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본격적으로(6)

"리나, 너 지금 정신이..!"
"...피해!"
리더시스의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 스쳐지나가며 보였다.
뒤에서는 파란색의 마력이 날아왔다.

"뭐야?"
나는 침착하게 피하면서 소리쳤다.
마력이 날아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아까 전 노란 머리의 헤레이스가 서 있었다.
분명 아까까진 쓰러져 있었는데.


"너희들, 다 죽여버린다..!"
그가 목걸이에 걸린 아티팩트를 쥐고는 말했다.
아티팩트에서는 방금 전의 파란색 마력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라마.엘.크루스.펠..."

'...마법.'
나는 체블이 외우는 마법 주문을 듣고는 약간 움찔했다. 마법을 쓰면 상황이 꼬이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엘라이스', 즉 마법에 특화됬단 소리다.
마법을 잘 사용한다는 건데, 우리가 마법으로 싸워 이기려면 판이 좀 커져야 할 지도 모른다는 소리.

"오빠. 쟤 능력속성 뭔지 알아?"
"내가 알겠어. 저 선배 본것도 이번이 두번째밖에 안돼."
"두번째? 오빠 언제 저 남자 만난 적 있..."

"..환상. 능력.....환상이야."
리더시스가 조심히 내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환상?"-나
"리나! 속성 알아서 뭐하게? 설마 지금 싸우기라도 할거야?!"-루드
"아니 꼭 그렇단 건 아니지만 속성을 알아야 방어라도 할 거 아냐."-나
"방어하지마! 그냥 다 같이 피하면 되잖아, 굳이 네 마력를 소모하면서 까지-"-루드


".....피해."
나랑 오빠가 실랑이를 벌이는 도중에 리더시스가 말을 잘랐다.

"내가.... 나한테서 떨어지라 했잖아. 여긴.... 내가
어떻게 해볼.. 거니까.... 빨리 피해.."

'하지만 리더시스. 널 놔두고 가기엔 너,
너무 떨고 있거든.'
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리더시스의 다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눈물나는데!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네 편이 생겼다고 그러는 건가?
이.... 괴물놈이!"
"-?!"
체블은 소리 치며 뛰어서 리더시스의 머리를 손으로 눌러 바닥에 내리쳤다. 리더시스는 큰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졌다.

"내가 원하는건.... 끝없는 악몽."
역시 리더시스의 말대로 놈은 환상계열이 맞는 것 같았다. 난 이 상황을 어찌 할 줄을 몰랐다.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건 저 남자를 막는 것 뿐이다. 이미 발동되어버린 환상마법을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환상마법을 푸는 마법은 잘 모르는데, 어쩌지..'
일단은 그것보다 아주 조금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이게 뭐하는 겁니까?!"
오빠가 꽤 화가 난 것 같다는 거.

"리더시스, 괜찮아?"
나는 오빠의 곁에 누워 있는 리더시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으.... 안돼...."
"..뭐야. 도대체 뭘 보고 있는거지?"

"난 저 괴물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한번 더 알려준 것 뿐이야.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놈한테는 자기 주제를 알려 줘야지, 안그래?

그런 내 기준에서 너희 둘도 주제를 모르는 것 같은데. 너희도 환상을 보여줄까? 혹시 잊고 싶은 기억있어?
내가 친절히 보여줄게."

오빠가 화가 나는 거에는 항상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 남자가 하는 말은 정말 누가 들어도 화가 날 정도의 말이었다.

"..개자식."
"-뭐?!"
난 작게 중얼거렸다. 체블은 내 말을 들었는지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한 대만 때려버릴까.
한 대 정도는 괜찮을 거야.'
나는 주먹을 꽉 쥐고 하얀 마력을 조금 실었다.
오빠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아무말 없이 나를 보았다.

'한대, 정확히 한대만..!'

"잠깐!!"
"-!!!!"
내가 때리려고 손을 들려던 찰나, 한 교수가 달려와 소리쳤다.
칸 교수였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맞았던 것 같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체블 폰 하델리오! 교내에서는 마법사용이 금지인 것을 잊었습니까?!"
교수가 체블을 혼내려고 하다가 쓰러진 리더시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세상에, 아르티안 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
-



"크리시 군. 자네가 학교건물 4층난간에서 뛰어내렸다던데 사실인가?"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럼 크리시 양, 크리시 양이 크리시 군을 뒤따라
미친 소처럼 복도를 질주했다는 건?"
"거짓입니다. 전 그런 적 없습니다."
나와 오빠는 교수의 질문에 딱 잘라서 대답했다.

'거짓말...! 내가 똑똑히 봤어!'
교무실 밖에서 우리 이야기를 훔쳐들은 한 아이가 소근소근 소리쳤다.

"하하하!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네.
신고한 아이가 장난이 좀 심했던 것 같네.
무엇보다 둘다 선천적으로 몸이 안 좋은데 그렇게 팔팔할 리가 없지, 그렇지 않나?"
"........."

오빠는 병약한 남매 설정을 까먹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어색하게 조금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


'...전학 온지 얼마나 됬다고 교무실 견학이야.'
나는 교무실의 문을 닫으며 이 생각이 들자 조금 우울해졌다.

"아 오빠.
아까전에 너무 정신없어서 그랬는데, 오빠 숙소 인원이 배정됬다더라. 숙소 카운터에 가서 오빠 서명하면 된대. 좀 있다가 수업 마치면 같이 가서 서명 같이 하고 가자.

아줌마가 그거 말고도 또 뭐 줄게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같이 받아가고."
그래도 내색 안하고 오빠한테 할 말은 다하고 있는데.

"루드!! 리나!!"
디오가 빠르게 누군가를 찾는듯이 걸어다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아, 디오."
"디오, 오랜만이네. 나는 오늘 처음 보는 거 같다."
나와 루드 오빠는 태연하게 디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디오는 그 모습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너희 왜 이렇게 태평해!!"
"태평하면 안 될 이유라도?"
난 정말 몰라서 이렇게 묻자 디오가 호들갑을 떨며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 그거 사실이야? 루드 네가 리더시스와 술래잡기 하다가 체블이랑 한판 싸워서 옆에서 끼어든 리나까지 한번에 다 묵사발 났다는거!"
"그 소문 낸 출처가 참 궁금하네."
내가 살벌한 표정을 짓자 디오가 시선를 피했다.

"일단은 리더시스한테 가자."
"뭐? 왜? "
"가서 물을 것도 있고.."
오빠가 나를 진정시킴과 동시에 디오에게 말했다.



-



"선생님. 리더시스 있나요?"
오빠가 보건실의 선생님에게 묻자 선생님이 대답했다.
"응? 리더시스라면 방금전에 나갔는데?"

"루드, 왜 자꾸 리더시스에게 집착하는거야?"
디오는 오빠의 행동이 못마땅했는지 오빠에게 질문을 던졌다.

'의뢰 때문이라곤 절대 못 말하지.'
오빠도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겨우 입을 떼곤 대답했다.


"저.. 디오. 난 예전에...
리더시스처럼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어. 그래서, 리더시스를 보면 예전의 내가 생각나서 도와주고 싶어져...."

오빠의 연기력은 정말 대단하다.
아련한 듯한 표정과 약간의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듯한 눈동자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까지.
오빠는 마법사가 아니라 배우가 됬어야 했나.

오빠의 대답에 디오의 눈에는 금새 눈물이 맺히더니 자기도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디오 쟤도 참 마음이 종잇조각같이 얇다니까.


"........."
오빠의 대답에 나는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오빠의 변명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니까.

'하필 대답을 해도 그런 대답을.'


우리는 보건실 근처의 물품보관실의 문을 살며시 열었다.
저번에 이곳에서 리더시스를 만난 적이 있으니 또 여기 있을 가능성고 높고, 보건실이랑 제일 가까운 방이니까.

"저기 루드, 여기는 없는 것 같은데?"
아까 우릴 도와주겠다던 각오는 어딜 가고 디오가 우리에게 말했다. 말하는 말투에서부터 '리더시스를 찾고 싶지 않다' 가 드러났다.

"저기 디오. 일단 제대로 보고 말해."
나는 상자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속에는 리더시스가 땅을 파며 우울하게 앉아있었다.

"야. 뭐하냐, 땅 파?"
오빠가 먼저 리더시스에게 말을 걸었다.

"너. 체블이랑 뭐 있지?"
난 그 상자더미에 팔을 약간 기대면서 리더시스를 보고 말했다. 리더시스는 내 질문을 듣고는 흠칫하더니 말했다.

" 상관없잖아... 너희랑 상관없는 일이야.."

난 그 말에 조금 짜증이 났다. 소심한 성격도 정도가 있어야지 라는 생각이랄까.

"그럼 체블에게 직접 가서 묻는 수밖에. 네가 말을 안해주는데 어쩌겠어."-나
".....!"-리더시스
"이건 너랑 상관없이 내가 가서 묻는 거잖아. 그러니 너도 신경 꺼."-루드 오빠

오빠도 내 말에 맞장구를 치듯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리더시스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꾹 닫고 얼굴을 다리사이에 파묻었다.

나는 그런 리더시스를 뒤로 하고 진짜 문을 닫고 나갔다.



"리나! 너 진짜 체블에게 가서 물어보게?"
디오가 빠르게 걸어가는 나를 뒤따라 오며 물었다.
난 뒤로 빙글 돌아서서 걸으며 말했다.

"물으면 좋다고 대답해주겠다."-나
"그럼 이제 어쩌게?"-오빠

오빠가 묻자 나는 망설였다.
사실 제대로 생각해본 건 없었으니까. 약간의 오기랄까. 그런 것이 발동해서는 리더시스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고 온 거였다.

"글쎄. 어떡할까."-나
"리나, 조심해!"-디오

"어..?"
나는 뒤를 보며 걷다가 다른 사람과 발이 걸려 넘어졌다.

"아야..."
일어서면 튀어 보일까봐 일부러 안 일어서고 넘어졌는데, 그냥 일어설걸.
이런 후회가 들던 와중에.


"이거 뭐야. 웬 발깔개가 누워있잖아?"
누군가가 내 머리에 발을 올리고선 말했다. 발로 머리를 꾸욱 누르고는 서 있었지만 난 고개를 아래로 숙이지 않았다.

"....어느 미친새끼가 사람을 발깔개로 착각할 만큼 눈이 삐인거지."
내가 몸에서 하얀 마력을 내뿜으며 남자를 보았다. 화가 났으니까, 온 몸에 힘을 주고서는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잠시 주춤하더니 내 머리카락을 쥐어잡으며 말했다.
" 뭐야. 너 그 자식이잖아? 한번만 더 걸리면 죽여버린다던 놈."

"그건 나다."
오빠가 사람들 틈에서 나오며 말했다.
목소리에 무게감이 있는 걸로 봐선 오빠도 꽤 화가 난 것 같았다.

저 남학생, 하던 말을 보아 예전에 강당에 소집이 있었을 때 오빠와 소란이 있었던 녀석인 모양이었다. 오빠랑 살짝 부딪혔는데 죽여버리겠다고 난리를 피웠었나.
그때도 짜증났는데 이번에는 더 짜증이 났다.


나는 내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세게 잡았다.
"아아악!"
그 녀석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뺐다.
나는 넘어졌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넌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보네."
그 남자는 당황하다가 이내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며 말했다. 허둥지둥하는 꼴이 싸움도 몇 번 안 해본 티가 났다.

"그 입 안닥쳐?! 평민주제에, 너희 지금 뒤에 계신 분이 누구신지는 알고 있어?! 로아의 제 1왕녀 비앙카님이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차 그 나라를 수호하실 차기 8대 일리아님이시라고!!
왕녀님, 이 학생들을 조금 손봐줘도 될런지요?
학교소개식때는 너무 정신없어서 그냥 갔는데.."
제르딘은 뒷쪽에 팔짱을 끼고서는 내려다보는 사람에게 말했다. 말하는 어조는 딱 들어도 아부를 떠는 어조.

"글쎄요~ 학교 안에서는 평등이 중심원칙인지라..
하지만, 학교 밖은 그렇지 않지요. 그러니 학교에서 미리 그 계급을 배우고 가는게 좋을 듯 합니다."

비앙카라는 여자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우리를 비웃는 것이었다.

'장난감.'
우리를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심심하니 한번 가지고 놀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재수 없는 새끼들.."
나는 중얼거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 여기서 능력이 잘못해서 드러났다간 인생이 골치아파져.'
어느새 나와 오빠, 디오만 있던 복도에는 학생들이 다들 몰려와서는 구경을 하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럼 제르딘 군, 원하는 대로 하세요."
비앙카가 새침한 듯이 말했다.
저런 여자가 왕녀라니 로아라는 나라의 미래가 뻔히 보이는 듯 했다.

"들었지 너희? 너희 둘 쌍둥이 인것 같은데, 둘이 같이 3대씩만 맞자."
남자가 장갑을 끼더니 장갑 안에서 무언가가 '철컥' 소리를 냈다. 철이나 마석조각 같은 단단한 것이 들어있는 듯 했다.

'장갑안에 뭔가 있다. 잘못하면 큰일나.'
내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오빠를 보았다.
오빠는 조금만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그때,
"아이고오~!! 이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렇게 반갑지는 않은 목소리였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예상이 가는 목소리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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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7-25 08:22 | 조회 : 2,591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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