은 하나.
실험을 위한 마지막 제물.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게 마지막이다.'
마법진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을 향해 한 발짝 내딛었다.


"단테오르스 님...? 가까이 접근하면 위험합니다!"

뒤에서 다른 한 마법사가 내게 조심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단테오르스 님-!!!!"


'마지막 제물은 「나」니까...'
이거면 된 거야.
그래.

뒤에서 다른 마법사들이 날 향해 무어라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하지만 이미 반응하기 시작한 마법진의 영향으로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했다.



풍덩- 거리며 마치 강물에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내가 바다에 빠져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나는 드디어 마계로 향하는 통로에 다다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실험은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이론상으로 계산된 장소에 못 미쳤다...'
계획 상으로 나는 마계의 통로가 아닌, 정말 마계를 코 앞에 두어야했다.

중간에 마력이 새어나가서 마법식에 흠이 생겼던 것일지도 있다. 혹은 애초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외부요소가 존재해 실험이 실패했던 것일 수도.


어쨋던 간에 내 실험은 실패했고,


'이젠 아무래도 좋아....
.....음..?'
나는 지친 눈을 감으려다 도로 떴다.
내 발 아래로 수 없이 많은, 하얀 무언가가 있었다.

내 몸은 점점 그 아래로 내려갔고 나는 그 하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백골..?'
실험으로 죽은 사람들의 해골들이었다.


그 순간 눈 앞으로 이야기들이 흘러갔다.


'사, 살려주시오! 집에서 날 기다리는 아이들이-
제발-!!!'
'엄마!! 엄마아!!!'
'흐윽....집에 보내 주세요..'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데-?!'
'이 악마들, 너흰 전부 벌을 받을 거다, 천벌을 받을 거라고!!!'
'제발, 제발...살려달라고요...'


실험에 희생당한 이들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에 얽힌 고통들이 내 머리를 스쳤다.


마지막으로 내 눈앞을 채운 이야기, 그 목소리는-

'형... 나 무서워..'


".........."

루드의 목소리었다.

'엄마는 항상 다른 곳을 보고 있었어, 형.
이제 엄마를 볼 수 없지만 형이 있으니까 괜찮아 나는.'



'이래서 애들은 딱 질색이야. 누가 마음대로 방에서 나오래? 한 번만 더 말을 안 들으면 네 형도 널 보러오지 않을걸!'


'언제까지 이럴거야? 센티아는 원래부터 병들어 있었어. 오히려 우리가 고통없이 죽여준 것에 감사해야 한단 말ㅇ....
....루드. 언제부터 거기 있었니?'
'혹시 우리가 하는 얘기 들었어?'
'.....엄마는 우리가 천국으로 보내주었단다. 센티아는 예전부터 천국에 가고 싶어 했거든.'
'루드도 곧 있으면 엄마를 만나게 될 지도 몰라.'


'이제 돈도 꽤 모았으니... 불안해서 여기 있을 수가 있어야지 원.'
'그럼 저건? 어디다가 팔아야할까?'
'아무데나 팔아버려. 이젠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골칫덩이를 없애는 게 목표잖아.'
'응. 알았어.'



'요즘 아이들을 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요. 워낙에 치안이 강화되어서, 거기다가 탑이 시켰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해라.'
'아휴.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꽤 쓸만할겁니다. 저번처럼 애초에 병들어서 시들시들한 애새끼들은 없거든요.
마법사님께 충분한 도움이 될 겁니다.'


'-마법사? 아저씨. 마법사에요?'
'.....그래.'
'내가..도움이 될 수 있는 거에요?'
'그렇단다.'



'....다행이다.
우리 형도 마법사거든요.'
엄청엄청 대단하고 멋진 최고의 마법사에요.
세상에서 제일 센 마법사가 우리 형이래요.



"............"
입에서 나도 모르게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에서는 고여있던 눈물들이 마를 새도 없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마치 멈출 줄 모르는 소나기 빗물들처럼 눈물은 내 마음을 크게 휩쓸었다.


손을 뻗어 백골을 잡아들었다.
그것과 내 살갗이 닿을 때마다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아팠다. 마법수련을 하다 다쳤을 때도 이만큼이나 아픈 적은 없었다.

무거운 고통에
몸과 마음이 부서져내려갔다.



루드의 이름을 나지막히 부르며, 그 아이의 백골을 있는 힘껏 껴안았을 때였다.


파아앗-.


내 몸보다도 몇 십배는 커 보이는 동그란 원.
세로로 쭉 찢어진 검은 무언가.
그것이 다른 무엇의 눈동자라는 걸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단지.

그 눈동자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어둠이 뿜어져나온 것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어났던 것 뿐이었다.









".....님.
........님!
단테오르스 님!!"
".......!!!"

어찌 된 영문인지.
절대로 떠져서는 안되는 눈이 떠졌다.


"저..정신이 드십니까?!"
"다행이다...!"
주변의 마법사들이 눈을 뜬 나를 보며 안도했다. 그 상황을 보아선 나는 쓰러져있던 모양이었다. 주위의 모든 것들도 실험을 하던 방 그대로였고.

내가 어찌된 영문인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한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그...
마법진에 직접 들어가신 이후 통로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내 반응이 너무 격렬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폭주가 일어났던 모양입니다.
실험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
나는 그 마법사가 무심결에 시선을 옮긴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분명 번쩍이며 마력을 내뿜던 마법진이 사라진, 그저 깊은 웅덩이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럼 내가 보았던 것들은 그저
허상에 불과했단 말인가?



두근.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끼기도 전.
누군가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분명 아는 사람의 소리.
하지만 모르는 것의 소리.
사람이다.
사람이 아니다.
두 생명이 있다.
두 생명이 아니다.


「가까이에 있다-.」



"-단테오르스 님..!!! 어디 가십니까-?!
단테오르스 님-!!!!"
날 부축하려던 마법사가 내 뒷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나는 허겁지겁 실험을 하던 방에서 나서 심장소리의 장본인을 찾아나섰다.
분명 심장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 말고 다른 이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도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달렸다.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루드!!!!"


".......?"


내 동생.
하나뿐인 내 동생.
루드의 소리였으니까-



"..저건..."

내 뒤에는 언제 따라왔는지 탑의 마법사들이 몰려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루드에게로 모여있었다.


"신체변형이 일어나지 않는 아이야 몇 명 있었긴 하지만 이건 좀 특이한 일이군요. 분명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한 뒤에 실험의 장소로 옮겨졌을 터인데, 어쩨서 이곳에...."
"그렇다는 건 혹시 이 아이가 실험의 완성작이 아닐까요? 실험이 성공했기에 백골이던 상태에서 되살아난 것이죠!"
"아- 어쩐지, 실험의 구덩이 속 수많은 백골들이 전부 다 사라져버렸더군요! 그렇다면 이건 엄청난 성과이니 어서 보고를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단테오르스 님?
어서 저것을 미켈카르고 님께-"


푸욱-.


신나게 떠들어대던 한 마법사가 말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차가운 칼이 무언가를 찌르는 소리, 그리고,


"미안합니다."


나지막한 나의 사과가 울렸다.



"이....게 무슨.....!"

마법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붉은 피를 흘리며.



루드를 탑에 보고하게 되면 나와 루드는 다시 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루드는 탑에 의해 또 다른 실험을 받게 되겠지. 최고의 성과가 나올 때 까지 루드에 대한 실험은 계속 될 것이고, 그 최고의 성과는 루드가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성과가 나오면 또 더 나은 것을 원할 테니까.


검을 들었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마법사들을 베었다.



여러번의 기회는 있었지만 끝까지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이제는,



이제는...

4
이번 화 신고 2019-02-03 11:16 | 조회 : 1,516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다음화는 이번챕터 마지막 화입니당. 요즘 글을 써야되는데 왤케 안 써질까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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