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본격적으로(7)

렌이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

" 3학원의 기본 이념은 평등아닙니까? 어떻게 그 기강이 이렇게 무너질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창조의 마녀의 자리가 공석이라 한들 말입니다!!"
언제 왔는지 렌이 학생들을 상대로 선동을 하고 있었다.

"와... 쟤 말을 꽤 잘 하는구나?"
옆에서 디오가 안심 섞인 감탄을 했다. 그래도 상황이 전 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너 이자식. 왕족을 능멸하는거냐..?!"
"능멸이 아니지요. 사실 아닙니까. 그리고 왕녀님의 나라인 로아에서 일리아님을 차기 8대로 내세우셨으니, 그녀의 의견을 듣는것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렌은 비앙카를 상대로 약간 깐족대면서 맞는 말을 해댔다. 비앙카는 속이 타들어가는지 이를 약간 으득 씹었다.
그러던 도중 일리아라는 여자가 왕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어... 저는 그게... 그, 일방적인 폭력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일리아님은 제대로 된 큰 그릇을 지니고 계시군요!
자, 그럼 이만 수업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모두 각자의 반으로 이동하는것이.."
"잠깐. 누구 마음대로?"

비앙카는 모두 시시하다며 돌아가려는 학생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제르딘 군. 장갑을 던지세요."
"ㄴ,네?!"

'장갑을 던지라니, 그건..'

"저런 천한 것과 결투를 벌이라니요?!"

'역시, 결투.'
예로부터 힘을 중요시여기는 학원인 라이오네에서 전해져내려오는 결투신청법이 바로 상대방에게 장갑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장갑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투를 받아들이겠다는 찬성의 의미.

"하는 수 없죠. '고고'하신 마녀님께서 '폭행' 이라 하시니 정정해야죠."
비앙카는 특히나 '고고' 라는 단어와 '폭행' 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비꼬는 거네.
난 황당함에 그 상황에서 약간의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래도, 귀족의 체면이 있지 않습니까아..."
"닥치세요. 졌다간 그대로 본국으로 돌려보내겠어요."
안절부절 못하는 그 남학생에게 비앙카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 남학생은 역시 실력만으로 정당하게 이 학원에 들어온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결을 한다는 말에 저리도 불안해하지는 않겠지.

뭐 어쨋든.
'다행이다 그래도. 대결이라면 적당히 져주면 되니까. 솔직히 맘같아선 실컷 때려주고 이기고 싶지만 그러면 학교생활에 지장이 좀 많이 있을 거 같고.'


"야. 내가 대신 싸울까? 너 여자여서 싸우는 거 조금 꺼릴 거 같은데?"-렌
"갈리고 싶지않으면 닥쳐라."-나
"근데 저 자식 쫄아서 장갑도 못 던질거 같은데?"-렌

퍼억-.
"....!"
렌이 내 말에 웃다가 한순간에 갑자기 웃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왜?"
내가 이유를 몰라 렌이 보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장갑을 손에 쥔 오빠가 있었다.

"...뭡니까?"
오빠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애, 애초에 트러블은 너랑 나 둘이 있었으니 우리 둘이 끝을 봐야지! 저기 저 여자애랑 주황머리애는 빼고 말이야!"
제르딘이 말을 조금 더듬으며 말했다. 여간 겁이 나는 게 아닌가 본데 용케도 장갑을 던지기는 했네.

"그럼, 결투가 결정된 겁니까? 좋습니다."

'역시 우리 쪽 의견은 묵살 되는 건가.
권력 남용인데.'
나도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정식 수업이 마치는 시간은 4시. 그럼 오늘 방과후4시 5분에 연무장에서 결투가 있겠습니다.
모두들 해산하세요."


'야, 보러가자!'
'당연하지. 나 이 학교와서 꼭 보고 싶었던 게 연무장에서 하는 결투인데!'


다른 아이들이 수군대는 게 다 들린다.
내가 슬며시 그들을 째려보자 아이들은 눈치를 슬슬 보더니 도망갔다.

"오빠 미안. 내가 앞을 잘 보고 걸었어야 했는데.
잘못한 건 난데 왜 오빠가 결투을 해야 하는 건지.."
"리나. 잘못한 건 네가 아니라 그 자식이야.
그 자식 네 머리에 발을 올리고 밟았잖아.
차라리 이걸 기회삼아 나도 똑같이 밟아주는ㄱ-"

나는 오빠의 말에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휘저었다. 그러지 말라는 표시였다.

"안돼, 장외패로, 적당히 져 줘야돼. 오빠도 알고 있잖아. 안 그러면 괴롭힘이 계속 될지도 몰라."
"...노력해 볼게."
오빠가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나라도 못마땅했겠지만 우리가 참아야지 어쩌겠나.

옆에서는 디오가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서로 엄청 아끼네..' 라며 중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못할 줄 알고 중얼거렸나 본데 나랑 오빠는 다 들었을 것이다.


"근데 둘이 쌍둥이야?"
갑자기 렌이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어."-오빠
"헤에... 니 오빠가 얘였구나."-렌
"나한테 오빠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나
"아 그거.. 애들한테 물어봐서 알았어."-렌
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렌을 보자 렌이 내 눈을 피했다.

"얘들아!! 우리도 이만 가자!"
디오가 우리에게 울상을 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무래도 아까 전의 상황이 겁이 났던 모양이다.
디오는 겁이 너무 많다니까.

"그래. 디오 말대로 빨리 여길 좀 나가자."
"아,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원래 여기 오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렌이 또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오빠. 우린 빨리 숙소로 가자."
난 멀어져가는 렌을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오빠에게 말했다.

"어? 너희 왜 점심 안 먹어?"-디오
"난 컨디션 안 좋아서 안 먹을건데."-나
"나도 안먹어. 짜증나서 밥 안 넘어갈거 같아.."-오빠

"그럼 나도 안 먹어!"
디오는 우리를 쫄래쫄래 따라오며 외쳤다.


"저기 오빠. 우리 오늘 왜이렇게 운이 없는 거 같지?"
"어? 왜?"
오빠는 조금 기분이 풀렸는지 순진하게 되물었다. 디오는 잠깐 교실에 두고 온 것이 있다며 먼저 갔을 때였다.

"학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교무실 견학에 리더시스한테 말은 다 씹히고. 싸가지들이랑 결투까지 하고 머리는 짓밟히고."
"......."
오빠는 아무 말 없이 내 짜증을 들어주었다.


나는 뭔가 기분이 틀어지면 그게 오래간다.
다른 말로 하면 뒤끝이 길다고 말 할 수도 있겠다.

나와 오빠는 꽤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나와 다르게 오빠는 화를 낼 때도 차분하게 화가 난다.
솔직히 그게 더 무섭지만.
하지만 나는 오빠보다 훨씬 더 빠르게 화가 나고 일단 화가 나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힘들다.
그냥 화 나면 다 때려부순다라고 말하는게 더 말하기 쉬울 지도 모른다.

'솔직히 아까전에도 이 바득바득 갈면서 겨우 참았지.'
그래도 난 참을성이 예전에 비하면 굉장히 나아진거지만.

"리나 크리시 학생!!"
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숙소 아줌마가 나를 불렀다.

"서명하고 가야지! 아까전에 못하도 갔잖아.
아, 리나 쌍둥이 오빠랬지? 이름이.... 루드 크리시?"
"네."
"여기 서명하고 이것도 받아가."
아줌마가 말을 끝내고 책상 위로 쇼핑백 2개를 올렸다.

"이게 뭐죠?"
서명을 다한 내가 쇼핑백을 받아들고 물었다.
"안을 한번 봐봐."
아줌마의 말에 내가 쇼핑백을 부스럭대며 펼쳐보았다.

"뭔데?"
오빠가 나에게 묻자 내가 대답했다.
"....교복!"
헬리오스의 이든 문양이 찍혀진 교복이 각 쇼핑백에 나란히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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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걸 깜박하고 안 보여줬네....
뭐, 나중에 다시 내려오면 그때 보여주면 되는거지."
숙소건물의 카운터 자리에 서있던 아줌마는 조금 중얼거리며 종이 한 장을 책상위로 꺼냈다.
종이에는 리더시스의 이름과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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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내 방까지 갖다 줄 필요는 없는데.
거기다가 너 몸도 안좋다면서. 그거 다 거짓말이었어?"
오빠 방으로 교복이 담긴 쇼핑백을 갖다주는 나에게 오빠가 말했다.

"무, 무슨 소리야.나 아직도 머리 좀 아프다고.
오빠랑 좀 얘기하고 싶은 이 동생의 생각을 헤아려 줘."
난 거짓말 친 걸 들킬까봐 머리에 손을 갖다대며 말했다. 덤으로 좀 피곤한 듯한 표정까지.

"그나저나, 루드 너랑 내가 같은 숙소라니 신기하다! 어떻게 방 배정이 이렇게 될 수 있지?!"
옆에서 디오가 신나하며 루드에게 말했다.

나와 오빠가 방배정을 확인하고 싸인을 하며, 교복을 받고 있을 때 디오는 잠깐 볼일이 있다며 다른 곳을 갔다. 그리고 우리가 루드 오빠네 숙소 쪽으로 가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같은 복도를 걸어가고 있던 디오는 나와 오빠가 그 앞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뒤에서 뛰어왔다.

디오는 자기 숙소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자기 방을 찾아서 문을 열려고 했을 때, 오빠와 디오의 손이 겹쳐졌다.

즉.
같은 숙소의 방문을 열려고 했다는 소리였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숙소 아주머니가 준 표에 써져 있었으니까. 디오의 이름이 떡 하니 말이야.

'난 그것보다 오빠가 렌이랑 같은 방이라는게 더 걱정이야. 오빠와 친구가 되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건 사실이지만 같는 숙소면 오빠가 꽤 힘들텐데.
여러모로 피곤할거야.'
난 오빠의 숙소배정 표를 떠올렸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였던 렌의 이름이 있었다.

"근데 미림이라는 애가 궁금해. 그 애도 우리랑 같은 숙소잖아! 숙소안에 있으려나?"
디오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문 연다..!"
디오가 설렌다는 표정으로 손잡이에 댄 손을 돌렸다.


끼이익.
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숙소방은 꽤 넓었다.
이어져 있는 방은 두 개였고 침대가 5개.

오빠도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중얼거렸다.
"? 왜 침대가 5ㄱ-"
"와아!! 룸메이트 분들이시죠? 안녕하세요!"
안에서 뭔가 설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앞의 디오와 오빠에게 시야가 가려진 나는 혼잣말로 말했다. 오빠와 디오가 슬쩍 자리를 비켜주자 나는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와아.."
숙소의 안쪽 방은 파릇파릇한 식물로 대부분 자리가 차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개운해지는 숲에 온 것 마냥 식물로 가득 차 있는 곳.

"저는 이 방에서 머무르게 된 미림이라고 해요!
신입생으로 원프레드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룸메이트 분들께 이거 드릴게요!"
미림이라는 아이는 디오와 오빠에게 각각 식물이 담긴 화분을 하나씩 주었다. 얼떨결에 나도 하나 받긴 했다. 그건 내 침대 옆 창틀에 두었지만.

디오와 오빠는 침대 위에 어리둥절하게 앉아있는 리더시스처럼 화분를 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잠깐만.


"리더시스?"
난 분명 카운터의 아주머니가 내어준 룸메이트 표를 잘 보고 왔다.
분명 그곳에는 오빠를 포함해서 한 방에 4명만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째서 리더시스가 들어있는 거지.

디오도 그제서야 상황 파악을 하고 경악을 했다.

"ㄱ...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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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7-26 09:49 | 조회 : 2,078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오늘은 조금 늦었습니다 ㅠㅠㅠ 그래서 내일 올릴까 하다가 매일마다 한개씩 올리기를 실천하고 싶어서 늦게라도 올리게 되었습니당★ 오늘도 부족한 제 소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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