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시작은 언제나 갑작스럽게(8)

커피를 다 마신 나는 마스터에게 갔다.

'오빠도 도착했으려나.
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어쩌면 오빠가 먼저 도착해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생각을 하며 마스터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아 왔구나 리나!!"
평소 하던데로 방으로 들어가려다 순간 경직했다.
마스터실에 이상한 모자를 뒤집어 쓴 여자와 그녀의 호위기사로 보이는 남자 둘.

내가 그대로 자연스럽게 문을 다시 열고 나가려고 하자 마스터가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어딜가, 리나? 의뢰인들도 계시는데."

그때 오빠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마스터!!!!!"

오빠도 잠시 방안의 상황을 보더니 얼굴이 새파래지며 밖으로 다시 나가려했다.
우린 모두 마스터에 의해 강제로 의뢰인의 건너편 소파에 앉아 의뢰인을 마주보게 되었다.

의뢰인 아주머니는 "이 아이들인가..."라고 말하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생긋 웃으며 오빠에게 말했다.

"또 보는구나 꼬마야. 그 마차, 안에 내가 타고 있었단다."
"............"
오빠는 그대로 경직해버렸다.
난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서 듣고 있기만 했다.



-



"마스터.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얼른 말해보세요!"
"응??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아까 하는 말 못들었니? 너흰 그냥 학교에 가서 의뢰인의 아드님을 도와주면 된다니까~~^^"
마스터가 우리 둘의 입학허가서 두 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곳에는 리나 크리시라는 이름과 루드 크리시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우리 둘의 증명사진까지 어디서 찾아냈는지 붙여져있었고.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뻔뻔할 수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모습으로 소개시키다니요!
거기다가, 7급 마법사?"
오빠도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는지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다. 1급 마법사가 7급이라고 소개될 때의 황당함을 마스터는 알긴 할까.

"하지만~ 너희가 각성한 모습으로 가면 그게 더 귀찮아 질걸? 게다가 그 아드님에게 가장 쉽게 접근하는 법은 또래친구로 가장해서 가는 거고."
"....근데 마스터.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응?뭔데, 물어봐."

난 입학허가서가 놓인 마스터의 책상을 손바닥으로 크게 내리치고는 말을 시작했다.

"거긴 입학시험이 참 까다롭기로 소문났어요.
입헉시헌은 한 해에 단 한 번. 모두 그 날짜가 다르긴 하지만 시험기간은 정해져 있죠.
그리고 그 시험은 항상 연초에 진행되고, 우리는 이미 시험기간이 지나서 시험을 치지 못했는데 어떻게 여기 입학허가서가 있는 거죠?"
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한꺼번에 말을 뱉어냈다. 말을 끝낸 후 숨을 들이마쉬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마스터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 그건.... 너희도 알잖아 내 능력."
마스터는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고보니 잠깐 잊고 있었다, 마스터의 능력. 원하는 것으로 신체를 바꿀수 있는 「체인지」.
그 능력으로 마스터는 종종 내 모습으로 변해 오빠에게 장난을 치곤 했다.

근데 그 능력으로 대신 우리의 시험을 치다니.
"이거 불법 아니에요?"
"........."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난 차라리 말을 말자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럼 마스터의 의도는 도대체 뭐에요?"
난 다시 생각해보니 짜증이 나서 고개를 휙 돌려서 물었다. 마스터는 순진한 강아지 마냥 내게 되물었다.

"의도라니?" 라며.
난 그 모습에 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니, 입학시험은 한참 전에 치러졌는데 의뢰는 들어온지 얼마 안됬잖아요. 그러니까 마스터는 이 의뢰가 아니더라도 우릴 그곳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아니에요?
왜 우릴 그 학교에 보내려 한 거에요?"
우린 이미 학습과정 다 마쳤잖아!

소리지르는 내게 마스터는 눈에 글썽글썽 가짜눈물을 달고 최대한 애절하게 말했다.

"왜 모르는 거니.... 너흴 그 학교에 보내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하고 싶은 이 마스터의 마음을..!"

개뿔. 오글거리니까 하지마...!
난 입학허가서를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담았다.

그러다 갑자기 마스터가 진지하게 표정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갑자기 확 변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건 세실의 유언이기도 하니까..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래. 그건 맞지.
그런데 그걸 여기서 얘기하다니.

갑자기 날카롭게 변하는 눈빛.
그건 단숨에 변해버린 마스터의 눈빛이 아니라 내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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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의 찰나에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였다.
루드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현실.

리나가 자신보다 훨씬 큰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루드는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마스터를 조금 만만하게 대하긴 해도 멱살을 잡을 정도로 함부로 대하진 않는 것을.

하지만 리나는 분명히-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장난 따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말했잖아요."
리나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작게 마스터에게 말했다. 루드에게는 들릴 수 없게.
그렇다고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깐 것은 아니었다.
분노 때문에 흔들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서 낸 목소리였다.

"오빠 앞에서 그녀 얘길 하지 말라고. 분명 말했잖습니까."
죽고 싶은 건가..
리나의 검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리나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은 진심이었다.

"...미안. 일부러 그러려던게 아니었ㅇ-"
"마스터!! 이게 무슨 일이에요, 리나 너도!!!!"
렌 씨가 소리를 차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리나는 슬며시 잡고 있던 마스터의 옷을 놓아주었다.

"콜록콜록!!!"
키엘은 힘들었다는 듯이 마른 기침을 했다.

"마스터. 이번에는 실수라 하니 넘어가지만 다음번에도 이번과 같은 실수를 하면 그땐 고의라 생각하고, 마스터의 의사도 묻지 않고 바로 죽여버릴 거에요. 조심하세요."
리나는 키엘노드를 째려보며 손을 툭툭 털어냈다. 키엘은 아무 말 없이 뒤를 돌아선 리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이게 무슨 일이야..?"
상황파악을 잘 못한 렌씨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의 표정을 했다. 리나는 그런 렌을 지나쳐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주워담았다.

리나가 멱살을 잡는 바람에 당황해서 떨어진 키엘의 서류였다.
그때 루드가 어느새 리나에게 다가왔다.

"리나. 네가 말한 '그녀'가 누구야? 누구길래 내 앞에서 말하지 말란 ㄱ-"
"몰라도 돼."
리나가 단호하게 말하자 루드는 눈치껏 다시 빠졌다. 리나가 루드에게 단호하게 말하는 경우는 정말 몇 되지 않는다. 리나는 거의 대부분 루드에게 관대했고 루드를 좋아했으니까.

그게 지금이라는 말은 그 질문을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뜻과 같은 것이다.

"어쨋든 리나. 방금 발언은 내가 잘못 말해서 미안해.
하지만 너희가 모두 친구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에 입학신청을 한 건 사실이야.
게다가 의뢰도 들어왔고, 한번 해보는게 어때?"
서류정리를 다 한 리나에게 키엘이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다. 잠깐동안 리나가 대답을 하지 않자 약간의 침묵이 생겼다.

"....친구 같은거. 필요없어요."
리나가 잠깐동안 생각을 해보았는지 망설이는 듯 하다가 단호히 말했다.

'그런 거 있어봤자 소용도 없고.'
키엘은 리나의 말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만큼은 평소 키엘이 장난으로 짓던 가짜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
키엘은 끝난 줄 알았던 리나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오빠한테는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언제까지고 둘이서만 붙어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진정한 친구 한명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리나의 대답에 키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잠깐! 내 친구인데 왜 네가 정해?!"
"싫으면 하는 수 없지. 나라도 가야겠다."
"익...."
루드는 어디든지 리나 혼자 보내는 건 불안해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리나와 같이 다니려고 하는데 리나는 이미 그런 루드의 성격을 안다.

루드는 마지못해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나도 갈게."

그렇게, 우린 거의 강제로, 그곳 「헬리오스」에 가게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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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나와 루드 오빠 둘의 인사를 학교 교수는 환하게 받아주었다.
결국은 와버렸다. 헬리오스.

"어서오거라. 너희가 바로 그 입학테스트 최초만점자들이구나?"

입학테스트 만점?
난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이 저절로 커질 뻔 했지만 눈웃음을 지어 보여서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다.


이 미친-
도대체 왜 입학테스트를 만점 받게 푼거야.
그래도 적당히 몇문제는 틀려줘야지.
게다가 쌍둥이가 나란히 만점, 그것도 최초로..?

'눈에 안띄고 평범히 살려 했는데 다 망했다.'
'이렇게 된거 인생은 마이웨이야.'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다하고 있는 도중, 교수가 말했다.

"너무 떨 필욘 없네.이곳에선 신분도, 성별도, 나이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곳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라면, 「재능」이지."

재능.
뭐 재능이 최고인 세상이 지금 세상이긴 하지만 이런 말을 진짜 입으로 내뱉는 교수라니.
재능이 최고라는 말은, 재능이 없는 자는 쓰레기 취급한다는 말이다.

'생각보다 실망인데 이 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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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식의 한가운데, 가장 짙은 침식이 있는 곳.
그곳에는 한 건물이 있다.

".....그 아이가. 침식의 가까이에 있다."
건물 안 붉은 피 같은 물. 그 속에 들어있던 길고 하얀 머리를 가진 여자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노란머리의 여자가 움찔했다.

"그래?
그거 재밌겠네."
노란 머리의 여자는 그 특유의 웃음을 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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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7-19 06:55 | 조회 : 3,153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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