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시작은 언제나 갑작스럽게(4)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난 분명 시크무온이 블로우한테 간다고 생각해서 달려든 것 뿐인데.
엄청나게 서둘러서 계단에서 내려와서 얘한테 달겨들었는데.

'왜 내가 이자식과 내가 싸우게 된 거야..'

“저기 우리 말 좀 해 보는 게-”
“닥쳐.”
아 진짜 죽여버릴까..
난 내 눈앞에서 나와 대치하고 있는 시크무온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아마 참을성이 없었다면 이미 시크무온과 싸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블로우.
우리가 바라던 대로 어그로는 확실하게 끌어주고 있어.
그런데 이대로 계속 도망만 다니면 이 건물을 다 부숴버릴거 같아. 물론 시크무온이.


꺄아악!
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살짝 가르키며 말했다.

“저기 사람들이 놀라서 대피하는 거 안 보여요?”
“알게 뭐야. 저런 쓰레기 같은 놈들이 뭐가 중요하다고.
난 지금, 나한테 도전해 온 네가 짜증나. 그 뿐이다.
검둥이와 대조되는 흰둥이라니. 게다가 실력도 꽤 있어 보이고.“

난 두 손으로 시크무온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블로우한테 검둥이라 할 때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는데 내가 당하니까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흰둥이라니 흰둥이..
나랑 블로우가 바둑돌도 아니고..

‘거기 밑에 강아지 아저씨. 나 쫓기고 있어요, 빨리 좀 도와줘요.’
나는 약간의 충격과 함께 최대한 간절한 눈빛을 강아지 아저씨에게 보냈다.
내 눈빛을 제대로 해석한건지 아닌지, 아저씨는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니 잠깐.
근데 올때도 상황 봐가면서 와야지 공격을 퍼부을 때 오면 어떡해.
나 지금 싸우고 있는데?

시크무온이 나한테 엄청난 양의 마력을 퍼붇고 있을 때, 강아지 아저씨가 내 앞 쪽으로 다가왔다.

잘못하면 ,
“다친다고요!”

펑-.

"?"
난 큰 폭발음이 아닌, 딱딱한 벽에 부딪힌 듯한 소리에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눈을 떠서 보인 것은 내가 예상했던 다친 강아지 아저씨가 아닌

'..멀쩡해.'
다친게 아니라 아저씨 몸으로 다 공격을 받았다. 그래놓고 한 개도 안 다쳤다..?

“비켜 영감. 영감이라도 가만 안 있어.”
“시크. 네가 오랜만에 니 수준에 맞는 마법사 만났다고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래서 말도 좀 많아 진거 같고.”

수준은 무슨 수준.
난 들리지 않게 슬며시 중얼거렸다.

“좀 진정해! 건물 무너지는 거 안보여?!”
보였으면 이랬을까.
난 한번 더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이 말이 조금 들렸는지 아저씨가 뒤를 휙하니 돌아보았지만 난 고개를 돌려 아닌 척 딴청을 피웠다.

“알 게 뭐야. 그런 버러지 같은 놈들 죽어봤자 신경 안 쓴다니까!”

버러지, 쓰레기.
자꾸 사람들이 죽어봤자 쓰레기다, 버러지다, 신경 안쓴다 그러는데.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가..!”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망나니한테 제대로 달려들어 버렸다.

알고 있어.
내 역할은 망나니 관심 끄는거, 거기서 끝이란거.
그런데 듣자듣자 하니까 참을 수가 있어야지.

“죽어도 되는건 너야!!!”
내 순백의 마력으로 만든 하얀 검을 그자에게 휘둘렀다.
아주 잠깐, 이렇게 달려들면 블로우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어. 지금 여기서,'
"죽여버리면 되는 거잖아-!!!"


“끄아아악!”
제대로 싸워보려고 했는데, 이런 소란한 와중에도 선명하게 들리는 비명소리. 타겟의 소리였다.

설마 진짜로 바지를..?
약간 움찔거리며 공격을 멈추던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과 눈초리.

‘망했다.’
나는 이생각이 가장 먼저 났고, 그 뒤는 생각이 안 난다.

언뜻 본 걸 기억해보자면 블로우와 시크무온의 눈이 마주치고 시크무온이 달겨드는 장면이었나. 잘 기억이 안 난다.

사실 기억하기 싫은 것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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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7-16 16:17 | 조회 : 3,285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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