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나를 기억해주었으면(2)

"단테오스르 님. 어디 계십니까? 미켈카르고 님께서 급하게 찾으십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쳐놓은 겉옷을 빠르게 입었다. 좋은 성과라면 반드시 당장 달려가야한다.
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꼭대기로 가는 법이 그곳에 있을 확률이 컸다.



"무슨 일입니까?!"
"어서 와서 이걸 좀 보게나!!"
미켈카르고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작은 불빛 아래에 숨을 쉬는 사람 한 명을 보여주었다.
상처 투성이에 가까스로 숨을 쉬는 어린 아이었다.



"실험 과정에서 우연히 딸려들어간 것 같더군. 어쨋거나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덕분에 굉장한 성과를 얻었지 않은가-?!

마계의 막대한 마력이 인간의 수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우리의 이론은 맞아떨어졌네, 심지어 죽었던 사람을 이렇게 살려보냈으니-!!"


그 말을 하는 미켈카르고의 눈빛은 미친 듯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그의 말은 옳지 않았다.
우리가 실험대상으로 사용하던 사람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들 즉.
'어른' 이었다.
한 명 한 명 모두 철저하게 검사를 마친 후에야 실험으로 돌입하는데 우연히 어린아이가 들어갈 리가 없다.

또한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미켈카르고는 아이가 '살아왔다' 고 말했다. 그 말은 그 전에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다는 말이고, 미켈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연히 딸려들어왔다면 원래부터 살아있었을 가능성을 고려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미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를 보고 난 후 미켈카르고와 나는 실험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미켈은 나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실험대상을 바꾸는 것이 좋겠네. 아까 전 그 아이는 금방 죽어버렸지만 성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 성인보다는 아이가 성공할 확률이 크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하지만 미켈카르고 님,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다니....!"
"자넨 다 좋은데 마음이 너무 약해."


".....예...?"
그의 대답에 돌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아이의 또래의 동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미켈카르고의 말에 반박할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당당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근본도 모르는 것 같은 그 인간의 앞에서는
내가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그가 아니라 내가 정신나간 사람 같았다는 말이다.



"여러 제국들과 왕국들의 가장 중심에 서서. 그들을 중재하는 존재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탑」이네.
전 대륙은 우리의 힘으로 안전한 삶을 살아가고있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원해.
우리가 방법을 찾지 못하면 피해를 보는 것은 다수의 인간들이네. 하지만 소수의 희생을 입힌다면 그들은 웃게 되겠지.

단 몇 백명의 희생으로 대륙의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는 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뇨.
아닙니다."

숨을 꾹 참고서 겨우겨우 내뱉은 대답은 고작 그게 다였다.
나에게는 잘못되었다고 다시 한번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 용기 한 번이면 내가 그간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지도 몰랐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실험은 더욱 더 잔혹해져갔다.
어디서 데려온 건지도 알 수 없는 아이들을 마법으로 죽인 후, 갓 죽인 그들을 '문' 속으로 내던진다.


확실히 성인들보다는 성공확률이 높았다.
100명을 던지면 그 중 두 세명은 살아돌아왔으니까.

하지만 그건 살아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만큼 잔인했다.

정신이 온전한 아이는 단 한명도 없었으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잊어버렸고, 하루를 넘기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신체변형이 마물처럼 일어나 마법사들을 공격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럴때마다 우리는 그 반밖에 성공하지 못한 아이들을 다시 한 번 죽였다.

저 너머에는 대체 무엇이 있기에 이런 끔찍한 짓이 일어나는 것인지.


'이대로는 안되겠어, 완성된 이론은 아니지만 이걸로라도 밀어붙여봐야해-'
나는 두꺼운 서류뭉치들을 손에 들고 미켈카르고에게로 걸어갔다.

그 때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만든 이론은 빈틈구성이가 많았지만, 죄 없는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긴 싫었다.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괴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저...단테오르스 님."
그리고 방문을 나선 순간, 탑의 한 마법사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는 내가 나오기를 꼬박 기다린 것 같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을 두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당시의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 마법사는 약간 우물쭈물거리더니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내게 밀어냈다.


".........."
편지였다.
나는 천천히 편지를 받아들었다.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못 드렸습니다. 일주일 쯤 전에 단테오르스 님 앞으로 온 편지입니다.
미처 빨리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원래 갈 길을 찾아 갔다.


''...아차. 내가 여기 가만히 서서..
빨리 가봐야하는데!''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던 나는, 발걸음을 빨리 하는것과 동시에 받은 편지를 펼쳐보았다.

아마도 루드에게서 온 편지일 것이 틀림없었다. 나에게 편지를 올 사람은 이제 루드 뿐이었으니까.
편지가 끊겼다고 생각했던 그 날 바로 다음날에 온 편지가 아닐까 예상하는 나는 편지를 곧장 뜯었다.

그리고 그 안의 지렁이같은 글씨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갔다.



형.
레토 아저씨와 아줌마가 말 하는 걸 들었는데, 아저씨가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줬대.
나도 말을 잘 들으면 곧 엄마를 만날 수 있을거래.
엄마 옆에 평생 있을 수 있다고 했어.

형...

「나 무서워.」



"..........."

온 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피들이 내 몸의 구멍이란 구멍을 다 거쳐 밖으로 솟아올라,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행동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생각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눈 앞이 새카매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게 뭔지 알 것 같다고.



"!!!!!
단테오르스 니-"


다른 마법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내 발걸음을 멈출수는 없었다.



콰지직-!


내 앞을 막고있던 탑의 벽이 힘 없이 무너졌고, 그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나는 이미 그 구멍을 통해 밖으로 뛰쳐나간 뒤였다.




"루드-!!!!!
루드, 어디있어....!!"

레토라는 작자의 집으로 찾아가보았다.
문이 있었지만 흥분한 나머지 벽을 부수고 들어가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살고 있었다는 흔적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도 온 집안을 휘집고 다녔는지 소리가 시끄러웠던 모양이었다.
옆집에 살고있던 주민 한 명이 부스스한 얼굴로 문 밖에 나왔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곧바로 그에게 달려갔다.
"저 집...! 저 집에 살던 사람들, 전부 어디갔습니까-?! 아이는!! 아이는 어디에-"

"ㅇ, 일단 진정하세요!!"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고....! 저 집에 살던 사람 어디 갔냔 말이야-!!!"
"저 집...아, 아!
레토 씨인가 하던 사람..?!
며칠 전에 급하게 이사가는 모양이던데."
"어디로-?! 어디로 갔습니까!!"


"그야 나도 모르지....
아이도 본 적이 없고.."
"........"

흔적이
끊어졌다.


''아니야, 아직 아니야. 어디로 이사갔는지는 금방 갈 수 있어...!''
탑에 다시 돌아가 루드를 찾을 때까지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보고해야 했다.

탑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그곳에 있던 마법사들에게 한동안 일을 쉰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 뒤에 나는 이동스크롤을 사용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거리를 헤매었다.


그러던 도중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제서야 소중한 아이가 생겼는데 잃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이만큼이나 소중한 것이 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울지 않았는데도
울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서 자꾸 그때의 모습이 맴돌았다.
레토 그 인간에게 루드를 맡겨도 되냐고 부탁했을 때, 루드의 표정이 좋지 않아보였다.


루드는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인간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것과, 자신도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고.


"...젠장할, 젠장....!!!"

지도를 들고 무작정 배회했다.
어느 집이던 레토 그 쓰레기가 사는 곳을 찾아야한다. 찾아내서 잡아 죽지 않을만큼만 패야한다.
어쩌면 패죽여도 될 것 같기도 하다.

어쨋거나 그 인간이 사는 집을 찾아야하는데, 어디에 사는지는 알지를 못하니
아무 집이나 문을 두들겨 그 안에 사는 사람이 그 인간인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다면 다시 다른 집을 확인한다.

가장 귀찮고 힘든 방법이지만

나한테는 그 방법 뿐이었다.



"키엘노드."


다음 장소로 향하려던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흠칫했다.


"지역 주민들의 이동기록을 마음대로 확인한 것도 모자라 승인없는 수색명령, 탑의 인력남용까지...
그런데 미친 놈처럼 거리를 헤집고다닐 줄은 몰랐는데.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
미켈카르고였다.

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였고 그의 얼굴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그의 양 옆에는 탑 소속 마법사들이 줄지어 서 있을 것이고, 나를 강제로라도 탑에 데려가려고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말해야만 했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누굴 찾든 간에 이런 식이면 곤란하네. 쯧쯧...똑똑한 인사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건가?"
하지만 돌아온 답은 역시나였다.


다시 한 번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빨리 찾...아야..."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나서야 하는 하루를 꼬박 거리를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실험을 진행하는 내내 아무것도 안 먹고 잠도 최소화하고. 그런 지친 몸으로 이렇게나 돌아다녔으니 마력이고 체력이고 몸 자체가 버텨주질 못하지.
머리 좀 식히게나."


''아.
안되는데...''
이렇게 쓰러지면 안돼-....

의식이
멀어졌다.








「이 일이 끝나면 둘이서 함께 할거야.」

집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크기가 좋겠네.
켈른제국은 너무 추우니까 칸시올 제국에 위치하는 게 괜찮을 것 같고 요리사를 들여볼까. 성장기엔 먹는 게 중요하고 루드는 또래아이들보다 키가 좀 작으니까.
조금 더 크면 학교도 보내줘야겠네. 나처럼 마법에 재능이 있다면 최고의 선생님을 붙여줘야지. 공부가 싫다고 하면 하는 수 없겠지만..
가끔씩 여행을 갔다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먼 곳은 힘들더라도 매주마다 루드와 놀아줘야지. 또...
그리고 또....



"........."

눈을 떴다.

나는 분명 루드의 작은 손을 잡고 탑을 나서는 꿈을 꿨다.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실상은 루드를 찾지 못하고 기력은 소모해버려
침대에 널브러진 나 자신이었다.


"젠장할....."

침대 위의 이불을 꼭 잡았다.
짜증이 치밀어올랐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다시 루드를 찾아나서는 것 뿐이었다.



타악-!

방문을 열었다.
다시 나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문을 나서자,


"아...!
단테오르스 님!"

내게 편지를 주었던 그 마법사가 내 옷깃을 잡았다.


"그... 미켈카르고 님께서는 가급적이면 보고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는 무언가 우물쭈물거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서류뭉치를 내게 건넸다. 무언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 같던 상황이었다.

나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 안에 빼곡히 적힌 글자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자 그는 내게 말했다.



"「파네크 레토」의 시내 공동 이동마법진을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는 자료입니다. 위치는 도시 ''트렌벨'' 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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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29 22:06 | 조회 : 1,489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우와! 제가 없던 사이에 폭스툰에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열업운 저 돈을 벌었어여! 26원! (대박) 저한테 26원을 기부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ㅜㅜㅜ 제가 ㅅ...사...사ㄹ.. 꺄아악 사채쓰지 말라고 당부했죠?!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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