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나를 기억해주었으면(1)

"키엘. 꼭 지금 가야하는 거니...?"
"........."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갈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기에 다른 말은 필요없었다.
곁눈질로 보았던 어머니의 배는 볼록하게 튀어나와있었다.
내 동생이 그 안에 있다고 했다.


귀족의 하룻밤 놀이상대가 된 어머니는 나를 낳았고, 자신을 외면하는 그 남자의 곁에 있기 위해
나를 이 지옥 속에 쳐박아두었다.


「사생아」

나를 따라다니는 이름표였다.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사생아라는 것을 빌미로 주위의 또래 아이들은 나를 괴롭게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돌아올 때면 어머니는 내 상처들을 어루만져주었다.

"...상처가 또 늘었구나.
엄마가 미안하다..."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아주며 따스한 말을 해주려 했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도 작았기에
나에게 닿지 못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날이었다.
평소와 달랐던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어머니의 그 작은 목소리를 듣고만 있을 때,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던 날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날 낳게 한 아버지란 작자는 내가 저택에 들어온 후 어머니를 찾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니 그 사람일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그렇다면 누구의 아이지?'


이 사실이 들켜지면 나와 어머니는 어떻게 되려나.


콰직-!!!


그 순간 내 머리를 강타한 화분에 내 피가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나는 궁금하기만 했다.


이보다 더 심한 꼴을 당하게 될까.
저택에서 쫓겨나는 것일까.

아.
차라리 쫓겨났으면.
어디든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으니까..




"........"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옆에서는 저택에서 들어본 적 없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반응해 눈을 살며시 떴다.


"아. 정신이 드니?"

그 남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눈을 뜨기를 기다린 것 같아 보이던 그는 하얀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로브에는 노란 색의 줄이 그어져있었다.


"머리가 많이 아플거야. 피를 많이 흘렸거든."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그는 약간 머쓱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뒤에 있는 여자에게 물음을 건넸다. 저택에서 같이 살던 붉은 머리의 여자였다.

"부인, 그런데 이 아이의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그녀는 남자의 물음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왜 이런 것의 이름을 묻나- 하는 생각이 가득했음이 틀림없다.



"외부의 마력을 마치 제 것인 양 흡수하는군요. 마력의 순도도 깨끗한 편이고 타고난 마력량도 좋은데, 이런 특성까지 가졌다면... 마법사가 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가졌군요.

잘 교육 받는다면 필시 훌륭한 마법사가 될 것입니다."



나는 그 순간까지도 입을 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그 남자의 마지막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사생아」라는 꼬리표는 더 이상 달고 싶지 않다.
그 대신에 이제는 「마법사」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싶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저택의 도서실에 숨어들어, 마법사에 관한 지식들을 찾아보았다.
어머니는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방 안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았다.
사생아와 그 엄마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마법사가 되기를 결심한 이후 결심하게 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마음 속으로만 몇 만번을 결심했다.
저택을 나가기를.
하지만 번번히 다음을 기약하고 말았다.



"내 아이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발현되지 않는데, 저런 것 따위에게 재능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해.
콱 죽어버렸으면."

저택 내의 붉은 머리 여자.
그녀의 목소리를 몰래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난 진작에 그곳을 나갔어야 했다.
그 지옥같은 곳을 벗어났어야 했다.



"키엘. 곧 네 동생이 태어날거야...
그래도 갈 거니...?"
"........"
저택을 나갈 채비를 하며 나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목표만을 생각하며 살아나갈 것이다.
분면 저 뱃속의 아이도 태어나면 나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겠지. 사생아 소리를 들으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을 일도 없다.

내가 할 일은 하나 뿐이었다.

마법사의 탑으로 가 무슨 짓을 하던간에 위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날 짓밟고 무시하던 개 같은 인간들.
그 녀석들을 전부 내려다보며 비웃어 줄 테다.


"....한동안 볼 수 없을 겁니다.
잘 지내세요. 어머니."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를 때였다.
이름을 바꾸고 새 사람이 되었다.
그 몇 년의 시간동안 목숨의 위협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렇게 미친듯이 일만 하고, 연구만 하고 살아
죽을 힘을 다해 탑의 마법사가 되어


"자네같은 인재를 나는 본 적이 없네!"


인정받았다.


"과찬이십니다."


"다들 자네를 탐내고 있다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그래서 말인데, 우리 네 번째 탑 소속이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욕심을 부렸고
다가오는 기회를 잡았고
나는 성공했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살아갔고
잠을 자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었으며,

내가 목표한 '꼭대기' 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또 온 건가.. 쓸데없이.'

어머니는 매일같이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는 몰랐으나 나는 그것들을 꼬박꼬박 확인했다. 비록 답장은 하지 않았으나.

그리고 어느 날 온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이름 뿐인 아버지의 죽음. 그에 대한 통보.
그리고 성공한 나에게 부탁하는 장례식 참석.
참석하여 장례식을 빛내라는 것만 같은 그 말을 나는 들어주기로 했다.



"키엘, 왔구나!! 어서 오너라."

붉은 머리의 그녀는 검디 검은 치마를 늘어뜨리며 내게 다가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달려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는 웃음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외군요. 이곳에 올 자격이 없다며 내쫓을 줄 알았는데."
"오 이런, 무슨 말을 하는 거니 키엘? 내 남편의 자식이라면 곧 내 자식이란ㄷ-"


"그래서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원래부터 친밀한 관계였단 듯 내미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제 다섯 살 생일 날이었죠, 아직도 똑똑히 기억납니다.
'이 버러지 같은 것. 죽어버려!' 라고 소리치며 창문으로 절 내던지셨잖아요?"
"ㄱ, 그게 무슨...
그건 명백한 사고였어...!!!"

그녀의 뒤늦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이 출렁거렸다. 그녀는 애써 침착해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변명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니
왠지 역겨움이 밀려왔다.

나와 어머니를 그렇게나 싫어하던 저 여자나, 저 여자와 다름 없는 그 자식들.
그 남자 곁에 남기 위해 모든 걸 묵인해오던 어머니와
그들 모두에게 고통받은 나까지.


모두가 너무나도 역겨워서-



"....참.
제 어머니를 내쫓으셨다죠?"
"그...그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이를 어찌 이 저택에 둘 수 있겠니!"


마지막으로 남은 것.


"정말 잘했습니다.
저도 이런 곳과는 영영 연을 끊고 싶었으니까."

최대한 웃는 얼굴로.
이 쓰레기장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내 뒷통수에 대고 나의 욕을 했다. 출세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다느니, 버릇이 없다느니.
물론 대답할 가치가 없는 말이었기에 무시했다.




"...키엘. 네 동생이..."


어머니는 여전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내 동생을 구해주기는 커녕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내 괴로움을 회피하고 묵인하던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네가 훔쳐먹었지? 이 거지가!"


내 동생이라는 그 아이는.

"-아니라니까아!!!!!!"


퍼억-!!


"..........."
나와는 달랐다.


힘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꾸역꾸역 참아왔던 게 나였다. 내가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하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달랐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달겨들었다.
이기지 못할 것이란 걸 알고 있어도 도전해보는 그 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



"말이 되는 소리를....!
지금 저 아이가 그 남자의 핏줄이라는 소릴 하고 싶은 겁니까?!"

책상 위에 놓여진 커피가 휘청거렸다.
앉아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그래. 네 동생이란다, 키엘."
"하...!
그곳에서 인간대접도 못받으면서 살았는데 또 그 인간의 아이를 가진다?!
차라리 누군지도 모를 아이인게 더 나을 뻔 했습니다!"

어머니는 화가 난 내 모습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결국 그녀의 입에서 또 다시 나온 건

"너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 뿐이란다.."

약한 소리였다.


"아뇨. 저는 됐으니 저 애한테나 미안해하세요."

의자에 걸쳐진 겉옷을 챙겨 밖으로 걸어나갔다.
더 이상 같이 얘기를 하다가는 내가 먼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
형이야?"
문을 열고 나오자, 그곳에는 그 아이가 앉아있었다. 문 밖에 쪼그려앉아있던 아이는 나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정말.. 내 형?"
아이의 볼이 발그레했다.
아마 형이 생겨서 기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에겐 죄가 없다.'
그 아이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아이의 얼굴에서 어릴 적 내가 겹쳐졌다.


적어도 이 아이는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름이 뭐야?"
"루드. 루드 센티아!"

'센티아' 는 어머니의 성이었다.
대답을 하는 루드의 눈빛이 반짝였다.


나는 루드의 작은 손을 잡았다.
"뭐...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하루 정도는.

장례식에 다녀오느라 오늘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탑에 알린 상태였다.
마침 하루가 비어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꺼낸 한 마디였다.


그런데,
가볍게 생각했던 그 하루가 생각보다 너무나 무거웠다.

손을 놓을 때 아쉬움이 들었다.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났다.


부스럭-.


"이건....."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는 두개였다.


하나는 변함없이 어머니의 것이었고, 남은 하나는..

'루드!'


편지를 받아든 순간 루드의 웃음이 다시 떠올랐다.

루드의 웃음은 맑고도 깊은 호수같았다. 그 호수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잊을 만 하면 자꾸 떠올랐다.


편지를 받아 펼치자 그곳에는 내가 발로 쓴 것처럼 삐뚤한 글씨들이 줄지어 있었다.
서툴게 쓴 글씨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자아질 수 밖에 없었다.


글씨 참 못 쓴다.
나도 이랬던가? 그랬겠지.
어쨋든,

귀엽네.



편지를 주고 받은지가 1년이 다되어갈 무렵, 어머니의 이웃인 레토 아저씨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어머니도 어떻게 보면 내가 힘들어하던 그 시기의 가해자나 다름 없었으니.

단지.
혼자 남아있을 그 아이가 걱정되었다.



아이에겐 보호자가 필요했고, 나도 루드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난 중대한 계획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시간을 뺏겨서는 안되었다.



프로젝트의 중요내용은 간단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


"우리는 그 해답이 이곳.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네.
다른 세계. 아마..
「마계」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미켈카르고의 말에 따라 우리는 마계에 대한 연구에 불을 붙였다.
마계로 이어지는 「문」을 토대로 만들어진 마법과 지식의 결합체. 우리만의 방식인 '문' 을 통해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실험이.


"사, 살려줘...!! 난 아직 죽고싶지 않아-
으아아악-!!!!!"


사람들을 죽여서 그 '문' 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그 짓거리를 했던 것은
루드와 나.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할 수 있을 미래를 만들기 위해 참았던 것 뿐이었다.


계속해서 보내오는 루드의 편지에 답할 시간도 없었다.
밥을 먹으며 편지를 빠르게 훑어보던 것이 다였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의 편지가 끊겼다.
화가 난 건 아닌지.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을 기약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여느 때처럼 내 방에 틀어박혀, 풀리지도 않는 수식들을 기계마냥 풀어나가고 있을 때.


"단테오르스 님! 미켈카르고 님께서 찾으십니다, 긴급 호출입니다!!"

탑 소속 마법사의 말을 듣고 나는 실험장소로 달려나갔다.

미켈카르고가 긴급 호출을 할 때에는 이유가 하나 뿐이었다.



좋은 성과가 나왔을 때.

3
이번 화 신고 2019-01-25 11:25 | 조회 : 1,571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키엘노드와 루드의 과거이야기는 블헤 내용중에서도 제 최애이야기에요!! 그래서 체블과거편처럼 줄이지 않고 쭈욱 적어봤어요.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

후원할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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