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본격적으로(4)

"야, 얘기 들었어? 괴물이랑 같은 방 쓰는 애 있대."
"맞아. 걔 반에서도 옆자리에 앉았다던데."
"와- 불쌍해. 괴물이 어떤지도 모르고 그러는 거 아냐. 괜히 체블한테 찍히는 사람만 늘어나겠네."
학교의 복도와 교실은 온통 이 얘기로 가득했다.
자신들의 '괴물'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

"잠깐. 그 얘기- 나한테도 좀 더 해주면 안되나?
나도 더 듣고 싶은데."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이는 이든뿐이 아니였다.
클라드들도 이 이야기를 흥미로워 했고,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마논이었다.


"저기 루드." -디오
"어, 왜?"-루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 공자는 그다지 신경도 안쓰고 우리 말은 다 씹히기만 하고, 소문은 다 나고."-디오

"글쎄. 그다지 신경 안쓰는것 같진... 않았어."
루드는 책을 거꾸로 들고 태연히 읽는 척 하던 리더시스를 떠올렸다.

"장난하는거 아냐 루드. 우리 둘 아니 셋이 이런다고 상황이 바뀔거면 진작에 바뀌었어."
"수가 적다 이거야? 그럼 우리편을 많이 만들면 되겠네!"
"루드으..."

디오는 여전히 긍정적인 루드의 말을 듣고는 절말했다. 루드는 그런 디오를 뒤로 하고 옆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와서 그만두기엔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곳에는 클라드 등급으로 보이는 헬리오스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와서는 디오와 루드에게 물었다.

"너희가 디오 바루스, 루드 크리시냐?"
"네, 저희가 디오와 루드가 맞습니다."
"따라와. 너희에게 볼일이 있다."

여러 명의 클라드 무리가 디오의 어깨를 꾸욱 눌렀다. 그건 따라오라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루드는 겁을 먹어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디오의 팔을 붙들고 대답했다.

"그러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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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는 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오빠에게 말했다. 저번에 대강당에 모일 때에도 렌과 얘기하느라 조금 늦었는데 이러다가 교수님들이 안 좋게 보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상관 없어.'
어차피 그런 건 딱히 큰 상관 없으니까 뭐.


"어디 아파?!"-루드
"나 머리가 조금." -나
"괜찮아? 정 힘들면 치료마법 써.."-루드

정말 걱정하는 것 같은 오빠의 얼굴 표정을 본 나는 좀 더 연기력을 뽐내보았다.

"아냐. 그런데 마력을 낭비할 순 없잖아.
게다가 여기서 내 마력이 쓰이면 흔적이 남아서 발목을 잡힐수도 있는 걸. 그냥 여기서 누워 있을게. 괜찮으면 나가서 수업도 좀 듣고 할게. 잘 갔다와."
"..알았어. 좀 푹 쉬어."

마지막까지 오빠는 걱정하는 듯이 나를 보다가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갔다.
사실 머리같은 건 아프지도 않았다. 오빠한테 거짓말 한건 유감이지만,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힘들다.
어느정도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난 아직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걸까.
그런 기억은 없는 게 나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난 내 머리를 세차게 휘저었다.

'아니야. 그 기억이 있어서 내가 버틸 수 있는거야.'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바람이 조금씩 내 볼을 스쳤다.
나는 바람이 좋다.
그녀는 창조지만, 바람을 닮아있었다.
그런 그녀가, 바람이 좋았다.

-꽃밭.
저 멀리 학교의 정원이 보였다. 봄이라 그런지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다. 그 꽃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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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루드 크리시냐"
"네."
갈색머리의 클라드.
마논이라는 이름의 학생이었다.
그는 루드와 디오 앞의 의자에 건방지게 걸터앉아서 물었다.

"무슨 일로 불렀는지는 알고 있겠지."
"잘 모르겠는데요."
루드는 상큼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막 들어온 이든 신입이라 그런지, 겁을 상실했군.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괴물에게 더이상 접근하지 마라."
"괴물요? 이 학교에 괴물이 있습니까?"
"장난치지 마라. 난 장난을 싫어해.
그 괴물과 가까이 해서 손해보는 건 너희다."

루드는 장난기를 한번에 없애고는 눈웃음을 짓던 눈을 살며시 떴다. 그 눈으로 마논을 바라보며 루드는 물었다.

"..충고입니까?"
"아니. 이건 경고다."


-



"경고. 경고라…"
"루드. 이제 어쩌게?"
디오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에 반해 루드는 담담히 해결방안을 생각해냈다.

"일단 내막 쪽을 알아봐야지. 우리 편도 좀 만들고."
"어떻게 알아보게? 아이들도 다 우릴 피하고, 선배들한테 찍히기 까지 해서 알아보는게 쉽지가 않을거야.."
디오는 루드의 눈치를 보며 슬슬 말했다. 루드가 그런 디오를 정면에서 보고는 당당히 말했다.

"제일 쉬운 방법이 하나 있잖아."
"뭔데?"
"직접 묻기."
"............"

"디오 너는 아군이 되줄 사람을 찾아봐줘. 그럼 부탁해!"
디오는 달려가는 루드의 뒷모습을 벙찐 표정으로 보았다.


-


"저기 얘들아."
"히이익!"
'..왜 이렇게 놀래.'
루드는 저번에 디오가 리나를 보고 놀랬던 걸 생각하며 동병상련을 느끼는 듯 했다.

"혹시 리더시스 어디 갔는지 알아?"
"모, 몰라!"
학생들은 루드와 리나가 처음 전학을 와서 소개되었을 때와 달리 비협조적이었다. 전부 시선을 회피하고 말을 섞이기를 원치 않는 듯 했다.

리더시스를 공개적인 괴물로 만들어버린 체블이란 사람에게 찍힐까봐 두려운 것이다.

정보 구하기 참 어렵네.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복도를 돌아다니던 루드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괴물이라면-"
어디선가 들리는 부드럽고 얇은 목소리.

"물품창고로 갔어. 눈을 가리는 긴 회색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거의 확실해."
기다랗고 하얀 머리를 가진 이엘이었다. 루드와 같은 반 학생.


" 아 고마워."
루드는 가려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그 여학생에게 돌아갔다.

"근데 내가 찾는건 괴물이 아니라 리더시스야."
"............"
루드는 이 말을 끝맺고는 리더시스가 있다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엘은 루드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밀던 루드를 다시 떠올렸다.

얼굴이 조금 발그래 해졌다.
'....왜?! 내가 왜 얼굴이 뜨거워지는거야?!'
주위에서는 왜 저런 애에게 대답을 해주냐며 말했지만 이엘은 지금 그런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


'이쯤이면 되려나.'
루드는 건물통로애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물품창고로 가려면 이곳을 꼭 지나야 한다던데, 어디있지. 설마 너무 늦게 온건가..'
그때, 리더시스가 손애 마력구를 한가득 들고 등장했다.


'저기있다.'
"리-"
루드는 순간적인 갈등을 느꼈다.
난 이미 선배들한테 찍혔는데 여기서 이름을 부르면 더 찍히지 않을까, 같은 내적 갈등.

"이건 경고다."
마논이라는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빠. 나 없는 대신 리더시스한테 더 많이 신경써줘. 부탁이야.'
그 얼굴은 이내 간절한 눈빛의 리나의 얼굴로 뒤덮였다.

루드는 결정했다.


"리!!!더!!!시!!!스!!!!"
루드는 아주 크게 말하고는 리더시스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뭐 그깟 선배들 다 덤벼도 하나도 안무서워.
나한테는 그런 것보다 하나뿐인 내 동생과의 약속과 의뢰가 더 중요해.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더시스는 루드를 등지고 도망쳤다.

"저게..!"
순간 루드는 리더시스가 자기 말을 다 씹고 필요없다고 했던 일들이 모두 눈앞으로 스쳐지나갔다.

'절대 안 놓쳐-!'


쾅-!!!
루드는 병약 미소년의 컨셉을 희생하고 4층에서 팔팔하게 뛰어내리는 운동신경을 얻었다.

"리더시스!!!! 거기서!!"
둘은 살벌하게 술래잡기를 했다. 주변에서 큰 소리가 난 걸 듣고는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오게 되버렸지만.

'자기서 뛰어내렸어..'
'쟤 아픈 애 맞아...?'



"푸핫! 아하하!! 하하하!!"
그 광경을 모두 보고 있던 한 남학생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특이한 주황빛의 머리카락, 렌이었다.

"아, 뭐야. 재밌잖아, 저 애? 친해지고 싶은데."
렌은 생글생글 웃으며 뛰어가는 루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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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으로 내려온 나는 꽃밭에 누워 꽃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예쁜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딱 두가지 예쁜 것은 좋아한다.
하나는 별이 뜬 밤하늘과 또 하나는 꽃, 그 중에서도 안개꽃이다.

옛날에 오빠가 내 생일선물로 밤에 별이 잘 보이는 꽃정원으로 함께 이동하여 안개꽃다발을 선물로 주었다. 그때 나는 평생동안의 행복을 그 날 절반 느꼈다고 말했다. 정말이었다.

"........."
또다시 기억의 한자락이 떠올랐다.



'세실. 왜 위대한 인물들은 일찍 죽는거야?'
위인전을 읽다 만 난 세실에게 물어보았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이래.
리나는, 꽃을 좋아하지?'
'응.'
'꽃밭에 가면, 어떤 꽃을 꺾어오니?'
'...예쁜 꽃.'
'하늘도 마찬가지인가봐.'




나는 눈을 꼭 감으며 생각했다.

세실은,
그녀는 너무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래서, 너무 일찍 꺾여버렸다.
그 꽃을 꺾은 것이 비록 ........일 지라도.

나는 목걸이에 걸린 아티팩트를 다시 한 번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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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7-23 07:37 | 조회 : 2,646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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